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령 Oct 11. 2023

자리지킴

말이  품은  마음 3

   검은색 바탕에 형광핑크색 무늬가 요란스러운 상의와 하의 레깅스 운동복을 세트로 입은 창숙이 줌바댄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창가 쪽 맨 앞자리에 서서 눈을 감은 채 발목과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스트레칭 중인 경미가 보인다. 창숙은 자신의 영역을 빼앗긴 늙은 암사자처럼 으르렁 거리며, 빠르게 돌진해 경미를 거칠게 밀어낸다. 경미는 갑작스러운 물리적 충돌에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지만, 아직 삼십 대의 순발력으로 이내  중심을  잡는다.   거칠게 경미를 밀어 내고도 당당하게 그 자리에 선 창숙은 미안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다.

   “아, 진짜. 할머니, 도대체 왜 이러세요? 제가 먼저 와서 이 자리에 섰으면, 여긴 제 자리라 고요. 여긴 할머니 지정석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사람을 그렇게 막 밀어도 되냐고요?”

경미는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나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날카로워진다.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밑으로 하얀 두피가 훤하게 보이는 창숙은 심술보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경미를 쳐다보며 소리 지른다.

   “으, 으, 으~~ 윽. 윽.”

가만히 있어도 구불구불한 등고선 같은 주름살이 가득한 창숙의 얼굴은 좀 전의 기싸움으로 감정이 올라와서 주름이 더 깊고 많아 보인다. 화가 나서  달아오른 얼굴은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다.  

줌바 댄스를 같이 배우는 회원들이 창숙 할머니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경미를 빠르게 붙잡는다.

   “참아, 참아, 말도 못 하시는 분인데, 자기가 참아. 참는 게 옳아.”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자리도 자리지만, 저를 민 건 너무 심하잖아요. 이건 분명한 폭력이라고요.”

   “그래, 경미 씨 말이 옳아. "

   "그래, 그래도 경미 씨가 참아. 언어장애도 있으시고 나이도 있으시잖아. 저 나이 정도 되신 분들은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해도  안 바뀌지."

   " 답 없어. 참아. 참아."

   " 경미 씨, 달달하게 믹스 커피 한잔 타 줄까? 수업 들어가기 전에 기분 풀어. 화나고 억울하지만, 어쩌겠어?"

   "자,  커피  마시고. 릴랙스  릴랙스.”

경미는 수강생들이 타 준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커피보다 더 뜨거운 온도의 눈빛으고집불통 심술쟁이 창숙이 할머니를 바라본다.

   ‘창숙이 할머닌 진짜 촌스럽고, 교양도 없어. 내가 진짜 저렇게는 안 늙는다. 으이구.

경미는 창숙의 모든 행동이 경박스럽게 보인다.

경미 주위에 젊은 엄마들이 창숙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수근 거린다.

   “창숙이 할머니는 오래 사실 거야. 늘 운동하기 전에 홍삼 사탕 챙겨 드시는 거 봤어? 자기 몸은 엄청 챙기나 봐.

   “그렇지? 나도 그  사탕  봤어. ”

   “코로나 때문에 우리 친정부모님이나  시댁  어르신  모두  사람들 모이는 곳은 피하시는데, 창숙이  할머니는 우리 보다 더 열심히 센터에 운동하러 오시잖아. 오래  사실 거야. 호호. 유별난 시어머니 때문에 며느리 많이 힘들겠어.”

   “아이고, 무서워라. 우리 시어머니 아니기 천만다행이야. 호호호.”   

   “쉿! 그만, 그만. 조용히 해요. 이쪽으로 돌아보시잖아요. 듣지 못하셔도 입 모양으로 다 알아듣는다던 데요.”

   “자. 자. 수업시간 다 됐네. 강사님 오시기 전에 몸이나 좀 풀고 있자.”


   교실 문이 열리고 강사님의 동작에 맞춰 수업이 시작된다. 경미는 거산 스포츠 센터 근처로 이사 오기 5년 전부터 줌바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 고등학생 단과 학원 수학 강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지쳐갈 때쯤 시작한 줌바댄스마음속 갑갑증 해소에 효과가 좋았다. 경미는 이제 새로운 동작을 익히는 것에도 제법 눈썰미가 생겨 강사님의 동작을 몇 번 보면 금세 외웠다.

   ‘나는 머리 말고, 몸을 쓰는 일을 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경미의 빠른 안무 익힘은 새로 등록한 회원들의 부러움을 산다. 줌바 댄스는 수강생들이 강사님의 동작을 보며 무작정 따라 하는 방식이다. 멀리 떨어진 강사의 동작을 정확히 보기 힘든 신입 회원들은 자신보다 유능한 앞줄의 사람들을 보며 동작을 익힌다. 그런 면에서 보면 창숙 할머니는 앞 줄에  서긴 부족한 인물이다. 줌바 수업을 오랫동안 꾸준히 다니긴 했지만, 동작의 정확성이나 순발력이 뒷사람에게 도움이 될 실력이 아니다.   


   수업이 시작되고 음악소리가 흥겹다. 창숙은 조금씩 목과 눈이 간질간질하다. 기침이 조금씩 나오더니 멈추질 않는다. 계속되는 기침으로 괴로운 창숙은 정수기로 다가가 종이컵에 물을 받아 마신다. 조금 진정되는 듯하더니, 또다시 시작된 기침은 끝이 없다.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기침하는 게 더 불편하다. 수강생들의 시선이 창숙을 향한다. 강사님은 음악을 멈추고 창숙 에게 걸어와 몇 발자국 멀리 떨어져서 묻는다.

   “어머니, 많이 불편하세요? 수업하기 힘드시면 오늘은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창숙은 손을 내저으며, 자기 자리에 가서 앉는다. 동작을 따라 하진 않지만, 자리는 지키겠다는 의지다. 코로나가 의심되는지 다른 회원들은 창숙의 자리에서 조금 더 멀리 거리를 두고 수업을 하거나, 도중에 교실을 조용히 빠져나간다. 양해를 구하고 쉬는 시간에 먼저 가겠다는 회원도 있다. 몇몇 사람들이 창숙을 바라보며 싫은 내색을 얼굴에 나타낸다. 창숙은 이 모든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고 앉아 나오려는 기침을 다스리기 위해 가슴을 손으로 쓰러 내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나이가 들면, 다 저런 거야? 얼굴이 철판이다. 콘크리트네.  엄청 두꺼워.”

사람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수군거린다. 창숙은 몇 번의 기침이 더 나왔고, 이젠 수업시간이 끝나 모두가 교실을 나간다. 순환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에도 창숙의 기침은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계속 나온다. 순환 버스를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도  창숙이 기침을 하자 힐끔힐끔 쳐다본다. 경미는 창숙이 버스를 타는 걸 보며 버스 맨 뒷자리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할머니의 저 기침. 신경거슬리네. 완전 찝찝해. 젠장. 나는 진짜 저렇게 안 늙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창숙을 몰래 쳐다본다. 창숙은 늘 내리던 정류소 오늘도 내린다. 경미는 창숙이 내리는 정류소를 버스 창문으로 내려다본다. 창숙의 집주소를 유연히 알게 된 경미는 창숙이 왜 늘 여기서 내리는지 궁금하다.  

   ‘여긴 창숙이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가 아닌데, 왜 여기서 매일 내리지? 남자 친구라도 몰래 만나나? 아이고, 저 나이에. 뭔 일리래? 주책이다. 진짜.’

라고 생각한다.     


   집에 도착한 경미는 출근준비로 바쁘다. 단과 학원은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오는 곳이라서 출근시간도 퇴근시간도 늦다. 경미는 아이들에게 모르는 걸 가르쳐 주는 지식전달은  힘들지 않다. 수업시간이  힘든 건 공부하기 싫은 이들을 계속 공부하게 해야 하는 감정 충전이다. 의욕이 없는 아이들을 다그치고 달래면서, 수업이 마칠 때까지 아이들에게  자신의  에너지를  나눠주다 보면,  "기 빨린다"는 말처럼 온몸에 힘이 쏙 빠져 수분이라고는 전혀 없는 바짝 마른미역이  듯하다.

   ‘이런 시간들을 계속 참고 견디면 나도 번 아웃이 오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며 경미는 오늘도 출근한다.  자아성취, 자기 계발  같은  화려한  미사여구  말고,  먹고  싸는 가장  기본 적인 생리 현상을  위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힘겨움을 견뎌 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흔들리는 버스 창문으로 쳐다본다.

   수업을 끝내고 빠져나간 경미의 에너지는 퇴근의 기쁨으로 조금씩 회복된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휴대폰에 남겨져 있는 메시지를 확인한다.

<코로나 확진자와 밀착 접촉 되어 주소지 관할 보건소를 방문해 검사받으시기 바랍니다.>

라는 긴급 안내 문자다.

   ‘뭐? 내 이럴 줄 알았지. 창숙이 할머니 진짜. 미쳐버리겠네. 내가 확진자가 되면 학원 애들과 학부모님들께서 난리도 아닐 텐데. 학원 원장님도 가만 안 계실 테고. 아이고, 머리 아파 죽겠네. 진짜 미쳐 버리겠네.’

계속되는  휴대폰 진동과 알림.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진짜 짜증 나서 못 살겠다고. 최초 감염자가 누구냐고? 아픈데 운동 온 사람은 양심이 없다느니, 창숙이 할머니 맞지? 아침에 할머니 기침 하는 거 봤지? 끝까지 안 가고 있더니 이 난리가 난 거라고.”

하는 메시지가  줄줄이  사탕이다.  모두가 불안하고 불쾌하다는 아우성이  가득하다.  집에 도착한 경미도 근무 중인 학원 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사정 이야기를 한다. 역시나 원장님은 불같이 화를 내시고, 애들 빠지면 경미더러 책임지라고 하며 전화를 끊는다.

   ‘코로나 시국에 운동가는 게 아니었어. 이러다 학원에서 잘리는 거 아니야? 할머니 때문에 내가 못 살겠어. 아우  진짜.

불안감에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한 경미는 보건소 진료시간 전에 서둘러  집을  나와  접수  대기  번호 1번으로 검사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창숙이 할머니의 쪼글거리는 주름 가득한 얼굴과 촌스러운 형광색 레깅스와 빨간 립스틱이 자꾸 생각난다. 주말 내내 코로나 검사 결과가 걱정되어, 밖으로 외출도 못하고 집에서 맥주와 새우깡을 먹으며 텔레비전 리모컨만 순서대로 돌리고 있다.  오늘의 뉴스 내용을 외울 정도다. 갑자기 줌바 댄스 단체 채팅 방에서 계속 알람이 울린다. 줌바댄스 교실  코로나 확진자는 20대 새로 등록한 아가씨라는 메시지가 올라와  있다. 저번주 목요일부터 열이 나고 기침이 나와서 줌바 교실에 결석하였으니, 우리는 괜찮은 것 같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보인다. 경미는 안도의 숨을 쉬며 다행이라는 이모티콘을 올린다. 궁금해서 도저히 안 묻고는 참을 수 없는 질문 글을 올린다.

   “창숙이 할머니 검사 결과 나왔어요?”

답글은 올라오지 않고 자신들도 궁금하다는 글만 가득이다. 월요일 아침 일찍 보건소에서 메시지가 온다. 다행히 코로나 진단 결과는  음성이다. 경미는 당장 학원 원장님께 연락을 한다. 십년감수했다. 경미는 센터로 문의 전화를 한다.

   “여보세요. 거산 국민 스포츠 센터입니다.”

   “네. 수고가 많으세요. 저는 줌바 댄스 회원입니다. 수강생 중 추가 코로나 확진자 발병자는 없나요? 수업은 계속 진행되나요? 지금 수강취소하면 환불금액은 어떻게 되나요?”

   “네, 추가 확진자는 없습니다. 수업은 그대로 진행하고요. 환불금액은 총금액에서 부가세를 빼고 남은 수업 일만큼 계산해서 돌려 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묻고 싶은데요. 좀 묻기 그렇긴 한데,  창숙 할머니께서 기침을 심하게 하시던데요. 혹시 그분 코로나 확진자 아닌가요?”

   “아, 네. 안 그래도 다른 회원 분들도 문의를 많이 하셔서 저희가 그분 가족 분들과 통화해 봤어요. 창숙 회원님은 알레르기성 비염이 저번 주에 심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꽃가루와 송홧가루가 날리는 시기나 환절기에 부쩍 기침이 많이 나오신대요. 할머니께서 눈도 많이 가려우시고 콧물도 많아 당분간 수업에 참석 못 하실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혹시 결석하더라도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비염 때문이니, 다른 분들이 코로나로 오인하셔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미리 말씀하시더라 고요.”

   “아, 네, 감사합니다.”


   센터 직원과 전화를 끊고 경미는 스포츠센터 순환버스 배차 시간을 확인한다. 시간이 촉박하여 대충 빨랫줄에 걸어둔 운동복을 걷어 가방에 챙겨 넣고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 나간다. 주말 동안 코로나가 의심되어 어디 나가지도 않고, 집에만 있었더니 갑갑해서 음악에 맞춰 춤이라도 춰야겠다는 생각을 든다. 급히 나온다고 아침을 챙겨 먹지 못해 가방 속넣어  둔 에너지 바를 이리저리 찾아본다.

   ‘이 놈은 식욕은 죽을 때까지 왕성할 거야. 매일 미친 듯이 줌바 댄스 수업에서 움직이는데, 살은 안 빠지네. 에잇. 오늘은 창숙이 할머니가 없겠지? 나도 강사님 코 앞에서 한 번 흔들어 보자. 야호.’

경미는 오늘따라 입 안의 에너지 바가 유난히 달고 쫀득하게 맛있다. 센터에 도착하니 버스에서 내리는 순서대로 체온을 잰다. 아마도 센터 내 코로나 환자가 발병되었으니 조심하는 것 같다. 센터에 도착한 경미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진다. 줌바 댄스 교실의 문을 연다. 역시 오늘은 기존 회원들의 결석이 많다. 이번 가을 학기에 새로 수강한 신입 회원  몇몇만 교실에 보인다. 느긋한 마음으로 창숙이 할머니 자리에 선다. 금지된 영역에 들어온 짜릿한 기분에 경미는 살짝 흥분된다. 손에 깍지를 끼고 위로 올려 오른쪽 왼쪽으로 옆구리를 늘리며 준비운동을 한다. 눈을 감은 채 조용하고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발목과 목도 가볍게 돌려가며, 기분 좋은 스트레칭을 한다. 손가락으로 끼고 있던 깍지를 풀어 팔을 쫙 폈서 다리 옆으로 내린다. 그때,

   “야~, 비켜.”

몸을 풀고 있는 경미 바로 옆에 선 창숙이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경미는 깜짝 놀라,

   “엄마야.”

하고 소리 지른다.

   “할머니, 깜짝 놀랐 잖아요. 애 떨어지겠네. 그런데 말씀하시네요? 할머니 제 말 들리죠? 할머니, 여긴 지정석이 아니라고요. 도대체 왜 이러세요? 매너 없게. 다른 사람들도 다 할머니 욕 한다고요. 그동안 할머니가 말씀 못하시는 장애가 있나 싶어서 모두들 참아 준거라고요. 할머니 이런 데서 이러시는 거 아니에요.”

오늘은 경미도 참지 않는다. 창숙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확인 한 이상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창숙은 경미가 옆에서 뭐라고 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듯 호주머니에서 홍삼캔디를 꺼내 입 속으로 넣고는 오물거린다. 창숙은 다시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며, 말 못 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경미는 화가 더 올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다른 회원들도 창숙 할머니가 말을 하고, 듣는다는 걸 알게 되어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듯 경미 옆에 서서 눈빛만 주고받는다. 이젠 창숙이 듣는다는 걸 알았으니, 더 큰 일이다. 창숙이 못 들을 거라 생각하며 이런저런 말을 수군거리며 주고받았었다. 그동안 속은 것 같아 화도 나지만, 사람을  옆에 두고  험담을  했으니, 부끄럽기도 해 모두들 심경이 복잡하다. 교실 문이 열리고 강사님이 들어오셔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수업이 진행된다. 창숙이 할머니는 가끔 쉴 새 없이 기침을 하기도 했지만, 어느 때처럼 더듬더듬 강사님의 동작에 맞춰 수업을 따라간다. 수업이 끝나 갈 무렵 음악소리가 갑자기 꺼진다.

   “어머님들, 죄송하지만, 오늘은 수업을 조금 일찍 마칠게요. 소개해 드릴 분이 계셔서요. 새로 수강한 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저번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가을 학기엔 육아휴직을 내셨던 생활 줌바 댄스반 담당 강사님이 다시 복직하셨어요. 내일부터는 옆에 계신 강사님이 원래대로 수업을 맡아 주실 거예요. 저는 대회 준비반 전문 강사라서 대회준비반 수업을 하게 됩니다. 어머님들 너무 서운해하지 마시고요. 호호. 저만 서운한 가요? 하하. 센터에 계속 근무하니까 왔다 갔다 하며 마주칠 수도 있을 거예요. 어머님들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건강하세요. 이제 새로운 강사님이 인사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이정임입니다. 우선 다시 일하게 되어서 너무 기쁘네요. 코로나 때문에 수강생이 없어서 복직이 될까 봐 걱정 많이 했거든요. 괜한 걱정이었네요. 호호.  줌바 댄스 교실을 여전히 뜨겁게 아껴 주셔서 감사드려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낼 뵐게요.”

인사를 마친 이정임 강사는 창숙에게 다가간다.

   “어머님, 아직도 수업 들으시네요. 못 뵙나 했는데, 너무 반가워요.”

라고 말하며 포옹한다. 창숙도 이강사 님이 반가워 등을 쓰다듬고, 손도 토닥토닥한다.  

   “내일도 꼭 오세요. 진숙 어머니가 그리 가시고 어머니도 안 오셔서 진짜 못 뵐 것 같았는데, 너무 좋네요. 어머, 어머니, 서두르세요. 순환버스 놓치시겠어요. 낼 꼭 뵈어요.”

창숙은 자신의 짐을 챙겨 느릿느릿 교실 문을 나선다.


   경미는 궁금증이 생겨 새로 온 이 강사에게 커피를 한 잔 타서 다가가 말을 건다.

   “강사님, 금방 가신 할머니 잘 아세요?”

   “창숙 어머님요?”

   “네, 창숙 할머니요. 혹시 말을 하긴 하는데 잘 못하세요?”

   “아니요. 성격이 화통하시고 말씀도 웃기게 잘하시죠. 진숙 할머님이랑 잘 지내셨죠.”

   “진숙 할머니요? 그분은 누구세요?”

   “창숙 할머님과 진숙 할머님은 여고생들처럼 늘 같이 다니셨죠. 센터 줌바 댄스가 오픈하던 첫날에 두 분 다 오셔서 금방 친해지셨죠. 오픈멤버셨죠. 창숙 할머니가 진숙 할머니 뒤에서 먼저 다가가 몇 번 인사하셨는데, 진숙 할머니가 대답을 안 하셨죠. 창숙 할머니가 화가 나서 소리를 크게 지르셨는데, 진숙 할머님은 청력을 잃으신 분이 셨거든요. 입모양을 정면에서 보아야 의사소통이 가능했죠. 사정을 알고 화낸 창숙 할머니가 많이 미안해하시면서, 자신의 주머니에서 홍삼 사탕을 한 주먹 꺼내 진숙 할머니에게 드렸고, 그 뒤로 두 분은 절친이 되셨죠. 호호”

경미는 창숙 할머니 같은 심통쟁이 와 친구 먹었다는 진숙 할머니가 궁금하다.   

   “그럼, 진숙 할머님은 이사 가셔서 수업에 안 오시는 건가 봐요?”

강사님은 긴 한숨을 내쉰다.

   “아니요. 진숙 할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교통사고가 났어요. 10대 남자아이가 훔쳐 달아나던 오토바이에 사고가 나셨죠. 아이도 훔친 오토바이를 탔으니 속도를 엄청 낸 거 에요.”     


   창숙은 오늘따라 낡은 무릎이 더 아프다. 진숙이와 걷던 아파트 산책길을 오늘도 천천히 혼자서 걸어 본다. 늘 줌바 댄스 수업을 마치면 여기 아파트 상가 입구에 내렸다. 비 오는 날은 수제비랑 칼국수도 사 먹고, 추운 겨울엔 찐빵도 호호 불며 같이 먹었는데, 이젠 혼자 걷고, 가끔은 혼자서 찐빵을 먹기도 한다. 늘 곁에서 뜨거운 찐빵을 손에 들고 반으로 갈라 후후 불어주던 언니 같은 진숙이 생각나서 목이 메어 입 속에 든 찐빵을 목으로 삼키지 못한다.

   ‘에휴, 진숙이 나쁜 년.’  

창숙은 진숙의 웃음을 생각한다. 단풍이 고운 어느 가을날, 포장 도시락을 사서 아파트 공원 벤치에서 먹으려고 도시락 판매점에 갔었다. 창숙을 위해 조금씩 익힌 어설픈 수화로 더듬더듬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젊은 총각이 창숙과 진숙의 주문보다, 자신의 배달 음식 포장을 먼저 해 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창숙은 혈압이 확 오른다.

   “이 놈아, 다 들었다. 내가 못 듣는지 알았지? 나쁜 놈. 너는 예의도 없냐? 젊은  놈이.

창숙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있으면 언제나 진숙은 창숙을 안고 등을 토닥인다. 그리곤 환하게 웃으며 창숙의 가슴을 자신의 손으로 여러 번 쓸어내린다.

   “참아, 괜찮아. 화 낼 일 아니야. 우린 안 바쁘잖아. 저 총각은 한창 바쁜 나이잖아.”

라고 말하듯 소리 없이 환하게 웃는다. 진숙은 원래부터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청력은 무슨 이유에선지 서서히 떨어졌고, 목소리는 후두암치료를 하면서 잃었다. 그런 일을 어 내면서 진숙은 웬만하면 화를 내지 않았고, 조그마한 것에도 버럭버럭 하는 창숙을 언니처럼 늘 안아 주고 진정시키며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무용을 전공했던 진숙은 들을 수 없어도 줌바 댄스를 아주 잘 따라 했다. 그에 반해 세상 일등 몸치, 박치였던 창숙은 진숙의 뒤에서 늘 진숙의 동작을 따라 하며 한 두 박자 늦게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둘은 자주 부딪혔다. 부딪치고 나면 그게 또 얼마나 웃기던지 둘은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진숙아, 내가 이 나이에 웃을 일이 없는데, 너랑 있으면 내 지난 젊은 색시 시절 보다 더 웃는다.”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진숙과 늘 같이 먹었던 놋그릇에 담긴 단팥죽 가게의 LED전광판에 ‘영업 중’이라는 글자가 깜빡깜빡하며 오른쪽 끝으로 움직이며 사라졌다가, 다시 왼쪽 끝에서 나타난다. 창숙은 생각한다.

   ‘진숙이도 다시 살아나서 내 앞에 나타 날 순 없을까? 내가 죽어야 진숙이를 볼까? 진숙이는 천국에 있을 건데, 나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창숙은 진숙을 죽게 만들었던 그 놈들에게,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퍼부었던   쌍욕들을 생각한다. 자신은 천국에 가긴 틀렸다고 결론을 내린다.

   “썩어 자빠질 놈들.”

창숙은 길바닥에 침을 택하고 뱉는다.

같이 먹어 줄 진숙이 없어 다 먹지 못한 찐빵과 따뜻한 두유 음료 한 병이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창숙의 손에 매달려 창숙과 엇박자로 흔들거린다. 진숙과 늘 걷던 공원을 걸으며 창숙은 오늘도  화가 나고 슬프다. 진숙이 없는데 진숙이 있었던 시간의 단풍처럼 곱다. 창숙은 쑥쑥 아린 무릎과 콕콕 아픈 마음과 슬픔이 넘치는 추억으로 몸이 무겁다. 집으로 향하는 창숙은 조용히 혼자 말한다.

   ‘진숙아, 오늘도  자리를 지켰어. 내일은 이 놈의 무릎이 아파서 못 지킬 것 같아. 이제 병원에 진짜 가봐야겠어.’


   “어머머  어머머, 강사님. 그럼 그 자리에서 진숙이 할머니가 즉사하신 거예요? 그 애들은요? 어떻게 됐어요?”

경미는 자신이 가르치는 교복 입은 남자아이들이 생각난다.

   “아니요. 그 건 니었어요. 진숙 할머니가 다음 날 수업에 안 오셔서 모두들 어디가 아픈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연세가 있으시니 아프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다음 날도 안 오시고, 그다음 날도 안 오셨죠. 창숙 할머니가 진숙 할머니 댁에도 찾아가셨는데, 집에 사람이 없어서 연락이 안 되는 거예요. 센터에선 가족 분들 연락처를 가르쳐 드리는 건 개인 정보 법에 불법행위니까 창숙 할머니께 가르쳐 드릴 수도 없었죠. 창숙 할머니가 스포츠 센터 민원실에 오셔서 소리소리 지르셔서 직원이 전화를 했더니, 장례식장이라는 거예요.”

   “세상에,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경미는 이 말 밖에 나오질 않는다.

   “진숙 할머니는 사고 즉시 기절하셨고, 병원으로 옮겨져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심정지가 오신 거래요. 사망처리 한 후 연락한 그날, 내일이 출상이라고 했죠. 창숙 할머님은 거의 기절할 듯 쓰러지셔서 직원들이 부축하고 자녀분이 오셔서 모셔가셨죠. 그날 장례식에서 많이 우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로 창숙 할머니도 한동안 안 오시더니, 어느 날 다시 오셨죠. 창숙 할머니가 저를 보시며, 진숙이가 죽었는데, 나는 밥을 먹어. 배가 고파. 친구가 죽었는데 나는 배가 고프더라고, 하시며 얼마나 서럽게 우시던지. 저도 같이 울었다니까요. 그 후로 늘 진숙 할머니 자리에 서서 수업을 하셨죠. 그때 같이 수업한 분들도 두 분의 이야기를 아니까 아무도 그 자리에 서지 않았어요. 그런데 기존의 회원들이 개인사정으로 나가시고 , 수업에 새로운 회원들이 오시면서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할머니는 점점 화를 자주 내셨고,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말씀도 안 하셨어요. 아마 진숙 할머니를 창숙 할머니 방식으로 기억하기 위한 애도의 형식 같았어요. 저도 육아 휴가로 센터를 쉬게 되면서 설명해 줄 사람이 없으니, 신규 회원들이랑 더 마찰이 있었던 것 같네요. 안타가 워요. 나쁘신 분이 아니거든요. 다 오해예요. 늘 홍삼사탕을 가득 챙겨 오셔서 수업 전에 회원들에게 나눠 주셨거든요. 춤추면 힘들다 얘기하시면서요. 가끔 젊은 회원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셨는데, 그때마다 과자 사 먹으라고 용돈도 주시고 하셨거든요.”  

경미는 형광 핑크색 운동복을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며 느릿느릿  움직이던 창숙을 생각한다.

   ‘할머니, 말씀을 하시지.’


   다음 날 창숙 할머니 자리를 경미가 쳐다본다. 수업이 시작되어도 창숙이 오지 않아 수업이 끝날 때까지 출입문을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오늘은 창숙이 결석이다. 수업이 끝난 직후 경미는 강사님에게 다가가 묻는다.

   “저, 강사님, 창숙 할머님은요?”

   “아, 네. 무릎이 너무 아프셔서 시술받았다 하셨어요. 심한 건 아니라서 다음 주엔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어요.”

   “네. 정말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경미는 웃으며 크게 대답한다. 대답해놓고 보니 자신이 우습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창숙 할머니가 마음이 쓰인다. 다음 날, 새로 등록한 회원이 창숙 할머니 자리가 비워져 있으니 그 자리에 선다. 경미가 다가가 말한다.

   “이 자리 주인 있어요. 비워 두세요. 부탁드려요. 다른 자리는 주인 없어요.”

경미의 말에 새로 온 회원은 싫은 내색이다. 경미는

   ‘또 설명을 해 줘야겠네.’

 라며 달달한 믹스 커피를 한 잔 들고 그 회원에게 다가간다.

   “어머, 안녕하세요. 오늘 줌바 댄스 처음이세요? 사실은요...”


   아직 겨울은 오지 않았고, 창숙과 진숙이 내리던 아파트 상가 앞 산책길 가을 단풍잎은 하루하루 색이 곱게 깊어지고 있다.  

이전 02화 세상이 멈춘 듯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