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눈치싸움

발리 한달살이 Day 2

by 나우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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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새벽 3시에 잠들면서 과연 내일 알람 소리에 일어날 수 있을까 잠깐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이곳은 알람 소리 따위가 필요 없었다. 거의 새벽 6시부터 호텔 주변을 지나다니는 요란한 오토바이들의 행렬에 잠을 더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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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반강제로 시작된 둘째 날. 비몽사몽 상태로 씻고 호텔 5층에 있는 조식당으로 갔다. 앞으로 3주 동안 아침을 먹어야 할 곳. 나름 야외 테이블도 있고 연못에 붕어들도 있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4성급 호텔이어서 메뉴가 아주 다양하거나 신선도가 최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배를 채우다 보니 맞은편에 캠프에 참여할 아이들이 체크인을 하는 곳에 인솔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지켜보니 아이들과 학부모들도 조금씩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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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딸도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합류했다. 한국 나이로 7세~14세가 참여하는 캠프였고 12세인 딸은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그래서인지 제일 첫 번째 클래스인 울루와투반에 배정이 되었다. 클래스의 구성원은 우선 여학생 5명, 남학생 4명 정도로 보였다. 딱 봐도 여학생 2명은 이미 아는 사이 같았고, 나머지 반은 하루 이틀 먼저 와서 안면이 있는 사이 같았고, 나머지 반은 우리처럼 어제 새벽에 도착해서 피곤한 상태였다.


사실 어제 인천 공항 탑승구에서부터 저 사람들도 우리 일행이겠구나 했었던,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와 덴파사르 공항에 내려 짐을 찾는 곳에서는 뭐 거의 확실히 일행임을 알아차렸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제는 여러모로 먼저 말을 걸기에는 피곤하기도 했고, 나는 약간 수동적인 E성향(친해지면 TMI가 되지만, 초면에는 낯을 가리는)이라서 굳이 먼저 입을 떼지 않았었다.


그런데 캠프 일정이 시작된 오늘 막상 처음 보는 아이들 사이에서 약간 어색해하며 서 있는 딸을 보니 우리의 발리에서의 덜 외로울 한 달을 위해 내가 조금은 푼수가 되어봐야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같은 반 엄마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옆으로 은근슬쩍 가서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듣다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화에 동참해보았다. 다행히 지금껏 살아오며 그리 비호감은 아니었던 터라 말문을 트고 카톡 단체방에 초대되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딸을 보니 어느새 얼굴에 웃음기가 좀 돌면서 편해 보여 내 마음도 편해졌다.


그렇게 발리에서의 둘째 날, 딸과 나의 단체 활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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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리 예약을 해두었던 요가 클래스(월, 금 오전 9:30-10:30)가 있어서 호텔 뒤편 정원(야외)에서 inhale-exhale을 한참 반복한 후, 룸으로 들어오는 길에 카톡을 확인해보니 그새 대화가 많이 쌓여 있었다. 핵심은 지금 5층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엄마들 중 일부는 곧 택시를 타고 나가서 점심을 먹고 마사지를 받고 학부모들 오리엔테이션이 있을 3시까지 들어올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고민했다. 과연 그 무리에 끼어 나의 시간과 돈과 경험을 오늘 처음 본 그들과 공유할 것이냐, 아니면 요가를 하며 들여다본 나 자신을 좀 더 깊게 파고들어 가볼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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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결정으로 유명한 나는 1초의 고민 끝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어떤 엄마가 고젯으로 부른 택시를 얻어 타고 사이드워크라는 쇼핑몰에 가서 스파이시 시푸드 라이스를 먹고 샴푸와 과자 몇 개를 사고 또 다른 엄마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한잔 얻어먹고 다시 또 다른 엄마가 부른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서 학부모 오티에 참석했다.


그 사이 딸은 발리 전통문화 체험, 자기소개 게임, 점심식사, 타겟 언어 습득, 물놀이라는 빡센 일정을 마치고 체크아웃 장소로 돌아왔다. 피곤한 상태에서 하루 종일 괜찮았을까 걱정되었던 마음에 딸의 얼굴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는데, 정작 시크한 딸은 무덤덤한 눈빛과 손인사로 나를 빠르게 지나쳐 갔다. 아까 아아를 사준 언니가 “오~딸 쿨한데~”하며 우리 모녀의 관계를 눈치 빠르게 캐치한다.


아무튼 공식 수업은 끝났고 자유 시간이 시작되었는데, 다들 첫날이라 우왕좌왕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은 방금 물놀이를 했는데 더 하겠다고 하길래, 평소 물놀이를 좋아하는 딸에게도 물어보니 피곤해서 빨리 방으로 들어가 쉬고 싶어 하는 눈치라 얼른 방으로 올라왔다.


딸이 씻고 과자를 먹으며 쉬는 동안 카톡 안에서 저녁 식사 관련 눈치싸움이 시작되었다. 택시를 타고 나가서 사 먹을지, 근처 마트에 가서 먹을걸 사 올지, 배달을 시켜 먹을지, 호텔 안 레스토랑에서 먹을지 등등. 우리는 이미 배달을 시키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고, KFC에서 치킨을 시키기로 했는데, 갑자기 치킨을 맥주 없이 먹을 생각을 하니 안 될 것 같아 고민하던 차에 누군가 호텔 근처 마트를 간다는 소식에 급 옷을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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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긴 잠깐의 외출 덕분에 그래도 멋진 사진은 남겼지만, 마트 가는 길에 시켜놓고 돌아오는 길에 받아오려 했던 치킨 대신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야 말았다. 오전에 요가 갔다가 엄마들 모임에 바로 끼느라 환전을 못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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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젯으로 음식을 주문한 후 카드로 결제를 하려고 하니 뭐가 자꾸 안 된다는 메시지가 뜨길래 급한 대로 아아를 사준 언니에게 현금을 빌렸지만, 그 사이에 주문이 취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각자의 방식으로 저녁을 먹은 후에도 엄마들의, 여자들의 눈치싸움은 계속 이어졌지만 여러모로 피곤해진 나는 마이웨이를 택했다.


아무래도 남은 날들을 덜 피곤하게 보내려면 오늘 생긴 단톡방에서 몇몇의 사람들과 따로 방을 파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둘째 날 밤이다.




두 번째 공조 완료! 이 그림에서 가장 디테일한 부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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