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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Jul 13. 2021

내가 만난 다양한 인간군상

은래빛 에세이 1부


몇 해 전, 나는 오랫동안 해준이를 돌보아주시던 시부모님에게서 독립했다.


해준이는 의사표현을 하지 못했고 화장실도 스스로 가지 못했기 때문에,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육을 맡긴다는 것은 오랫동안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연로하신 시부모님이 맡아주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준이가 최소한의 의사표현과 신변처리가 가능할 때까지 시부모님은 맡아주시고자 했었지만,

그런 때는 계속해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과정을 거쳐 독립을 하게 된 나는 이제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해준이를 맡겨야만 했다.




처음 구한 사람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소중하다'라는 모토를 앞세운 분으로, 장애아동을 돌봐본 적은 없지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청소를 말끔히 하고 아이에게 동화책도 읽어주려 애쓰는 등 열심히 해주셨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반찬을 자꾸 섞어놓는 것이었다.


불고기와 메추리알 장조림을 한통에 섞어놓고, 낙지 무침과 김치를 한통에 섞어두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른 반찬은 한통에 섞어 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다음날 다시 반찬이 섞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어느 날 시부모님이 서울에 있는 병원 검진을 위해 우리 집에 방문을 했다.


그다음 날 해준이의 방학중 오전 등교를 위해 차를 몰고 오던 그녀가 오지 않았다.


약속시간이 지나 오지않아 화를 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 참~ 시부모님 계시잖아요, 시부모님에게 학교에 데려달라고 하세요" 



결국 그녀는 한 달에 250만 원 이상 되는 풀타임 근무를 찾아야겠다며, 우리 집을 떠났다.




두 번째로 온 그녀는 바로 옆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난 날 마음이 희망으로 부풀었는데, 그 이유는 해준이가 그녀의 컵을 빼앗아 물을 마시자

그녀가 웃으며 "그래 물이야, 물, 마셔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우아한 외모를 하고 있었고, 젊은 시절 교사로 일 하다가 사업가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생활을 10년 넘게 하고 돌아온 사람이었다.

슬하에 장성한 아들 한 명이 있는데, 현재 미국에서 의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새로운 아주머니를 구하는 동안 집에 와계셨던 시부모님과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2일간 시부모님에게 집안일과 보육 일을 인수인계받았고, 시부모님도 그녀를 보고 흡족해하며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시부모님이 내려가시자, 그녀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내일부터 근무할텐데, 말할 게 있어요"


"예예, 말씀하세요"


"빨래를 돌려줄 순 있는데, 너는 건 못하겠어요. 젊은 남자 속옷도 있고 한데 내가 널 순 없지"


"예..?"


"싫어요? 싫으면 다른 사람 구하고"


그녀의 말투는 금세 반말이 되어있었다.


"아, 아니에요.. 빨래 돌려놔 주시면.. 제가 퇴근하고 와서 널게요.. 알겠습니다"


나는 당황했지만, 시부모님이 내려가셨는데 다시 새로운 사람을 구할 순 없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그녀의 근무가 시작되었다.


그녀에게 왠지 기선제압을 당한 나는 집안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3일간 지켜보았는데, 청소기를 한 번도 돌리지 않았다.


분명히 시부모님에게 인수인계를 받았을텐데 이상했다.


4일째 되는 날,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말했다.


"저.. 선생님, 아이가 집에 오기까지 2시간이 남는데, 청소기를 좀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청소기가 없던데요?"


"여기 베란다에.. 진공청소기가 있어요"


"아, 그건 유선이잖아요"


".. 네?"


"난 무선청소기가 아니면 못해요. 다이슨 같은 거?"


***


그녀는 내가 집에 오면 내가 겉옷을 벗기도 전에 곧바로 퇴근을 했다.

마치 이어달리기 바통 터치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시부모님도 하지 않던 잔소리를 나에게 쏟아냈는데, 일단 바통 터치하듯이 퇴근해 자신의 집에 도착한 후 나에게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잔소리를 했다.


"아니, 화장실 환풍기를 켜놓고 출근하면 어떡해요? 불날 수도 있는 거 몰라요?

습기가 많으면~~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고 출근해야지~~


그리고! 아이가 아무리 장애가 있어도 그렇지, 똥오줌도 못 가리는데~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배변훈련을 해달라고 했어야지, 안 그래요?"




또한 그녀는 본인은 돈이 궁한 게 아니라 심심해서 일을 하는 것이라며, 내가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날은 자신에게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런 날은 일당을 받지 않고 쉬는 것이 좋으니 바로 알려달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에 나와 남편은 함께 상의하여 일찍 퇴근이 가능한 하루씩 해준이를 직접 돌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화하여 말했다.


"선생님, 제가 남편과 상의했는데, 월요일과 수요일은 저희가 일찍 와서 아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선생님은 주 3일만 근무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럼 내 주급은 얼마가 되는 거죠? (그녀는 미국식으로 주급을 받았다)"


"예, 5일 근무에서 3일 근무로 바뀌니 00만 원으로 송금해드릴게요"


그러자 그녀는 말했다.


"아니, 장애가 있는 애를 키우고 있으면~~ 돈을 더 줄 생각을 해야지, 지금 돈을 깎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사람 쓰겠어요?"


나는 심장에서 징-하는 소리가 나며 무언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맞춰주었지만, 결국 그녀는 자진해서 그만두었다.




세 번째로 사람을 구했다.


그녀는 귀를 지압 마사지하는 것을 취미로 배우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계속해서 나에게 귀가 온몸과 연결되어 있다며 귀 마사지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해준이를 어떻게 돌볼지 시범을 보이며 엉덩이를 씻기거나, 양치를 돕는 것을 보여주면,

그녀는 항상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간편히 씻길 때는 자세를 이렇게 해주시면 돼요. 이렇게...

 .. 선생님 제가 지금 하는 데로 배우셔야 하는데.. 보셨어요?"


"네네네!! 봤죠 봤죠~~ 걱정 마세요"


하지만 그녀의 눈은 핸드폰을 향해있었고 손가락으로는 항상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그녀는 딱 일주일이 지난 후 몸이 안 좋다며 그만두겠다고 말했고,

나는 일당을 계산하여 그녀에게 송금해주었다.


카톡이 왔다.


- 한 달에 100만 원이면, 일주일 일했을 때 25만 원 아닌가요? 왜 20만원 이죠?

별것 아닌 5만 원 때문에 기분이 몹시 상하네요.


- 선생님,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선생님께서 근로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지만 저는 모집공고에 올린데로 시급1만원으로 계산해 송금해드렸습니다. 급여는 100만원은 한 달을 모두 근무하셨을 때 기준이니까요..


그리고 매일 인수인계를 받으시고 2시간 만에 돌아가셨지만 하루 4시간 모두 근무한 것으로 계산해드렸어요.. 


항상 핸드폰을 쥐고 살던 그녀는 답이 없었다.




내가 만났던 그녀들을 여기에 다 적으려면 아무래도 너무 길어질 것 같다.


전부 우리 아이가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녀들은 참으로 독특했고, 하나같이 책임감이 없었다.


그녀들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고, 이기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내가 다 참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만큼 사람을 구하는 게 어렵기도 했고,


사람들이 장애아를 가진 엄마에게 대하는 부당한 언행에 나도 모르게 가랑비에 옷 젖듯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매번 사람을 구할 때마다 '이번엔 좋은 인연이 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그런 인연이 정말 있을 것 같진 않았다.



< 계속 >



나무에 아크릴 18cm × 20cm

이미지 출처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32&aid=0002919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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