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난 근돌이와 곧잘 어울렸고 우린 가끔 같이서 한참 걷기도 했으며 길옆 풀숲에 마냥 앉아있기도 했다.
“나 있잖아… 예전에 누이동생이 있었다.”
“어 뭐! 누이동생. 거짓말.”
“진짜야! 그리고 걔 입술이 정말 빨갰다.”
“……”
“그리고 참 이뻤다.”
“,,,그런데 어떻게 됐어?”
“아버지가 데리고 갔다. 나도 걔도 어릴 때”
“어디로?”
“…몰라…”
그가 일어선다. 나는 더 이상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뒤를 따라갈 때 나는 땅바닥에 떨어진 몇 방울의 물자국을 볼 수 있었다.
땡수가 돌아오던 날 동네는 또 한 번 술렁거렸다.
“아니. 그 녀석이 어떻게 벌써 나와요. 한 반년 됐나?”
“범인은 그놈이 아니라 딴 녀석이고 그놈은 하던 짓이 워낙 못 돼먹어서 교육박고 나오는 거래요 글쎄”
“얼씨구? 교육 좋아하네. 지 평생 하던 짓을 반년만에?”
“그 녀석. 과연 사람 됐을까?”
“아이구. 천성이 어디 갈라구요.”
땡수는 동네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역시 성근이가 그에게 불려 갔고 곧 아이들이 하나둘씩 그의 부름을 받아야 했다. 한 달이 채 못돼 예전과 같은 생활은 시작됐다.
그날은 나의 차례였다. 땡수는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본다.
“이것뿐이냐?”
“…네”
나는 그의 매서운 주먹에 복부를 한차례 맞은 기억이 났다.
“야! 니 뭐 하냐?”
근돌이였다.
“상관 말고 꺼져!”
“뭐라고! 이 자식이. 니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그들의 세 번째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근돌이의 주먹이 땡수를 곧잘 명중시켰고 급기야 힘에 부친 땡수가 돌을 드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으악!”
땡수는 달아났고 근돌이는 머리에 피를 쏟으며 넘어졌다.
“혀엉! 형!”
그러나 근돌이는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그의 눈에 그 앞에 흩어진 빨간 핏방울들을 모으고 있었다. 핏방울이 모이자 그것은 이내 그의 누이동생의 입술이 된다. 얼굴이 된다. 이젠 누이동생이 그의 앞에 서있다. 그의 손에도 빨간 피가 얼룩져있다. 기쁘다. 그 손을 내게 보여준다.
“내 누이동생은 이렇게 빨간 입술을 가졌다.”
근돌이가 숨을 급하게 헐떡거린다. 난 생각했다. 너무 벅찬 흥분에 헐떡거리는 것이라고
“형! 죽지 마!”
그가 입술을 살짝 깨문다. 아아! 지금 그는 누이의 입술을 깨무는 것이구나!
“…니도 내 누이 보고 싶지? 그치?”
그제서야 그는 눈물을 흘린다. 나는 그의 물음에 대답해야겠다 생각했다. 이젠 그가 눈을 감는다. 울부짖는 내 앞에서 그는 평온하게만 식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