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도되는 무력감 속에서 '함께 버팀'의 의미를 찾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분들의 표정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눈빛 깊은 곳에는 공통된 그림자가 서려 있습니다. 그것은 짊어진 삶의 무게이자,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의 막막함일 것입니다.
최근 국가 바우처 지원 기간인 2년이 지나, 어쩔 수 없이 상담을 종결해야 했던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내담자의 삶은 여전히 치열한 전쟁터인데, 제도는 "기간이 다 됐으니 이제 나가보라"며 등을 떠미는 것만 같아 마음 한구석이 아렸습니다. 상담가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정해진 시간뿐이라는 사실이 저를 더 작게 만들곤 합니다.
그리고 며칠 전, 새로운 내담자를 만났습니다. 자녀의 신체는 이미 성인에 가까워진 청소년이지만, 인지 기능은 돌쟁이 수준에 머물러 있어 여전히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수면제를 먹이지 않으면 밤새 잠들지 않는 아이 탓에, 어머니의 밤은 언제나 토막 난 쪽잠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더욱 가슴을 조여오는 건 집 안에서조차 편히 쉴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덩치 큰 아이가 쿵쿵거리며 뛰어다니고 괴성을 지를 때마다, 혹여나 이웃에게 피해가 갈까 봐 어머니의 심장은 내려앉습니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이 가장 눈치를 봐야 하는 감옥이 되어버린 현실. 주말도, 휴일도 없는 24시간 무한 돌봄의 굴레 속에서 어머니는 숨 쉴 틈조차 찾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오랜만에 숨이 턱 막혀왔습니다. 마치 '절벽 끝에서 집채만한 파도를 마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절벽 앞에 선 제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이는 단순한 제 느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감정에 압도되어 상담실을 찾으신 한 분이 제게 토해내듯 말씀하신 적이 있거든요.
"선생님, 저 멀리서 시커먼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 같아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지만, 같은 마음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요. 발달장애 자녀의 어머니를 만난 지 4년 차, 꽤 단단해졌다고 믿었던 제 마음속에서도 "내가 과연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라는 무력감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어머니와 제가 느끼는 감정의 결은 분명 다릅니다. 그 삶을 온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당신의 고통과, 잠시 곁에서 지켜보는 저의 마음이 어찌 같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거대한 파도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우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오늘은 상담가인 저조차 압도되곤 하는 이 무력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찾아야 할 '마음의 평안'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우리가 마주한 파도의 진짜 이름, 만성적 비탄
심리학에서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이 겪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슬픔을 단순한 우울과는 다른 '만성적 비탄(Chronic Sorrow)'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비탄은 사별 후에 찾아오지만 우리의 비탄은 조금 다릅니다. 아이는 곁에 살아있지만, 내가 꿈꿨던 '아이의 평범한 미래'를 계속해서 떠나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입학식, 졸업식, 그리고 성인식... 남들에겐 축제인 날들이 우리에겐 아이의 다름을 재확인하는 아픔이 되기에, 이 슬픔은 끝나지 않고 파도처럼 반복해서 밀려옵니다.
제 연구에 참여했던 어머니들의 고백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들의 삶은 "끝없는 긴장의 재구성"이었으며, 특히 자녀가 덩치 큰 청소년이 되었음에도 돌봄의 강도가 줄어들지 않을 때, 그 과정은 단순한 피로를 넘어 "자신을 잃어가는 소진의 과정"으로 나타났습니다.
지금 느끼는 그 압도감은 당신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주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필연적인 반응입니다.
고통과 사랑은 별개의 차원입니다
"선생님, 오늘도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이게 일상이에요. 조금만 더 참을걸."
어머니들의 죄책감은 거창한 인생의 회의가 아닙니다. "오늘 하루라도 아이와 잘 지내보자"라고 다짐했지만, 결국 무너져버린 그날의 구체적인 미안함입니다. 아이와 잘 지내고 싶은데, 그 순간에는 까맣게 잊고 평소처럼 욱해버리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해외의 연구들은 '힘듦'과 '사랑'이 별개의 문제라고 말해줍니다.
<소아심리학 저널>에 실린 벤지스(Benzies) 연구팀의 2011년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이들은 장애 자녀 양육의 부정적 영향인 '스트레스'와 긍정적 영향인 '성장과 의미'가 서로 독립적인 차원임을 밝혔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당신이 오늘 아이에게 짜증을 냈거나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해서, 당신의 모성애가 부족하거나 실패한 하루를 보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겁니다.
스트레스는 그저 상황이 힘들어서 생긴 것이고, 당신의 사랑과 헌신은 그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그 자리에 단단히 존재합니다.
파도를 멈출 수 없다면 파도를 보는 '눈'을 바꿉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의 장애를 없앨 수도, 24시간 돌봄의 굴레를 당장 벗어던질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말입니다.
먼 미래를 생각하면 숨이 막힙니다. 그래서 제 연구 속 어머니들은 거대한 미래 대신 '오늘 하루'를 선택했습니다.
"먼 미래까지 생각하면 너무 우울하고 막막해요. 그냥 하루하루만 잘 살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요."
심리학자 라자루스와 포크만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인지적 평가'라고 강조했습니다. 상황을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은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조금만 틀어보는 것입니다.
거창한 긍정이 아닙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파도라면, 정면으로 맞서다 부러지는 대신 "파도가 치는구나, 정말 거세구나. 그래도 오늘 하루는 휩쓸리지 않고 잘 버텼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주는 것. 이것이 바로 통제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자기돌봄입니다.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던 어머니가 상담이 끝난 뒤 조금 후련해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쓰나미가 여전히 오고 있기는 한데 아까보다 제가 더 높은 곳에 있어 그 쓰나미에 닿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는 몰랐는데 하늘이 파랗고 예쁘네요."
제가 상담실에서, 그리고 이 글을 통해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집채만한 파도 앞에서 당신이 숨 쉴 수 있는 '오늘의 작은 틈'을 함께 찾아내는 것입니다.
Healing Coaching: 파도 앞에서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법
홀로 거대한 파도를 맞서고 계신 분이 있다면, 지금부터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셀프 코칭(Self-Coaching) 방법을 안내해 드리려 합니다.
Step 1. 무력감을 '연결감'으로 재정의하기 "오늘따라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나요? 이 힘듦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힘들 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지나가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또 아이에게 짜증을 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힘들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다음 행동을 미리 바꾸거나 다르게 대처할 수 있는 틈이 생깁니다.
Step 2. '해결' 대신 '머무름(Holding)' 선택하기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그저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습니다. 이런 날일수록 그냥 지나가도록 두는 게 나은 날도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해야지란 생각에서 이 ‘잘’마저도 빼보세요. 어떨 때는 삶을 그냥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Step 3. 아주 작은 '숨 구멍' 확보하기 제 연구에 참여한 양육자들은 운동, 커피 한 잔, 짧은 산책 등 아주 사소한 활동을 통해 '삶의 쉼표'를 찍었습니다. 거창한 휴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휴식 방법을 찾는 것이 삶에 작은 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예요.
힐링인사이트 노수정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