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데, 두렵다고 말해도 됩니까"
왜 두려울까요?
"선생님, 이제는 때리려는데 애가 내 양손을 확 잡더라고요."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은 고백합니다. 말로 수백 번 해도 통하지 않을 때, 순간적으로 손이 나간 적이 있다고요. 하지만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엔 그래도 물리적으로 제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몸이 커지면, 모든 게 달라집니다.
이제 남은 건, 통제할 수 없는 아이의 몸뿐입니다.
"이제 말로도 안 되고, 체벌도 안 되는데... 제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의 질문 앞에서 제 머릿속은 분주해졌습니다. 어떤 이론을, 어떤 기법을 꺼내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제가 마주한 것은 명쾌한 정답이 아니라, 제 안으로 고스란히 옮겨온 그 막막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뭘 할 수 있지?'
어머니의 고민이 곧 나의 고민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엄마인데, 두렵다고 말해도 되나요?"
사실 많은 부모가 이 낯선 두려움을 좀처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내 아이를 보며 '무섭다'는 감정을 품는 것이 생경하기 때문입니다.
모성이라는 거대한 당위 아래, '무섭다'는 감정은 본능적으로 매몰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몸은 머리보다 정직합니다.
머리로는 '내 소중한 자식'이라고 알고 있지만, 90kg이 넘는 거구의 아이가 돌발 행동을 할 때 몸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듭니다. 사랑한다는 이성적 확신과, 몸이 느끼는 생리적 공포 사이의 간극.
부모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길을 잃습니다. 아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아이를 무서워하는 나 자신'이 낯설어지는 겁니다.
내 자녀가 무섭다고, 대체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직접 만난 어머니들의 고백은 바로 이 괴리에서 출발했습니다.
왜소했던 아이가 거의 15cm 가까이 확 크더니 어느새 자신을 훌쩍 넘는 체격이 되었다는 어머니 A님. 그분은 아이의 힘이 세어지면서 스스로도 약간 무서워졌다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아이도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빠나 남동생 정도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고요.
그 순간, 이 어머니는 자신이 점점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어머니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어머니 C님의 고백.
"핸드폰이 잘 안 돼서 아이가 소리 지르면서 아빠한테 갔는데... 아빠 방에 있는 TV를 주먹으로 내쳐 부숴버린 거예요. 그때부터 아빠가 아이를 때리고 하는데, 이거는 내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었어요."
경찰을 부른 그날, C님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내 아이를, 내 남편을 경찰에 신고한다는 것.
가족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분은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두려움의 진짜 이름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
과연 이것은 무엇일까요?
최근 연구 데이터(Cheng & Lai, 2023)가 보여주듯, 자녀를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심화될수록 부모의 심리적 건강은 급격히 악화됩니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고립은 그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키죠.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적 반응입니다.
아이의 힘과 에너지는 정점을 향해 치닫는데, 당신의 에너지는 노화와 피로로 인해 서서히 줄어듭니다. 이 필연적인 간극 앞에서 위축되는 것. 당신의 몸과 마음은 무의식 중에 알고 있습니다.
지금 마주한 현실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쪼그라든 나를 다시 일으키는 길
두려움을 마주했다면, 이제는 그 두려움 속에서도 나를 다시 세워가는 이야기를 해야 할 차례입니다.
아이를 힘으로 제압하려 애쓰거나, 매 순간의 돌발 행동에 일일이 감정을 소모하는 건 애초에 승산 없는 싸움입니다.
힘으로 제압할 수 없다면,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메시보브(Mesibov)와 쉬(Shea, 2009)는 지난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아이에게 '구조화된 일과'를 제공하는 것이 불안과 돌발 행동을 낮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말합니다.
이를 위한 첫 번째는 '구조화된 일과'입니다. 아침 루틴, 식사 시간, 취침 시간을 가능한 한 매일 같은 순서로 반복하는 것. 사진이나 그림 등 시각적 스케줄표를 벽에 붙이고,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불안과 돌발 행동이 눈에 띄게 감소합니다.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을 아이도 느끼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과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요.
예측 가능한 하루는 당신과 아이 모두에게 작은 안전지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을 돌보는 일도 잊지 마세요.
Scripps 외 연구진(2025)의 분석 결과, 부모의 심리적 웰빙이 향상될수록 자녀의 문제행동이 실제로 감소했습니다.
운동이나 소소한 커피 한 잔의 모임, 10분의 산책. 이것은 한가로운 '취미'가 아닙니다. 아이의 거친 에너지를 받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심리적 완충지대'를 구축하는 과정 중 하나입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회복할 때, 부모의 언어에는 비로소 틈이 생깁니다.
그 틈에서 나오는 평온한 기운이야말로 아이의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강력한 치료제입니다.
당신을 돌보는 일이 오히려 나와 아이 사이에 숨 쉴 공간을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사실, 저도 이 무력함 앞에서 무너진 적이 있습니다.
청소년기 자녀를 둔 한 어머니와의 상담이었습니다. 자녀는 몸만 자랐을 뿐, 일상의 모든 순간에 손길이 필요한 중증 발달장애 상태였습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 '숨 쉴 틈 없는 돌봄'이 그분의 24시간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가족의 불화와 견딜 수 없는 일상을 쏟아냈고, 그 거대한 무게 앞에 선 저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대체 여기서 내가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
심리학 이론도, 그간 쌓아온 임상 경험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분의 24시간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아이의 인지 발달을 당장 끌어올릴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 막막함이 전달됐는지, 그분은 2회기 만에 "시간이 안 돼서"라며 상담을 그만두셨습니다.
저는 그때 시험과 논문 준비로 지쳐있었고, 그분의 무게를 받아내기엔 제 자신도 너무 비어있었습니다. 그렇게 떠나간 그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제가 느꼈던 찰나의 막막함이 그분에게는 일상이고, 삶 그 자체였으니까요.
Healing Coaching : 쪼그라든 마음에게 보내는 편지
오늘도 현관을 들어서는 아이의 부쩍 커진 몸집 앞에서, 혹은 예기치 못한 돌발 행동 앞에서 잠시 숨을 멈추고 주춤하셨나요?
Step 1. 두려움에 이름을 붙여주세요
지금 당신의 두려움에 이름을 붙여본다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두려움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감정에 압도되는 대신,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Step 2. 혼자 짊어지지 마세요
'언제까지, 어디까지'라는 질문.
이 질문을 혼자 품고 있지 마세요.
특수교사, 복지관 담당자, 같은 처지의 부모들과 함께 나눠보세요.
지구 반대편 부모들도 똑같은 질문 앞에서 멈춰 서 있습니다.
Step 3. '쪼그라든 나'를 다시 키우는 시간을 허락하세요
아이가 커가는 동안, 나도 성장해야 합니다.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것, 10분의 산책,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 한 통. 그 작은 숨구멍들이 당신이라는 사람을 조금씩 다시 채워줄 것입니다.
아이는 당신을 밑거름 삼아 자랐습니다.
그만큼 당신도, 그 무게를 견디며 단단해졌습니다.
그 단단함이, 오늘도 당신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제가 만난 모든 어머니가 회복된 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여전히 그 깊은 웅덩이 속에서 허우적대고 계십니다.
그분들 앞에서 제 언어는 자주 길을 잃었고, 끝내 그 웅덩이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씁니다.
혹시 한 분이라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사실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라 믿으며.
by 힐링인사이트 노수정
[참고문헌]
Cheng, A. W. Y., & Lai, C. Y. Y. (2023). Parental stress in families of children with special educational needs: A systematic review
Mesibov, G. B., & Shea, V. (2009). The TEACCH Program in the Era of Evidence-Based Practice. Journal of Autism and Developmental Disorders, 39(4), 570-579.
Scripps, E., Sutherland, D., Langdon, P. E., Hastings, R. P., & Gray, K. M. (2025). Supporting Parents of Adolescents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A Systematic Review of Interventions. Journal of Applied Research in Intellectual Disabilities, 38(1), e7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