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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May 17. 2019

"여기에 온 세상이 다 들어와 있어요"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1.

"여기에 온 세상이 다 들어와 있어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자,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시력을 상실하는 전염병이라는 극단적인 가상의 소재를 서술했지만, 결국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가 얼마나 막장으로 치달을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 소설이 아닐까.


감염자들이 감금된 병실이 하나의 작은 사회라고 볼 수 있겠다. 몇 안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인 계급이 생긴다. 선천적인 맹인은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이유로, 깡패는 힘과 폭력을 휘두르며 남들보다 우위에 선다. 상대적 약자인 일반 환자들은 의사 아내의 말을 생활 수칙이자 교리처럼 믿으며 마치 종교처럼 그녀에게 기대고 싶어 한다. 늘 잘못된 방식으로 권력을 취하는 무리는 등장하기 마련이고, 힘없는 자들은 대개 생존을 위해 순응하는 쪽을 택하기 마련이다. 마지막에 의사 아내와 생존자들이 병원에서 탈출해 바깥세상 역시 모두가 눈이 멀어 폐허가 된 모습을 봤을 때, 결국 어디든 인간 집단, 사회는 똑같다는 허탈함 같은 것도 느끼지 않았을까.


2.

왜 소설 속 전염병 환자들은 '인간답지 못한' 이들로 묘사되었을까.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적어도 완전히 동물처럼 살지는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시다." 감각을 상실한 집단은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걸까.


감각이란 본능이 이끄는 대로만 행동하지 않게 해주는 일종의 본능 제어장치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앞을 볼 수 없으니,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나의 사회적 위치, 남들의 평가 같은 건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내 욕구만 해소하면 된다는 생각 아니었을까. 보는 이 없으니 병실 한가운데서 용변을 보고, 남의 배우자를 탐하는 등 순간의 말초적인 욕구에만 충실했던 게 그들이 말하는 '인간답지 못한' 행동들이었을 것 같다.


3.

지나치게 사실적인 묘사에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장면들이 상상되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 만약 내가 의사 아내 입장이었다면, 과연 그 끔찍한 광경들을 다 보고 견딜 수 있었을까.


보고 싶은 것을 못 보는 것 vs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는 것, 어느 쪽이 더 괴로울까?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세상 모든 걸 너무나 잘 볼 수 있어서,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받고,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고, 느끼지 않아도 될 불편함까지 굳이 다 느끼는 건 아닌가 하는 심오한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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