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얘들아~ 봐봐. 이게 글. 자라는 거야. 제발 뭐라도 좋으니 글자를 좀 읽어보지 않으련?"
"만화책이라도 꺼내는 자세가 훌륭하구나!"
"책 읽기는 정말 재밌지 않니?"
"독서통장이 너희들 인생을 바꾼다니깐!"
알파고도 울고 갈 ai급 잔소리 폭탄에 아이들은 책의 ㅊ자만 들어도 우악 제발 그만하고 경기를 일으키긴 하지만, 매일 발전해가는 아침 독서 태도와 날로 다양해지는 책 종류들을 볼 때면, 그래도 잔소리를 하는 것이 나름 효과를 본 것 같긴 하다.
그날도 하루의 루틴처럼 책을 읽어라 글자를 읽어라 하며 공자 왈 맹자 왈 해볼까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나름의 반항심을 가득 담아 한 마디 던지는 것이다.
"아니 근데 책은 대체 왜 읽어야 돼요? 완전 노잼이에요."
아이고 두야~ 오늘 독서 분위기 좋았는데 노잼!이라고 또 찬물을 끼얹네. 이 귀~~ 여운 자식 덕분에 10% 정도 상처 받았다. 하지만, 어림없지. 이건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합법적으로 잔소리를 신나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반항적인 태도에 감춰진 철학적 자세가 훌륭하지 않은가? 살면서 '수학을 대체 왜 해야 하지?'라고는 수도 없이 궁금해했지만, '인간은 대체 왜 독서를 하는가?' 라니. 단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질문이다.
순간 나는 소크라테스식 산파법을 활용한 독서의 중요성 토론 수업 후, 감명받은 모든 학생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박수치는 상상을 해냈지만... 선생님들, 아시죠? 고학년은 발표를 안 한다. 그리고 지금 빨리 1교시 수학 진도 빼야 된다. 자, 얼른 저 아이에게 둘러댈 멋진 말을 생각해내라!
"에헤이~ 책이 얼마나 유잼인데? 책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모두 달라. 많이 읽다 보면 저절로 깨닫게 될 거야"
휴... 그래... 둘러댄 거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 굳이, 나도 아직 못 깨달았다고 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얼레 벌레 넘어간 이후로도, 그 아이의 질문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책은 대체 왜 읽어야 하는 것인가? 책을 통해 인간은 무엇을 얻는가? 인간은 고사하고, 책을 통해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지식? 글쎄. 솔직히 나는 책을 통해 지식을 얻은 적이 많지 않다. 지식을 축적할 정도로 많이 읽지도 않을뿐더러, 스마트폰으로 손가락만 튕기면 지식이야 언제든 볼 수 있는걸. 슬픈 기억력 탓인지, 다 읽었다! 하고 책을 덮는 순간, '근데 제목이 뭐였더라?'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대체 책을 왜 읽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언제 책을 찾는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 밥 먹을 때? 고시 준비하는 괴물 같은 능력치의 인간들 말고 식사할 때 책 읽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 건가?
- 그럼 심심할 때?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래도 '아니'에 가까웠다. 난 밥 먹을 때 심심하면 유튜브를 트는 사람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거 참 쓸데없이 생각 많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인정한다. 그래도 계속 궁금한 걸 어쩌겠는가? 답을 찾지 못해 희뿌옇게 찝찝해진 마음과 함께, 이 질문은 머릿속 한 구석에 쳐 박혀 슬슬 잊혀 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매일매일 '끝내주는 독서의 멋짐'에 대해 잔소리를 너무나 하고 싶었고, '독서 명언 중독'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구글링을 멈추지 못하는 현상은 하루하루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나의 인생 독서 명언을 마침내 찾게 된 것이다.
한 시간 독서로 누그러지지 않을 걱정은 없다. - 샤를 드 스공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을 가진 프랑스의 법리 학자이자 계몽가, 샤를 드 스공다에게 감사를! 덕분에, 내가 언제 책을 찾았었는지에 대한 답을 드디어 알아냈다.
그랬다. 나는 왠지 인생이 더럽게 안 풀리는 것 같을 때마다 책을 찾았다. 하루가 대책 없이 꼬여서,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를 때. 실수가 실수로 꼬리를 물 때. 싸웠을 때. 억울할 때. 그래서 이성이 도망가 버릴 때. '나는 정말 최악이야' 같은 유아적인 생각만 지독하게 남아 나를 괴롭힐 때.
그러다가 끝내, ‘엉엉. 그래 맞아. 역시 난 쓰레기야. 아마 재활용도 안돼서 소각될 거야. 그리고 유독가스로 재 탄생해 지구의 암적인 존재로 인생을 마치게 되겠지. 제기랄. 이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같은 퇴행적인 사고까지 미치게 될 때, 나는 책을 찾아서 서점에 간다.
인생의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찾으려는 시도도 나름 몇 번 해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서점에 가는 이유는 비교적 간단했다. 서점에 가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아직 나에게는 책 한 권을 마음대로 골라 살 수 있는 여유가 있기에- 누군가의 말처럼, 서점만큼 인간의 심성이 약해지는 곳도 없다. 도망 간 이성이 되돌아오는 아주 완벽한 장소이다.
대형 서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책을 고른다. 표지만 쓱 훑어보기도 하고, 괜히 몇 문장 읽어 보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글에 빠져 있나 흘깃거리다, 평소에 읽어 보려 했던 책들도 검색해 찾아낸다.
그렇게 한참을 글자들과 함께 있다 보면, 마침내 내 마음에 쏙 드는 더 보고 싶은 책 한 권을 찾아낼 수 있다. 기쁜 마음으로 그 책을 데려온다. 그렇게 내 마음에 드는 책을 가방에 넣고 나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해진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때 그렇게 샀던 그 책들이 매번 거창한 깨달음을 주거나 위로를 주는 건 아니었다. 책을 단숨에 독파하며 나의 안일했던 태도들을 반성하지도 않는다. 읽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그냥 책장에 꽂아두기도 한다.
그냥, 책을 사는 그 순간이 좋고 커다란 서점의 수없이 많은 책들이 좋다. 서점에 들어서면 은은히 풍기는 종이 냄새와 따땃한 조명이 좋고 책에 몰두해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다.
무기력한 일상과 타성에 젖어가는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 책을 꺼낸다. 지루함에 몸부림칠 때가 허다하지만 그래도 일단 읽는다. 읽다 보면 ‘그래, 책이라도 읽었다’ 하는 안도감이 나를 지탱해준다. 안도감은 독서에 빠져 몰두하는 경험의 원동력이 되고, 다시 내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나는 책 속의 문장들에게 말을 걸고 또 위로받고, 책을 읽고 있는 행위 자체로 나 자신을 지켜낸다.
그래서 나는 책이 좋고, 특히 서점이 좋다. 할인이 넘쳐나는 수많은 상점들 사이에서 꿋꿋이 정가제를 주장하는 그 고고함도 나쁘지 않다. 단 1원의 에누리도 허용하지 않는 귀여운 깐깐함이 전혀 매정하지 않다. 철없는 투정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좋은 문장까지 덤으로 함께 선물하는 그곳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