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대신 양육 사기: 무너지지 않기 위한 처방

"나를 잃어버렸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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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가끔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홀로 걷는 일과도 같습니다.

제가 심리치료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어머니, 그리고 저의 연구에 참여해주신 분들은 하나같이 고백했습니다.


아이를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지만, 정작 그 길 위에서 ‘나’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고 말입니다.


제 연구에 참여했던 A님은 세상과 단절된 그 고립감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사회와 동떨어진 느낌이었어요. 멘탈이 많이 흔들렸죠."



아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몸집이 커질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외출 한 번이 매 순간 도전이었습니다. E님은 외출할 때마다 느껴지는 위축감을 이러한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정말로 반쯤 정신을 놓지 않으면 너무 위축돼서 살아갈 수 없거든요."



아이와의 외출 한 번에도 ‘반쯤 정신을 놓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그 절박한 고백 앞에서,

저 또한 코끝이 찡해지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무뎌져야만 했던, 어머니만의 서글픈 생존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흔히 ‘소진(Burnout)’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최근 <청소년기 발달장애 자녀 어머니의 자기돌봄 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를 진행하며,

이 현상을 조금 더 깊은 언어로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가 아닙니다.

삶 전체를 관통하며


"자신을 잃어가는 소진의 과정이자, 동시에 온전한 나로 회복하려는 여정"입니다.


많은 부모님이 이 과정을 온전히 홀로 감당하려 합니다.


"그때 내가 더 참았어야 했는데"

"지금 내 선택이 정말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걸까?"


라며, 아이의 미래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무거운 중압감 속에 스스로를 가둡니다.



심지어 "나를 돌보는 것조차 사치인 것 같다"며 쉼표 하나 찍는 것조차 주저하십니다.



하지만 해외의 최신 연구들은 부모님의 이런 고통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Benzies와 동료들의 연구(2011)에 따르면, 부모에게는 '양육 사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군인이 사기가 높아야 전투를 치르듯, 부모 또한 긍정적인 심리적 에너지가 충전되어야만 긴 양육의 여정을 버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당신이 느끼는 소진은 당신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비축해 둔 '마음의 연료'를 아이를 위해 모두 태워버렸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트라우마 연구의 권위자인 Tedeschi와 Calhoun(2004)은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극한의 양육 환경은 분명 고통스럽지만, 그 역경을 통과해낸 부모님들은 삶에 대한 감사, 대인관계의 깊이, 그리고 내면의 강점을 발견하며 이전보다 더 단단한 존재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엄마’라는 역할을 넘어, 고유한 ‘나’를 만나는 시간


제 연구 속 어머니들은 소진의 끝자락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각을 통해 비로소

<삶의 쉼표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고,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고,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과 연대하며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았습니다.

놀랍게도, 엄마가 행복해지자 그 에너지는 가정에 흘러갔고,

양육은 더 이상 희생이 아닌 또다른 삶의 의미로 재탄생했습니다.


이 브런치 스토리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막연한 위로가 아닌, 심리학적 근거와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사례를 통해

우리가 겪는 혼란이 성장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임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Healing Insight]

오늘, 당신의 마음 날씨는 어떤가요?


오늘 하루도 아이의 감정을 살피고, 돌발 행동을 막아내느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셨겠지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절벽'에 선 듯한 기분을 느끼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이가 아닌 '당신'에게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편안한가요?"


당신의 소진은 당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보여주는 훈장입니다.


그러니 부디,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은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세요. 당신이 찍는 오늘의 쉼표가, 내일 우리 아이와 더 오래 나란히 걸을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되어줄 테니까요.




힐링인사이트 노수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