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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Nov 22. 2019

변하지 않는 건 사람일까 자연일까?

성장판 온라인 글쓰기 6번째 글



며칠 추웠다는 핑계로 아침 걷기를 생략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기온이 조금 올라간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운동화를 신고 운동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챙겼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마구 드나들었다. 그러다 숨이 가빠오고 겨드랑이에 땀이 차기 시작하자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이번 주 성장판 글쓰기의 주제는 무엇으로 해야 할까. 그 생각만 하며 걷다가 나뭇잎을 보았고, 그 순간 머릿속에 글과 관련된 생각들이 좍 펼쳐졌다.



내가 아침마다 걷는 코스는 약 4km 남짓의 가벼운 산책길이다. 사실 제대로 운동이 되려면 더 멀리까지 다녀오거나 아니면 적어도 같은 길을 두 번은 왕복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 실천을 못하고 있다. 이사 온 지 언 2개월. 예전 동네도 나쁘지 않았지만, 새로운 동네가 더 좋다. 집 앞이 다 공원이다. 모든 길이 다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빠른 걸음으로 20분 정도 가면 자그마한 동산이 하나 나온다는 것이다. 산책로를 걸을 때도 공기가 나쁜 편은 아니지만 확실히 그 동산에 들어서면 공기의 냄새와 소리가 확 달라짐을 느낀다. 나무와 흙과 이슬이 만나 내뿜는 상쾌한 향기. 내 발소리에 놀라 후두둑 도망가는 작은 산새들의 귀여운 몸짓. 내가 흙만 밟으면 심심할까 봐 기꺼이 자기 몸을 내 발 밑에 내어주는 젖은 나뭇잎들.



그 젖은 나뭇잎을 동산에 올라가며 보았고, 내려오며 또 보았다. 올라갈 때 본 나뭇잎은 왠지 쓸쓸한 느낌이었다. 서리가 잔뜩 덮여있는 그 모습이 검은 머리카락보다 하얀 머리카락이 더 많아진 아빠의 머리를 보는 듯했다. 인생의 뒤편에서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외로운 느낌. 하지만 내려올 때 본 나뭇잎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잠깐 사이 어느덧 사라진 서리 대신 물기를 머금어 생생하게 살아난 나뭇잎, 물을 핥아먹다 뒤돌아보는 고양이의 콧잔등에 묻은 물방울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느낌.

그 잠깐 사이에 변한 것은 나뭇잎이었을까, 나였을까.

변화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자연은 항상 그대로인데 사람이 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자연은 하루하루 다른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사람을 평가하는 여러 가지 말 중 “한결같다”는 말은 칭찬의 말로 자주 쓰인다. ‘한결같음’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나오는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자리에서 주인공을 위로해주는 나무와 같은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한결같음’은 ‘변하지 않음’과 거의 비슷한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함’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단어만 놓고 보면 비슷한데, 앞뒤에 어떤 내용이 붙느냐, 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가 어떤가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 내가 일하던 곳에 10년 이상 근무했던 상사에게 누군가가 “00님은 참 한결같으세요~.”라는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나의 상사는 환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었다. 나는 그 장면이 참 잊히지가 않는다. 내가 그 말을 한 사람이 아니니까 100% 진실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그 말이 칭찬이 아닌 비꼬는 말로 들렸었다. 참 한결같으세요. ->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네요. -> 좀 변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사실 2020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이다. 또 하나의 글감이 정해졌네) 새해 첫날, 많은 사람들은 지난해의 못다 한 일들, 못 지킨 약속들을 돌아보며 다이어리 첫 장에 올해 할 일들을 채워 넣는다. 그리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알린다. 그러면 약간 염세적인 사람들(바로 나)은 꼭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작년에 못했는데 과연 올해라고 할 수 있을까?"

역시 예전에, 아주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나를 보며 “넌 참 여전하다~”라고 했었다. 이 경우에는 내가 그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와 그리고 그 말의 앞뒤에 한 말을 모두 알고 있기에 나를 칭찬하는 말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 사람을 만난 지도 꽤 오래되었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때도 나에게 “여전하다”라고 말할까? 왠지 아닐 것 같다.

나는 과연 한결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변화무쌍한 사람일까. 한결 같이 변화무쌍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스스로에게 너무 후한 건가.

짧은 시간 동안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



해가 지면 어둠이 찾아오고, 해가 뜨면 아침이 밝아온다. 살랑살랑 봄바람에 사람을 설레게 만들었다가 뜨거운 열기로 짜증 나게 했다가 떨어진 낙엽을 보며 우울하게 했다가 매서운 칼바람에 지쳐 떨어질 때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꽃을 피워 또 사람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주는 자연.       

역시 걸으니 좋구나. 오늘 아침 걷지 않았다면, 동산 초입의 서리 묻은 나뭇잎들의 변신을 보지 못 했을 테고 그럼 지금 이 글도 탄생하지 못했을 테니.

솔직히 이렇게 걸으면 좋은 걸 알면서도 매일 걷겠다는 약속은 못하겠다. 나는 한결 같이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오늘 이 시간 이후로 또 한 가지 다짐을 마음속에 품어본다. 앞으로는 걸을 때마다 글감을 하나씩 생각하고 구체화시키기. 오랜 시간 진흙, 모래, 자갈이 쌓이고 쌓여 지층이 되는 것처럼 오랜 시간 내가 쓴 글이 쌓이고 쌓여 지금보다 조금은 더 한결같은 내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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