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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Oct 11. 2023

세상이  멈춘 듯

말이 품은  마음 2

   녀석의 입술에서 빨간 피가 보인다. 자영의 주먹이 한 번 더 녀석의 얼굴을 치자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자영아, 이제 그만해. 피나잖아. 피난다고.  선생님 오시면 엄청 혼날 거야.”

힘이 빠져 움직이지 않는 녀석의 얼굴에 다시 주먹을 날린다. 자영의 눈엔 눈물이 고여 녀석의 얼굴이 희미하고 잘 보이지도 않지만, 움켜쥔 멱살에 힘을 빼지 않은 채  주먹 쥔 손을 더 움켜쥐고 녀석을 향해 팔을 내리꽂는다. 누워있는 녀석을 향해 날아가던 자영 손목을 잡아 들어 올리는 커다란 손이 보인다. 자영은 고개를 들어 커다란 손의 주인을 올려다본다. 눈에는 눈물이 아직 가득 고여 있고 해를 등지고 서 있는 그의 얼굴에 그늘이 져서 정확히 보지 않는다. 그의 손은 점점 자영의 손을 높이 들어 올렸고, 하늘로 향해 높이 들어 올려진 팔 때문에  자영의 옆구리가 당긴다. 그러더니 반대편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자영이를 한 번에  훌쩍 들어 올려 입술에 피가 난 녀석과 떼어 놓는다. 자영은 분노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아 주먹 쥔 손을 펴지 않고, 울며 바닥에서 일어나는 녀석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맞은 놈은 일어나서 보건실로 가고, 구경하던 놈들도 저리 가. 그리고 넌 저 멀리 뛰어 오고  계시는 선생님을 나와 함께 기다린다.”

자영의 손목은 아직 커다란 남자의 손에게 잡혀 있다. 잡히지 않은 반대편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남자를 올려 다 본다. 남자는 재미없는 텔레비전을 보듯 무심하게 자영의  얼굴똑바로 내려다본다. 그는 허리 굽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선생님께 꾸벅 인사한다.

   “허가영, 너 또 친구를 때렸네? 도대체 몇 번째니? 너 나랑 상담실로 좀 가야겠다. 아이고 이젠 나도 늙어서 급하게 뛰려니 너무 힘들다. 후~후~. 태준아, 오랜만이네. 애들 싸움을 말려줘서 고마워.  자영이 손은 이제 내가 잡을게.”

태준은 관심 없는 교과서를 옆 반 친구에게 빌려주듯 자영의 손목을 선생님께 넘기고, 사라진다. 자영은 입에 침과 함께 섞인 피를 바닥으로 뱉는다. 자영은 모래 위에 떨어진 자신의 침을 바라보며,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로 천천히 걷는다. 태준은 걸음을 멈추고 주임 선생님과 가영이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작은 키, 짧은 머리카락, 마른 체격에 알 수 없는 영어단어가 적힌 보라색 반 팔 티에 청반바지를 입고, 자신의 발보다 조금 커 보이는 고무 샌들을 신고 선생님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가영이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본다. 태준은 몸을 돌려 원장실로 걸어간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에어컨 좀 켜세요. 이 시간엔 실외보다 실내가 더 더워요.”

   “하하, 왔어. 손님 왔으니 에어컨 틀어야지. 에어컨 주인이 덥다는데 틀어야지. 하하.”      

  “원장님, 요즘 에어컨은 절전형이라 전기세 얼마 안 나와요. 이런 날씨에 선풍기만 틀고  계시면 병나요.”

   “그래, 그래. 알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왔구나. 몸은 어떠니? 다친 곳은 없어? 강하지?”

   “네, 저야 늘 건강하죠. 그런데 자영이라는 녀석이 이 구역 일진이에요? 조그마한 녀석이 보통이 아니던데요. 보통 저 맘때 애들은 피를 보면 멈추는데, 그 녀석은 피 흘리는 상대를 보고도 멈추지 않더라고요. 웬만하면 사람 사이엔 다 이유가 있어서 저러지 싶어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그 녀석이 너무 옴팡지게 친구들 때리고 있어서 중지시켰어요.”

   “아, 자영이? 그런데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주임 선생님이 얼마나 크게 이름을 부르시는지. 잊을 수가 없죠. 하하.”

   “그렇군. 또 싸웠네. 자영인 입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기에 있던 아이들에겐 호기심의 대상이지. 다른 여자아이들보다 친해지기가 힘들어. 말이 없어. 도통 말을 안 해.”

   “그 녀석 여자아이예요?”

   “하하, 그래. 머리를 아주 짧게 깎았지? 머리카락이 좀 길어질 때쯤이면 싸움도 멈추고 선생님이나 친구들하고도 친해져 있겠지? 왕년의 일진 생각은 어떠신가? 하하.”

   “아이고 선생님. 전 착한 학생이었습니다. 전 항상 정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아시죠? 명분이 있었다고요. 흠음.”

태준은 헛기침하며 살짝 웃어 보인다. 그가 처음 이곳 사랑 보육원에 들어와 넘치는 분노를 조절해 적응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이 절대 버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야 했다. 소문은 사실이 되니까. 소문이 사실이 되기 전에 소문 조작자를 찾아 응징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곳에 왔지만, 자신에 대한 소문은 신속한 범인색출과 응징으로 상황을 조절할 수 있으니. 헛소문은 반드시 르게 바로 잡고 싶었다. 그 헛소문이 사실이 되고 어린 태준이 살아내야 할 현실이 된 후, 더 이상의 분노도 다툼도 없었다. 태준의 믿음대로 처음엔 맡겨졌었다. 시간이 지난 후 어머니의 재가로 버려진 아이가 되었다. 절대 순응할 수 없었던 현실이 받아들여지는 순간은 오히려 고요했다. 그 후 주변 환경과 같은 색을 가지고 동화되어 살아갔다. 분노는 다른 색을 가진 자가 목표를 세웠을 때 가질 수 있는 의지의 행동이다.

   “자영이 녀석은 언제 보육원에 들어왔어요?”

   “자영이? 3주 정도 될 거야. 아빠가 말을 못 하셨데. 언어 장애가 있으셨지. 엄마는 중국인이었는데, 아빠와 결혼해서 한국 국적을 받고 몇 년 아이를 키우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거야. 사라진 엄마가 아빠의 재산도 다 가지고 가버렸지. 나쁜 사람이고 자격 없는 엄마지. 그 후 아빠는 자영이를 혼자서 돌봤어. 정성으로 돌봤나 봐. 자영이가 가지고 온 옷과 물건들을 보면 그런 환경의 아이답지 않게 깔끔하고 색이 곱고, 상태가 좋아. 아이가 아빠를 미워하지 않아. 아직도 무척 사랑하고 그리워해. 아빠가 폐지를 줍고 막노동을 해서 아이를 키웠는데, 공사현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으셨지. 보상금은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지급되겠지만, 금액이 얼마 되진 않아. 안타깝지. 7살 자영이가 감당하기 힘든 이별과 외로움이야.”

   “녀석도 적응하고 받아 드려 지겠죠.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죠.”

   “태준아, 하는 일은 인제 그만둬야지. 사람들의 원망을 받는 일은 너에게 좋을 게 없다. 넌 그런 거친 사람들과는 달라. 너는 따뜻하지.”
     “네, 선생님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하고 그만두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태준은 이제는 보스와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도박이 하고 싶어 도박에 미친 자들에게 도박할 기회와 장소를 제공해서 생긴 이익을 자신과 조직이 가지는 건 나쁜 일이 아니라고 태준은 생각했다. 도박하는 자의 의식은 어차피 썩어 있는 상태라고 태준은 생각했다. 썩은 냄새를 맡고 어느 조직에서건 그들을 찾아올 것이고, 선착순으로 태준의 조직이 먼저 도착한 것에 대한 미안함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성매매는 태준의 기준에선 양심과 대화를 해야 할 일이었다. 미성년자와 여성 피해자가 생길 가망성이 높은 일이다. 보스가 성매매를 준비하고 있으니 그와 잡은 손을 놓아야 할 타임이다. 작고 소박하지만 목표였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집도 이제 마련했으니 적당한 시기라고 태준은 생각했다. 싹수없고 미꾸라지 같은 중장비 회사를 운영하는 염 사장의 도박 빚 회수를 마지막으로 사직서와 자신의 신체 일부의 피를 보스에게 내놓을 결심이다. 염 사장의 차가 보인다. 태준은 여름의 햇살을 피해 나무 그늘에 세워둔 차에서 내려 차 뒤 트렁크를 연다. 야구 방망이 2개를 양손에 들고 염 사장의 차로 빠르게 걸어간다. 염 사장이 차에서 내리기 전에 차문을 부숴야 한다. 태준은 밀폐된 공간 속에서 느끼는 공포가 더 서늘하다는 걸 안다. 차량 문들을 시계방향으로 내리치기 시작한다. 반듯함이 사라진 차는 문을 열기 힘들다. 차에 갇힌 염 사장은 한 여름 매미처럼 소리를 질러 된다.

   “살려줘, 살려줘. 박 실장. 갚을게. 갚을 거야.”

태준은 휴대폰을 꺼내 염사장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 당장 보내준 계좌로 계좌이체해. 당신 돈이 내 마지막 일이야. 빨리 끝내자. 나도 피곤해. 오늘 명퇴할 거야.”

염사장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태준이 보내 준 계좌번호로 돈을 송금한다.

   “보스, 돈 확인했죠? 지금 사무실로 갈게요. 좀 봐요.”

태준은 담배를 하나 꺼내 피고,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을 본다.

   ‘이젠, 밤엔 자고 낮에 일하는 직업을 가지자. 한국시각에 맞춰 살아야지 그동안 미국 시각에 맞춰 살았더니, 시차 적응에 너무 피곤한 생활이었다.’

태준은 염 사장에게 엄지 척을 올리고 자신의 차량을 향해 걷는다.

   “어이, 역시 박 실장은 일 처리가 빠르고 확실해. 우리 구역 베스트야, 하하.”

   “그래서 사직서도 빨리 낼게요. 명퇴처리 해서 퇴직금 좀 더 주시면 감사히 받고요. 그렇게 처리 안 해줘도 어쩔 수 없고요.”

태준은 준비해 온 하얀 수건과 칼을 꺼내 보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새끼손가락을 잘라낸다. 어릴 때 보육원에서 본 네셔날 지오 그래픽에서 꼬리를 끊고 도망가는 도마뱀의 이미지가 보스의 얼굴 앞에 선명히 보인다.

   ‘씨발, 생각보다 아프잖아. 영화에서는 아무도 아픈 척 안 하더니. 구라쟁이들.’

태준은 눈썹을 중앙으로 모으고, 보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다.

   “태준아, 인마 너 나한테 상의도 없이 미쳤냐?”

   “응, 형. 이제 우리 보지 말자. 날 위해 그 정도는 해줄 거지. 우린 그런 사이는 되잖아.”

태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섯 손가락이 멀쩡한 손에 주먹을 쥐어 허공을 향해 들어 보이며, 세 번째 손가락을 높이 쳐들어 인사한다. 그때 태준은 갑자기 자영이가 왜 생각이 나는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

   ‘손을 높이 쳐들어서인가? 그 녀석 얼굴이 왜 생각나지?’     


   응급 처치를 끝낸 손가락엔 붕대가 감겨 있다. 박스를 현관 입구에 던져두고, 태준은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 엄지발가락과 붕대 감은 새끼손가락을 비교해 본다.

   “엄지발가락보다 네가 더 크네. 이제 아픈 새끼손가락 네가 이 구역 일짱이다. 하하”

태준은 그대로 누워 잠이 든다.

   ‘얼마 만에 하늘이 어두울 때 자보는지 모르겠네. 나는 드디어 한국의 시각에 사는 거야. 수고했다. 박태준.’

이날은 태준이가 정을 준 누군가를 처음으로 버린 날이다. 어릴 적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걸 받아들이던 순간 태준은 결심했었다.

   ‘나는 내가 정을 준 상대는 절대 먼저 버리지 않겠다고.’

태준은 새로운 결심을 한다.

   ‘오늘은 내가 먼저 버린 처음이자 마지막 인연이다.’

깊은 잠은 태준의 어두운 외로움과 비례한다. 틈이 벌어진 종이상자 안에는 알록달록 포장 라면이 종류별로 가득하다.     


   “자영아, 너무 실망하지 마. 꼭 좋은 부모님이 나타나실 거야.”

주임 선생님은 자영이의 손을 잡고 토닥인다. 자영은 아무 말도 표정도 없다. 벌써 두 번째 입양취소다. 자영은 보육원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눕는다. 이제 12살 보육원에 온 지 만 5년. 아직도 여기는 자영이에겐 낯설다. 아빠와 함께 지낸 작고 불편했던 그 집만 빼고, 어디든 익숙해지기 힘들고 몹시 불편하다. 아빠와 함께 보낸 집보다 늘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한 공간들이다. 자영은 며칠 전 네셔날 지오 그래픽에서 바다 생물인 해파리가 자신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목적지 없이 바다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이 보이고, 모두 똑같은 모습의 희끄무레하고 약한 해파리가 잊히지 않는다. 자영은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높은 곳에서 떨어진 아빠의 모습은 어린 자영이를 위해 보여 줄 수 없다는 것이 인권위나 아동 복지원, 경찰관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자영은 아빠를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어 장애인이었던 아빠와 함께하는 생활에선 거의 말할 필요가 없으므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그래서 자영은 말의 속도가 늦고, 말도 잘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아빠는 자영이의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충분한 대화와  소통이  가능했다. 자영이는 아직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자영은 잠들기 전 아빠가 사준 목걸이를 목에 걸어두고 손으로 목걸이를 움켜쥐고 잔다. 자신이 자는 동안 주변 누군가가 가져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손에서  목걸이를 놓아 본 적이 없다.

   ‘아빠, 오늘은 내 꿈에 올 거지? 왜 한 번도 안 와?’

자영이는 오늘도 아빠를 꿈속에서 기다린다.


   병원 진료가 오후 2시로 예약된 시계의 알람은 요란하고, 태준은 허기가 느껴진다. 자면서도 느껴지던 허기는 눈을 뜨니 더 강렬하다. 양은 냄비에 물을 붓고 파란 가스 불을 켠다. 보글거리는 냄비에 하나 남은 라면을 개봉해 넣는다. 조금 전에 잠에서 일어났지만, 하품은 계속이다.

   “이제 라면은 5년 동안은 못 먹겠네. 너무 많이 먹었어. 우웩.”

계란을 하나 넣어 젓가락으로 대충 풀어 냄비에 넣는다. 냉장고에서 꺼낸 김치도 이제 몇 조각 없다. 설거지는 늘 양은 냄비 하나, 젓가락 한 세트, 컵 하나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할 뿐이다. 마지막 라면 봉지를 현관 앞 상자에 버린다. 제 각각 입을 벌린 빈 라면 봉지가 수북하다. 태준은 발로 부풀어 올라 와 있는 비닐들을 꾹꾹 밟는다. 쑤욱 들어갔던 비닐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다시 올라온다. 외출준비를 마친 태준은 거울을 본다.

   ‘일도 안 하고 늘어져 잠만 잤는데도 피곤한 얼굴이네. 후훗. 이 시커먼 다크서클은 뭐지?’

라면 봉지를 다시 한번 발로 밟아 부피를 줄여 아파트 비닐 분리수거함에 쏟아 버린다.

   ‘이제 밥을 먹자. 이러다 라면으로 환생하겠다.’

라고 생각하며 바깥으로 떨어져 뒹굴 거리는 라면 봉지 하나를 집어 수거함에 넣는다.


 “환자분 손가락은 잘 아물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한 마디가 없어진 새끼손가락. 태준은 인생의 10년을 잘라 낸 기분인데, 가을 햇살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위에서 무심하게 눈부시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린다.

   “오랜만이다. 꼴통 태준이. 살아있네. 하하.”

   “응. 형님은 라면으로 연명하며 살아있다. 네가 친구야? 빨리도 전화한다. 내 초상치고 전화하겠다. 이놈아.”

   “하하, 나 사는 게 바빠.”

   “반백수 놈이 뭐가 바빠?”

   “인마, 형님 중장비 자격증 땄어. 국가고시 합격했으니, 기분으로 삼겹살에 소주 살 테니 냉큼 나와. 늘 가던 이모님 집으로 와.”

   “중장비? 포클레인 말이야?”

   “그래, 그거.”

태준은 휴대폰으로 중장비 학원을 검색해 본다. 갑자기 삼겹살만큼 포클레인이 당긴다. 중장비 학원에 전화기 모양의 이미지에 터치를 한다.

   “여보세요. 자격증 발급까지 비용이 얼마 정도 드나요?”

   “자세한 건 방문하셔서 상담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 네. 내일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식당 문을 열어 이모님께 인사를 건넨다. 준호가 고기 굽던 집게를 들어 흔들어 보인다.

   “노랑노랑 잘 굽고 있지? 된장찌개도 시켰냐?”

   “아니, 너 고기 먹은 후에 매운 라면 먹잖아?”

   “우웩. 라면에 라 자도 꺼내지 마라. 이모, 여기 된장찌개 2개랑 공깃밥 주세요.”

   “태준아, 나 결혼하려고.”

   “뭐? 미친놈. 여자는 있고?”

   “응, 내년 가을쯤 하자고 얘기했어. 너한테 젤 먼저 얘기하는 거야. 부모님보다 네가 더 빨리 아는 거야. 고맙지? 친구야.”

   “별루. 내년에 부조금 내려면 적금 들어야겠네. 월 납입액 2만 원 자리로. 하하. 축하한다. 이 놈아.  그런데 제수씨는 왜 너를 선택했데? 불쌍하데?”

   “야, 너 오늘 삼겹살 집게에 맞아 죽을래?”

   “하하, 기특하네. 짜식. 우리 둘 다 총각 귀신으로 죽어서 저승길 문 앞에 서서 처녀귀신 헌팅 할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많이 컸네. 재주 있어. 짜식. 키 크고 잘 생긴 나만 처녀 귀신 한 풀어주고 저승 가야겠다. 하하.

   “태준아, 인연은 따로 있는 것 같아. 너도 아! 사랑이다 싶을 때가 올 거야. 진정한 사랑은 느낌이 확 와! 온다고. 세상이 순간 멈추고, 그 여자만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헛소리 그만하고, 중장비 자격증 코스 얘기 좀 해 봐라. 나도 하게. 나한테도 맞는 일 같다.”


    태준은 “중장비 운영 기사 합격증”을 발급받아 잠바 안 주머니에 넣고 보육원으로 향한다.

보육원에 대한 행복한 기억은 없지만, 어린 태준에게 안전한 대피소 역할을 해준 곳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있다. 원장님은 천성이 교육자 인성이다. 아이들을 참아주고 기다려주시게 특기이신 분이다. 태준의 한 손엔 원장님이 좋아하시는 초코파이가 들려있다. 군대에서 자주 못 먹은 게 한이 되어 지금도 좋아하신다는 원장님은 태준에겐 한 겨울 손난로 같은 분이다. 보육원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무지개 페인트 색의 정글짐 꼭대기에 앉아 있는 단발머리의 아이가 보인다. 귀에는 하얀색 헤드셋을 끼고 다리와 어깨를 가볍게 흔들거리는 아이 뒤로 해가 지기 시작한 오렌지색 하늘이 아름답다. 세상과 동떨어진 순정만화의 한 컷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태준은 잠깐 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기분 좋게 바라본다.

   ‘이런 게 안구정화라는 건가?’

희미한 미소가 생기다 사라지고 다시 원장실을 향해 걷는다.

   “선생님, 저 왔어요.”

   “태준아,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니? 내가 죽어야 오나 싶었다. 이젠 나도 늙어서 살아 있을 동안 너를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구나.”

   “하하, 좀 바빴어요. 저 이제 다른 일 하려고요.”

태준은 쑥스러운 듯 잠바 안에 넣어둔 합격증을 원장님께 내어 보인다.

   “와, 너, 이 자식. 멋지구나. 오늘은 짜장면이라도 같이 먹자. 내가 사주마.”

   “됐어요. 짜장면은 무슨. 탕수육 사 주세요. 하하.”

   “그래, 내가 이런 날 사지. 언제 사겠니? 가자. 일어나. 일어나. 축하해야지. 빨리 가자.”

   “원장님, 주임 선생님은요?”

   “특별히 마음 가는 아이가 있어 상담 가셨는데. 주임 선생님 오시면 같이 가자꾸나.”

   “상담요? 누가 새로 입소했어요?”

   “아니, 근래에 입양 취소된 아이가 있어. 벌써 2번째지. 우리도 늘 입양절차가 진행되면 일이 좋게 마무리 안 될까 봐 늘 조마조마 하지. 우리가 이런데, 기대하고 있던 아이는 상심이 크겠지. 매번 실망하는 아이들을 보면 맘이 아파. 착한 아이들인데, 예비 부모님들은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짧아. 아이들을 좀 더 기다려 주면 분명 좋은 인연으로 서로에게 다가갈 텐데. 서로를 알기도 전에 이별의 카드를 내놓지.”

   “아이가 2번 입양취소 되었으면 나이가 제법 있을 것 같네요.”

   “응, 12살이고 내년엔 초등 6학년이지. 중학생부터는 입양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아마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하지 싶다. 안타깝지. 좋은 아인데.”

   “남자아이예요? 취소 이유가 뭐예요?”

   “웬일이냐? 세상 사람들한테 관심 없는 네가?”

   “그러네요. 내가 왜 이러지?”

   “하하. 좋은 거야.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거지. 너도 진짜 어른이 되었거나 여유가 좀 생겼다는 거겠지. 여자 아이야. 너도 알 거야. 몇 년 전에 운동장에서 친구를 때리고 있어서 네가 손목을 잡고 있었던 여자아이 말이다.”

   “헐, 그 꼬마가 벌서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세월 참 빠르네요.”

   “너도 그런 말을 할 나이가 되었구나. 세월이 정말 빠르구나!”

   “아이고, 원장님. 죄송해요. 그 녀석 성격이 엄청 난폭한 가 보죠?”

   “아니야, 엄청 조용해서 취소된 케이스야. 애가 말을 너무 안 해서 집에 아이가 없는 것 같데. 예비 부모님들은 아이가 불러주는 엄마, 아빠라는 소리가 듣고 싶은데, 도통 말을 안 하니. 아이가 원래 말이 없는데, 낯선 관계에선 더 그렇지.”

원장실 문이 열리고 주임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태준을 반갑게 맞이하신다.

   “우리 태준이 갈수록 보기 좋구나. 오늘은 표정도 너무 좋은데?”

   “아이고, 주임 선생님. 태준이가 중장비 기사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하하. 축하하는 뜻에서 제가 자장면에 탕수육 사기로 했어요. 주임 선생님도 같이 가시죠.”

   “네. 네. 축하해야겠네요. 자영이도 탕수육 좋아하는데, 다른 아이들 보는 눈도 있으니 데리고 갈 순 없네요. 늘 맘이 쓰여요. 너무 말이 없어서. 지금도 혼자서 정글짐에서 음악 듣고 있길래 내려와 밥 먹자고 말해서 식당으로 보냈어요. 그냥 두면 저녁도 굶었을 거예요.”

   “쯧쯧. 상처가 많겠죠. 자자. 우리도 나가 봅시다.”

태준은 조금 전에 입구에서 본 아이가 자영이라는 말을 듣고 몇 년 전 딱 한 번 본 아이의 얼굴과 그 아이가 그날 입고 있던 보라색 티셔츠와 반바지, 약간 큰 샌들이 생각이 난다.

   ‘이상하네. 내가 한 번 본 아이를 이렇게 까지 또렷이 기억하다니.’

라며 생각한다. 원장님은 아이들이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한 번 쓱 둘러보시곤 나가자는 손짓을 해서 중국집 근처로 이동한다. 태준도 곁눈으로 본 보육원 구내식당에 여전히 헤드셋을 끼고 있는 자영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태준이 자신도 어릴 적 오지 않는 엄마를 오랫동안 정글짐 위에서 기다렸다. 거기가 이곳에서 제일 높아 시선을 가장 멀리 둘 수 있는 곳이다. 태준은 잊고 있었던 자신의 외로운 어린 기억이 떠오르고, 해 질 녘 순정 만화 주인공처럼 정글짐 가장 높은 꼭대기에 앉아 있던 자영이도 생각난다.

   ‘자영이. 그 녀석 상당히 거슬리네.’      


  “어이 박 군아, 밥 먹고 하자고.”

   “네. 기사님.”

태준은 미리 준비해 온 보냉 가방에서 막걸리를 꺼내 기사님 식탁 위에 놓는다.

   “역시 박 군은 싹싹하다니까. 어른 대하는 법을 알아. 요즘 젊은것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난리가 나지. 대학 나와서 이런 취급받을지 몰랐다고 하거나 최저 임금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 서로 예의를 지켜주세요라고 하던 놈들도 있어. 또 어느 날은 삽질을 시키니까 굴착기 배우러 왔는데 삽질을 왜 시키냐고 따지질 않나. 내 참 기가 막혀서. 일 배우는 놈이 이것저것 따지면 되냐고? 최저임금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오느냐 말이야? 나 때는 말이지, 아무 말도 안 못 했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했다고. 삽질이며 공사판 온갖 잡일도 다 해가며 배웠어. 참나.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진짜 요즘 것들 곱게 자라서 싹수가 없네요. 기사님께서 가르쳐 주는 게 어딘데요. 자, 한 잔 더 하세요. 쭈우욱 쭈욱 드세요. 날도 더운데. 한 병 더 준비해 왔으니까 아끼지 마시고 편하게 드세요.”

   “아이고, 일 해야 하는 데, 술이 왜 이리 달지? 입에 쫙쫙 붙네. 허허. 좋다.”

   “이모, 여기 김치 좀 더 주세요.”

   “박 군아, 그런데 우리 사장을 어떻게 알아? 내가 염 사장 밑에서 오래 일 해봐서 아는데, 염 사장은 아무나 안 써. 특히나 경험 없는 박 군 같은 생 초짜는 부르지 않지. 일 가르쳐 주면서 월급도 안 줘. 그런데 박 군한테는 월급도 주고, 일도 잘 가르쳐 주라고 얘기하더라고. 우리끼리 얘기지만 염 사장 그런 인간 아니잖아. 암. 얼마나 지독한데. 월급 날짜를 지키는 날이 드물지. 꼭 이 삼일은 늦게 줘. 어떤 땐 일주일을 넘기기도 하고. 썩을 놈.”

   “아, 네. 예전에 제가 아시는 분께 돈을 빌려 쓴 일이 있는데, 그때 저를 알게 되셨어요. 서로 잘 알진 못해요. 아이고, 기사님 잔이 비었네요. 이야긴 담에 하시고요. 시원할 때 얼른 드세요.”

식당에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현장 관리소장이다.

    “자, 이제 일해야지.”

소장은 식당으로 들어와 엉덩이 무거운 인부들을 재촉한다. 식당을 걸어 나오며 굴착기 기사는 막걸리를 많이 마신 탓에 다리가 꼬여 휘청거린다. 그 모습은 본 관리소장은 가까이 와 코를 킁킁거리며 화를 낸다.

   “아니, 기사님. 이거 무슨 냄샌가요? 굴착기 기사님은 한 명뿐인데 책임감 없이 이렇게 술을 먹으면 어떡해요? 이 양반이 진짜. 내가 술 먹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아이고, 이렇게 취할지 몰랐네요. 걱정 마세요. 보조로 한 명 더 데려 왔어요. 경험은 별로 없지만 내가 옆에서 말로 좀 도와주면 박 군이 할 수 있어요. 잘 끝낼 수 있습니다. 소장님, 우리 사장님께는 비밀로 해 주세요. 벌어 먹여야 할 식구도 있는데. 부탁해요. 내 책임지고 박 군이랑 일 잘 마무리할 테니.”

  “어허, 거참. 일 하는 거 봐서 염 사장한테 말하던지 안 하던지 결정합시다. 일단 해봐요. 잘 못하면 이제 염 사장한테 일거리 안 줄 거요. 다 기사님 책임이죠.”

관리소장은 위아래로 태준을 훑어본다. 태준은 자신의 계획대로 기사가 술로 꼬알라가 된 것이 기분이 좋아 싱글싱글 웃고 있다. 웃고 있는 태준의 서글서글한 인상이 맘에 들었는지 소장은 별 말없이 사라진다. 태준이 일을 배우러 따라다닌 지 한 달이 넘어도 운전대를 주지 않는 선배 기사가 맘에 들지 않았다. 운전대를 줄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다가는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걸리를 챙겨 왔더니 이렇게 쉽게 자신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오호라 횡재라.’

기사는 태준에게 굴착기의 작동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준다. 태준이 잘 못해서 현장 일을 못하면, 사장에게 술 마신 게 들킬 테고, 그럼 염 사장의 평소 인성으로 봤을 때, 자기 밥 줄이 끊기는 건 백 프로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깨끗하고 성공적인 마무리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 박 군 생각보다 잘하네. 소질 있어. 자 조금만 더 해보자고. 실수하면 안 돼. 알았지?”

   “네, 기사님.”

잠시 후 일의 진척 상황을 보러 온 소장은 별 말없이 엄지 척을 세우고 간다. 기사와 태준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어쩔 수 없는 공생관계가 이루어진 거다. 태준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현장 일에 흐뭇하다. 조금 더 경험을 쌓아서 경력직으로 취직도 하고, 일이 뜻대로 이루어져서 성공하면 굴착기 몇 대를 사서 사업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영은 학교에서 나눠준 적성검사 표를 내려다본다. 진로코드 유형에 육각형 모형에 표현된 그래프는 흥미, 역량, 직업의 각 점수를 종합한 점수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어. 자영의 육각형 모형에서 가장 모서리가 길게 나온 형은 탐구 형이다.

   “지적, 논리적이고 호기심이 많고 독립적인 유형”

이라는 글에 자영은 헛웃음이 나온다.

   ‘부모님이 계신 아이들은 자신의 진로 형성 과정과 변화가 의미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자영은 자신의 변화를 누군가가 관심 있게 봐준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 자신의 꿈이나 진로를 지켜 갈 수 있도록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헌신하며, 진심으로 응원해 준다는 게 가능한 아이들은 어떤 기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도 궁금하다. 자영은 적성검사 표를 작성할 때, 질문지를 읽지도 않았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걸 아는데, 자신의 적성과 역량을 굳이 종이로 인쇄된 정확한 데이터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유형 설문지에 1번과 3번을 교대로 체크했던 자영이의 검사지는 엉터리다. 학급친구들은 검사 표를 두 손에 들고 짝지와 서로 바꿔가며 서로의 꿈에 대해서 얘기하느라 시끌벅적하다. 자영은 엎드려 헤드셋을 꺼내 음악을 듣는다. 검사 표를 보고 자신의 미래 직업(꿈)에 대해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데 자영은 그릴 게 없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꿈’이라고 하는 거라고, 이루어지면 그건 ‘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자영은 아무에게도 이런 말을 하지 않고, 모든 걸 생각할 뿐이다. 말을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으며, 생각한 말들은 대부분은 자영의 입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학교를 마친 자영은 잠바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고 천 원을 만지작거린다. 오락실에서 500원짜리 동전 두 개로 교환해서, 동전 노래방 기계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자영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봐주지 않지만, 자신의 모든 정성을 기울여 노래하고 춤춘다. 자신의 꿈을 나타내는 이 공간에서 잠깐이라도 자신에게도 꿈이 있고 열망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다. 아무도 자신의 꿈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외롭다.

   ‘아빠는 알지? 아빠가 들을 수 없어도 내가 늘 아빠 앞에서 노래했잖아. 하늘에서는 들려? 지금 내 목소리 말이야.’

자영은 혼자 있을 때만 운다. 혼자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타인에게 눈물을 보인다는 건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들키는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외로움을 꼭꼭 숨기고 싶다. 자신이 외톨이라는 걸 ‘고아’라는 걸 보이고 싶지 않다.


   헤드셋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자영이가 바라보는 모든 공간은 텔레비전 안 세상처럼  일정한 이질감과 무감각한 상태다. 자영인 늘 세상살이에 한 발짝 물러선 듯 살아간다. 길모퉁이를 돌아 보육원으로 향해 걷는다. 책가방을 멘 키가 큰 남자아이가 키가 작은 남자아이를 향해 때릴 것 같은 손동작을 하는 것이 보인다. 조금씩 그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자영은 키가 작은 남자아이의 얼굴이 낯익다. 키가 큰 아이는 처음 보는 얼굴인 것 같다.

   “누나.”

키가  작은 아이가 아는 척을 한다.

   ‘보육원 아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야, 같이 맞기 싫으면 꺼져. 아님 가진 돈 내놓고 둘 다 도망치던지.”

자영이는 잠바 주머니에 손을 빼지 않고, 한 발을 들어 키가 큰 남자아이의 사타구니 중간을 향해 힘차게 걷어 올린다. 사타구니 중간을 잡고 허리를 구부린 채 터질 듯 벌건 얼굴로 뭐라고 뭐라고 소리 지르는 아이의 목소리는 헤드셋을 낀 자영에게는 들리지 않고 아이는 드라마 속 연기자 같다. 자영이는 자기 뒤에 숨은 키가 작은 남자아이의 어깨를 잡고 다시 천천히 보육원 쪽으로 걷는다. 자영이와 같이 걸어가던 남자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순간 자영은 너무 가까이 있는 두 남자 때문에 깜짝 놀라 눈이 커진다. 아까 본 키가 큰 아이보다 더 큰 남자 어른이, 키가 큰 남자아이의 멱살을 한 손으로 잡고 있다. 자영은 헤드셋을 천천히 내린다. 책가방을 멘 키가 큰 남자아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키가 큰 남자 어른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의 멱살을 놓아주자 키가 큰 아이는 도망간다. 자영은 다시 헤드셋을 머리 위로 끼우고 키가 작은 남자아이의 어깨를 잡고 가던 길을 걷는다. 등 뒤에서 자영이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누군가 콕콕 찌른다. 자영은 뒤 돌아 선다. 남자어른이 헤드셋을 벗어 보라고 시늉을 해서 잠시 고개를 갸우둥 한 뒤, 헤드셋을 내린다.

   “자영아, 다음부턴 저런 놈들 사타구니에 발길질하지 마. 저런 놈들이 아이를 낳아 놨자 자신과 같은 종류의 쓰레기겠지만, 너한테 발로 차여서 고환이라도 다치면 군대를 못 가는 행운이 생길 수도 있거든. 저렇게 제 멋대로인 놈들은 군대 가서 개고생해야 해 봐야 하거든. 자영아, 그런데 너 발기질 각도가 좋더라. 아주 나이스하게 깔끔했어.”

태준은 살짝 웃었다. 자영은 정말 오랜만에 웃어본다. 첨 보는 사람과 마주 보며 웃는다는 게 이상하지만,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태준은 세상이 멈춘 듯 자영이의 미소를 본다.     

   ‘이 꼬마를 지켜야겠다.’

고 결심한다.

   ‘저 웃음이 눈물이 되는 세상에 혼자 내버려 둘 수 없다’

는 생각은 결심이 된다.

   ‘아빠가 되어야겠다. 나는 아빠가 되어야겠다.’  


   오늘도 준호가 먼저 와서 삼겹살을 굽고 있다. 태준은 집게를 들고 흔드는 준호를 향해 걸어가며 손을 흔든다.

   “야, 웬 미친 짓. 너답지 않게 손은 왜 흔들어? 너 오늘 기분 더럽냐?”

   “너 결혼하기 전에 오늘 형님한테 죽어볼래?”

   “하하. 그 말은 최악으로 심한 말이다. 그런데 웬일이냐? 네가 먼저 전활 다 하고?”

   “그렇지? 그래도 이 세상 찐 친구는 너 하난데, 너한테는 말해야 할 것 같아서 불렀어. 나 이제 아빠 돼.”

   “야, 그 정도는 놀랍지도 않다. 속도위반이야? 제수씨는 네가 불쌍해서 결혼해 주는 거지? 나 보다 빨리 결혼할 거야?”

   “아니, 초등 6학년 여자아이 입양 했어.”

   “미친놈. 완전 엉망으로 개 미친놈.”

   “네가 말 한 대로 세상이 멈추더라. 2번이나.”

   “이 놈아, 그 건 운명의 여자를 보고 느끼는 감정이야. 아빠의 감정이 아니라고. 순간의 선택이 평생의 후회로 남을 수도 있어. 태준아, 형님이 얘기하는데 다시 생각해 봐. 이건 아닌 것 같아. 백 퍼센트 미친 짓이라고. 알아들어? 내 말 들려?”

   “너한텐 오답이고, 나한텐 정답이지. 설교는 그만하고 깔끔하게 축하해 줘. 예쁘게 키워서 멋진 놈 잡아 오면 결혼도 시킬 거다. 웨딩드레스 입은 딸 손잡고 들어가는 아빠 중 젤 멋진 아빠 될 거다.”

불판의 삼겹살은 대책 없이 익어가고 태준은 크게 쌈을 싸서 입속으로 시원스레 넣어 씹는다.


자영이는 그날 자신과 마주 보고 웃은 최초의 남자 어른과 가족이 된 것이 아직도 어색하다. 늘 입양이 될 아이들 중 한 명의 후보였던 자영에겐 부모가 될 어른들을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늘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 보육원을 잠시 떠났다가 그들의 결정에 의해 다시 돌아오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아빠가 될 사람을 우연히 먼저 보았고, 자영에게 딸이 되겠느냐며 자영이의 의사를 물어본 어른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 부인이 없는 남자 어른, 하늘로 먼저 간 친아빠와 비슷하다고 자영은 생각했다. 태준이 꼭 아빠가 되어 주길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 남자의 딸이 된다는 것도 싫진 않아 자영은 딸이 되겠다고 말했다. 자영이는 자신의 방을 둘러본다. 두 번의 입양취소로 잠깐씩 머물렀던 집들 중에 가장 핑크가 적은 자신의 방이다. 나무책상과 침대, 옷장, 서랍을 열어본다. 색깔별 티셔츠에 청바지가 색깔별로 몇 개 있고, 속옷이 몇 가지 보인다. 남자아이가 이 방을  써도 이상스럽지 않을 방이다.

   “자영아, 잠깐 나와 봐. 난 요리를 잘 못 해. 그래서 냉장실과 냉동실에 보면 포장 음식들이 있거든. 네가 먹고 싶은 것으로 골라 먹으면 된단다. 나랑 같이 먹고 싶으면 같이 먹고, 따로 먹고 싶으면 따로 먹어도 돼. 나를 아빠라고 부르고 싶을 때 그때 부르면 되고, 호칭은 네가 알아서 불러. 자영이가 내 집에서 아니 우리 집에서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우선은 첫날이니까 집 앞 중국집에 탕수육 먹으러 가자. 어때? 주임 선생님이 자영이 탕수육 좋아한다고 하던데.”

자영은 말이 나오지 않아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오케이. 싫진 않구나. 그럼 가자. 지금.”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자장면을 다 먹을 때까지 태준과 자영은 말이 없다. 자영은 이것저것 자신에게 묻지 않고, 간장에 식초와 고춧가루를 섞어 소스를 만들어 주고, 나무젓가락을 챙겨주는 태준이 편하다.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서 음식을 먹는 사람처럼 먹고 있는 태준을 보며,

   ‘아저씨도 혼자 오랫동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식당을 나와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태준은 자신이 먹을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가만히 서 있다. 자영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하나 고른다. 태준은 자영이가 고른 아이스크림을 보더니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두 개씩 골라 봉투에 담아 계산하고 나온다. 앞서서 걷는 태준을 따라가는 자영이. 그런 자영이를 가끔 뒤돌아보는 태준. 이들의 움직임이 꼭 노부부의 걸음 같다. 집에 도착한 태준은 봉지에 든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 넣어둔다.

   “자영아, 냉동실 아이스크림은 다 네 거야. 알아서 꺼내 먹어. 가끔 나도 먹을게. 그리고 오늘은 자영이가 우리 집에 오는 첫날이라서 회사에 휴가를 냈고, 내일부터는 나도 일하러 가야 해. 너도 혼자 알아서 학교 갈 수 있지?”

라고 말한다. 자영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새 학교, 새 교실, 처음 보는 아이들. 자영이는 전학 와서 처음 등교하는 날이 싫다.  담임선생님은 자기소개를 하라고 시킨다. 목소리를 크게 내어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자영이에겐 너무 힘들다. 새 교실로 들어가기 전부터 자영은 자기소개 할 생각으로 괴롭다.

   “자, 여러분 오늘 새 친구가 전학을 왔어요. 이름은 박자영이고요. 그런데 아쉽게도 후두염으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셔서, 자기소개는 글로 대신할게요. 자영이는 칠판에 간단하게 인사 글 쓰고 빈자리에 앉아요. 그리고 여러분 자영이 에게 무리하게 말을 걸지 마세요. 말을 많이 하면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셨어요. 우리 모두 조심해요.”

자영은 뜻밖의 후두염에 흠칫했으나, “인사 글, 간단히, 앉아.”라는 단어가 확실히 귀에 들어왔다. 자영은 분필을 들어

   “안녕. 잘 지내자.”

라고 쓰고 빈자리로 와 앉는다.

   ‘그럼 당분간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거잖아?’

자영은 태준의 배려에 한결 맘이 편했다. 새로 전학을 오면 늘 다른 아이들의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이것저것 묻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을 잘하지 않아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이번엔 잘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영은 태준을 떠올린다. 태준과 마주 보고 웃었던 그날도 생각이 난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자영이에게 쪽지를 보낸다. “친하게 지내자. 동생 있어? 언니 있어?”라는 질문이 적힌 종이들. 자영은 친구들의 쪽지에 대답을 적어 다시 쪽지를 준 친구에게 돌려준다.

   ‘여기 서라면 친구 사귀기가 가능할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 자영은 처음으로 쉬는 시간마다 헤드셋을 끼지 않고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늘 시끄럽고 소음처럼 들리던 교실의 이야기 소리들이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이곳이라면 외톨이로 지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자영은 목에 걸쳐 놓은 헤드셋을 빼 가방에 넣어 둔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걸어본다. 친구들의 말을 듣기만 하며 가끔 고개를 끄덕인다. 눈으로 말하기를 해 본다. 자영이에게 멀어져 있던 세상이 자영이의 눈으로 조금씩 들어온다. 집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냉동실에서 초콜릿 아이스크림 꺼내 한 입 베어 문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냉장실을 열어본다. 뼈다귀 해장국, 소고깃국, 미역국, 추어탕, 순두부찌개, 부대찌개, 김치찌개 봉지가 세로로 줄지어 서있다. 자영이는 쿡 하고 웃는다. 편의점 진열대 같은 냉장고다. 싱크대 위엔 햇반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또 쿡 하고 웃음이 나온다.

   ‘최소한의 설거지가 나오는 집이구나.’

라고 생각한다.



   “자영아, 무슨 동아리에 가입할 거야? 나랑 같이 댄스 동아리에 들자. 우린 짝지잖아. 가입할 거지?”

   “응.”

   “곧 학예회 및 동아리 발표회가 있어서 자영이가 춤을 빨리 외어야 하는 게 걱정이긴 하다. 내가 도와줄게. 동작이 좀 복잡해. 나도 계속 헤매다가 겨우 외웠어. 좀 있다 동아리 활동시간에 같이 이동하면 돼.”

자영인 여전히 최소한의 언어만 사용하지만, 태준이 미리 말해 놓은 후두염이라는 방패막이가 자영이를 이상하거나 말 못 하는 아이로 만들어가는 모든 흐름을 미리 차단해 준다. 모든 걸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것.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존재가 되었다는 현실은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음악 소리에 맞춰진 아이들의 정리된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던 자영이는 조금씩 몸을 움직여 본다. 복잡하게 보이던 친구들의 동작이 하나씩 눈에 익혀지고, 쉬는 곳과 움직이는 곳의 흐름이 보이고 익혀진다. 뒤에서 조금씩 따라가던 춤동작의 크기가 커지고 곧 다른 아이들과 같이 움직여진다.

   “자영아, 벌써 다 외웠어? 대단한데? 이리 앞으로와. 같은 위치에서 춤춰도 되겠다. 내가 따로 안 도와줘도 되겠네. 너 춤에 소질이 있구나?”

   “여러분, 자! 처음부터 다시 맞춰 봐요.”

선생님의 지도아래 아이들의 춤이 시작된다. 자영이는 노래방 기계에 동전을 넣고 혼자 춤추던 지난 시간이 스친다. 웃음이 나온다. 같이 춤을 춘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의 기쁨에 자꾸 웃음이 나온다. 소리 없이 입술만 움직이며 노래도 따라 불러본다.

   “자영아, 발표회 의상비랑 방과 후 수업료 신청서란다.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자영이는 전학 와서 늦었으니, 내일 꼭 스쿨뱅킹 통장에 입금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우리 열심히 하자.”

   “네.”


   자영이는 수업료 신청서와 발표회 의상비가 적힌 가정 통신문을 손에 들고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소파에 앉아있다.

   ‘이걸 어떻게 말하지? 나를 위해 돈을 써야 한다고 어떻게 말하지?’

자영이는 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눈을 감는다. 잠시 후 자영이의 어깨 위에 태준의 손가락이 가볍게 톡톡 닿는다. 눈을 뜬 가영이의 눈엔 태준의 얼굴보다 땀에 젖은 앞 머리카락이 먼저 보인다.

   “자영아, 아빠 왔어. 땀 냄새나지? 샤워 후에 밥 먹자.”

태준은 보글거리는 부대찌개와 김치, 김, 햇반을 준비하고 식탁으로 자영이를 부른다. 태준은 자영이가 손에 들고 나오는 종이에 시선이 먼저 간다.

   “자영아, 그게 뭐야? 이리 줘봐. 보자. 음. 난 또 뭐라고. 통장에 돈은 자영이가 학교 처음 가는 날 넉넉히 입금시켜 놓았어. 돈은 알아서 학교로 입금될 거야. 이런 거 보여 주기 힘들면 냉장고나 식탁 위에 올려놔. 아빠가 챙겨서 볼게. 밥 많이 먹자. 밥은 맛이 없어도 많이 먹는 거야. 하하.”

자영이도 따라 웃는다. 자영이는

   ‘감사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하고 잠시 생각해 본다.

   “자영아, 감사하다는 말은 안 해도 돼. 부모는 원래 학교에서 내라는 돈 내주는 사람들이거든. 하하”

자영이는 이번에도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태준은 잠깐 자영이를 바라보다가 밥을 먹는다.

   “아이스크림은 남아 있니? 우리 밥 먹고 아이스크림 사러 가자. 아빤 바닐라 아이스크림 좋아하는데, 집에 초코뿐이잖아. 그리고 밤에 혼자 다니면 위험하니까. 하하”

자영이는 이제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태준도 자영이와 크게 웃는다. 오늘은 처음으로 자영이와 저녁을 먹은 날이다. 태준은 기분이 좋았고, 간단히 아이스크림으로 기념도 하고 싶다. 한 번도 아빠가 되어 본 적이 없는 태준은 자신이 하는 모든 아빠 노릇이 어색하다.

   ‘젠장, 연애도 이것보다는 쉽겠다.’

싶은 심정이다.


    ‘다른 아빠들은 이런 날 무슨 옷을 입고 가지?’

태준은 오늘 처음으로 아빠로서 학교를 방문한다. 학예회 발표와 동아리 발표회가 있다고 학부모님을 초대한다는 글이 휴대폰 메시지로 왔다. 태준의 말을 전해 들은 준호는 웃겨 죽겠다며 놀렸다.

   “인마, 기저귀 갈아주기부터 분유 타서 젖병으로  먹이기 등등  차례차례 아빠 노릇을 시작해야 하는데, 너는 기초 없이 겁나 나가버린 초고속 선행이다. 파이팅이다. 친구야.”

태준은 휴대폰 검색 창에 ‘초등학교 발표회 부모 패션’이라고 검색을 한다. 이리저리 뒤지다가 그냥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기로 한다.

   ‘별거 아닌 것에 너무 고민했더니, 늙은 것 같네.’

라고 생각 한 뒤 집을 나선다. 학교에 도착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두리번거리는 태준은 아이의 발표회에 마음이 설레어 걷은 부모들과 방향을 같이 한다. 엄마들끼리 인사하는 모습도 부부가 함께 하는 모습도 태준에게는 낯설고 어색해 자기도 모르게 점점 뜨거워지는 얼굴을 느낀다. 다행히 공연히 빨리 시작되어 낯선 공간에 대한 불편함이 사라진다. 6학년 댄스 동아리가 무대에 올라와 준비를 한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와 자기의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린다. 자영이를 찾는 태준의 눈이 빠르게 움직인다. 똑같은 무대의상을 입은 아이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해 보인다. 태준은 순간 당황했지만, 아이들의 얼굴에 집중해서 다시 자영이를 찾아본다.

   “어머,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서있는 쟤는 누구야? 움직임이 좀 다른데?”

   “그러네. 아마 전학 왔다는 걘 가봐. 우리 딸이 그러는데, 안무를 하루 만에 다 외웠데. 얘가 그쪽으로 타고 난 나 봐. 부모가 누구래? 저렇게 재능을 확실히 보여 주면 이것저것 안 시키고 한 가지만 시켜주면 되니까 오히려 편해. 우리 애들은 모든 걸 고만고만하게 하니 그중에 하나를 콕 찍어서 뭘 시켜야 할지 모르겠어.”

태준은 옆 자리 엄마들의 대화를 듣고 오른쪽 두 번째 아이를 찾아본다. 자영이다.

   ‘저렇게 입혀 놓으니 못 알아보겠네. 춤을 잘 추는 아이었구나!’

아직 자영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걸 태준은 안다. 태준이 자영이에 대해 아는 건 보육원에서 들은 자영이가 지나온 시간들의 흔적이다.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먹이고 입히면 된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옆 자리 엄마들의 대화를 들으니 부모들은 아이의 미래 직업까지 생각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던데, 그래도 춤에 재능이 있는 건 확실해 보이네.’

춤을 추고 있는 자영이의 표정은 이때까지 태준이가 본 자영이의 표정 중에서 가장 행복해 보인다. 자신이 행복해하는 모습은 늘 타인만이 볼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자기 자신의 행복한 모습 볼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찍어주고 하는 것일까? 태준은 휴대폰을 꺼내 자영의 모습을 찍는다. 자영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의 모습과 표정, 분위기를 자신의 휴대폰에 처음으로 담아 본다. 태준은 한 번도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모른 체 자영이의 행복을 가득 담아 찍어 본다.     


 자영이는 태준이 휴대폰으로 보내준 자신의 사진을 유심히 바라본다.

   ‘내가 이렇게 웃는구나. 내가 이렇게 춤을 췄네.’

늘 세수 후  무표정한 얼굴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자신의 움직임이 찍힌 사진을 보니, 이미 알고 있는 자신의 얼굴도 몸도 갑자기 새롭게 보인다. 동아리 활동 시간은 점점 자영이의 학교생활에 중심이 되어 간다. 틈틈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걸그룹 아이돌의 안무와 유튜브에서 본 댄서들의 춤동작들을 따라 해 본다. 리듬에 따라 달라지는 동작들의 새로움이 흥미롭다.

   자영이는 학교 영어 방과 후 수업 교재를 준비해 오지 않아 집에 잠깐 들러 냉동실에 넣어 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다시 집을 나선다. 초인종에 붙어있는 빨간색 광고지를 떼어내려고 종이를 손으로 잡는다.    

  

【춤에 소질이 있는 아이라면 누구나 아이돌이 될 수 있습니다. 최고의 강사진. 서울 P.K.댄스 아카데미 직영 부산점 오픈 기념 할인 이벤트 50만원 → 45만 원(10월 10일부터 10월 30일까지) 본원의 혜택 : 서울 본원 원장 직강. 유명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응시반 특별 운영】


자영이는 광고지를 반으로 접어 방과 후 영어 교재 사이에 끼워 둔다.

   ‘이런 곳에서 댄스를 배우면 어떤 느낌일까? 지금 내가 방과 후 댄스 동아리에서 배우는 춤이랑 많이 다를까? 여기서 배우면 나의 춤이 달라질까? 얼마큼 달라질까? 나도 여자 아이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꿈을 꿔도 될까? 새아빠에게 배우고 싶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그분은 벌써 많은 돈을 날 위해 쓰고 있는데, 더 부탁드려도 될까? 포클레인 안은 엄청 더울 거야. 새아빠가 아니라 친아빠라면 고민 없이 부탁할 수 있었을까?’

자영이는 학교로 돌아가는 짧은 거리를 걸으며 이렇게 많은 질문들이 생각나는 것에 놀란다. 영어수업시간 내내 앞에 생각했던 질문들이 도돌이표처럼 계속 생각이 나고 그중 아무것도 물어볼 수도 대답을 들을 수도 없다는 것이 답답하다.


 휴대폰 길 찾기 기능을 검색해서 알아본 대로 버스를 탔다.

   ‘우선 무엇을 배우는지 구경은 할 수 있잖아? 그 건 돈을 안 내도 될 거야.’

버스에서 내려 쳐다본 건물 5층에 P.K. 댄스 학원의 간판이 보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버튼 5층을 누른다. 자영은 엘리베이터 버튼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을 누른 것 같다. 5라는 숫자에 불이 들어보고부터 심장도 두근두근 빨리 뛰기 시작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접수 창고에 앉아 있던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한다.

   “혼자 왔니? 부모님은?”

   “제가 먼저 알아보려고 혼자 왔어요. 구경 한 번 해 봐도 될까요?”

   “구경해도 되는데, 부모님이랑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것저것 설명할 것도 있는데, 너에겐 어려운 설명일 수 있어서. 오늘은 수업 구경만 하고 가까운 날 부모님도 모시고 오자. 설명은 부모님께 바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교실 문 앞에는 처음 본 단어와 어디서 들어는 봤던 단어들이 적혀있다. 방송 댄스, 기본기 트레이닝, 코레오, 힙합댄스, 걸스힙합, 왁킹, 걸리쉬, 팝핑, 락킹, 하우스, 소울, 비보잉. 자영이는 모두가 자신보다 뛰어난 몸짓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놀랐다. 학교에서 보던 친구들의 몸짓과 차원이 다르고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봤던 영상보다 멋지고 에너지가 폭발하고 있다. 자신도 여기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은 열정을 지나 소원을 거쳐 목적이 된다.

   “이름이 자영이라고 했니? 부모님 연락처 적어 놓고 갈래? 우리가 미리 전화드려서 상담 예약 시간도 잡아야 하거든. 봉투 안에 든 건 내 명함이랑 학원 수업 일정표야. 부모님 보여 드리고 상담 전화 드린다고 전해줘. 우리 다시 보자. 조심해서 가.”

집에 도착한 자영이는 식탁 위에 봉투를 놓았다가 다시 방으로 가져와 책가방 안에 넣어 둔다.     


    “박 군아, 내일은 폐기물 작업이니까 사무실로 6시까지 와. 차 타고 같이 이동하게.”

   “네. 기사님”

태준은 목에 감고 있던 수건을 손에 들고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턴다. 신발 밑창엔 공사장에서 밟은 진흙이 가득하다.

   “준호야, 전화를 왜 이렇게 늦게 받아? 일은 마쳤냐?”

   “응. 태준아, 말도 마. 나 오늘 정말 열받아서 미쳐버린다. 진짜.”

   “배고프다. 일단 이모 집 삼겹살 먹으면서 얘기하고. 오늘은 내가 먼저 도착하겠네. 고기 굽고 있을게. 빨리 와. 늦게 오면 내가 다 먹고 네가 계산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지금 가고 있어. 맛있게 노랑 노랑 구워나. 김치도 소주 2병도 시켜놓고.”

식당 안은 벌써 사람들로 부쩍 인다. 태준은 작업용 신발을 신고 식당에 들어오는 자신의 모습이 비친 거울 본다. 박 실장님에서 박 군이 된 삶의 변화. 전진인지 후진인지 알 순 없지만, 미래에 대한 목표는 박 군이 더 다양하다. 박 군의 꿈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확장된다.

박 실장님이었던 시절엔 꿈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집만 사면 여기서 떠난다. 돈 모아 집 사면 떠난다.’

했던 결심들. 떠날 날이 목표고 꿈이었다. 목표나 꿈이 다른 목표나 꿈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박 군의 미래는 굴착기 기사에서 더 큰 회사 굴착기 기사로, 굴착기 학원 강사에서 굴착기 회사 사장님 쪽으로 화살표가 생겨난다. 떠나거나 벗어나는 것이 아닌 더 나은 곳에 머물기 위해 떠나는 꿈을 꾼다. 혼자였던 목표에 자영이가 함께인 책임을 동반한 흐뭇함이 있다. 태준은 고기 굽던 집게를 흔들어 보인다.

   “준호야, 여기. 빨리 왔네.”

   “인마, 택시 타고 왔어. 오늘은 네가 꼭 사. 나 오늘 일하고 돈 못 받았어.”

   “왜?”

   “일 가르쳐 주는 게 어디냐면서 수업료 안 내는 게 돈 번 거라고 소리치는데, 초보가 죄지. 내가 조금만 더 경력 쌓으면 이것들 내가 밥줄 다 끊어 버릴 거야. 내가 인건비 싸게 불러서 거래처 죄다 뺏어 올 거야. 나쁜 새끼들.”

   “오늘 준호 임자 만났네. 하하.”

   “태준아, 나중에 밤길에 그 새끼 만나러 갈까? 야, 네가 한 대만 패주면 안 돼?”

   “미친놈. 참아. 나도 박 군으로 허리 굽혀 인사하며 할배들 탁주 사주고 김치 주문해 주면서 열심히 산다. 할배들은 한 대 날리면 못 일어나. 위험해. 자, 한잔해.”

   “아, 진짜. 내가 결혼식만 안 잡혀 있어도 이렇게 참진 않을 거다. 경력 쌓아서 우리 색시 고생 안 시키려고 내가 진짜 이러고 살지. 내가 이러다 몸속에 사리가 넘쳐서 부처되겠다.”

   “하하. 그래그래. 우리 부처님 결혼하시네.”

   “그런데 귀하신 따님은 어찌 지내시는고?”

   “잘 지내는 것 같아. 기저귀 안 갈아 줘도 알아서 화장실 잘 가고, 밥이랑 아이스크림도 잘 먹지. 아, 그리고 춤을 겁나 잘 춰. 여자 아이돌처럼 추더라.”

   “이 새끼. 뻥 치고 있네. 아이돌만큼 어떻게 춰. 걔들 겁나 유명한 사람들한테 배우고 맨날 연습해서 그렇게 추는 거야. 아무나 그렇게 못 춰.”

   “나도 열심히 땅 파고 흙 옮겨서 춤 가르칠 거야. 자영인 공부 쪽은 아닌 것 같아.”

   “그렇지. 내 친구 태준이 딸이면 공부는 아니지. 그것도 많이 확실하게 아니지. 암. 백 프로지.”

   “죽는다. 오늘. 오랜만에 칼 한 번 잡을까?”

   “박 군 이러시면 안 돼요. 고기 드세요. 이놈아.”

얼큰히 취해 집으로 걸어가는 태준은 기분이 적당히 좋다. 내일까지 여기서 일하고 다음 주엔 경력직 사원으로 다른 회사에 입사하기로 약속해 놓은 상황이다. 조금만 더 모으면 작은 소형 굴착기를 살 수 있다. 사람이 꿈을 가진다는 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비상금을 넉넉히 두고 있는 것처럼 설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낯선 번호가 휴대전화에 뜨고 P.K. 댄스 학원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자영이 아버님. 자영이가 어머님 전화번호를 안 적어 놓았네요. 통화 가능하세요?"

   “통화는 가능하고요. 그리고 자영이는 아빠뿐입니다.”

태준의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아, 죄송해요. 실례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네, 어제 자영이가 학원에서 받아간 봉투를 읽어 보셨어요? 학원 수업 일정표와 신청서, 수업료에 대한 안내 책자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방문 상담 시 시간 예약을 먼저 하셔야 해서 전화드렸습니다.”

   “그래요? 일단 자영이랑 얘기해 볼게요. 그리고 전 일요일 아니면 시간이 없는데 일요일 상담 가능한가요?”

   “네. 오전에만 가능하세요.”

   “그럼, 일요일 오전 제일 늦은 시간으로 예약할게요.”

   “네. 궁금한 상항 있으시면 그전에라도 전화 주세요.”

태준은 집에 들어와 식탁과 냉장고를 쳐다본다.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다. 자영의 방문을 노크해 본다.

   “자영아, 자니?”

   “아니요. 다녀오셨어요. 헤드셋 때문에 문 여는 소리를 못 들었어요.”

   “그래, 학원에서 전화가 왔어. 학원에서 받아온 봉투 있니? 아빠가 읽어 봐야 할 것 같은데. 꺼내 볼래?”

   “아, 그거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그 학원 안 다닐 거라서요.”

   “왜? 별로야?”

   “아니 그건 아닌데. 너무 비싸서. 힘들게 일하시는데. 제가 친딸도 아니고요. 지금도 저한테 돈이 많이 쓰시는 것 같아요.”

   “아니야, 괜찮아. 별로 안 쓰고 있어. 자영이가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방과 후 말고는 학원을 안 다녀서 교육비는 별로 안 들어. 그래서 춤 배우는 학원에 다녀도 돼. 그리고 공짜 아니다. 내가 나중에 힘없고 돈 못 벌고, 병들면 너도 날 지켜 줘야지. 세상에 공짜는 없어. 너는 내가 늙고 병들면 안 돌봐줄 거니? 안 지켜 줄 거야?”

   “아니요. 지켜드려야죠.”

   “그래, 그럼 된 거야.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지. 봉투 줘봐. 얼마나 비싼지 구경이나 해 보자.”

   “네. 가방에 넣어놔서 잠깐만요.”

   “그리고 자영아, 일요일에 상담 예약해 놨으니, 다른 약속 잡지 말고. 비싸서 못 다니더라고 상담은 받을 수 있어. 상담은 공짜거든.”

   “네.”

   “그리고 또 자영아, 어디든 부모님 연락처 적는 곳에 엄마 칸에는 <없음>이라고 당당히 써놔. 그 대신 넌 아빠가 두 명이잖아. 한 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시고, 좀 더 높은 곳에 계신다는 게 다르지.”

자영이는 울컥 나오려던 눈물을 붙잡는다. 이 타임에 우는 건 너무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 태준과 자영은 라면을 간단히 끓여 먹고 학원 상담을 위해 버스를 탄다. 휴일의 이른 아침을 달리는 버스 좌석은 여유롭다. 자영이는 순간 어디에 앉을지 고민스럽다. 자영의 시선은 맨 끝에 텅 비어 있는 뒷좌석 창가 자리로 앉는다. 태준도 자영과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자영이는 화창한 날씨에 태준이 가져온 큰 우산을 이제야 발견한다.

   ‘비 올 날씨는 아닌 것 같은데….’

이제 다음 정류소에서 내리면 된다. 벨을 미리 누르고 두 사람은 출입문 앞에 나란히 서서 버스가 멈추길 기다린다. 자영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누군가에게 얘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태준도 아빠로서 아이의 진로 상담은 처음이다. 태준의 학창 시절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진로를 위해 누군가와 동행해 본 적도,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상담을 해 준 적도 없다. 모든 걸 자신이 판단하며 선택했던 인생이었다. 이제 태준은 누군가의 미래를 위해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이다. 그 누군가가 딸이 될진 몰랐지만,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준과 자영은 학원 상담실로 안내된다. 상담실 문을 닫아도 여기저기서 음악이 들리고 강사님들의 구령 소리도 들린다. 오늘 아침에 본 풍경이나 소리 중 가장 크고  바쁜 소리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P.K. 댄스 학원 부원장입니다. 우리 학원은 부산의 타 학원과 차별화된 댄스 학원입니다. 서울 강남에 있는 본원과 교육과정이 같습니다. 대형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은 서울 본원에서 특별반으로 진행되며, 오디션 두 달 전부터 개강하여 집중적으로 관리해 드립니다. 수업 시간표는 여기 적혀 있는 걸 보시면 됩니다. 궁금한 사항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네, 만약 수강하면 수업은 언제부터 가능한가요?”

   “지금 당장 하셔도 되고요. 아니면 월요일부터 수업하셔도 됩니다.”

   “마트에서도 시식 코너라는 게 있는데, 정식 수업 전 체험 삼아 잠깐 수업을 들어봐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지금 수업 중인 교실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낮은 교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원래는 기본기 트레이닝 수업부터 해야 하는데, 그 수업은 오늘 휴강이라서 왁킹 기초 수업을 잠깐 참여해 볼게요. 자, 그럼 자영이와 함께 이동하시죠.”

자영이는 교실로 이동하면서 자신의 심장박동이 점점 커지는 걸 느낀다.

 ‘내가 수업을 들어 본다고?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렇게 갑자기?’

복도를 걷던 자영이는 걸음이 꼬여 순간 뒤뚱거린다. “왁킹”이라는 글자가 적힌 문을 열고 부원장님과 함께 교실로 들어간다.

   “선생님, 좀 무리이긴 한데, 수강 전 잠깐 수업에 참여해 보려고요. 잠깐 같이 해봐도 될까요?”

   “네, 오늘이 댄스 수업 첫날이면 왁킹은 어려울 텐데. 얘야 잘못해도 된단다. 잠깐 같이 해 보자.”

자영이와 시선을 맞춘 후 선생님은 팔 동작을 보여 주신다. 자영이는 선생님과 나란히 선다.     

    “다른 분들은 잠시 쉴까요? 자영인 이거 한번 해 보자. 하나, 두울, 셋. 네엣. 다섯. 여섯, 일고옵, 마무리. 자 다시 한번 더 하나, 두울, 셋. 네엣. 다섯. 여섯, 일고옵, 마무리. 자 연결해서 해 볼까?”

태준의 눈에 선생님의 팔 동작은 복잡해서 대책 없이 보인다.

   ‘저걸 따라 하라고? 딱 두 번 보여 주고?’

자영이는 천천히 선생님의 팔 동작을 부드럽게 따라 한다.

   “어머 잘 따라오네. 그럼 이것도 한번 해 볼까? 금방 한 팔 동작과 연결해서 한번 해 보자.”

자영이는 선생님의 몸짓이 주변과 분리되어 보인다. 춤을 추는 선생님만 움직이고, 나머지 세상은 멈춘 듯 선생님의 춤동작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선생님과 같이 춤을 추는 자영이는 자신도 이제 살아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춤추는 선생님과 자신만이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 든다. 선생님의 손짓으로 음악이 흘러나온다. 자영이의 팔은 큰 새의 날개처럼 우아하기도 하고, 부채가 소리를 내며 순간 접히는 것처럼 절도 있게 움직이기도 한다. 춤이 끝났을 때, 갑자기 박수 소리가 들린다. 자영이는 주변 세상이 다시 돌아오는 걸 느낀다. 자영이는 문 입구에 서 있던 태준을 찾아본다. 태준은 웃고 있다.

   ‘아빠가 웃고 계셔. 아빠가 박수를 치고 계셔.’

태준은 자영이를 바라본다. 자영이가 환하게 웃고 있다.

   ‘자영이의 저 환하니 웃음을 지키려고 그날 나는 아빠가 되고 싶었지.’

태준은 팔을 높이 올려 손뼉을 친다.

   “가영아, 월요일부터 기초 수업반에서부터 수업을 시작하면 된단다. 필요한 건 여기 적어 놨으니까 아버님이랑 같이 준비하면 되겠네. 월요일에 보자.”

   “네. 안녕히 계세요.”

학원을 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태준은 우산을 활짝 펴고 자영이를 향해 웃어 보인다.

   “일기 예보가 안 맞으면 기상청에 전화하려고 했다. 큰 우산이라 무거웠거든. 그리고 해가 너무 짱짱해서 다른 사람들 보기 좀 민망도 했지. 소나기가 내리니 이젠 당당하니 좋네. 자영아, 아빤 자영이한테 소나기에 준비한 우산 같았으면 좋겠다. 늘 미리 준비되어 모든 비를 막을 순 없겠지만, 몇 번은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할 수 있을 거야.”

   “감사드려요. 저한테 잘해 주신 거. 전부다. 커서 꼭 갚아 드릴게요.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시면 제가 아빠의 우산이 될게요.”

   “그래, 기대할게. 넌 아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산 일 거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는 오전의 버스보다 사람이 많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대부분의 사람이 조금씩은 젖어 있다. 태준과 자영이는 빗물이 맺힌 큰 우산이 자랑스럽다.     


   “자영아, 우리 수업 마치고 떡볶이랑 라면 먹으러 가자?”

   “안 돼. 미안해. 너희들만 가. 나 오늘 KTX 타고 수업받으러 서울 가야 해.”

   “지금?”

   “그건 아니고 학원에서 잠깐 연습하고 바로 기차 타야지. 월요일에 학교에서 보자. 잘 가. 맛있게 먹고. 안녕.”

자영은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뛰듯이 걸어간다. 옷장을 열어 댄스복 2개와 세면도구, 침낭을 챙겨 바로 집을 나온다. 학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창가 쪽 뒷사람이 없는 좌석을 찾아 앉는다. 창문을 끝까지 연다. 언제부터인가 학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마음이 답답하고 춤도 어렵다. 춤만 추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춤은 자영이가 넘어야 하는 산이 되었다. 생각처럼 쉽게 넘지 못하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이 원망스럽고 때론 춤이 세상 무엇보다 힘겹다. 그래도 춤을 못 춘다는 생각을 하면 그건 견딜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 자영이 왔구나, 늘 열심히네. 이번엔 합격할 거야.”

   “네.”

교실에서 들려오는 음악들. 복도를 가로질러 자유 연습실로 향한다. 간단히 몸을 풀며 큰 거울 앞에 선다. 관객이 없는 연습실. 자영이의 춤은 거울에 비친 자신만이 관객이 된다. 부산역 앞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단백질 바, 제로 칼로리 음료수를 비닐에 담아 기차를 탄다. 자영이가 처음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오디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을 때 탔던 서울행 기차엔 흥분과 기대, 희망만이 가득했었다.

   ‘2개월 뒤엔 나도 소속사가 있는 연습생이 되어 있는 거야.’

라고 김칫국을 심하게 마셨던 자영이의 첫 기차는 벌써 8개월 차 서울행 기차가 되어간다. 처음 오디션을 보던 날, 모두가 자기를 인정해 주는 날이 될 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몸이 평소처럼 부드럽게 움직여 주지 않아 춤은 경직되고, 코는 왜 그리 막히는지 목소리도 수압 약한 샤워기 헤드처럼 답답하게 흘러나왔다. 모든 것이 평소 같지 않다고 이건 나의 실력이 아니라고 원래는 더 잘한다고 자영은 심사위원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자영에 대한 심사평은 잔인했으며,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자영이의 의지와는 다르게 모든 것이 흘러가던 오디션은 불합격과 자격 미달이라는 결과를 자영이에게 던졌다. 꿈을 향해 달리던 자영이의 기차는 조금씩 탈선하기 시작했다. 사춘기를 엮으며 목소리에 변화가 생기고 노래를 부를 때 갈라지는 목소리와 불안정한 음정은 자영이를 부끄럽게 했다. 좀 더 열심히 하면 될까 싶어 노력하다 성대결절이 왔고. 고음에서의 분열이나 부드럽지 못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춤보다 노래는 타고난 재능이 없다고 느꼈던 자영이는 자신감이 떨어져 노래를 포기했다. 노래하기 위해 배웠던 피아노도 자연스럽게 치지 않게 되었다. 자신감으로 가득 채워졌던 자영의 하루하루는 오디션 불합격 이후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커지는 날들로 채워져 갔다. 월요일이 되면,      

   ‘그만둘까?’

화요일이 되면,

   ‘아니야, 지금까지 한 게 아닌데, 여기까지 한 게 아깝잖아.’

수요일이 되면,

   ‘조금만 더 해 보자. 한 번은 떨어질 수 있지. 이번엔 합격하겠지.’

목요일이 되면,

   ‘난 재능이 없는 것 같아.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아.’

금요일이 되면,

   ‘아이돌이 될 거라고 이때까지 공부도 열심히 안 했는데, 댄스를 그만두고 지금부터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내가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잘하는 게 없는 아이가 돼버렸네.’

 토요일이 되면,

   ‘아, 진짜 나는 어떡하면 좋지?’

일요일이 되면,

   ‘그래도 오디션, 한 번은 더 도전해 보자. 한 번만 더 죽을힘을 다 해서 해 보자. 파이팅.’

이라는 반복되는 생각만으로 하루, 일주일,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가고, 자영이는 또다시 말 수가 적은 아이가 되기 시작했다. 한 번도 수강료 입금일을 잊지 않고 챙기는 아빠를 보는 것이 미안했다.

   “자영아, 연습생 오디션 기간을 늘려서 주말마다 본원에서 특별 대비반 수업을 들어보는 건 어때? 2달  연습  기간을  6개 월로  늘리는 거지. 수업료가 좀 비싸긴 한데, 그만큼 많이 배워. 그리고 짧은  기간에  합격한다면 어떻게 생각해  비용을 더 줄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단다. 선생님이 보기엔 자영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할 텐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 이번엔 좀 길게 오디션 트레이닝 수업을 집중적으로 받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부모님과 상의해 보자.”

자영이의 두 번째 연습생 오디션을 6개월 남겨두고 자영이에게 권유한 부원장님의 서울 본원 특별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영은 아빠를 위해서라고 합격하고 싶다. 금요일 밤 기차를 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서울역에 내려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학원에 도착한다. 준비해 온 침낭과 옷을 연습실 모퉁이에 두고 몸을 풀고 연습을 시작한다. 아무도 없던 연습실에 하나, 둘 학생들이 모인다.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는 따뜻하지만, 여기에 모인 모두가 오디션 날엔 경쟁자가 된다. 서로의 몸짓을 칭찬하기엔 자영이에겐 여유가 없다. 서로에 대한 따뜻한 상호작용은 이번에 떨어져도 다음을 생각할 여유를 가진 자들의 사치 같다. 자영은 이번 오디션에 불합격한다면 다시 서울로 올라오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다. 아빠의 젖은 우산도 해에 말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너무 많은 레슨비는 아빠를 지치게 할 것 같아 두려웠다. 첫 번째 아빠의 일터도 힘든 공사장이었고, 두 번째 아빠도 덥고 추운 공사장이다. 자영이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아이들 틈에 끼어있는 자신이 늘 어색하다. 어울리지 않는 공간으로 선을 넘어온 기분이다. 모든 수업이 끝나면, 근처 목욕탕에서 샤워를 한 후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 침낭을 다. 자영이는 애벌레 같이 침낭으로 들어가 잠을 자며, 꿈을 꾸듯 생각한다.

   ‘나는 애벌레고, 지금 이 침낭으로 들어가는 나는 번데기가 되는 거야, 눈을 떴을 때 나는 나비가 되어 화려한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되어 멋지게 날아오를 거야.’

꿈을  깨  눈을 뜨면 다시 수업이 시작되고 자영이는 아직 노력하고, 성장해야 하는 애벌레로 돌아온다.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잠들기 전 헤드셋을 꺼내 머리에 쓰고, 태준에게 연락을 한다.

   “아빠, 저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어요. 7시쯤 내려요.”

   “그래, 오늘은 아빠가 마중 나가 있을게. 오늘은 일이 없어서 집에서 쉬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거 먹자.”

   “네. 좀 있다. 봬요. 저 이제 자요.”

부산역에 내린 자영이는 멀리서 손 흔드는 태준을 보며 걷는다.

   “딸, 너도 고생이다. 주말마다 먼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

   “네, 그래서 이번엔 꼭 합격해서 연습생 기숙사에서 쭉 지낼 거예요. 이번엔 꼭.”

   “그래, 아자아자 파이팅! 탕수육 오케이?”

   “넵.”


   부산 지역별 예비 연습생에 합격한 자영이는 서울에서 최종 합격자 응시 자격을 얻었다.

오디션 날짜가 정해진 후 자영이의 하루하루는 고슴도치 바늘처럼 예민하다. 춤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손가락 마디마디 끝에도 각도와 리듬을 생각했다. 자신의 숨조차 춤이 될 수 있도록 신경 쓴다.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머릿속으로 춤을 추며 주문처럼 중얼거려 본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엔 진짜다. 나는 합격이다.’

오디션장은 구경 온 사람과 응원 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안내 방송이 나온다. 사회자의 인사가 시작된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많이 긴장되시죠? 모두에게 좋은 소식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안내 사항 있습니다. 원래 본선 오디션엔 대표님도 함께 하시는데 오늘은 지방 출장 중 급한 일이 생기셔서 참석을 못 하셨어요. 그래도 행사 진행은 똑같이 이루어집니다. 자, 이제 제10회 M.K.J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오디션을 시작하겠습니다.”

M.K.J 엔터테인먼트사의 소속 연예인들과 연습생들이 준비한 간단한 축하 공연 후 본격적인 오디션이 이루어진다. 응시생들은 2분 안에 모든 걸 보여 주어야 한다. 단 2분을 위해 애써 던 자영의 몇백 분 몇천 분 몇만 분의 시간을 압축하여 군더더기 없는 결정체를 나타내야 한다. 지난 시간의 노력과 앞으로의 노력이 단 2분으로 결정된다. 터져 나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린다. 금방 무대에서 내려온 응시자의 완벽한 댄스가 자꾸 생각이 난다. 구경하던 사람들의 환호와 심사위원들의 만족스러운 박수도 생각난다. 모든 응시자들의 뛰어난 실력이 놀랍다. 자영이는 자신에게 인상 깊었던 응시자의 댄스를 잊을 수가 없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데도 자꾸 그의 몸짓이 너무 생생하게 생각난다. 자영이는 그 응시생의 댄스를 잊기 위해 양과 토끼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생각한다. 드디어 자영의 이름이 불리고 무대로 올라간다. 음악이 나온다. 자영의 춤이 시작된다. 그렇게 잊으려고 생각했던 응시자의 댄스와 자신이 준비해 온 안무가 섞여서 춤을 췄다. 군더더기 없어야 할 그 2분에 처음 본 사람의 댄스를 익혀 자기의 춤과 같이 췄다.

   “망.했.다. 눈물이 쏟아진다.”

자영이는 너무 허탈해서 녹아내릴 듯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완벽한 카피.

   ‘왜 그 사람의 안무를 외워버린 걸까? 왜 그의 춤을 그렇게 집중해서 봤을까? 나는 미친 거다. 나는 대책 없는 구제 불능이다.’

자영이는 태준에게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전송 후 휴대폰의 전원을 끈다. 아빠에게 할 말이 없다.


    자영이는 부산으로 내려와 집으로 가지 않고 무작정 황령산 전망대 행 버스를 탄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 미칠 것 같아서 가슴이 뚫리는 높은 곳에 가고 싶다. 예전에 태준과 함께 갔었던 기억이 떠올라 도착한 곳이다. 하늘은 어두워져 가고 공연 관람이 가능하게 만들어진 계단씩 좌석으로 도시야경을 보려고 모인 사람들이 가벼운 음료를 들고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자영이는 멍하니 전망대 가로등에 기대어 서서 헤드셋에 나오는 음악과 함께 점점 뚜렷해져 오는 화려한 도시야경을 멍하니 내려다본다.

   ‘나는 나의 춤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 주고 인정받고 싶었다. 바닷속에서 똑같은 모습을 하고 떠다니는 해파리 같은 나의 삶 속에서 분명한 나의 색을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나는 나를 망쳤다. 나는 아빠를 힘들게 하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바보다.’

라는 생각들로 자영이의 머릿속이 가득하다. 휴대폰과  헤드 배터리가 다 되어 음악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자영이는 헤드셋을 벗어 목에 걸친다. 전망대 스피커로 음악이 흘러나온다. 자영이가 오디션을 위해 수많은 시간 듣고 춤췄던 음악이 들린다. 눈을 감고 자신이 이 음악에 맞춰 연습실에서 춤췄던 기억을 떠올린다. 자신의 많은 갈등과 고민, 긴 인내의 시간이 생각나고 마지막엔 아빠가 생각나서 눈물이 흐른다. 2분보다 훨씬 길게 준비해서 연습했던 자신의 춤을 꺼내 본다.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알 수 없는 몽환적인 기분으로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여 본다. 음악이 끝나고 박수 소리에 정신이 또렷해지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박수를 치고 있다.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  서서 " 앵콜 앵콜" 이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린다. 자영이는 자동적으로 꾸벅 인사를 하고 부끄러워 도망치듯 버스 정류소로 달린다.

   ‘내가 뭘 한 거야? 오늘은 두 번이나 미치는구나. 정신 줄을 지역을 옮겨 가며 아주 대대적으로 실천하는구나. 그런데 지금 몇 시지? 아빠가 걱정하실 텐데. 집에 가야겠다.’

자영은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조금 전 자신이 한 행동을 떠 올리며 얼굴을 붉힌다.

   “이 봐, 학생. 헉헉. 그렇게 빨리 뛰면 장염 걸린 내가 어떻게 쫓아가나? 불러도 멈추지 않고 설사해서 기운 없어  죽겠는데 학생 따라 뛴다고 진짜로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 하하

   “누구세요?”

자영은 따라온 남자가 자신에게 나쁜 짓이나 하나 싶어 걱정했지만, 입고 있는 옷도 멀쩡하고, 말씨도 서울 말씨에 주변에 설치된 씨씨티비와 버스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도 있어 안심한다. 숨이 차서 아직 똑바로 서지 못하는 그를 쳐다본다. 그가 지갑을 열어 명함을 자영이에게 내민다.

   “M.K.J 엔터테인먼트 대표. 문 기진”

이라고 적혀 있다.

   “학생 연락처 좀 알려 줄래? 부모님 연락처도 부탁해. 내 연락처는 거기 적혀있지? 나 사기꾼 아니야. 잠깐만, 숨이 차서. 숨 좀 돌리고. 컴퓨터로 검색하면 내 얼굴이랑 회사도 다 나와. 잠깐 여기 휴대폰 좀 봐. 여기 있네. 얼굴 봐봐. 닮았지? 나야. 학생 춤은 댄스 학원에서 배운 솜씨 같은데. 동작이 깔끔하고 기초가 닦여있어. 혹시 우리 회사에 연습생으로 들어올 생각 있어? 부모님 하고도 의논해 봐야 하니까 내일 내가 다시 연락할게. 전화번호 가르쳐주기가 싫으면 내일 부모님께서 내 번호로 연락해 주시면 될 것 같은데. 연락 꼭 해. 기다릴게. 어, 저기 버스 오네, 잘 가. 나도 일행이 있어서.”

자영이는 버스에 올라탄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집에 도착한 후 아빠에게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여보세요. 어제 우리 자영이가 대표님 명함을 제게 주더라고요. 지금 스피커 폰이고요. 딸아이도 같이 듣고 있습니다.”

   “아, 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어제 부산 출장 중에 야경 구경하러 갔다가 멋진 댄스공연을 보았네요. 하하. 순간 세상이 멈춘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배경으로는 멋진 도시야경에 흐르는 음악에 소녀의 화려한 춤에 부산이 너무 멋지더군요. 하하. 운명이라는 건 참 갑작스럽습니다. 어떠세요? 우리 회사에 연습생으로 활동해 보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집중 트레이닝을 해서 최대한 빠른 데뷔가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하하. 따님의 춤 실력이 대단하더라고요. 재능 있는 딸을 두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아, 네. 저희도 감사드립니다. 아직 부산에 계신가요?”

   “아닙니다. 어젯밤에 출발해서 지금은 서울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우리 회사로 방문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방문 시간은 체크 후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태준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 꺼진 것을 확인한다. 자영이와 태준은 세상이 떠나갈 듯 소리친다.

   “와, 합격이다. 서울로 가자. 서울. 서울.


   이제 ‘부산 황령산 전망대’라고 검색하면 자영의 댄스 동영상이 뜨고 “알고 보니 M.K.J연습생.  M.K.J의 계획된 깜짝 홍보 의심”이라는 댓글도 달린다. 이미 SNS상으로 유명해진 자영이의 연습생 생활은 유튜브 방송으로 제작되어 방영 중이다. M.K.J 회사에서도 회사 홍보차 자영이의 트레이닝 모습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태준은 이제 태준의 꿈을 위해 자영이를 향해 펼쳐져 있던 우산을 접어두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준비로 바쁘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자신의 굴착기가 마련된다. 주말에 시간이 있는 날이면 중장비 학원의 대타 강사로도 일하고 있다.

   “여보세요. 나다. 형님이다. 태준아, 요즘 자영이 완전 핫 하더라. 넌 좋겠다.”

   “응, 많아 좋다. 많이 부러워하고. 사인 필요해? 말만 해. 하하.”

   “자식, 오늘 삼겹살 쏘냐?”

   “안 돼, 바빠. 오늘 중장비 학원 대타 강사로 일하러 가. 내일 일 마치고 먹자. 요즘은 자영이가 서울에 있어서 시간이 좀 많아. 다시 총각 된 듯 같다. 하하.”

   “오케이 내일 보자. 요즘 나는 입덧하는 와이프 때문에 집에서 고기 먹기 힘들어. 부럽지? 많이 부럽다고 해줘. 사인해 줄까?”

   “그래, 많이 부러워. 정말 부러워서 미쳐버리겠네. 하하”

   “야, 너  대답에  영혼이  가출했구나. 친구야. 끊자. 일해야 할 시간이다.”

   “그래. 열심히 일하고, 형님의 영혼은 가득했고. 내일 보자. 수고.”

태준은 퇴근 후 집에서 샤워한 후 옷을 갈아입고, 학원으로 향한다. 거리엔 벚꽃이 한창이다. 굴착기의 문이 활짝 열리고,

   “안녕하세요. 강사님. 잘 부탁드려요.”

단발머리에 체크 남방을 입은 아가씨가 열린 굴착기 문으로 들어와 태준과 눈을 마주친다. 태준은 갑자기 세상이 멈추고 그녀 주변으로 벚꽃이 쏟아져 날린다. 멈춘 세상에 그녀만이 움직이는 것 같다. 이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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