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한달살이 Day 11
어제 아침 조식을 먹다가 화장실을 다녀온 딸이 설사를 했다고 했다. 물놀이 중간중간에도 춥다고 했었다. 느낌이 싸했다. 겨우겨우 캠프 일정을 마치고 룸으로 들어온 딸의 열을 재보니 37.9도. OMG.
친해진 언니의 아들도 다른 캠프 참여자들의 아이들도 아프거나 심지어 코로나에 걸린 경우를 봐와서 혹시 딸도 코로나가 아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선 해열제를 먹이고 작은 수건이 없어 급한 대로 내 티를 물어 적셔 얼굴 부위를 식혀주면서 제발 코로나만 아니기를, 좀 쉬고 나면 열이 떨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숨 자고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커튼을 치고 불을 다 껐지만 5층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에 나름 예민한 편인 딸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누워서 좀 쉰 효과인지 해열제를 먹은 탓인지 2시간 정도 후 열을 재어보니 37.2도로 떨어진 상태였고, 스스로도 아까보다 괜찮다며 잠은 나중에 자고 유튜브를 보겠다고 했다. 그래 아프면 좀 쉬어야지, 하고 싶은 거 해야지.
아이패드를 쥐어주고 나는 마트에 가서 마실 것 등을 사고 친한 언니에게 죽을 하나 빌려 식당에서 데워달라고 하여 가지고 올라와 먹였다. 한 그릇을 뚝딱 먹고는 신서유기를 보며 깔깔대는 걸 보니 오늘 해열제 한번 더 먹고 푹 자면 나아지겠다 싶어 속으로 한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밤 10시, 잘 준비를 하고 누운 딸이 뒤척이길래 “내일 오전 수업 듣지 말고 그냥 푹 잘래?” 했더니 그러고 싶단다. “알았어, 내일은 그럼 오후 수업만 들어간다고 말해 놓을게.” 했더니 그 뒤로 곧 잠이 들었다. 아마도 지난주 월요일 새벽에 도착한 이후로 계속 이어진 일정에 좀 지쳤나 보다.
그렇게 딸이 오전 수업을 째는 것으로 캠프 8일 차, 발리 11일 차가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새벽 6시 기도소리에 눈을 떠 모닝 독서를 조금 하고, 최대한 조용히 씻고 나와 조식을 먹고 방으로 들어왔다. 8:30에 들어왔는데 그로부터도 한참 후에야 딸이 일어났다. 오전 11시. 푹 잤는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고 했다. 룸서비스를 시켜 방에서 점심을 때우고 딸은 1시 오후 수업에 들어갔다.
딸이 수업에 들어간 후, 나는 뭘 할까 잠깐 고민을 했다. 고젯으로 택시를 불러 근처 몰에 가서 스타벅스 커피라도 먹고 올까 하다가 약간 더부룩한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5층에 있는 gym으로 가보았다. 러닝머신 4개 정도와 몇 가지 기구들이 있는 아담한 곳이었다.
그동안 해외든 한국에서든 호텔에서 머물 때 gym을 이용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실내에서 운동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머무는 곳은 실외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호텔 바로 근처 300m 거리의 마트를 걸어갔다 오는데도 노후한 차량과 오토바이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숨이 턱턱 막히기 때문이다.
월, 금 요가 수업이 있고 중간중간 물놀이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평소 한국에서의 활동량에 비해 움직임이 적어서인지 아랫배가 나온 느낌이 들어 언제 해봤는지 기억도 안나는 트레드밀 위에 올라가 보았다. 작동법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오락실에 있는 자동차 경주 게임처럼 내가 걸을 코스를 선택하는 화면이 먼저 나왔다. 뉴질랜드의 오솔길을 선택하고 거리를 설정한 후 속도를 4.5km/h로 설정하여 한 발씩 움직여 보았다.
트레드밀 위에서 걷는 게 일상이 아니다 보니 혹시라도 뭔가 설정을 잘못하여 발이 엉키거나 추하게 넘어지지는 않을까 살짝 긴장했지만 내 몸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점점 속도를 올려가며 제법 느리게 뛰는 정도로까지 몸을 움직여 보았다. 약 35분 정도 빠르게 걷기와 느리게 뛰기를 왔다 갔다 했는데 신기하게 소화가 되고 속이 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뭐라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무리하지 말자’를 되뇌며 트레드밀에서 내려왔다.
오후 수업을 잘 마친 딸을 만나 근처 마트에 들러 필요한 것을 사고 조금 더 밑 동네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초코를 한잔씩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호텔 5층 정원에서 바비큐 파티가 있었다. 닭고기를 제외한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질겼지만, 김치와 상추쌈과 쌈장과 고추에 만족해하며 오랜만에 저녁 메뉴에 대한 걱정 없이 빈땅을 배불리 먹으며 가벼운 수다를 떠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대동단결되어 엄마들의 수다가 조금 더 길어지기를 기대해보았지만, 큰 애들은 뛰어노는 것을 지겨워해 9시 전에 일어섰다. 그리고 지금 한국 시각 밤 10:30에 넷플릭스에 우영우 11화가 업로드 된다고 하여 그것을 기다리며 아까 쓰던 글을 급히 이어 쓰는 중이다.
오늘은 발리에 온 후 처음으로 호텔 반경 300미터를 넘어가지 않았고, 그래서 택시도 한 번도 타지 않았고, 사진도 많이 찍지 않은 날이다. 내일부터는 또 부지런히 여기저기 다녀야지. 고젯으로 하루에 택시를 여러 번 부르고, 사진도 많이 찍어대고, 그래서 새로운 글감을 쟁여두는 하루를 만들어야지.
그러기 위해 오늘의 글은 그야말로 초등학생의 일기 수준으로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