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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리움을 그리다.

누군가에게 그리움이 되는 것

by 달벗


선 하나를 긋는다. 종이의 까슬한 섬유 질감에 강직한 흑연은 고운 가루가 된다. 태초의 광물 덩어리는 바람 타고 물을 건너 비로소 지면 위에 하나의 선이 되었다.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흑연으로 마음 도화지에 무수한 선을 긋는 것이다. 선은 마음에 새겨진 골을 따라 회전하고 굴곡하며 낙하하였다가 다시 용솟음친다. 단 하나의 장면을 그려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보고 싶은 이의 얼굴을 보기도 하고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나와 우리를 만나기도 한다.


어떤 형상이든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모조리 그리움이다. 하지만 그리움의 본질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복잡한 감성 알고리즘을 타고 마침내 도달하는 최상위 감정이다. 그런 면에서 세상의 모든 형용사는 그리움이 될 수 있다. 그리움은 어떤 것이든 이분법으로 나누는 법이 없다. 좋고 싫음의 감정도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도 모두 허용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매번 좋고 선한 것만 그리워하지 않는다. 때로는 시리고 아픈 것도 그리워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시간 속에 있다. 누룩이 곱게 빗어낸 막걸리처럼 발효된 형용사는 눅진한 그리움이 된다. 용광로 속에 던져지면 그것이 무엇이든 형체는 완전히 사라지고 본질만 남듯이 시간의 틀 속에 던져진 삶의 희로애락은 종국에 그리움으로 오롯이 남겨진다.


어린 시절 기억이 유독 그리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시간의 틀 속에서 오래곰삭는 동안 고통도 미움도 그 형체는 모두 사라지고 되직한 그리움만 덩그러니 남겨졌을 테니. 게다가 우리가 누렸던 하늘과 땅은 얼마나 포근했던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도 공간과 공간 사이에 경계도 없이 그리하여 어느 것 하나 니것 내것 얌체처럼 가르는 법이 없는 그런 우리의 세상은 힘겹게 오르지 않아도 좋을 수평선 위에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집집마다 대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든 드나들며 쉽사리 어우러졌다. 아무개집 마당 한 켠에 무화과 나무 열매가 익어가면 주인의 의향 따윈 아랑곳없이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든 내키는 대로 따 먹었고 그 너그러운 나무 그늘 아래 달콤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이렇다 할 근사한 장난감 하나 없었지만 대문 밖을 나서면 어디든 놀이터가 되었고 누구든 동무가 되었다. 혼자서는 흙장난을 하고 둘이서는 공기놀이를 했다. 셋이서는 고무줄 놀이를 하고 넷이서는 술래잡기를 했다. 꼬리잡기 놀이를 하다 누구 하나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그제야 우리의 긴 하루는 모두 끝이 났다. 우리는 그렇게도 잘 웃었고 걸핏하면 울기도 했다. 오늘은 치열하게 싸웠지만 내일은 서로를 따뜻하게 토닥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깊은 골 하나를 새기며 언젠가 그리움으로 익어갈 삶의 시간 속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아파트가 인기를 얻게 되자 오래된 주택가에는 재개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사람은 땅을 딛고 살아야 된다며 낡은 주택을 꾸역꾸역 짊어지고 살아온 동네 터줏대감들이 제일 먼저 집을 팔고 나갔다. 사람들도 각자의 이유로 하나 둘 떠나갔다. 어느덧 집들이 모두 허물어지고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섰다. 조붓조붓 모여 있던 집들은 차곡차곡 공중에 높은 탑을 쌓았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야 하는 숙명을 피할 길 없는 것은 사람도 사물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유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조상의 그 조상들은 소멸을 소멸로 방치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세상이 존재하거니와 그 투철한 정신은 대를 이어 되물림 되는 동안 버젓이 인류의 유전자 한 가닥을 차지하고 급기야 본능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사는 날 동안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식욕이나 수면욕이나 성욕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그저 본능이다. 어떤 이는 사람으로 태어나거들랑 이름을 남기라 한다. 말인즉슨 생전에 훌륭한 일을 많이 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후대에 위인이 되라는 것인데 그 말이 참말이라면 과연 우리 중 몇이나 그 말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까. 나의 짧은 소견으로 헤아려 보건데 우리 모두가 실현할 수 있고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그 말의 참뜻은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는 날 동안 부지런히 누군가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깊은 골을 새기고 무수한 선을 그으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언제까지나 그 가슴에 그리움이 되어 살아가라는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대를 이어 전해질 우리의 이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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