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지만 여자인데

아들의 몸이 달라지기 시작한 날

"나도 엄마지만 여자인데."


연구에서 만난 I님은 그 말을 꺼내놓고, 멋쩍은 듯 작게 웃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듯이.


I님의 아들은 열세 살, 중학교에 갓 올라간 해였습니다. 인지적으로는 아직 어린아이에 가까웠지만, 몸은 사춘기에 막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씻기는 일, 닦아주는 일, 옷을 입혀주는 일 — 그 모든 것이 여전히 I님의 몫이었습니다. 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


"몸을 닦아줄 때... 벗은 몸을 보게 되잖아요. 이게 언제까지 해도 되는 건가, 싶어요."


한참을 혼자 삭혀온 말 같았습니다. 꺼내놓고 나서야 비로소 홀가분한 건지, 아직 민망한 건지, I님 자신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이 모름은 I님만의 것이 아닐 겁니다. 오늘은 그 말을 조금 더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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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인 것과 사라진 것은 다릅니다


수채화를 그려본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젖은 종이 위에 붓을 대면, 물감은 내가 원하는 선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번집니다. 옆으로, 아래로,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일단 번지고 나면 그 경계를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아이와 나는 본래 다른 색을 가진 두 장의 종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랜 돌봄의 붓질이 계속되면서, 어느 순간 두 색이 섞였습니다. 아이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 되고, 아이의 리듬이 곧 나의 리듬이 됩니다. 지극한 사랑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종이 위에서 내 색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상태를 경계의 소실(Boundary Dissolution)이라고 부릅니다. 돌봄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그리고 그 돌봄이 신체적일수록 이 현상은 더 빠르게 진행됩니다.


특히 아이의 몸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시기, 어머니들은 전혀 새로운 종류의 충돌 앞에 서게 됩니다. Montgomery와 동료들의 연구는 이 시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돌봄이 삶의 중심이 되어가면서, '나'를 지키려는 힘과 돌봄의 요구가 가장 격렬하게 부딪히는 때라고. 지금 I님이 서 계신 자리가 바로 그 지점입니다.


연구에서 만난 G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세대는 성교육을 배우질 않았어요. 남자애다 보니까 너 이렇게 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가 참 민망한 거예요."


I님의 당혹감과 G님의 막막함은 서로 다른 장면이지만, 같은 자리에서 출발합니다. 심리학은 이 감각에 정체성 불일치 부담(Identity Discrepancy Burden)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내가 되고 싶은 나와, 매일 수행해야 하는 역할 사이의 간극이 오랫동안 쌓일 때 생기는 고통입니다.


"나도 엄마지만 여자인데"라는 말은 그 부담이 마침내 언어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번진 수채화가 원래 두 색이었음을 기억하는 것. 그 감각이, 내 색을 아직 잊지 않았다는 흔적입니다.


억누르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의 몸에 손이 닿는 순간, 그 손이 '엄마의 손'이면서 동시에 '여자의 손'이기도 하다는 감각, 그 미세한 불편함을 느꼈다면, 억누르지 않아도 됩니다.


자폐 스펙트럼 자녀를 둔 부모를 직접 대상으로 한 Neff와 Faso(2014)의 연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지점이 있습니다. 자기자비가 높은 부모일수록 양육 스트레스와 우울이 낮았다는 것,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그런데 연구자들이 더 들여다보니, 자녀의 장애 증상이 얼마나 심각한가보다 부모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따뜻하게 대하는가가 삶의 질을 더 강하게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입니다.


목욕을 마치고, 아이에게 옷을 입혀 방으로 보낸 뒤 수도꼭지를 틀고, 자신의 손을 씻는 것입니다. 아이의 몸을 닦던 그 손이 아니라, 지금 이 손은 나의 손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30초입니다.


심리치료에서 말하는 비집착(Non-attachment)은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닙니다. 번진 물감을 억지로 닦아내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 종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일입니다. 그 30초가, 번진 경계 위에 당신이 긋는 나만의 첫 번째 선입니다.


그 선이 쌓이면서, 내 색은 조금씩 다시 선명해집니다.


내 색이 선명해지는 것이 아이의 색을 지우는 일이 아닙니다. 두 색이 각자 선명할 때, 비로소 둘 다 온전히 빛납니다.



오늘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의 종이 위에는 어떤 색이 남아있나요?


오늘 하루, 아이가 아닌 당신 자신을 위해 머문 순간이 있었나요. 아주 짧아도 됩니다. 아무도 모르는 순간이어도 됩니다.


오늘 그 순간을 놓치셨더라도 괜찮습니다. 내일 문득 이 글이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자신의 색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글이 오늘 자신의 색을 잊어버린 것 같은 분에게 닿았으면 합니다. 당신 곁에도 그런 분이 계신다면, 살며시 건네주셔도 좋겠습니다.




힐링인사이트 노수정이었습니다 :)



[참고문헌]

Montgomery, R. J. V., Kwak, J., Kosloski, K., & O'Connell Valuch, K. (2011). Effects of the TCARE® intervention on caregiver burden and depressive symptoms: Preliminary findings from a randomized controlled study. The Journals of Gerontology: Series B, 66(5), 640–645.

Neff, K. D., & Faso, D. J. (2014). Self-compassion and well-being in parents of children with autism. Mindfulness, 6(4), 938–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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