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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령 Oct 08. 2024

두 번째  여행지   
<명지ㆍ 가덕도 - 간직>

부산에서 행복하기 시즌 1

여행일   2022년  2월  13일

명지에 위치한  카페 <로빈 뮤지엄>.

시간이 모여진 공간.

 '간직'이라는 단어가 카페에 진열된 물건들을 보며 떠 올랐다.

 내가  8살 정도였을까? 아직 더위가 남아있는 여름.  저녁 햇살아래 입고 있던 반팔과 반바지.  병 콜라를 담은  까만 비닐봉지를 손가락 마디 사이에 걸고 윙윙 돌리며 집으로 걷던 나.  이리저리 금이 간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나간 조각들과 바닥  여기저기에 자라 있던 작은 녹색 풀들에 시선이 갔다. 산만한 걸음걸이 속에 콜라 병이 어느 집 담장 벽에 부딪쳐 깨졌다. 퍽! 병이 벽에 부딪쳐 깨지던 순간 온몸에 느껴졌던 타격감과 당혹감. 혼날 까봐 걱정되었던 불안한 마음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뒤에  부모님께  야단을 맞았는지 그냥 넘어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카페엔 내가 아장아장 걸었을 무렵부터 이후 성인으로 커가던 시간들 속에  판매되었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40년 이상 간직해 온 물건들.  물건을 차곡히 모은 이는 흐르는 시간들 속에 무엇을 붙잡아 놓고 싶었을까?

처음부터  카페를 계획하고 모으고 간직하진 않았을 텐데ᆢ

'명지'라는 지명에  올랐던 어릴 적 친구의 기억. 지금은  연락도 안 되는 초등학교  5학년 6학년을 지켜주었던 '수진'이라는 아이.

내가 처음 듣는 명지라는 시골에서 도시(부산)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왔다고 했다.  긴 머리를 양쪽으로 길게 묶고, 노란 맨투맨을 입고서 교탁 옆에서 깊게 인사하던 아이.  수진이는 외로움을 많이 타던 나와  절친이 되어 졸업을 앞둔 2년을 꼭 붙어 함께 보냈다. 중학교 학교 배정이 달라져 서서히 멀어진 아이.  이곳에서  불러 모아진 나의 지난 시간들의 기억.


오십을 눈앞에 둔 나는  나의 어린  세계를 완성하거나 깨고 나오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어정쩡하고  실수 많은 미숙한 아이가 온전한 인격이 되어 어린 세계를 완성한 뒤 새롭게 출발하는 세계가 어른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게 완벽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실수나 실패는 없을 줄 알았던 어른의 세계에서 반복되었던 나의 어리석음에 뒤따른 후회는 연약하고 어린 시간들의 상처를 치료하지 못한 채 느닷없이 불쑥  떠오른 기억들과  뒤섞여 괜한 화를 부르기도 하고 좌절감을 상승시키며, 묵은 기억들에 원망과 미움을 한 번 더  덧칠한 후  다시 깊은 기억 속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  모든 상처들이 아문다면 나는 지금의 세계를 완성할  수  있을까?

카페가 위치한 명지와 가까운 가덕도 대항항 포진지동굴을 방문했다.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간직되어 있는 곳.

지금 보이는 반짝이는 아름다운 바다는 지난 시대의  아픈 시간에도  파도치며 흘러가던 곳이겠지.

지나간  모든 시간들이 말끔히 매듭지어지고,  완성된다면 모든 이들에게 더 많은 기쁨이 주어질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늘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은 상대적이어서 절대적인 기준이 모호하고, 누군가에겐 기쁨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분노와 슬픔이 되기도 한다.

나는 언제나 많은  것들에 흔들리고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나의 남은 시간에 성숙된 기준이 또렷해진다면, 앞으로 내가 보낼 시간엔 후회와 슬픔이 없을까?

완벽한 어른이 되지 못한  나는  성장을 지나 낡음으로 가는 중년이 되었다.  남은 나의 시간에 나는  낡고 늙어 죽어가겠지만, 누군가에겐 성숙되어 간직하고  싶은 오래된 소중함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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