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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Oct 19. 2021

소발작과 대발작

은래빛 에세이 1부


해준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담임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해준이에게서 경기(발작)가 자주 관찰되니 병원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나에겐 경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는데, 해준이는 종종 잠시 몸을 멈추고 눈동자가 약간 위로 올라간 채 양옆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난 그 증상을 여러 번 목격했지만 그것이 '경기'의 일종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


잠시 그 증상이 끝나기를 기다리거나, "해준아! 정신 차려"라고 몸을 흔들어주면 금세 그 증상은 사라지곤 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점점 그 횟수가 늘어가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난 담임 선생님께 감사하기는커녕 병원에 가서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에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많은 아이들이 문제행동교정, 집중력 상향, 공격성 조절 등을 위해 약을 먹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해준이는 약을 먹고 있지 않았고, 난 그에 대해 왠지 모를 쓸데없는 자부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준이가 5살 때쯤 공격성과 할퀴는 행동 때문에 시부모님의 단독적인 결정으로 소아정신과 약을 먹은 적이 있는데,


아이가 축 들어지고 멍해지며, 조금 있다가는 공격성이 더 심해져 매우 힘들게 약을 끊었던 경험이 있어 난 약에 대한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증상의 횟수가 점점 늘어나자, 아이와 함께 병원을 가게 되었다.




대학병원에서 아이의 뇌파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아이가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붙들고 뇌파검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아이를 꽉 붙잡고 땀을 뻘뻘 흘렸고, 아이는 아픈 검사가 아닌데도 벗어나려 발악을 했다.


다행히 뇌파 검사하는 동안 그 증상이 포착이 돼서, 정확히 진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진단명은 바로 '결신 발작(소발작)'이었다.


*결신 발작, 소발작(absense seizures)

: 전조증상 없이 의식이 잠깐 동안 소실되는 것이 특징인 전신발작의 한 유형.

 대게 2~10초 이내에 끝나며 30초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타인은 물론 환자 자신도 때로는 자신이 발작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종종 대발작으로 진전되는 경향이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의사는 해준이가 결신 발작이라며, 잠깐씩 의식이 소실되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등의 사고를 유발할 수 있고 점점 빈도가 잦아지는 양상이므로 약을 꼭 먹어야 한다고 권유했다.


나는 그때도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잠시 증상이 왔다 사라지는데 굳이 약까지 먹어야 하나? 약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의사의 처방을 곧이 받아들이지 않고, 주말에는 자폐성 장애와 경기 치료로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갔다.


한의원은 방송에 몇 번 나온 적이 있는 곳으로 환자들이 바글바글 했다.


한의사는 자폐장애와 경기가 같이 있는 경우는 치료하기가 힘들다며, 한약을 먹더라도 매우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로 약 1달간 한약을 먹였지만, 소발작이 줄어들거나 없어지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발작 횟수가 늘어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먹이기로 결정했다.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며칠이 지나자, 해준이의 소발작 증상은 완전히 사라졌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게 그 약을 약 2년 정도 계속 먹었고, 다행히도 증상이 재발하거나 약의 부작용은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당시의 나는 어깨 통증과 무릎 통증,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불안증세로 회사에 병가를 냈다.


아직 내가 '불안장애'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던 때로, 해준이를 시댁에 맡기고 한방병원에서 2주간 입원하여 어깨와 무릎에 대한 치료를 받았다.


2주간의 입원을 마치고 컨디션이 조금은 좋아진 나는, 시댁으로 가 해준이를 다시 만나고 다음날 새벽 일찍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짐을 쌌다.

어느새 밤 10시가 되어 있었다.


난 해준이를 먼저 재우고 나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스읍- 흡- 흡-  스읍~!"


마치 공기가 부족해 숨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분명 잠든 것 같았는데.. 해준이가 다시 깬 건가?


나는 안방의 불을 켜고 해준이를 내려다보았다.



해준이가 눈을 까집고 전신을 크게 들썩이며  발작하고 있었다.



"악!!!! 어머님!! 아버님!!"


난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고, 시부모님이 건넛방에서 뛰어왔다.


나는 급히 119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고 온몸의 신경이 곤두셨다.

119를 제대로 누르지 못해 몇 번이나 다시 눌러야 했다.


아버님은 발작 환자를 보거나 응급처치를 해본 경험이 있었는지, 침착하게 대응하셨다.


"해준아, 할아버지 봐봐~ 괜찮아~"


해준이는 여전히 눈을 까집은 채였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주자 입에서는 하얀 거품이 흘러나왔다.


"여, 여보세요?? 아이가 발작.. 발작을 해요! 입에서 거품도 나오고 온몸이 많이 흔들려요..!!

어떻게 해야 하죠??"


나는 상담원에게 급하게 말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네 어머니, 지금 바로, 구급차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주소가 어떻게 되시나요?"


"여.. 여기 주소가.."


주소가 기억나지 않았다.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 네 지금 바로 구급차가 가고 있습니다, 곧 5분 내로 도착합니다. 좀 진정되시나요?"

"네네.. "


해준이는 어느새 발작을 멈추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잠들었어요.. 지금 병원에 가면 어떤 치료를 할 수 있나요?"


"아이가 잠들었나요? 지금은 밤이라.. 병원에 가도 딱히 치료를 할 수 있는 건 없고 뇌파검사 정도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그럼 일단 구급차는 취소할게요, 그래도 되나요?"


"네 가능합니다. 일단 밤 동안 아이를 잘 지켜보시고 내일 내원하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할게요"



시부모님은 해준이가 잠들자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


손주가 보여주는 끝없는 절망적 상황에 대해 그닥 대화하고 싶지 않은 듯 했다.


해준이는 방금의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던 어깨와 무릎이 웅웅 거리며 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난 밤새 잠을 잘 잘 수 없었다.


계속해서 그가 발작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혹시라도 다시 발작이 왔는데 내가 잠들어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몇 번이고 불을 켜서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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