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함부로 권유하지 말아요

by 이해

존재의 한 면을 지탱해 주던 직업이 사라졌다. 통장이나 카드를 개설할 때면 그것이 더 뼈저리게 느껴졌다. 직업 항목에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직'뿐이었다. '무직'이란 단어가 얼마나 아프게 다가오던지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너도 나도 퇴사를 외치는 세상에서, 그 외침에 동조하곤 했다. "퇴사하는 게 왜 어려워? 알바만 뛰어도 먹고사는 데에 지장이 없는데. 한 달에 150만 원만 벌어도, 아니 100만 원만 벌어도 굶어 죽지는 않아." 실제로 그런 말들을 SNS에 게시했고, 심지어 책에도 비슷한 내용을 썼다. 허나 직접 겪어본 퇴사 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경험상 알바는 대체로 젊은 사람들을 선호해서 나이가 좀 있다 싶으면 후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여러 군데를 지원하고 면접을 봤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또한 된다 해도 부모님, 가까운 가족, 친척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했다. 30대에 알바를 한다는 게 어른들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명절이나 제사가 제일 싫었다. 어쩔 수 없이 어른들을 마주해야 하는 날들이면 뭐든 싫었다.


개개인이 처한 조건과 상황은 모두 다르기에, 내가 쉽게 했다고 해서 남들도 똑같으리라는 법도 없다. 남들에게 퇴사를 함부로 권유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힘들어하면서도 쉽사리 퇴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퇴사 결정을 후회한다는 뜻은 아니다. 5년 동안 몸담았던 직업을 내려놓음으로써 '재활치료'라는 일에서 내 정체성을 찾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즉 직업과 '나'를 동일시하며 살아왔다. 예컨대, '나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이런 말을 하면서 자신의 에고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그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의 존재를 마주하는 길로 가고 있다.


'직업이 없다면, 어떤 사회적 역할도 없다면.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뭘까?'




이 의문이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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