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하나 가는 일이 전쟁이 된 사람들에게
"밖에 나가는 것도 도전이고 매 순간 도전인 것 같아요. 마트를 가도 도전이고... 아이들이야 몰라서 그렇다고 해도 어른들까지 그렇게 바라보면, 너무 저희가 너무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마트. 그 단어에 멈칫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마트는 장바구니를 들고 가볍게 다녀오는 일상입니다. 그런데 제 앞에 계신 이 어머니에게 마트는 매번 갑옷을 입고 나서야 하는 전장이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어머니의 몸은 이미 전투 태세였습니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지는 않을까. 물건을 쏟지는 않을까. 그보다 더 두려운 건, 그 순간 쏟아질 시선들이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그나마 괜찮았습니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보다" 하는 눈빛. 하지만 아이의 몸이 커지면서, 세상의 시선도 함께 달라졌습니다. B님은 "아이가 크면서 어디 나가면 사람들이 많이 쳐다본다"고 말씀하셨고, C님은 그 변화를 더 날카롭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청소년이 되면서부터는 그런 행동이 이제 용납이 안 되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그러면 이제 나가기가 더 힘들어지고... 매섭게 바뀌는 거예요. 사람들의 시선이."
어린아이의 돌발 행동은 '귀여운 실수'로 넘어가지만, 덩치 큰 청소년의 같은 행동은 '위협'이 됩니다. 사람들의 눈이 달라지는 순간, 어머니의 세계도 함께 좁아지기 시작합니다.
하나씩 지워지는 지도
C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어머니의 일상이 마치 지도 위에서 장소가 하나씩 지워지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배달시켜 먹게 되고 나갈 수 있는 그런 걸 더 안 하게 돼요. 여행 가는 것도 더 쉽지 않고... 지금은 사실 온라인 예배를 드리거든요."
식당이 지워졌습니다. 여행지가 지워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마저 지워졌습니다.
C님이 교회에 갈 수 없게 된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유아부에 가기엔 아이의 몸이 너무 컸고, 다른 아이들이 무서워했습니다. 그렇다고 대예배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유아부에도, 성인부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 어디에도 자리가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갈 곳이 없으니, 어머니에게도 갈 곳이 사라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넓었던 지도가, 아이가 커갈수록 점점 좁아졌습니다. 마트, 식당, 교회, 여행지... 한 곳씩 지워지더니, 결국 집만 남았습니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이, 유일하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장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위축감의 진짜 이름 '동반 낙인'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에 이름을 붙여두었습니다. '동반 낙인(Affiliate Stigma)'이라고 부릅니다.
낙인은 원래 장애를 가진 당사자에게 붙는 것이지만, 그 곁에 있는 가족에게까지 전이됩니다. 시선은 아이를 향하지만, 그 시선이 남긴 상처는 어머니의 가슴에 고스란히 꽂힙니다. 처음에는 바깥에서 오는 시선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안으로 스며듭니다. "나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부모인가." "사람들이 우리를 저렇게 보는 게 당연한 건가." 타인의 판단이 어느새 자신의 판단이 되어버리는 것, 그것이 동반 낙인의 가장 잔인한 면입니다.
Chen과 동료들의 최신 연구(2025)는 이 과정을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사회적 배제를 많이 경험하는 부모일수록, 삶에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이 낙인의 상처를 완충하는 힘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시선과 배제가 심한 환경에서는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내면의 힘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연구가 배제를 많이 경험한 부모들에게서 '정서적 무감각'과 '순간에만 머무는 상태'가 나타난다고 지적한 부분입니다. 의미 있는 사고와 자기 성찰의 동력을 잃어버리는 것. 이것은 제 연구에 참여했던 E님의 그 한마디를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언어였습니다.
"정말로 반쯤 정신 놓고 이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너무 위축돼서 살아갈 수 없거든요."
반쯤 정신을 놓는다는 것. 그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시선이라는 자극을 더 이상 온몸으로 받아내다가는 무너질 것 같아서, 스스로 감각의 볼륨을 낮춘 것입니다. 느끼면 무너지니까, 느끼지 않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서글픈 역설이 있습니다. 아픔의 볼륨을 낮추면, 기쁨의 볼륨도 함께 낮아집니다. 아이가 웃을 때 함께 웃는 감각, 봄바람이 좋다고 느끼는 감각, 내가 나로서 살아있다는 감각까지. 살기 위해 꺼둔 스위치가, 삶의 온기까지 함께 꺼버리는 것입니다.
고립이 고립을 부르는 악순환
Salami와 Alhalal의 연구(2024)는 이 과정을 하나의 구조로 보여줍니다. 사회적 시선을 피하기 위해 외출을 줄이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아이의 상태를 숨기는 것, 연구자들은 이를 '부적응적 대처'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 대처 방식이 오히려 동반 낙인을 더 깊게 만드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것을 비난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운 반응이기에 더 안타까운 것입니다. 시선이 아프니까 피하고, 피하니까 더 고립되고, 고립될수록 세상이 더 낯설어지고, 낯설어진 세상에 다시 나가기가 더 두려워지는 것. 지도 위의 장소가 하나씩 지워지는 과정은, 바로 이 악순환의 궤적이기도 합니다.
반면, 같은 연구에서 사회적 지지를 인식하는 부모들은 동반 낙인의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사회적 지지'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 잘하고 있어"라는 한마디, 같은 처지의 부모가 건네는 눈빛 하나, 아이의 행동을 이해해주는 이웃의 태도. 그 작은 연결이 유리벽에 금을 내고, 지워진 지도 위에 다시 한 곳을 그려 넣는 힘이 됩니다.
지워진 지도 위에 다시 한 곳을 그려 넣는 것
저는 세상의 시선을 바꿀 힘이 없습니다. 거리에서 당신과 아이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거두게 만들 수 없습니다. 이 글 한 편으로 세상이 더 따뜻해지리라 믿을 만큼 순진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Celia와 동료들의 연구(2020)가 보여준 한 가지 사실은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이 연구에서 부모들은 자녀를 돌보는 경험을 '전쟁 피로(Battle Weary)'라고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전쟁 준비(Battle Ready)'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길을 잃었다가 다시 찾고, 지쳐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들은 정보를 스스로 찾고, 같은 처지의 부모들과 연결되며, 시행착오 속에서 자녀에게 맞는 방법을 만들어갔습니다.
지도 위에서 장소가 지워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워진 자리에 아주 작은 점 하나를 다시 찍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것은 발달장애 가족 모임에서 눈치 보지 않고 밥을 먹는 경험일 수도 있고, 같은 길을 걷는 부모에게 "저도 그래요"라고 말하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오랜만에 혼자 걷는 10분의 산책일 수도 있습니다.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지도 위에 한 곳만 다시 살아나도, 그것은 세계 전체가 달라지는 일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내내 한 분이 떠올랐습니다. 2년 넘게 만나온 그분의 지도에는 오랫동안 세 곳만 남아 있었습니다. 집, 운동하는 곳, 그리고 상담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세 곳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워지는 지도 위에서 스스로 지켜낸 세 곳이었으니까요. 상담실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분의 지도 위에 장소를 대신 그려 넣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세 곳을 발판 삼아 네 번째, 다섯 번째 장소를 스스로 그려 넣을 수 있는 힘을 함께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속도는 느려도 괜찮았습니다. 그분의 지도는, 그분의 속도로 넓어지면 되는 것이니까요.
당신의 지도 위에도, 아직 그려지지 않은 곳이 남아 있다고 믿습니다.
Healing Coaching: 지워진 지도 위에 점 하나 찍기
Step 1. 꺼둔 감각을 잠깐만 켜보세요
반쯤 정신을 놓는 것은 당신의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을 탓하지 마세요. 다만, 오늘 하루 중 딱 한 순간만 — 바람이 차갑다거나, 커피가 따뜻하다거나 작은 감각 하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꺼둔 볼륨을 갑자기 높이는 게 아니라, 아주 조금만 올려보는 것입니다.
Step 2. 당신의 지도를 펼쳐보세요
당신의 지도에서 가장 최근에 지워진 장소는 어디인가요? 그리고 혹시, 아직 지워지지 않은 곳이 한 곳쯤 남아 있지는 않나요? 그곳이 어디든, 그 한 곳을 지켜내는 것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Step 3. 혼자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 곁에서는 시선이 아프지 않습니다. 발달장애 가족 모임, 온라인 커뮤니티, 복지관의 부모 프로그램 어디든 "저도 그래요"라는 한마디가 오가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당신의 지도 위에 새로 그려 넣을 첫 번째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홀로 좁아진 지도 안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는 분이 떠오르셨나요?
이 글이 그분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 글의 이유가 됩니다.
힐링인사이트 노수정이었습니다 :)
[참고문헌]
Chen, H., Ding, Y., Xu, D., & Xiong, Z. (2025). Resilience and affiliate stigma among parents of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The mediating role of life satisfaction and the moderating role of ostracism. Psychology Research and Behavior Management, 18, 1519–1529.
Celia, T., Freysteinson, W., Fredland, N., & Bowyer, P. (2020). Battle weary/battle ready: A phenomenological study of parents' lived experiences caring for children with autism and their safety concerns. Journal of Advanced Nursing, 76(1), 221–233.
Salami, S., & Alhalal, E. (2024). Affiliate stigma among caregivers of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The role of coping strategies and perceived social support. Journal of Disability Research, 3, e20240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