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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마끼끼 Sep 13. 2024

첫번째 빚

그렇게...일어나다.

  겨울방학 동안 내가 항상 하던 놀이는 눈싸움과 스케이트였다. 그날은 아이들과 얼어붙은 샛강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널빤지에 쇠를 붙인 보기에도 투박하고 촌스러운 썰매를 지쳤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과시하듯 날렵한 스케이트를 신고 뽐내며 그들과는 엄청난 속력의 차이를 보이며 요리조리 달렸다. 그들이 체 미치기도 전에 나는 강 한복판까지 다다랐고 내가 그들과 너무 멀리 혼자 떨어져 있음을 깨달았을 때 어머니가 아침에 내게 당부하시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엄습해 오는 두려움에 난 다시 뒤돌아가려고 다리에 힘을 줬고 와지끈 소리와 함께 나는 차가운 물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누구도 나를 도울 사람은 없었고 얼마의 시간 동안은 나 자신의 힘으로 생명을 지탱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곧 나는 물속으로 침전해 가는 나를 느낄 수 있었고 몸이 나른해져서 눈을 감아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것은 걱정과 안도감에 어린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나는 곧이어 근돌이의 환영과 체취를 느꼈다.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기관사의 음성 때문에 나는 감았던 눈을 뜬다. 6시 도착. 아하! 아직 4시간이 남아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 시간을 단지 침묵으로만 일관한다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그녀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그녀가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한없이 깨끗한 눈빛이다. 나는 내가 하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려 했지만 생각해 낼 수가 없다. 그 눈동자는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흔들림이 없다. 잠시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내가 다시 막 정신을 차리려 할 때 얼핏 부모님의 음성을 들었다.

  “허 참. 난감하군. 이미 결정 난 일인데…”

  “그래도 얘 은인인데… 우리라도 어떻게…”

  “허…”

  내가 물에 빠져 정신을 거의 잃었을 때 다리 위에서 그 광경을 본 근돌이가 쏜살같이 나에게 달려왔다. 그리곤 다짜고짜 물속에 뛰어들어 나를 끄집어 나왔다. 곧이어 나의 사고소식을 들으신 부모님과 여러 동네 어른들이 몰려왔고 근돌이는 내 주위에서 나를 걱정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아무 말 없이 허망한 눈초리를 감추며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는 몸도 거의 나았고 이젠 나가도 좋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뒤로하고는 곧장 근돌이네 집으로 향했다.

  “근식이형:

  아무 인기척이 없다.

  “근식이혀엉”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나는 한번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이 지대는 재개발 구역으로 결정 난 곳이었고 모두 이사 간 뒤라 연립주택의 지하엔 오직 근돌이만 살고 있었다. 모두들 보상을 받았고 나름대로 재개발 후엔 아파트에 입주하기로 약속되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근돌이를 따돌렸다. 깨끗한 새 동네에 근돌이가 살기를 원치 않았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근돌이에게 돌아갈 조그마한 해택을 그들 아이들을 위한 놀잇감 하나와 바꿨다. 어둑 컴컴함 속에서 나는 이상스러운 평온함을 느꼈다. 그 느낌은 내가 갖고자 했던 것이기도 했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어디서 꺾어왔는지 수많은 꽃들이 방안에 널러져 있다. 이내 누군가를 느꼈다. 근돌이다.


  “근식이형..”

  “어? 니 왔구나…”

  그 목소리엔 특유의 높낮이가 없다. 그가 나를 구해준 뒤 혼자 터벅터벅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이전촉구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동에 칭찬을 했지만 그를 도와주려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에게 직접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하지도 않았다. 그는 페렴을 얻었고 숨을 헐떡거리게 되었다.

  “형.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다…”

  역시 그의 억양을 느낄 수 없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그의 이마에 데어 봤고 어린 마음에도 그의 몸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왜 그래. 왜 이렇게 열이 많아?”

  “괜찮다. 니 집에나 가봐라.”

  “형 독감 걸린 것 아…”

 순간 나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맞았다. 나를 구한 뒤, 그 차가운 얼음물속에서 허우적거린 뒤 몸을 돌보지 않아 얻은 병이리라. 나는 그를 껴안고 싶었다. 막 울고 싶었다. 나는 그날부터 사흘간 부모님 몰래 정성스레 간호했다. 이것이 그에게 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 사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다. 내 정성이 갸륵해서인지, 다행히 그의 짐승 같은 야생의 체력은 얼마 후 그를 예전처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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