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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Oct 10. 2023

월급날  갈비찜

말이  품은  마음 1


   오늘은 주희한테 갈비찜 해 달라고 해야지. 월급날이니까. 주희가 당연히 오케이 할 거야. 통장으로 월급이 고스란히 입금 됐으니까.

   “여보세요? 잠깐만 , 자기야, 뭐라고?산희가 자꾸 칭얼거려서 못 들었어. 다시  말해  봐.

   “오늘 집에서 갈비찜 해 먹자고 말했어. 월급날이잖아.”

   “집에서 갈비찜 배달 시켜 먹자고?”

   “아니, 와이프가 해 주는 거 먹고 싶어. 배달시켜 먹는 건 양도 작고, 고기질도 안 좋아.”

   “뭐래? 이 더운 여름에 뭘  해달라고?  하루 종일 애랑 씨름하고 있는 나한테 갈비찜을 해 달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어린애도 아니고 생각 없이. 진짜. 배달시켜 먹어야지.”

   “됐어. 넌 진짜 나를 가장이라고 대우해 주지도 않고 고마움도 없어. 한 달 동안 가족들을 위해 애쓴 남편에게 오늘 같은 날 갈비찜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매일 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현수는 주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섭섭한 마음에 담배라도 한 대 필까 해서 옥상으로 올라간다. 입사동기 창수가 올라 와 있다.

   “뭐 하냐?”

   “뭐 하긴. 보면 모르냐?"

   " 너나 나나 담배를 못 끊으니 옥상에서 자주 보네. "

   "그런 말 마. 오늘이 나를 옥상에서 보는 마지막 날이다. 짜샤”

   “오, 건강 생각? 금연 결심? 만수무강해라. 이 놈아.”

   “만수무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돈이 없어서 담배라도 끊어야겠다. 카드 값에 주택 대출 이자에 월급날이면 뭐 하냐? 온 동네방네 사방팔방으로 돈은 빛의 속도로 훌훌 다 빠지고 통장에 남은 돈은 쥐꼬리 보다 짧더라. 이 놈의 인생 정말 미쳐버리겠다.”

   “창수야, 인마. 넌 집을 너무 좋은 걸 샀잖아. 꽁꽁 앓는 소리 그만해. 우리 와이프는 내가 월급날이라고 갈비찜 해 달라고 했더니,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란다. 갈비찜 하는 게 뭐가 힘들다고. 집에 있으면서 좀 해 주면 될 텐데. 애 보면서 하기 힘들다고 생각 없는 놈이라고 얼마나 타박하던지.”

   “현수야, 너 갈비찜 만들 수 있어? 만들기 쉬워?”

   “몰라, 한 번도 안 해 봤어.”

   “에라이 이 놈아, 누가 들으면 갈비찜 쫌 하는 남자 줄 알겠다. 너 아기 좀 어리지 않아?”

   “응, 이제 돌 지났지.”

   “그럼, 제수씨 힘들겠는데? 우리 누나 보니까 그 맘 때 자형이랑 엄청 피 터지게 싸우더라. 자형이 회사에서 축구 동호회 총무라서 애 안 보고 주말에 자주 나갔거든.”

   “그건 아니지. 창수야, 너도 알지? 난 다리가 멍멍. 개 발이야. 축구 못 해.”     

 


   “여보세요? 자기야, 현수야.”

현수가 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주희는 동갑인 남편이 이럴 때마다 싸가지 없이 까부는  어린 남동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 시절 동갑이었던 남편과는  척하면 척하는 사이로  잘 통하고  편했다.  알뜰살뜰 자신을 잘 챙겨줘서 결혼하면 공주같이 살려나 싶었는데, 현실은 정반대 무수리의 삶이다. 결혼 후 남편 현수는 주희에게 없는, 전생의 남동생이 현생으로 환생한 것 같이  변했다.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춰 깨워 줘야 하고, 설거지라도 한 번 시키면 기름기가 깔끔하게 제거되지 않아 주희가 다시 하는 경우가 많다. 현수가 밖에서 직장 생활한다고 힘들 것 같아, 웬만하면 집안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주희도 신경을 쓴다. 갓 돌이 지난 산희의 부산한 움직임 속에서도 퇴근 후 현수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집안일을  마무리하려고 매일매일 바쁘게 움직인다.

   주희는 계획보다 일찍 산희를 가지게 되었다. “속도위반”이다. 결혼하기 전 이미 주희의 몸 안에 산희가 자라고 있었다. 예정보다 너무 일찍 자신에게 온 딸 산희를 미워하진 않지만, 가끔은 아쉬운 생각도 많이 든다. 현수와 좀 더 맞벌이를 해 경제적으로 준비가 된 상태에서 아기를 가지고 키우고  있다면,

 ‘결혼 생활이 지금보다는 덜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빨리 퇴사해 버린 직장생활에 대한 미련도 많다. 조산의 위험만 없었다면 임신을 했어도 계속 다니고 싶었던 회사였다. 예상치 못한 임신과  결혼,  곧 이은 출산. 주희에겐 급격한 역할 변화를 필요로 했다. 직장인으로서 익숙 해기 전에 결혼해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아내로 적응하기 전에 엄마가 되었다. 1년에 한 번 있는 현수의 생일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월급날까지 현수가 챙겨 달라고  떼쓰는 건  육아로 지쳐있는 주희에겐 고집불통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느껴진다. 덥고 습한 여름 장마는 하루에 한 번 산희를 유모차에 태워 잠깐씩 나가던 산책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답답한 집 안에만 있으니 어린 산희의 칭얼거림은 하루하루 신기록 대행진이다. 힘들어서 친정 엄마께 전화해 하소연이라도 하는 날이면, 주희의 어머니는 늘,

   “아기가 더 어린 아기를 키우네. 엄마가 그만큼 조심하라고 했잖니. 거 봐라.  엄마 말  안 듣더니.

라고 말씀하셔서 친정에 전화한 걸 후회하게 한다. 아직도 직장 생활을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친정엄마가 주희는 부럽다.

   ‘누굴 원망하겠어. 이렇게 사는 내가 바보지.’

주희는 윗니 두 개를 보이며 활짝 웃는 산희에게 딸랑이를 흔들며 까꿍 놀이를 해  보인다.  까르르 웃는 산희를 보며 자신도 깨르르 웃는다. 애국가 2절은 몰라도 산희가 보는 애니메이션 주제곡은  다 외우는 주희는 아기상어 주제곡을 산희에게 다정하게 불러 준다. 산희가 낮잠을 자는 시간은 주희가 유일하게 커피라도 한 잔 여유 있게 마셔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오늘은 현수가 마음  상해 끊은  전화 한 통 때문에    든  커피가  무척  쓰다.

   ‘산희가 잠깐 낮 잠 잘 동안 집 앞 식육점에 가서 갈비를 좀 사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시던 커피만  얼른 마시고 나가서 사 와야겠다고 생각한  주희는  서랍장에 넣어둔 장바구니를 찾으러 소파에서 일어난다 .   '후두둑. 후두둑. 쏴아.' 창밖으로 갑자기 비가 사납게 쏟아진다.

   ‘엥? 안 되겠네. 오늘은. 비가  너무  오잖아.’    

 


   현수는 회사 창밖으로 비가 세차게 내리는 걸 본다.

   ‘소나기가 진짜 시원하게 내리네.’

현수는 이런 날씨엔  단짠단짠 한 갈비찜 먹기에 딱 좋은 날라는 생각이 든다. 시원한 맥주 한잔과 맛있게 양념한 뜨끈뜨끈한 갈비찜이 자꾸 생각난다.

   ‘주희가 말은 그렇게 해도 준비하고 있겠지?’

현수는 퇴근시간만 기다려진다. 세차게 내리던 비는 현수의 퇴근시간에 맞춰 굵기가 약해진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주희가 좋아하는 과일맛 맥주랑 자신이 좋아하는 에일 맥주를 골라 바구니에 담는다. 주희가 커피랑 같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 간식도 몇 가지 추가로 더 선택해 담는다.  현수는 흔들리는 비닐 속 리듬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현관문을 연다. 기대했던 갈비찜의 냄새는 안 나고 거실에서 산희의 똥 기저귀를 갈고 있는 주희가 보인다.

   “나 왔어. 산희 똥 싼 네.”

   “응, 일찍 왔네. 봉투엔 뭐야?”

   “갈비찜이랑 같이 먹으려고 맥주 사 왔지.”

   “그놈의 갈비찜. 갈비찜. 아이고, 자기 마음에 드는 집으로 지금 배달시켜. 아님 냉동 부대찌개 있는데, 치즈랑 라면 사리 넣어서, 맥주랑 같이 먹을까?”

   “뭐? 내가 오후에 전화해서 그렇게 말했었는데, 갈비찜 안 한 거야? 그리고 나 오늘 점심때 부대찌개 먹었어. 저녁때 또 어떻게 같은 걸 먹어?”

   “왜, 못 먹어? 나는 김치찌개 하나로 아침, 점심, 저녁 3번 다 먹으면서 애보고 집 치우고 다 하는데. 까다롭긴. 매일 먹는 밥 가끔은 대충 먹으면 되지. 나는 하루 종일 산희 투정만으로도 미칠 것 같아. 그런데 도와줘야 할 남편까지 왜 이래? 야, 김현수 이제 넌 남편이고 아빠라고. 정신 좀 차려. 내가 자기 엄마야? 내가 시어머니냐고? 내가 진짜 결혼은 왜 해가지고, 고생을 사서 하는지. 편하게 혼자 살아야 했는데. 진짜 내 젊은 날이 슬프다.”

   “야, 이주희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해 와서 신발도 다 안 벗은 남편한테 그런 말을 얼굴 보자마자 하니?”

   “그럼, 나는 놀았니? 놀았어? 나도 매일매일 하루 종일 일한다고. 너는 퇴근이라도 하지. 가끔은 맥주도 먹고 직원들이랑 노래도 신나게 부르는 재미있는 회식도 하고. 점심시간도 따로 있잖아. 나는 그런 거 없어. 제발 일하고 왔다느니 힘들게 돈 벌어 왔다면서 생색 좀 내지 마. 집안일과  육아도 돈으로 환산하면 월급 장난 아니야. 그리고 누구는 일을 못해서 안 하니? 그때 임신 했을 때, 조산 끼만 없었어도, 나도 직장생활 계속했을 거야. 일 할 때 회사에서 인정도 받았고, 능력도 있었거든. 나 지금은 집안 일하고 애만 보고 있지만, 잘 나갔었다고.”

   “그럼, 나는, 나는 뭐 좋기만 한 줄 알아? 네가 임신해서 급하게 결혼 준비한다고 우리 집이랑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해? 어? 말해줘? 그러니까, 그때 내가 아기 포기하자고 했잖아. 근데 네가 고집부린 거잖아. 누굴 원망하니? 다 네가 선택한 거잖아.”

   “야, 너 산희 듣는데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잘한다. 잘해. 아빠라는 사람이 네가 그러고도 아빠니?”

현수와 주희의 커진 목소리에 울음이 터진 산희를 주희가 안아 올려 품에서 흔든다. 산희의 눈물과 같이 흐르는 주희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김현수 이 나쁜 놈아, 네 폰에 아직 있는 그 카페. <하얀 성> 그거 뭐야? 너 아직 걔 못 잊는 거지? 네 첫사랑 수지 말이야. 그 얠 가끔 생각하지? 그래서 너 나한테 잔인하게 이렇게 막말 퍼붓는 거지?”

현수는 멍하니 산희를 안고 울고 있는 주희를 쳐다본다.

   “지금 갑자기 걔 이야기가 왜 나와? 그게 지금 이 상황에서 나올 말이야? 그리고 사진은 또 언제 봤어? 나도 까맣게 잊고 있던 사진인데. 아이씨 짜증 나! 진짜 너랑은 말이 안 통해.”     


   현수는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무작정 나와 걷는다. 집으로 갈 때 들렀던 편의점으로 다시 들어가 맥주를 한 캔 사서 나온다.  상점 앞 파라솔에 앉아 맥주를 급하게 마신다. 주희가 ‘카페 <하얀 성>과 수지’를 얘기 한 그 순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갑갑했다. 집에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가끔 주희는 현재의 쟁점에서 벗어나 아무 관계도 없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꺼내는 이유가 뭔지 현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주희한테  들키지 않고, 주희가 끝까지 몰랐으면 하는 것들을 주희는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그럴 때마다 현수는 주희 앞에서 블록이 되어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거나 자신의 그림자를 주희가 밟아 비틀고 있는 기분이다. 허물어져 흩어진 블록을 주어모아 현수 자신을 다시 챙겨 세울  때마다 조각은  꼭   잃어버린 것 같이 허전하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언젠가 자신을 다시 세울 수 없을 만큼 블록을 잃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라지기 전에 이혼을 해야 할까? 현수는 주희를 맞춰주는  게 너무 힘겹다.  

    


   집에 남은 주희는 아직 남편에게 할 말이 남았고, 남편 현수에게 들을 대답도 많은데, 이런 상황이 오면 모든 걸 회피하고  불쑥 나가 버리는 현수의 태도에 화가 난다. 주희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현수 자기 마음대로 상황을 끝내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놀라서 큰 소리로 우는 산희를 달래며 주희 자신의 울음도 달랜다.

   ‘인생이 다 그렇지. 사람 사는 게 특별하게 있겠어.’

라며 산희를 품에 안고 흔들며 주문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젖병을 소독하고, 이유식을 만들고, 집안일을 하고, 남편의 밥반찬을 준비하는 자신의 생활은 가정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산희의 엄마, 현수의 아내 말고는 자신을 설명할 수가 없다. 뚜렷함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현재의 삶을 버릴 수도 없다. 입어야 하는 옷을 입고 맵시 있게 걷지 못하는 어설픈 패션모델 같은 기분이 종종 든다.     

   주희가  다니던 대학교 앞 카페 <하얀 성>은 수업을 마친 후 바로 출근이 가능하고, 교통비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주희가 늘 마음에 두고 알바 자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곳이다. 마침 아는 선배의 소개로 주희가 카페 <하얀 성>에 출근하는 날, 그곳에서 첫사랑 고백에 실패한 현수를 보았다. 그날 슬퍼하는 현수를 두고 당당히 나가던 수지의 뒷모습은 승리의 여신 같았다. 오랫동안 혼자서 몰래 현수를 짝사랑하던 수줍음 많고 자신감 없는  모습과 너무나 상반된 수지의 뒷모습은 현수에게 말하지 못한 주희의 콤플렉스다. 지금껏 승리의 여신 같던 수지의 당당함을 주희는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다.  카페 <하얀 성>은 현수에겐 첫사랑의 상처가 있는 곳으로 아프겠지만, 주희에겐 패배자의 상흔 같은 곳으로 기억하는 카페 <하얀 성>. 남편의 첫사랑을 아는 건 힘들다. 같이 텔레비전을 보다가 현수가 예뻐 보인다는 여성복이나 여배우의 외모가 혹시 수지와 닮았다 싶으면 기분이 갑자기 무거워진다. 주희가 기억하는 수지는 늘 20대의 모습이고, 자신은 아기를 낳아 키우며 무릎 나온 운동복 바지를 입은 평범한 30대 주부의 늘어진 모습이니, 늘 수지의 매끈한 마지막 모습에 백전백패다. 현수가 저장해 놓은 산희의 사진들을 보다가 우연히 보게 된 카페 <하얀 성>이라는 간판과 함께 찍혀 있는 과거 그 시절  사진 한 장. 다행히 수지는 사진에 없다. 현수는 왜 그 사진을 지우지 않았는지 주희는 늘 궁금했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불쑥 말해 버린 그 사진이 자꾸 생각난다. 그럴 필요까지 없었다는 후회와 그래도 한 번은 물어봐야 했고, 그 사진도 지워야 져야 하는 게 마땅하다는 결론이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돈다.      


   급하게 마셔 빈 캔이 되어 옆구리가 찌그러진 맥주 3캔. 비도 내리고 사방은 깜깜하고, 아직 와이셔츠에 양복바지를 입은 자신의 모습이 편의점  유리문에 비친다. 꼭 갈 곳 없는 유기견 꼴이다. 캔을 정리해 버리고 집으로 다시 터덜터덜 걸어간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니 주희가 거실 소파 아래에 등을 기대고 앉아 빨래를 개비고 있다. 주희가 자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당황스러운 현수다.

   “자기, 어디 있다 오는 거야?”

   “집 앞 편의점에 있었어.”

   “안 자고 뭐 해?”

   “너 기다렸지. 우리 아직 말을 끝내지 못했잖아. 네가 갑자기 나가 버렸잖아. 넌 항상 이런 식이야. 문제를 왜 해결하지 않고 회피하려고만 하는 거야? 너만 밖에서 일방적으로 생각 정리한다고 모든 상황이 끝나는 건 아니잖아? 서로 말을 해서 풀건 풀어야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모든 게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풀려? 없었던 일이 된다고 생각해?”

   “너 진짜 이렇게 집요하게 따지는 거,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거 알아? 사람을 왜 이렇게 갑갑하게 코너로 모는 거야?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데? 미안하다는 말? 그래 내가 다 잘못했다. 됐어?”

   “야, 네가 뭘 잘 못 했는지 정확히는 알고나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내가 왜 화가 났는데? 너는 나한테 뭐가 미안한 건데?”

   “갈비찜 해 달라고 해서 그런 거잖아?”

   “그게 아니지. 나는 좀 더 원론적인 걸 얘기하는 거야. 너는 내가 힘든 걸 몰라. 생각 자체를 안 한다고. 날 이해하려고 노력을 안 하잖아. 나도 밖에서 일하는 너 만큼 집에서 바쁘고 힘들다는 걸 알아달라는 말이야. 나는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아. 그게 얼마나 사람을 기운 빠지고 지치게 하는지  남편인 네가 알아주고 나를 생각해 달라는 말이라고.”

   “너 힘든 거 알고 있어. 그래, 너도 힘들겠지.”

   “진짜야? 내가 힘든 걸 안다면 처음부터 갈비찜 해 달라는 말을 하면 안 되지. 그럼 안 되는 거잖아. 사 먹자고 해야지. 내가 힘든 걸 모르니까 갈비찜 안 해 줬다고 화내는 거잖아?”

   “내 참, 와이프한테 갈비찜 해 달라는 말도 못 하냐? 내가 화가 난 건 내가 집에 왔을 때, 네가 먼저 나한테 먼저 화냈기 때문이고, 기억도 못하는 사진 이야기까지 나왔기 때문이야. 네 기분 맞추는 거 진짜 너무 힘들다. 이래도 화내고 저래도 맘에 안 든 다고 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우리 그만하자. 더 이상의 결혼생활은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야.”

   “야, 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나는 결혼생활을 위해 나의 모든 걸 바꾸고 버렸어. 이혼 같은 말 꺼내지 마. 그게 가능한 이야기야? 이렇게 포기하고 도망가고 회피하는 행동이 김현수 네가 선택한 최선이야?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냐고?”

주희는 줄줄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손으로 닦고 닦아도 금세 턱선 끝에 눈물은 방울이 되어 맺힌다. 현수는 “선택, 최선, 최대”이라는 주희의 말에 말문이 막힌다.  

   ‘그래, 모든 걸 다 떠나서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안 은건 사실이다.’

   “미안해. 나도 힘들어서 너에게 위로받고 싶었어. 그게 오늘처럼, 갑자기 먹고 싶은 갈비찜이라는 음식이었어. 그런데 네가 그걸 안 해주니까 이상하게 너무 서운 한 거야. 인정해. 이렇게 까지 너에게 떼쓰고 서운해할 일은 아니었어. 우리 주말에 맛있는 갈비찜 먹으러 가자. 시켜 먹지 말고. 산희랑 다 같이 나가서 먹자. 덥고 비 온다고 너무 집에만 있었잖아. 밖에 나가서 바다라도 보고 오면 스트레스도 좀 풀릴 거야. 화 풀어. 그리고 그 사진은 진짜 있는 지도 몰랐어. 지금 바로 지울게.”

주희는 펑펑 울어 빨개진 눈동자로 현수를 째려보며 콧물로 꽉 막힌 코 때문에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말한다.

   “김현수 나쁜 놈아. 아아앙. 너 결혼할 때 나한테 뭐라고 맹세했어? 잘할 거라고 했잖아. 아아앙. 나한테 그런다고 했잖아. 아아앙.”

현수는 주희의 들썩이는 낮고 작은 어깨를 안아준다.

   “미안해. 좀 더 신경 쓸게. 그만 울어. 엄마가 돼가지고 산희보다 더 크고 길게 우네. 우쭈쭈 그랬어요? 뚝.”

현수는 주희의 빨개진 코와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화장지로 닦아준다.

   ‘주희야, 상처 난 네 마음도 닦으며 살게. 우리 그렇게 살자.’     

   주희는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본다. 온 얼굴이 빨갛고 코와 눈이 장난 아니게 부어있다.

   ‘이대로 바로 자면 낼 아침엔 부어서 눈도 못 뜨겠네. 엄청난  못난이가 되겠어. 좀 더 있다 자야겠다.’

주희가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아직 자정 12시가 되지 않았다.

   “그래, 내가 한다. 그놈의 갈비찜. 내가 한 솥 가득 맛있게 하고 말아야지.”

새벽 배송으로 갈비찜에 필요한 고기와 채소들을 컴퓨터로 주문한다. 산희 먹일 간식들도 이것저것 골라 장바구니에 담아 결재한다.    

  


   밖에선 비가 사정없이 내리고 현수는 주희가 삶아놓은 갈비를 꺼내 칼집을 내고 있다. 주희는 갈비찜에 넣을 양념장을 신경 써서 만들며 현수 몰래 조미료를 살짝 넣는다.

   ‘비장의 무기가 들어갔어. 맛이 없을 수가 없지. 호호.’

식탁엔 뚝배기에 가득 담긴 갈비찜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친정엄마가 해주신 적당히 익은 물김치와 새콤달콤한 오이무침, 노란 계란말이가 식탁에 놓여 있다. 현수의 힘차고 밝은 목소리가 산희를 안고 분유를 먹이는 주희에게 들린다.

   “잘 먹겠습니다. 주희야, 엄청 맛있어. 우와. 우와. 최고다. 최고. 엄지 척.”

   “응,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래? 갈비찜 정도는 내한텐 기본이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까짓 갈비찜은 장난이지. 자기도 돈 번다고 늘 고생하는데 맛있게 많이 먹어. 특별히 어제 일도 있어서 비싼 한우로 넉넉히 했어.”  

   


   현수와 주희의 휴대폰에서 알림이 동시에 울린다. 기상 안전 문자다.

   “북상 중이던 태풍 카리가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내일 우리나라는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오전 내내 강풍에 흔들리던 가로수 나뭇잎도, 세차게 내리던 비도 조용하다. 낮게 내려앉은 회색 구름 사이로 맑고 파란 하늘이 조금씩 보이는 토요일 오후다. 산희와 주희는 낮잠을 자고, 현수는 기름기가 없는 그릇을 위해 수세미에 거품을 가득 내어 설거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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