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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사쓰는 육아대디 Mar 31. 2024

사진 없는 벚꽃 구경

아이가 싫다고 한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3월 말. 우리 가족은 집 주변에서 열리는 벚꽃 축제에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결심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매년 축제 때마다 아내와 함께 거닐던 곳이고 아이가 태어나서도 매년 방문하던 곳이다. 다만, 올해의 차이점이 있다면 아이가 조금 더 컸다는 것.


이른 점심을 먹고 축제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파워J 성격의 나는 또다시 계획을 세운다. 한 바퀴 간단하게 돌고 간식 하나를 사 먹은 다음 아이를 차에 태워서 재운 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간단하게 커피까지 마신다는 깔끔하고도 아이의 낮잠 시간까지 고려한 계획이다.


시작은 좋았다. 아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유모차에 타겠다고 한다. 손을 잡고 걸어도 좋지만 영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고 사람이 많아서 안아달라고 하면 그때부터 우리 부부의 팔은 남아나질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좋은 스타팅 덕분에 사진을 한 장도 못 건졌다는 사실이다.


멋지고 예쁘게 피어나는 벚꽃들 사이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즐기는 모습을 봤다. 우리 부부도 벚꽃을 배경삼아 또 한 장의 아이와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아이한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싫어. 유모차에서 안 내릴 거야"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다시 한번 설득을 했다. 꽃이 이렇게 예쁜데 사진 안 찍을 거야? 엄마랑 아빠는 사진 찍고 싶은데?


"난 안 찍을래. 싫어. 여기 있을래"


이후로도 예쁜 벚꽃이 피어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말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아이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우리 부부의 모습도 아이의 모습도 없는 벚꽃 사진만 아내가 간신히 몇 장을 건졌고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간신히 간식도 하나 사서 먹었다. 이젠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벚꽃 포토스팟을 지날 무렵 아이가 유모차에서 잠에 들었다. 주변 행사 소음,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는 아이에겐 그저 ASMR에 불과했다.


일단 잠들었으니 깨지 않게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낮잠을 너무 조금 자면 또 피곤하다고 온갖 짜증을 부리는 아이를 보지 않기 위해서다. 울퉁불퉁 거리는 인도를 몇 차례 지나간 뒤 우리는 축제장을 빠져나왔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 속에서 돌아다니는 것도 꽤나 힘들었다. 그렇게 축제장 주변 번화가를 걸어다녔다. 정확히 말하면 잠이 든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끌면서 걷고 또 걸었다.


다리가 슬슬 아파오자 우리 부부는 잠시 쉴 겸 근처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에서 아내는 좋아하는 책을 찾아다녔고 나는 잠든 아이와 함께 서점 한쪽 구석에서 앉아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스마트폰을 보다가 아이가 잘 자고 있는지 고개를 돌렸는데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뭐야 언제 일어난거지. 잠에서 깬 아이는 집에 가자며 정확한 의사표현을 해준다.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차로 또다시 걸어갔다.


1년에 단 며칠만 볼 수 있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 우리 부부는 1만 5천 보정도를 걸었지만 아이와 함께 벚꽃을 배경으로 한 사진은 단 한 장도 남기지 못했다. 매년 이맘때즈음이면 남기던 벚꽃 배경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아이가 사진을 찍기 싫다고 유모차에서 내리기 싫다고 정확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많이 컸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품에 안겨서 벚꽃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싫다, 좋다를 분명하게 말할 정도로 컸다. 그리고 사진에 집중하지 않은 덕인지 그래도 서로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사진 찍다가 좋은 풍경 놓치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다만, 좀 억울한 점은 1만 5천보를 걷고 난 후의 우리 체력이 예전 같지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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