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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May 29. 2021

네, 37살 저에겐 애착 인형이 있습니다만?

은래빛 에세이


나는 그를 꼭 껴안고 격렬하게 입맞춤했다.


그의 체향과 포근함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나는 그의 뒤통수부터 허리까지 부드럽게 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어루만졌다.


남편은 그런 나를 옆에서 무감하게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


"고만 좀 해라. 불쌍한 토끼"



그의 이름은 '베렛'이었다.

베이지색 토끼라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었다.


그렇다. 37살의 나에게는 애착 인형이 있다.




나에게 애착 인형의 역사는 매우 길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아빠가 나를 위해 귀여운 토끼 인형을 사 오셨다.


그 인형은 자그마하고 털이 연분홍색이었고, 북을 껴안고 있어 전원 스위치를 누르면 북을 타타타탓 두드리며 뛰어다니는 토끼였다.


너무 귀엽고 예쁜 모습에 나는 반색했지만, 그 토끼를 껴안으면 안에 뼈(?)같은 딱딱한 것이 있어 나에게 포근함을 주지 못했다.


북을 두드리기 위한 기계장치가 안에 있었던 것이다.


난 토끼가 너무 맘에 들었지만 그 딱딱함이 싫어서 토끼를 껴안았다가 놔버리기를 반복하며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엄마가 아빠에게 말하자, 아빠는 다시 2시간 거리의 인형가게에 가서 다른 인형을 하나 더 사 오셨다.


그게 바로 나의 첫 애착 인형인 '아빠 토끼'이다.


나는 항상 그를 껴안고 다녔고, 엄마를 따라 계모임에 가서도 아빠 토끼가 보고 싶다며 빨리 집에 가자고 조르곤 했다.

 

어린 시절의 나와 아빠 토끼. 토끼의 코 옆에 삐져나온 털로 손가락을 간지럽히며 놀았다.




그리고 그 이후 더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7살 때, 집 근처의 바른*팬시에서 구매한 자그마한 토끼 인형이었다.


그 토끼 인형에게 나는 '토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함께했고, 결혼할 때도 데리고 와서 지금도 우리 집에 함께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좀 범상치 않았던 거 같다.


하지만 '정상'이라는 기준이 따로 있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결핍이 있고 개성이 있다.


사람을 모두 '정상'이라는 규격의 틀 안에 억지로 넣으려면 누구나 팔다리 하나씩은 잘려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난 약 3년 전에 새로운 애착 인형을 사게 되었다.


우연히 온 가족이 쇼핑몰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요즘 아이들의 국민 애착 인형이라고 불리는 젤*캣 매장에서 토끼들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오빠!! 나 이거 사야 돼!!"


그는 약간 당황했지만 알겠다며 토끼 인형을 사주었다. 난 쉴 새 없이 옆에서 꺄꺄 거렸다.


"꺄~~ 너무 귀엽다! 엄청 부드러워~~ 이거 할래!  아니 이거?? 아니다 조거!! 이건 너무 큰가?"


"... 조용히 하고 빨리 하나만 골라라"


그리고 그 뒤로도 다른 크기와 색깔로 토끼 인형들을 하나씩 더 사면서 나는 총 3마리의 토끼들을 기르게(?) 되었다.


나는 토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제일 먼저 산 작은 토끼는 '래빛'으로, 두 번째 산 분홍토끼는 봄꽃 같아서 '봄이', 세 번째 산 큰 하얀 토끼는 포근해서 '포포'라고 지어주었다.


맨 앞 작은 흰 토끼가 '래빛', 분홍색 토끼는 '봄이', 가장 큰 흰 토끼가 '포포'



그리고 내가 휴직을 하고 불안장애로 진단받게 되면서, 나는 한 마리 더 토끼 인형을 입양하게 되었다.


그게 바로 베이지색 토끼 '베렛'이다.


난 혼자서 집에서 지내면서 베렛을 꼭 껴안고 킁킁 포근한 냄새를 맡았다.

TV도 같이 보고 낮잠도 같이 잤으며 밤에 잘 때도 꼭 껴안고 잤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세수를 시키고 드라이기로 손수 털을 말려주었다.


나의 정서안정에 도움을 주는 '휴직 메이트'라고 할 수 있겠다.



해준이는 내가 베렛과 너무 붙어있자 그를 조금 질투했다.


해준이는 베렛을 보며 '대체 너는 뭔데?' 하는 표정으로 발로 툭툭 차거나, 일부러 쿠션처럼 온몸으로 뭉개거나, 입으로 물어 침을 흥건하게 묻혀주었다.


그리고 그는 종종 베렛을 창밖으로 던지기도 했다.

갑자기 베렛이 집에서 사라져 찾다가 혹시 하고 창밖을 내다보면, 아파트 1층 화단에 널브러져 있곤 했다.



해준아, 엄마도 위로받을 곳은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니. 베렛을 이만 허용해주렴.




내가 애착하는 대상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명품가방이었다.


나는 한때 나의 힘든 삶 속에서 결핍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명품가방을 사는 것에 매우 집착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프라다'였다.


프라다의 거꾸로 된 삼각로고만 보면 나의 마음은 선덕거렸고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가장 좋아하는 프라다 사피아노 가방을 큰 사이즈로 블랙을, 그리고 작은 사이즈로 연분홍을 사서 애지중지 하고 있었는데,


휴직을 하고 가방을 들고나갈 일이 없자 가방을 꺼내 토끼들과 함께 하며 놀았다.



래빛, 봄이야


연분홍 프라다 가방 안은 어떠니, 안락하니?


크기도 딱이고 너무 잘 어울리는구나!



베렛!


검정 가방이 빅사이즈라 다행히 들어가는구나


내가 가장 아끼는 아이들 둘이 만났으니


사이좋게 지내렴.



이쯤에서 나를 너무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조금 저어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밖에서나 회사에서나 대인관계에서는 철저히 사회화된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길 바란다.




토끼 인형은 나에게 뭔가 다른 의미가 있다.


그는 항상 내 옆에 있다.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 주는 사람들과 달리 계산적이지도 뾰족하지도 않다.


항상 포근하고 부드럽다.


그 무엇도 의도하지 않고 이용하지 않는

내 품 안의 존재


나는 회사에서는 과장으로서, 선배로서, 후배로서

집에서는 해준이의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사회적 역할을 해야만 한다.


토끼 인형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

그저 '인형을 좋아하는 나' 이기만 하면 된다.


그는 내 나이가 37살인데 언제까지 자기를 껴안고 있을 거냐고 나를 나무라지 않는다.

그저 까만 눈동자로 날 바라봐준다.


어쩌면 여전히 내 안에 있는 '어른 아이'를 토끼 인형이 항상 감싸주는 건지도 모른다.





최근에 남편과 아이와 함께 북한강 근처로 휴가를 가서 즐겁게 2박 3일을 보내고 왔는데, 베렛도 가족여행에 함께 했다.


그의 여행 사진과 그를 위한 시로 이 글을 마무리 하겠다.


북한강을 바라보는 베렛  "휴.. 인형 인척 하기 힘들군"



<네, 37살 저에겐 애착 인형이 있습니다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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