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째는 맛이지

발리 한달살이 Day 19

by 나우히어



오늘은 총 3주간의 캠프 일정이 끝나기 하루 전 날.


오전에는 두 그룹으로 나눠 차례대로 서핑을 하러 가는 일정이었고, 오후에는 1~2:30 - Ocean Layers Experiment, 2:30-4:00 - Movie Afternoon이었다. 오전에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엄마들끼리 의견이 모아졌다. 2:30에 애들을 데리고 단체로 비치클럽을 가자고. 하지만 어느 비치클럽을 갈지는 살짝 의견이 분분하다가, 마지막에 극적으로 선데이즈 비치클럽(내가 지난 주말에 딸과 가려다 웨딩 손님들로 만석이라 못 갔던 곳)으로 합의를 보았다.



아이들이 이제는 익숙해진 짐바란 비치에서 서핑을 능숙하게 하는 동안 엄마들은 각자 좀 쉬다가 12시 좀 넘어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나는 옷을 갈아입는 게 귀찮을 것 같기도 하고 어제 많이 걸어서 발마사지 60분을 요청했다. 수동 리클라이너가 있는 룸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지 않고 의자에 누우니 마사지가 시작되었다.

왼쪽 발 먼저. 발 마사지지만 발만 해주는 것은 아니고 종아리 부분도 같이 해주니 더 좋았다. 왼쪽 발 마사지가 끝나갈 무렵 스르르 눈이 감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이 들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하면 잠을 깰 수 있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른쪽 발로 마사지가 옮겨가는 것을 살짝 느낌과 동시에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러다 마사지가 끝나갈 때즘 자연스럽게 잠에서 깨어났다.


한 15~20분 정도였을까? 아니면 그것보다 더 짧았을 수도 있고.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잔 낮잠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발마사지를 받으면서 자서 그랬는지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재충전을 한 후 2:30 경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있는 곳으로 가 한 명씩 차례대로 불러냈다. 어제부터 얘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오늘 아이가 캠프에 체크인을 한 후 확정이 된 내용이어서 아이에게는 말을 할 기회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


오전에 서핑을 하고 와서 나른한 상태로 불을 꺼놓고 영화를 보고 있던 아이들은 부스스한 얼굴로 나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다가 각자의 엄마들을 확인한 후 안심을 함과 동시에 “또 수영장을 가?” 하며 투덜대더니 이내 현실을 파악하고는 “우리 수업 빠지고 놀러 가는 거네?”하며 신나 했다.


그래 수업은 땡땡이를 쳐야 아니 째야 맛이지. 나도 왕년에 수업을 좀 째봐서 알지 그 맛을.


암튼 그렇게 2:30에 데리고 나왔는데도 어른 5명, 아이 5명의 인원이 택시를 나눠 타고 이동해 비치 클럽에 입장한 후 자리를 잡으니 4시가 다 되었다. 4시에 끝나고 왔으면 거의 6시가 다 되었겠구나.


수영장이 있는 곳을 지나 아래로 계단을 조금 내려가다 보니 밑이 훤히 보일 정도로 깨끗한 바다가 눈 아래 펼쳐졌다. 해변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는 시스템. 한 번에 탑승 인원이 6명이어서 빨리 바다로 내려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어쩌다 내가 먼저 케이블카에 몸을 싣게 되었다. 내려가는 동안 케이블카 난간에 옹기종기 붙어 바다를 조금이라도 더 보려는 아이들과 도착한 해변은 그동안 발리에서 봤던 바다들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나머지 엄마들도 모두 내려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하는 동안 초1, 초3, 초4, 초5, 중1 아이들은 이제 본 지 3주가 되어가다 보니 다행히 알아서 함께 잘 놀아주었다.



그래서였겠지. 모처럼 해변에 놓인 빈백에 몸도 누여보고, 주변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애정행각을 나누는 커플들도 구경해보면서, 그동안 가봤던 비치클럽에서와는 또 다른 나를 마주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 마음에 생긴 여유가 아이와 함께 모래사장에 'LOVE BALI'라는 문구를 남길 에너지를 가져다주었고, 아이도 또래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호텔로 가서 또 수영장에서 더 놀겠다며 에너지가 충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발리에 와서 처음 한 일주일 정도는 딸의 컨디션이 아주 좋은 편이 아니었다. 3주의 캠프 기간 동안 도착하자마자 아팠던 경우, 중간에 아팠던 경우, 마지막에 아팠던 경우가 아이들 또는 부모들마다 다양했다. 물론 가장 좋은 경우는 한 번도 안 아픈 것이겠지만, 아이들 모두 해외에 오랜만에 나온 상황이고,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아직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계속 퍼져있는 상태이니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어른들도 심하게든 가볍게든 한 번씩은 아프고 넘어가는 상황이다.

있는 동안 한 번은 아파야 하는데 그럼 언제 아플래?


아픈 기간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나는 캠프의 초반을 선택했을 것 같다, 뭐든지 처음에는 좀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한 법이니까 그때 좀 아프다는 핑계로 한발 물러나 있다가 서로 좀 친해지고 익숙해지고 편해졌을 때 컨디션도 좋으면 남은 기간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게 될 테니까.



오전에 서핑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 또 수영을 하고 오후에 비치클럽에 가서 바다와 수영장을 오가며 논 딸은 진짜로 밤 8시에 호텔에 도착했는데도 또 수영장을 가겠다고 했다. 그래 놀 수 있을 때 실컷 놀아라.

얼마 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10회에서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 외쳤던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둘,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셋,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를 발리에 와서 충분히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건강하게 놀며 행복하기.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실제로 많은 어린이들이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기에 드라마에서도 저런 문구를 대사로 쓴 것이 아닐까. 아직은 어린이인 내 아이가 이번 여름 발리에서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가득 안고 돌아간다면 그것으로 집 떠나와 개고생(&돈지랄)을 선택한 나의 결정에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캠프 마지막 날을 앞두고 딸이 아쉽다는 것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물어본다. 3주 동안 친해진 또래들과 선생님들과 헤어지려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가 보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야 다음에 또 오고 싶을 테니까 이 아쉬운 마음까지도 즐겨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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