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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Apr 30. 2020

4월, 내가 드라마 폐인이 될 줄이야

2020년 4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4월에 읽은 책과 잡지

• 책 <일하는 마음> - 제현주  

- 거의 매 페이지마다 한두 문장씩 밑줄 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될 때마다 꺼내보면 도움이 될 책.

"세상 쓸모없(어도 되)는 이 일 때문에 나에게 부과되는 모든 쓸모 있(어야 하)는 일들의 무게가 별것 아니게 느껴지는 순간, 내 일상 속에서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다."

"잘하고 싶은 게 있으면 괜찮은 것 같아." "’사니까 사는 거지’가 아니게 만드는 건 그런 일이야."

"자아는 원래 조각나 있다. 찾아야 할 것은 '진정한 나'가 아니라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다른 무대 위의 다른 배역이다."

"전문성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인정이라면, 탁월성은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스스로 쌓아가는 역량이다."

"서로의 시도와 성취들에 대해 (칭찬이 아니라) 감탄하는 것. 그 감탄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이 서로를 향한 최고의 임파워먼트라는 점이다."


• 책 <아무튼, 방콕> - 김병운

- 순전히 방콕 가고 싶어서 읽은 책인데 살짝 아쉬웠다. 그동안 '아무튼 00' 시리즈는 저자가 그 대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삶이 변했는지를 서술한, 저자와 그의 애정 대상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저자와 그의 애인의 방콕 여행 에피소드 중심이라 독자 입장에서는 살짝 소외감이 들었다. 그래서 왜들 그렇게 방콕을 좋아하는지 알려면 내가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 책 <쓰기의 말들> - 은유

- 이 책을 읽으면 절로 글이 쓰고 싶어 진다는 후기가 딱 맞았다. 한쪽에는 글쓰기와 관련한 유명 작가들의 명언, 그리고 한쪽에는 그것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가 실려있는데, 그 짧은 글로도 왜 내가 글을 써야 하는지를 충분히 설득한다. 마치 나그네의 옷을 절로 벗게 하는 해님처럼 부드럽고 젠틀하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사색하고 책들을 보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흐름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 버지니아 울프

"글을 쓰지 않으면 내가 소멸될 게 분명했다. 생존의 글쓰기. 글이 나를 쥐었다."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나를 세계로 밀어내니 세계가 나를 글로 밀어준다."


4월에 즐겨들은 음악

•내가 꾸린 팝 플레이리스트

- 4월 초중순에 K팝씬이 노잼이라 웬일로 팝만 들었던 날들이 있었더랬다. 유튜브 알고리즘 믿고 모르는 노래 몇 개 들어보다가, 취향에 맞는 아티스트를 알아가고, 관련 곡들을 더 찾아보고 해서 팝 플레이리스트를 꾸렸다. 아티스트로 보자면 5SOS, RUEL, Johnny Balik 비중이 많은 편이다. 쟈니발릭 씨는 어느 나라 분인지 모르겠지만, 약간 호주 쪽 감성이 나랑 맞나 싶네. 나중에 곡이 좀 더 쌓이면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해봐도 괜찮을 듯.


•샤이니의 노래들

- 샤이니 노래가 땡기는 계절이다. 이젠 다시 볼 수 없는 얼굴이 떠오르는 4월이기도 하고 그래서 봄에 어울리는 샤이니 노래를 많이 찾아들었다. 나의 최애곡 드림걸부터 방백, So Amazing, Colorful, Black Hole, Romance, Punch Drunk Love까지. 아, 그리고 가장 최근 앨범 수록곡 Jump에서 확 꽂힌 구절이 있다. "완벽한 날씨가 아까워, 이러는 내가 안타까워"


4월에 즐긴 문화생활 겸 콘텐츠

- 결국 왓챠플레이 구독 신청해버렸고 한 달 내내 드라마 폐인으로 살았다. 호흡 긴 거 안 좋아해서 드라마를 거의 안 보는 편이었는데, 왓챠에서 좋은 작품들을 접해보니 왜 다들 영드, 일드, 미드 하는지 알겠더라. 드라마 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네요.. 태어난 지 30년 만에 적성 찾은 듯.

•영국 BBC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

- 이 드라마가 그리는 다가올 미래가 너무 그럴듯해서, 전혀 헛소리 같지 않아서 더욱 공포스럽다.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라는 일침이 주는 타격에 한동안 벙쪄있었다. 2030년대가 오는 게 두렵다. 그 미친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떻게 건강한 정신과 안전한 육체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일본 TBS 드라마 <중쇄를 찍자>

- 일드 특유의 오버스러움도,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캔디st 여주인공도 내 취향은 아니지만. '일'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주제들을 던져줘서 끝까지 집중해서 봤고, 살짝 슬럼프를 겪고 있던 지금의 나에게 필요했던 자극이 되어줬다. 특히 무리한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차피 안 될 거라고 돌아서는 코이즈미를 쿠라사와가 "한번 말이라도 해볼 수 있잖아요" 라며 붙잡는 장면에서는 왜 눈물이 났을까. 말이라도 해보는 거, 어려운 일 아닌데 그동안 꺼내보지도 못하고 접어버린 수많은 생각들이 생각나서 부끄러웠다. 일잘러가 되고 싶은 신입사원, 아직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주니어들이 꼭 한번 보면 좋을 작품이다.

"당신은 늘 이성적이고 그 모습이 애처로워."
"만약 운을 모을 수 있다면 나는 일에서 이기고 싶다."
"항상 자신에게 물어봐라. 내 일이라고 가슴 펴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세상에 내보내고 있는지."


•미국 HBO 드라마 <뉴스룸 시즌1~3>

- 진정한 언론의 역할과 내가 절대 잃지 않아야 할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워준 작품이다. 조금 늦더라도 충분히 검토한 후 정확한 소식만을 전하는 것, 믿을 만한 정보원으로부터 확실한 입장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 보도하지 않는 것.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현실적인 이유들로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 재선, 빈 라덴 사망, 보스턴 테러 등 실제 사건을 각색 없이 다룬 것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절대로 현실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못할 걸 알기에 더더욱. 그 사건 당시 언론인들이 어디에선가 이렇게 치열하게 취재하고 열띠게 토론했을 걸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또 이 시대는 어떤가. 맥켄지가 리드하는 ACN 보도국이라면 지금 이 트럼프 시대와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다뤘을까.

"사람을 갖고 놀다 보면 감수성을 잃게 돼."
"아주 잠깐씩은 더도 말고 3초만 시간을 내서 자네들이 어디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4월에 잘한 소비

•필리 영양제

- 이제 슬슬 건강 챙겨줄 나이가 된 것 같아서, 몸 상태와 라이프 사이클에 대한 간단한 설문을 바탕으로 나에게 필요한 맞춤형 영양제를 추천해주는 필리를 시작했다. 비타민B, 밀크씨슬, 프로바이오틱스를 추천받아 바로 주문했고 매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영양제의 효과를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속는 셈 치고 한번 믿어보련다.


4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큐뮬러스의 로스트비프 샌드위치

- 이 맛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전하지 못하는 나의 표현력의 한계가 개탄스러울 따름. 뭔데 이렇게까지 맛있는 건지? 싶었다. 식빵 사이에 고기와 야채, 치즈가 들었을 뿐인데 엄청 고급스러운 음식 맛이 났다. 특히 저 고기가 심상치 않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엄청 좋은 부위를 공들여서 조리하셨을 듯. 여기 샌드위치는 내가 꼭 다 먹어보고 만다.


•피코크 솜치즈

- 와 이거 미쳤다.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리면서 치즈의 단짠 맛이 쏵 퍼지는데 웃음이 절로 난다. 완전 내 스타일. 맥주 안주로도 훌륭하고. 옆에 쌓아두고 먹으면 사료처럼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위험하다.


4월에 마신 카페


4월에 잘한 일

-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밀레니얼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 빌라선샤인의 시즌4 멤버가 되었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고급지면서 속 시원한 문체로 대신해주는 여성 작가들을 알게 되었고, 산책하면서는 '듣똑라'와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같은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 자신의 일에 대한 프라이드와 전문성을 갖춘 사람, 분명 이미 잘하는 사람들일 텐데 더 잘하고 싶어서 노력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고, 친해지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은 바로 그런 여성들이다.


4월에 아쉬웠던 일

- 다행히 코로나가 많이 진정된 것 같아 5월부터는 다시 출근을 할 테고, 이전의 일상 비슷하게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2~3월은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다면, 4월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나만의 시간을 좀 더 알차게 써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뒤늦게 남는다. 나는 4월 내내 뭐했나요? 왓챠 봤죠.. 명작들을 본 시간이 아까운 건 아닌데. 누구는 그동안 새로운 취미 생활도 하고, 미뤄왔던 사진과 영상 편집도 하고, 홈트로 다이어트하고 그랬다는 얘기를 들으면 현타가 오긴 한다. 나만 제자리걸음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


4월에 행복했던 순간

1. 두 달 만에 회사 출근, 빈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는데 집중이 잘돼서 뿌듯

2. 날씨 좋은 날 킥보드 타고 5.6km 달려서 집에 돌아오던 길

3. 뉴스룸 시즌1 마지막 에피소드가 딱 끝났을 때 '와, 내가 엄청난 작품을 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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