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한달살이 Day 5
캠프 4일 차. 오늘은 아이들이 오전에 서핑을 하러 바다에 나가는 날. 그래 발리하면 뭐니뭐니해도 서핑이지.
호텔 근처 짐바란 비치라는 곳으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교대로 서핑을 하러 갈 예정이라 아침부터 비치웨어를 입히고 갈아입을 옷을 따로 챙겨 보내라고 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내가 수영에는 잼병이다 보니 딸은 6살 때부터 수영을 돈 들여 가르친 데다 물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함께 물놀이를 많이 해온 터라 서핑 일정에 딸은 어제저녁부터 신이 난 눈치였다. 나 역시 큰 타올, 아쿠아슈즈, 썬스틱, 갈아입을 옷 등을 야무지게 챙겨준 후 나는 오늘 뭐할지를 걱정했지 딸에 대한 걱정은 1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들, 특히 조금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그렇지 않았다. 수영장이 아니라 바다에 인솔자들과만 나간다고 하니 이래저래 걱정들이 많은 눈치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 멤버가 된 우리의 무리들 중에서도 오전에 짐바란 비치를 따라가자는 파와 또 다른 쇼핑몰을 가보자는 파로 나뉘었다.
나는 솔직히 쇼핑몰은 이제 좀 지겨웠다. 벌써 월요일에 사이드워크몰(at 짐바란), 화요일에 비치워크몰(at 꾸따)을 다녀왔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쇼핑을 특히 여러 명이 함께 하러 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짐바란 비치를 가자는 다른 엄마들(그들은 서핑을 하는 자녀들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려는 이유)과는 다른 이유였지만 속으로 쇼핑몰보다는 비치를 가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바다를 가서 사진도 찍고 멀리서나마 딸을 보는 것이 취향이 제각각인 여자들과 쇼핑을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나에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우리는 오늘 또 쇼핑몰을 가게 되었다. 오늘 가기로 한 곳은 갤러리아몰(at 꾸따)이었다.
그곳에서 거의 5시간을 있었다. 그동안 갔던 몰 중 규모가 가장 커서 오전 약 2시간 정도를 죽 둘러보며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들은 쇼핑을 했고 12시 즘 점심을 먹은 후 후식으로 스벅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다시 오후 쇼핑을 시작했다.
나는 오후에 들른 슈퍼마켓에서만 먹을 것(컵라면, 마실 것, 과자 등)과 딸아이에게 딱일 것 같은 에코백을 샀지만, 다른 여자들은 여기저기서 이것저것을 많이도 구경하고 많이도 샀다.
바람막이, 옷, 물놀이에 필요한 용품들, 아이들 장난감, 백팩, 쪼리, 담요, 심지어 그릇까지.
그녀들이 그 다양한 물건들을 사는 동안 나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중간중간 앉아서 쉬었다. 다른 것을 할 때 체력이 떨어지는 편은 아닌데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쇼핑을 하는 것은 나에게는 조금 힘든 일이었다. 물론 전날 잠을 좀 못 잔 탓도 있겠지만.
그녀들을 기다리며 나는 속으로 ‘돌아갈 때 다 짐이 될 텐데 뭐하러 굳이?’ 했다. 물론 대부분 3주 또는 그 이상의 일정으로 발리에 온 것이니 최대한 필요한 것이 있다면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겠지만, 나는 뭐랄까 내 집이 아닌 이상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지내는 것이 더 좋았다.
잠깐 다른 이야기이지만, 요즘 사람들은 집집마다 물건들이 넘쳐나서 문제이지 않은가. 그것 또한 결국에는 다 쓰레기가 될 텐데 굳이 해외에 나와서까지 물건을 사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쇼핑을 마치고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늘 물건을 제일 많이 산 엄마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발리 와서 며칠 동안 지내면서 딸의 장난감을 거의 챙겨 오지 않아 옆방의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같이 쓰다 보니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늘 나온 김에 그 아이 것까지 넉넉하게 구매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또 이해가 되기도 했다.
역시 모든 사람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지. ‘내 기준으로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를 다시 한번 느끼며 택시에 올라탔다.
P.S 1.
오늘 아침 아니 새벽에 근처 사원에서 울려 퍼지는 요상한 주문 소리에 일찍 잠이 깨는 바람에 아이를 깨우기 전 테라스에 나가 떠오르는 햇빛을 벗 삼아 모닝 독서를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이제 어느 정도 발리 생활에 적응을 했으니 앞으로 남은 날 동안 모닝 독서를 나의 루틴으로 추가해야겠다.
P.S 2.
발리에 온 지 5일밖에 안되었는데 지금 현재 내 속은 좋지 않다. 심지어 오늘 점심으로 스파이시 비프 라멘과 모둠 초밥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3년 만에 나와서인 건지, 그동안 내가 40대에 접어들어서인 건지, 예전에는 해외에 열흘 정도 있어도 한 번도 한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5일 만에 한식이 당긴다. 택시 타고 한식당 나가서 저녁을 먹자고 딸을 꼬셔 보았지만, 그녀는 아직 한식이 당기지 않는 모양이다. 정말 나이가 들어서 좋은 건 점점 줄어드는 게 맞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