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한달살이 Day 10
발리 열흘 차, 캠프 7일 차인 오늘의 일정은 판다와 해변에 위치한 루스터피쉬 비치클럽을 가는 것이었다. 캠프 시작 전 미리 선택해야 했던 다양한 옵션들 중 오늘 갈 비치클럽을 학부모들도 함께 가는 옵션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좀 친해진 엄마들은 미리 다 신청을 한 상황이어서 나도 급 추가 신청을 하고 합류하게 되었다.
발리 하면 또 비치클럽인데, 사실 지난주에 멋모르고 갔던(하지만 나름 유명한 데였던) 싱글핀 말고는 아직 다른 곳을 가보지 못한 상태였다. 찾아보니 루스터피쉬도 나름 유명한 데여서 환한 아침에 가는 게 살짝 아쉽긴 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수영장도 있고 바다도 바로 코앞이라고 해서 애도 수영복을 입혔고 나도 안에는 수영복을 입고 반바지와 티를 걸치고 출발했다.
싱글핀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해변도 바로 연결되어 있고 군데군데 해산물 조각상들이나 포토존스러운 데가 꽤 많아서 역시나 우리들은 도착하자마자 사진부터 찍어댔다. 주요 스팟에서 홀로 또는 단체로 사진을 남기고 해변에 내려가 점프샷까지 야무지게 찍고 자리로 돌아와 웰컴 드링크를 먹고 낮빈땅과 피자를 먹고 앉아있자니 더웠다.
오늘의 멤버는 역시 4명. 이제 어느 정도 이 구성에 서로 적응이 되었는데, 한 명은 이번 주 목요일까지만 우리와 함께할 예정이다. 3명이서 계속 함께할지 다른 멤버가 추가될지 아니면 뿔뿔이 흩어질지 아직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앞서도 말했듯이 안에 이미 수영복을 입고 왔고, 1명은 갈아입을 수영복을 가져왔고, 1명은 그날이라 물에 안 들어갈 예정이었고, 1명은 수영복 자체를 안 가져왔다.
나는 우리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옷을 훌러덩 벗고 바로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더위가 싹 가셨고, 수영장에 들어가 바라보는 바다는 또 다른 뷰여서 역시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물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둥둥 떠있다가 사진을 잘 찍는 언니를 불러 나를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남는 건 사진이고, 오늘이 살아있는 날 중 제일 어린 날인데, 잠깐 부끄러워도 남길건 남겨야지! 사진을 찍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일행 중 제일 어린(나보다 5살이나 어린 젊은이) 엄마가 물어본다.
“언니는 그 사진들을 남편에게 다 보내줘요?”
아, 순간 느껴졌다. 어느 정도 짐작 또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비키니를 입고 사진을 찍어대는 내 모습을 조금은(어쩌면 꽤 많이) 이상하다거나 유난스럽다거나 튄다거나 과하다거나 아무튼 그다지 좋지 않게 봐왔구나 라는 것을.(지난주에 싱글핀 비치클럽을 갔을 때도 나 혼자만 비키니를 입었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들의 수다는 나 빼고 모두들 신혼여행이 비키니를 입었던 마지막이었으며, 사실 사진은 래시가드가 아니라 비키니를 입어야 더 잘 나오며, 서양인들은 몸매를 신경 쓰지 않고 비키니를 입는데 유독 한국 여자들이 좀 신경을 많이 쓴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내가 알기로 한국 여자들이 래시가드를 입는 또 다른 이유는 살이 탈까 봐서인데, 나는 남자든 여자든 구릿빛 피부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원래 엄청 하얀 편이었는데, 20대 시절 많이 태워서 지금은 일부분(얼굴과 비키니에 가려진 부분 정도)을 제외하고는 꽤나 탄 편이다. 수영장에 가서 몸에 오일을 바르면 발랐지 굳이 선크림을 바르고 그늘에만 있지는 않는다. 물론 그 여파로 팔과 어깨에 없던 점들이 많이 올라왔고, 한 때는 그 점들이 스스로 보기에 조금 흉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다시 비키니로 돌아와서 나는 심지어 만삭 때에도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비키니 위에 나시 티만 걸치고 사진을 찍어댔었고, 마흔이 넘은 지금도 몸매에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솔직히 래시가드를 입은 것보다 비키니를 입은 것이 나에게 더 잘 어울리고 실제로 사진도 더 잘 나오고 더 날씬해 보인다고 느껴서 주구장창 비키니만 입는다. 물론 밑에는 수영복 위에 반바지를 하나 더 걸치기는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비키니를 입고 사진을 찍어댔던 것은 지금의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물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결혼 전 4년 반 정도 사귀는 기간 동안 여름마다 수영장이나 바다를 자주 갔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장소는 두 군데인데, 한 군데는 이태원의 해밀턴 호텔의 루프탑 수영장이고, 다른 한 군데는 강원도의 하조대 해수욕장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2000년대 중후반) 해밀턴 호텔의 루프탑 수영장은 꽤나 핫한 곳이었다. 아마도 지금 내가 있는 이곳 발리의 밤의 비치클럽의 모습이 그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은데, 구릿빛 몸에 비키니는 기본, 문신은 액세서리, 비트가 강한 음악에 리듬을 타며 한 손에는 맥주나 칵테일은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있는 젊은이들이 가득했던 곳. 허여멀건한 밋밋한 몸에 수줍게 리듬을 타는 흉내를 내며 한 손에 맥주 정도 들고 있었던 나를 그때 당시 남친이었던 지금의 남편이 그래도 사진을 많이 찍어줬었다.
하조대는 지금은 핫플레이스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역시나 그 당시만 하더라도 강원도의 다른 바다에 비해 덜 알려졌던 곳이어서 그 한적함과 조용함과 깨끗함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는 곳이다.
아무튼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 몸매와 상관없이 수영장을 가면 언제나 비키니를 챙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정확히 언제인지 어느 해변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예전에 어느 외국의 비치에서 은발의 한 할머니가 모래에 수건을 깔고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서서 원피스를 벗고 바로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안에 수영복을 입고 와서 그렇게 바로 바다로 갔다가 나와서는 깔았던 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고 다시 원피스를 입고 돌아가던 그 모습.
나도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 간편하게 심플하게 홀가분하게 가볍게 자유롭게.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그 마음을 행동으로 지체 없이 연결해내는 추진력. 거기에 너무 추하지 않은 외형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