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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놀라운 나의 세 번째 뉴욕

Day 1. 월드트레이드센터 - 9/11 메모리얼

by 이리터

지루하고 지겨웠던 14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미국 땅을 밟았다. 미국은 나에게 비교적 친숙한 나라다. 초등학생 시절과 대학생 시절 교환학생으로 잠깐 살았었고 그동안 여러 도시를 여행했다.


그러다 보니 이 나라의 대표 도시 뉴욕은 벌써 세 번째다. 첫 번째 여행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렸고, 두 번째 때에는 너무 가난했다. 그래서 세 번째가 필요했다. 주체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볼 수 있는 경제력이 생기고, 세상을 보는 시각과 취향도 다듬어진 지금의 내가 보는 뉴욕은 분명 이전의 뉴욕과는 다를 것이다.




8년 만에 다시 본 뉴욕 하늘은 다행히 매우 맑음이었다. JFK 공항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에어트레인 창밖으로 보이는 하이웨이는 제법 익숙한 풍경이었다. 내 기억 속의 그 미국 풍경.

JFK 에어트레인

맨해튼 땅을 밟자마자 짐을 풀러 숙소를 찾아갔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출구도 헷갈리고, 좁은 골목에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 너무 많아 조금 헤매긴 했지만. 낯선 도시에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이 정도의 역경은 여행의 설렘으로 봐줄 수 있는 애교다.


줄 서서 체크인을 기다리는데 프런트 직원에게 자꾸 시선이 빼앗겼다. 분명 남자분이었는데, 긴 생머리에 새빨간 네일을 하고, 딱 달라붙는 스키니에 하이힐까지 신은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연신 감탄했다. 개성이 존중되는 건 당연하고, 그게 곧 멋이 되는 여기가 바로 뉴욕이구나 새삼 실감했다.

호텔 2층 로비와 바

8박 9일 동안 우리는 총 세 군데의 숙소에 머물게 된다. 첫 2박은 다운타운에 있는 부티크 호텔, 다음 3박은 미드타운에 있는 한인민박, 마지막 3박은 퀸즈에 있는 호스텔 도미토리다. 일명 '부자에서 거지로' 컨셉. 나름 돈 버는 직장인답게 여행하고 싶었지만, 숙소 값이 비싼 뉴욕에서는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첫 숙소 Moxy NYC Downtown은 고심해서 고른 보람이 있었다. 베스트 뷰는 아니지만 통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은 우리가 지금 뉴욕에 머물고 있다는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드와 블랙 톤의 인테리어도 세련됐고, 침대 한쪽엔 협탁, 반대쪽에는 그네가 있는 것도 신박했다. 무엇보다 TV로 유튜브·넷플릭스·스포티파이를 이용할 수 있고, 핸드폰으로 쉽게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동할 수 있어 편리했다.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힙한 호텔 브랜드라는 말, 인정한다.

16층 퀸룸

신난다고 한참 호들갑을 떨다가 이런 순간에 노래가 빠질 수 없다며,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동해 뉴욕 입성 기념곡으로 제이지의 'Empire State of Mind'와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틀었다. 춤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파티도 잠시, 친구는 뉴욕에서 유학하는 친구를 잠깐 만나기로 해서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고, 나는 조금 더 여유롭게 휴식을 취한 후 근처 다운타운을 쓱 한번 둘러보러 나갔다.




아까 캐리어 끌고 숙소 찾아 헤맬 때는 못 보고 지나쳤던 광경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프레임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높은 빌딩 숲,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 성가시지 않을 정도의 생동감 넘치는 도시 소음. 여전히 놀라운 나의 세 번째 뉴욕이다.


비록 맨해튼의 가장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미드타운이나 타임스 스퀘어는 아니지만, 충분히 내가 뉴욕에 와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히려 로워 맨해튼이 그쪽보다 더 깔끔하고 품격 있어 보이는 대도시의 느낌이라, 이 정도면 뉴욕의 첫인상으로 나쁘지 않은 동네인 것 같다.

여긴 모든 게 크고 높고 빠르다

숙소에서 한 블록만 나오면 바로 월드트레이드센터(WTC)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길래 가봤더니 웬 푸드트럭이 길 한복판에 줄지어 있었다. 브루클린에서 열리는 푸드마켓 '스모가스버그(Smorgasburg)'가 이벤트성으로 월드트레이드센터에도 몇 번 열린다고 봤던 것 같은데, 마침 오늘이 그 날이었구나. 운이 좋았다.

World Trade Center

음식 냄새를 맡으니 출출해져서 간단히 뭘 좀 먹기로 했다. 고민 끝에 $5짜리 타코를 골랐고, 내 손바닥 보다도 작은 크기라 그냥 한쪽 구석에 서서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냥 허기 달래려고 금세 뚝딱 먹고 버린 나와는 달리, 현지인들은 이것을 하나의 축제처럼 여유롭게 즐기더라. 미국 사람들은 길바닥에 그냥 철퍼덕 앉는 거에 정말 거리낌이 없다. '내가 앉는 곳이 곧 내 자리다', '이곳이 바로 내가 사는 도시다' 하는 당당함.

Smorgasburg @ WTC

바로 옆이 오큘러스. 거대한 상아색 뼈대, 완벽한 대칭, 그리고 정중앙에 성조기. 진짜 미국스럽다. 커다란 새의 모양을 본떠 만든 건축물이라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마치 거대한 가시고기에 잡아먹혀서 뱃속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상상이 든다. 쇼핑몰 자체는 특별할 건 없어 '속 빈 강정' 같았지만 특이한 건축물 보는 재미는 확실히 있다.

The Oculus




그리고 꼭 직접 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에 9.11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9/11 메모리얼이다.

9/11 Memorial

2001년 9월 11일, 그날의 기억이 비교적 또렷하다. 당시 나는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보통 9월에 학기가 시작하니 미국 학교 다닌 지 한 2주 됐으려나. ESL이라고 외국에서 온 학생들을 위한 특별 영어 수업을 마치고 본 교실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안 보이고, 친구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웅성웅성거렸다. 이제 학교에 막 적응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내일부터 다른 선생님 반으로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집에 가서 엄마 아빠가 틀어놓은 뉴스를 훔쳐보고, 또 한국으로부터 불이 나도록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서 조금씩 무서워졌다.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지 어린 나이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태어나서 간접적으로 겪어본 일 중 가장 큰일이 터졌다는 것만은 분위기로 눈치챌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뉴욕에 사는 선생님 아들이 테러로 희생당해 당분간 자리를 비우셔야 했고, 학교 측에서는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나에게는 다른 선생님의 케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18년 전 그해 겨울, 내 생애 첫 뉴욕은 가운데에 깊고 어두운 구멍이 하나 뻥 뚫린 채 그 날의 상처를 지우지 못한 슬픔 그 자체였는데. 다행히 오늘날 그 자리에는 깊고 고요한 폭포가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었다.

생일을 맞은 희생자 이름에 꽃을 꽂아준다. 폭포는 유가족의 눈물을 상징한다.

조용히 폭포 소리를 감상하다가 마음이 먹먹해졌는데 눈치 없게 날씨가 너무 좋고, 뉴욕은 여전히 아름답다. 친구는 저녁 먹을 때쯤 돌아오기로 해서 아직 시간이 꽤 남았다. 혼자 어디까지 봐야 하지 고민하다가 그냥 맨해튼 남쪽 끝까지 우선 걸어본다. 쭉 걷다 보면 바다에 닿겠지.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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