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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성조 Aug 13. 2021

1학년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2)

가까이 가지 마시고 멀리서만 보세요~

  내가 1학년 담임을 한 경력은 기간제로 근무했던 3개월뿐이었다. 꼴랑 3개월 해놓고 이렇게 번호까지 매겨가며 2번째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3개월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그냥 3개월이 아니다. 

 

 당시, 간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1학년'을 맡았다고 이야기하면, 꼭 듣는 말이 있었다.

너무 귀엽겠다! 1학년~ 순수하잖아!!


맞다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순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고 있는가?


1학년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들아, 그들의 귀여운 외모와 해맑은 미소에 홀려 나도 저런 딸 아들 동생 조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도망쳐라. 아직 늦지 않았다.


1학년은 정말 순수한 생명체다.

너무 순수해서 인간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하는 강아지다.

멀리서 봐야 예쁘다. 오래 보면 힘들다.


  강아지? 지금 사람을 짐승에 비유한거야?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만큼 1학년을 잘 표현하는 단어를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으니 이해를 부탁한다.

 

 상상해 보라. 지금, 당신의 귀엽고 예쁜 강아지가 집안 모든 휴지를 다 풀어헤쳐놓고, 벽지를 갉갉 뜯어놓고, 식판을 엎은 상태로 당신을 향해 해맑게 웃고 있다. 화낼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불 같이 화를 낸다고... 걔가 알아듣겠는가?


 예를 들자면, 1학년은 이런 식이다.

 

 대학교 2학년 실습 때, 수업 참관을 하다 일어난 일이다. 한 아이가 징하게 말을 안 들었다. 일어났다가 앉았다가, 책상에서 탈출해 실습생들 사이를 활보했다. 노래를 불러야 할 때는 꽥꽥 소리를 질렀다. 책상을 긁어대며 끊임없이 장난을 쳤다. 담임 선생님의 인내력은 풋내기인 내가 봐도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선생님이 힘겹게 참고 계시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아이의 만행은 멈추지 않았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실습생들이 눈치를 보며 교실을 나가려는데, 선생님께서 살벌한 분노에 잠겨 그 아이를 차갑게 불렀다.


 00이.. 지금 선생님 앞으로 오세요.


 단 1퍼센트의 관용도 느낄 수 없는, 칼바람 불기 전 찰나의 숨 막히는 고요. 열명 남짓 실습생들의 20개의 동공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순식간에 얼어붙어버린 교실에서 차가운 냉기가 감돌았다. 금방이라도 미끄러질듯한 교실을 타박타박 걸어가자 마룻바닥은 공포스럽게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아이의 뒷모습이 순간, 처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물었다. "00아, 선생님이 널 왜 불렀을까?" 그 아이는 커다란 눈망울로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무섭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왜요..? 맛있는 거 주시려고요?


 나는 저 대답을 듣고 00 이가 사이코패스라고 확신했다.


 정말 다행히도 그 아이는 정상이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당시 선생님께는 아이들이 꾸준히 숙제를 잘 해오거나, 지각을 하지 않았을 때마다 아이들을 직접 불러 칭찬스티커와 함께 맛있는 간식을 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던 거다.


00이~ 지금 선생님 앞으로 오세요!  


 앞으로 오라는 선생님의 말이 00 이의 머릿속에는 "간식이다! 간식!"의 순수한 알고리즘으로 완벽하게 입력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살벌했던 선생님의 표정과 말투, 교실의 분위기, 차가운 친구들의 시선 따위는 '앞으로 오라'라는 한 마디에 완전히 사라졌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떠들면 나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금 누가 떠드냐~으잉?"


그럼 알아서 조용해진다! 하지만 이제 똑같은 질문을 1학년 교실에서 해 보자.  


"지금 누가 떠드냐~으잉?"

순간 교실에 조용해졌다. 다시 수업을 하려는데 갑자기,


"민지요!"

"현수요!"

"재민이요!"


오 마이 갓. 발표를 시작한다. 물음표만 붙으면 대답을 해야 되는 줄 아는 것이다. 그러더니,


"아 아나 안 떠들었거든? 저 아니에요 쟤예요.."

"맞아 니가 제일 많이 떠들었어!"


뒷일은 알아서 상상하시길 바란다.

나는.. 딱히 하고 싶지 않다.


 가장 추웠던 겨울, 3개월 간의 잊지 못할 불꽃같은 경험 후 나는 한동안 기간제를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따뜻해진 이듬해 4월 말, 새로운 학교에서 5학년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한 첫날, 나는 감동받아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그들은 10분 이상 가만히 앉아 있는다.
- 스스로 청소라는 것을 한다.
- '급식 먹자'라고 하자마자 10초 안에 완벽하게 아름다운 '줄'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 자기 요구르트 껍질을 스스로 깐다.
-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 즉, 농담이 가능하다.


  "대체 어떻게 급식 줄을 이렇게 빨리 설 수 있는 거냐, 너무 멋지다! 한 번 다시 해봐라! 또 보고 싶다!"라며 손뼉 치는 기간제 선생을 그들은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이 봤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었다. 3년 만에 말하는 강아지가 사람이 된다고? 선생님들, 혹시 진짜 마법사세요?


 지금도, 수많은 말하는 강아지들이 교실에서, 혹은 집안에서 활개치고 사고를 치며 돌아다닐 것을 상상하면 머리가 아찔해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쳐대도, 그 해맑은 눈빛 하나로 우리들을 무장해제시켜버리는걸.


 8살들과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모든 선생님들과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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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1학년들과의 에피소드 덕분에, 그림책 <무사히 1학년>이 발간되었습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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