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리처드 탈러-
“주머니 속의 돈은 금방 사라지고 손 안의 현금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돈에도 인격이 있다. 다 똑같은 돈으로 보이지만 신기하게도 이 돈이라는 것에는 각각의 인격이 있다. 김승호 회장은 돈의 속성에서 돈의 인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돈은 법인보다 더 정교하고 구체적인 인격체다. 어떤 돈은 사람과 같이 어울리기 좋아하고 몰려다니며, 어떤 돈은 숨어서 평생을 지내기도 한다. 자기들끼리 주로 가는 곳이 따로 있고 유행에 따라 모이고 흩어진다.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붙어 있기를 좋아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겐 패가망신의 보복을 퍼붓기도 한다. 작은 돈을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선 큰돈이 몰려서 떠나고 자신에게 합당한 대우를 하는 사람 곁에서는 자식(이자)을 낳기도 한다.”
어떤 돈은 쉽게 쓰고, 어떤 돈은 잘 쓰지 않게 된다.
주머니 속의 돈은 금방 사라지고 손 안의 현금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옛 말처럼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은 쉽게 쓰인다. 이 돈에 저축이라는 개념이 붙으면 덜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요즘은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QR 결제나, 카드를 사용하는데 이런 결제 방식은 현금보다 더 쉽게 돈을 쓰게 만든다.
한발 더 나아가 체크카드보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더 쉽게 돈을 쓰게 된다. 월급보다 보너스를 받았을 때 더 쉬운 소비를 하게 되고, 주식이나 코인투자로 돈을 벌게 되면 평소에 먹지 않았던 음식이나 입지 않았던 옷, 그리고 물건을 사기도 한다.
인터넷 쇼핑에서 만 원짜리 물건을 살 때는 천 원이나 2천 원 더 싸게 사기 위해 시간을 소비하지만, 100만 원짜리 물건을 살 때는 5천 원 더 싸게 사기 위해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다.
참 재미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혹은 어떻게 얻었는지, 또는 어떤 결제 방식인지에 따라 사용하는 용도, 장소, 금액 등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말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탈러는 이를 두고 심리학적 계좌라고 불렀는데, 그와 함께 연구했던 행동경제학의 선구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트 트버스키는 “심리 계좌”라고 불렀다. 이후 리처드 탈러도 심리 계좌로 통일해서 부르게 됐다.
심리 계좌는 돈에도 인격체가 있다는 사실을 경제학적으로 풀어냈다.
취득효용은 우리가 구매한 물건의 효용에서 기회비용을 뺀 만큼의 비용이다. 즉 어떤 물건을 샀을 때 그 물건의 효용가치가 얼마나 큰지에 따라서 심리적 비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친구가 로봇청소기를 너무 잘 사용하고 있고 만족한다고 들어서 우리도 구매했다고 가정해 보자. 같은 모델을 같은 가격을 주고 구입했지만 어쩐지 친구만큼 만족스럽게 사용하지 못한다. 이때 로봇청소기의 취득효용은 나보다 친구가 더 높다. 같은 가격을 지불했더라도 말이다.
같은 식당에서 같은 가격의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군가에게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식사가 됐고, 누군가에게는 불만족스러운 식사가 될 수 있다. 돈이라는 것이 주는 효용은 단순히 숫자에만 있지 않다.
거래효용은 어떤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 지불하는 준거 가격의 차이를 의미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바가지에 대한 혐오다.
하지만 거래비용에는 꽤나 재밌는 사실이 있다. 즉 바가지에 대한 혐오지만 바가지를 규정하는 것이 가격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같은 상품을 다른 가격에 사면서도 전혀 바가지라고 여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파는 병맥주와 호프집에서 파는 병맥주는 같은 상품 같은 용량이지만 가격이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꺼이 그 가격을 불만 없이 지불한다. 장소도 소비하는 거라고? 배달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가지의 핵심은 가격이 아니다. 남들보다 더 비싸게 샀느냐? 아니면 심리적인 임계점을 넘어서느냐의 문제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에 맞는 금액을 지불한다면, 그리고 남들보다 더 많이 지불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가지라고 여기지 않는다. 부유한 사람도 거래비용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거래비용은 단순히 가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몰비용의 오류는 흔히 쓰이기에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돈은 지불하고 돌려받지 못할 때 매몰된다. 즉시 사라진다는 의미다. 이렇게 사라진 돈은 돌아오지 않는다.
행동경제학을 대표하는 중심 이론은 전망이론이다. 쉽게 말해 이익보다 손실에 더 큰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손실을 회피하고자 하는데 이때 생겨나는 것이 매몰비용의 오류다.
운동 시 사용하려고 애플워치를 산 사람이 있다. 하지만 운동할 때 애플워치를 착용하니 손목이 너무 아프다. 정상적인 사고라면 운동 시에 애플워치를 착용하지 않아야 하지만 매몰비용에 빠지면 고통을 참으면서 애플워치를 착용하게 된다.
아이를 위해 예쁜 옷을 샀지만 아이가 입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에게 억지로 옷을 입히고자 한다. 애초에 아이를 위해 옷을 샀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는데도 옷을 입히려고 하는 것은 매몰비용에 빠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요즘은 중고거래가 활성화 됐기에 소비의 차원에서 매몰비용의 오류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지만 소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투자자가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졌을 때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이 점은 투자조각에서 살펴보겠다.
대한민국의 복부인,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은 여성이 주도적으로 투자와 투기를 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단어다.
한국과 일본의 당시 시대상은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집에 가져다주면 끝이었다. 이 돈에 대한 모든 운용은 여자의 몫이었다. 그렇게 역할이 분담됐다.
이때 한국 여자들은 부동산에, 일본은 미국채에 투자를 하며 각각 복부인과 와타나베 부인으로 불렸다. 지금도 이 두 단어는 종종 쓰인다.
살림을 도맡아서 하던 어머니들은 투자를 하지 않아도 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면서 가정의 경제를 책임졌다. 이때 우리의 어머니들이 사용했던 방법은 봉투를 나누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벌어온 월급봉투에서 돈을 식료품, 공과금, 경조사비, 양육비 등등으로 배분해서 관리했다.
이는 대단히 효율적인 방법으로 현대의 행동경제학자들이 추천하는 돈 관리 비법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돈에도 각각의 인격이 있어 그 사용처가 각각 달라진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미리 나누어서 사용하면 효율적인 사용이 가능하다. 그리 어색하지도 않은 이유는 모든 국가의 예산 집행이나, 기업의 예산 편성이 모두 이 방법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얼마나 놀라운 지혜인가? 아마 어머니에서 어머니에게, 그리고 다시 어머니에게서 어머니로 전해진 지혜였을 것이다.
우리는 매달 카드 청구서를 받고 놀란다. 나는 돈을 이렇게 많이 쓴 적이 없는데 도대체 카드 값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지? 하면서 사용내역을 살펴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 소비들이 모이고 모여서 거대한 카드 값으로 청구된다.
예산을 분류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월급이 들어온다면 여러 계좌에 돈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한 달에 외식비는 10만 원만, 구독료는 5만 원, 교통비 10만 원, 식비 50만 원…. 이렇게 미리 분류한다면 계획에 없는 감정적인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심리계좌를 이해하면 경제적으로나 투자자의 입장에서나 도움이 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취득효용, 거래비용, 매몰비용의 오류는 모두 투자자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이 중에서도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몇 번이나 강조해서 말하지만 손실회피편향이 투자자의 계좌에서 보이면 복구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때 투자자는 단순히 투자한 금액의 문제만이 아니라 투자한 시간에 대해서도 매몰비용에 빠지게 된다.
주식을 오래 보유한 사람일수록 더 그런 경향이 짙어진다. 장기투자는 단기간의 변동성으로부터 투자자를 지켜줘서 수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한 가지 방편이지, 무조건 수익을 보장해 주는 연금술이 아니다.
장기투자가 100% 수익을 보장해 줬다면 적금, 예금, 채권과 같은 상품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장기투자가 독이 되는 종목과 산업도 존재한다.
게다가 장기투자로 매몰비용에 빠지는 투자자는 대부분 손실 중인 투자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단순히 손실회피편향에 빠져서 주식을 제때 정리하지 못한 것뿐이지만 자신의 시간, 즉 기회비용을 투자했다고 착각해 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개인이 주식투자에서 유리한 이유는 수익에는 한도가 없고, 손실은 100%로 제한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투자자는 손실은 길게, 이익은 짧게 가져가기에 이런 이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매몰비용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하자.
마블의 히어로인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간을 되돌리는 타임 스톤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자다. 그는 강력한 빌런인 도르마무를 물리치기 위해서 타임 스톤을 사용해 무한으로 시간을 되돌렸다.
우리의 투자도 자칫하면 닥터 스트레인지의 무한 시간지옥에 빠지는 도르마무 꼴이 될지도 모른다.
도박판에서 돈을 따는 사람들의 특성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본전을 제외하고 딴 돈으로만 또 승부를 보는 것이다. 이를 전문 용어로 “하우스 머니”라고 부른다.
여기에서도 손실회피편향이 개입한다. 본전은 말 그대로 마지노선이다. 본전에서 손실을 본다는 것은 원금손실을 의미하고, 이는 큰 고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박꾼은 원금을 지키기 위해 딴 돈으로만 다시 도박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갖는 순간 도박꾼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인간에게 잠시 맡아둔 돈은 없다. 당신이 100만 원으로 도박을 시작해서 50만 원을 따고 150만 원이 됐다면 이제부터 당신의 본전은 150만 원이 된다.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다면 자신의 주식계좌를 생각하면 된다. 원금 100만 원 투자해서 30%의 수익을 보고 있다고 가정하자. 다음날 10%가 하락해서 117만 원이 됐다면 여러분은 17만 원을 벌고 있어서 행복한가? 아니면 13만 원을 잃어서 슬픈가?
이는 행동경제학의 기본 이론인 전망이론 내용이다. 월급 300만 원을 받는 사람과 100만 원을 받는 사람이 있다. 300만 원을 받던 사람은 50만 원이 감봉되고, 250만 원을 받고, 100만 원 받던 사람은 100만 원이 인상되어 200만 원이 됐다.
첫 번째 사람은 월급이 250만 원이고 두 번째 사람은 월급이 200만 원이다. 당연히 250만 원 받는 사람이 더 좋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20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사람이 훨씬 더 행복한 법이다.
절대적인 금액보다 얼마를 가졌다가 잃었는지가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그러니 원금 100만 원에서 50만 원을 딴 도박꾼은 50만 원으로 도박을 다시 해서 이를 잃으면 본전이 아니라 돈을 잃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때 본전효과가 발동된다. 본전효과는 손실회피편향으로 손실을 인정할 수 없는 도박꾼이 다시 원금을 찾기 위해 도박을 하는 과정이다.
돈을 따면 하우스 머니로 다시 도박을 하고, 이를 잃으면 다시 본전을 찾기 위해서 도박을 하는 악순환, 도르마무처럼 지옥에 빠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머니들의 지혜를 본받아 계좌를 미리 나눠두는 것이 현명하다. 변동성이 큰 주식은 따로 계좌를 만들어 두고 그 계좌에서만 투자하는 것을 추천한다. 변동성이 큰 만큼 손실을 입을 확률도 크고, 손실이 생긴다면 본전효과 탓에 더 위험한 투자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때 계좌를 미리 나눠두지 않았다면 다른 투자종목을 매도하거나, 투자금을 사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돈에도 인격이 있다. 리스크가 큰 투자에서 얻은 수익은 다시 리스크가 큰 주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리스크가 큰 투자에서 잃은 손실은 다시 리스크가 큰 주식으로 복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심리계좌를 미리 인지하고 효율적으로 계좌를 정리하는 투자 방식을 미리 만들어두자.
행동경제학
-리처드 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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