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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Jul 16. 2021

나에게 사랑을 알려준 그녀

은래빛 에세이 2부


- 에세이 '내가 만난 다양한 인간군상'의 후속편입니다.



그녀가 우리 집에 찾아온 것은 5월이었다.


내가 인터넷에 올린 구인공고를 보고 연락해왔는데, 그녀는 장애아동을 돌보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4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이었다.


내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자, 집에서 시부모님과 대화를 먼저 나누고 있던 그녀가 나를 보고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매우 하얗고 고왔으며, 선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말갛게 웃으며 인사했다.


악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경기도에 있는 특수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었고, 퇴근 후 우리 집에 와서 저녁까지 해준이를 돌볼 수 있다고 했다.


일하는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1시간이나 걸리는데 괜찮으시겠냐고 묻자, 그녀가 괜찮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해준이를 진심으로 예뻐해 주었다.


해준이가 변기에 앉아 있으면 앞에 쭈그려 앉아 눈을 맞추고 "우리 해준이 응가해봐요 응~가!" 하며 웃고 있었고,


벽에 붙이는 공룡 스티커북이나 발로 누르는 피아노 건반 등 다양한 놀잇감을 가져와서 함께 놀아주었다.


또한 내가 미처 부탁하지 않은 집안일까지도 세심하게 신경 써주었는데,


집에 오면 귀여운 모양의 칫솔 보관대가 욕실에 붙여져 있거나, 내가 그린 유화 그림이 벽에 예쁘게 걸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의 그런 세심한 손길들은 일상에 지친 나를 가만히 미소 짓게 만들었다.



또한 녀는 나에게 해준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웃으며 간단히 설명해주었고, 그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언제 화장실을 갔는지, 밥은 얼마나 먹었는지 등) 수첩에 빼곡히 적어두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동안 여러 사람을 거쳐 마음고생을 해왔던 것일까?


그녀는 우리 가정을 환하게 만들어주었다.


***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8월이 되었다.


그녀는 어떤 특수학교의 여름방학 프로그램에 보조교사로 채용되어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함께 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퇴근한 나에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새로운 학교에서의 즐거웠던 일을 이야기했다.



"어머니~ 제가 새롭게 일하는 학교에서 해준이 또래의 친구들을 만났는데요,


그중에 영선이라는 아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데, 영선이가 김치를 싫어하거든요~


자꾸 저에게 김치를 먹어달라고 "으! 으!" 하면서 내 앞으로 김치를 내미는데 너무나 귀여운 거 있죠~


제가 김치를 먹어주면 환하게 웃는데 정말 천사 같아서 꼭 안아주었어요~


(음? 싫어하는 김치를 먹어달라고 "으!으!"하는 게 귀엽다고??)



그리고 민혁이라는 친구는 다른 사람 짐을 들어주는 걸 좋아해서


제가 출근하면 꼭 다가와서 제 가방을 들어줘요~ 정말 너무 사랑스러워요"


(음? 교실에 다 도착했는데 가방을 굳이?)



그녀는 눈을 반짝거리며 그 아이들이 얼마나 순수한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천사 같은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옅은 미소를 띈 채 간간히 호응해주며

즐겁게 얘기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얼마나 빛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그녀에게서 나오는 행복 아이들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나를 눈부시게 만들었다.




선생님, 제 눈엔 선생님이 천사 같아요.


선생님이 순수하고, 사랑스럽고, 천사 같아요.


해준이의 장애를 원망하고 피하고 싶어 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내가 저렇게 맑고 사랑하는 눈으로 해준이를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요?


선생님, 제겐 선생님이 바로 천사예요.






그녀를 보면서 특수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모든 직업은 다 힘들고 어렵지만, 특히나 장애아동을 돌보는 특수교사는 정말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적인 소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렵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일이 힘들고 적성에 맞지 않아도 돈을 벌기 위해 지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나도 거기에 포함된다.)


특수교사라는 직업은 돈을 위해서 일하기에는 선택하기도, 지속하기도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해준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장애인'이라는 것은 전혀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고,

그들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가끔 매체를 통해서 장애인들을 보게 되면 잠시 '아이고.. 안됐네.. 복지가 좀 좋아져야 할 텐데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지' 정도의 생각을 할 뿐 금세 나의 뇌리에서 사라지곤 했다.




해준이가 자폐성 장애 1급으로 판정받았을 때 나는 내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자기애가 강한 편이었던 탓인지 나 자신이 '장애아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장애아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동안의 나의 자아와 정체성, 나의 재능, 살아오면서 이룬 모든 것들을 다 덮어버릴 만큼 강력했고,


그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돌변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너무 싫었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나는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중반의 기혼여성'에서 '장애아 엄마'로 전락했다.


몹시 당혹스럽고, 민망하고, 매우 불쌍하게 쳐다보며 나의 안위를 살피는 듯한 흔들리는 그 눈빛.


 


난 소리치고 싶었다.


날 그렇게 불쌍하게 쳐다보지 말라고! 니들이 나에 대해, 해준이에 대해 무얼 안다고!


당신도 모르는 거야! 길을 가다 갑자기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될지!


훗날 당신의 아이가 장애가 있을지! 알 수 없는 거라고!!



***



그렇게 오랫동안 피해의식과 분노에 젖어있었고, 말없이 고통을 감내하는데 익숙해졌다.


내 힘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나는 최선을 다해 해준이를 보살피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인내하며 마음을 쥐어짰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고나서 깨달았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내 마음을 억지로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노력해야만 줄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내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면 저절로 아이에게 흘러간다는 것을.


그녀는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우리 집에서 2년간 해준이를 돌봐주었다.


나와 남편도 전전긍긍하지 않고 회사를 다닐 수 있었고, 해준이도 그녀를 매우 잘 따랐다.


우리 가정의 안정을 그녀가 책임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2년째 되던 때부터 그녀는 원인모를 기침으로 힘들어했고, 약을 오랫동안 먹어도 나아지지 않아 대학병원에 정밀검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정밀검사 결과는 큰 이상이 없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아 결국은 우리 집에서 아이를 돌봐주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1개월간은 그녀가 2일만 출근을 하고 3일은 내가 아이를 돌보며 그녀의 몸이 나아지기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나도 점점 지쳐가게 되었다.


결국 그녀가 근무하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선생님, 오늘 저녁에 면접 오시는 분이 있는데.. 웬만하면 그분으로 그냥 고용을 하려고 해요..

선생님 몸이 아픈데 오시느라 그동안 너무 무리하신 것 같아서..

오늘을 마지막 날로 할게요..


선생님,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일하느라 너무 무리해서 아프신 건 아닌지 마음에 걸렸어요..

집안일도 조금만 하라고 제가 말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죄송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엉엉 울면서 죄송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편으로는 다시는 그녀 같은 사람은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감사하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해준이도 잘 지내길 바랄게요.."


그녀도 눈물을 흘리며 우리 집을 떠났다.






선생님, 잘 지내시나요?


선생님이 저희 가정과 해준이를 위해 애써주신 마음 잊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사랑으로, 저도 미숙하나마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장애아'가 아니라 해준이의 순수한 마음과 내면, 영혼을 보려고 노력한답니다.


선생님이 더욱 건강해지고, 행복해지기를 항상 바랍니다.


그리고 꼭 좋은 분을 만나 결혼하시고 가정을 이루어 더 행복해지시길 기도할게요!


또한 선생님을 만난 모든 장애아동이 행복하고 발전하게 되길 바랍니다.


선생님! 언제나 감사합니다!






< 내가 만난 다양한 인간군상 1부, 나에게 사랑을 알려준 그녀 2부 끝 >



제목 : 그녀의 나무 / 캔버스 유화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zagmachee/22224607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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