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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Aug 29. 2020

8월, 잃어버린 인류애를 찾습니다

2020년 8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8월에 읽은 책과 잡지

• 책 <내향인입니다> - 전민영 

- 극 I형 인간으로서 구구절절 공감하고 크게 위로를 받은 책. 세상에는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 두 부류가 있을 뿐인데, 왜 이 사회에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게 좋은 성격, 낯 가리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게 문제 있는 성격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걸까. 정말이지, 나는 지나치게 예민해서 늘 조심하고 배려하는데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둔감해서 상처 받곤 한다. 

"<센서티브>의 저자 일자 샌드는 "민감성은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내면이 복잡한 만큼 풍요롭고, 타인의 감정에 동화된 만큼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지독하게 혼자가 되고 사람과 세상과 거리를 두면 둘수록 사람이 점점 더 좋아졌고 세상이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중략)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건 함께하려는 시도가 아닌 사람과 함께한 만큼 혼자 보내는 시간이었다."

"사람에게 털어놓는 내 모습보다 언제나 글로 풀어낸 내 모습이 나를 더 닮았다. (중략) 조용히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나는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또 다른 자아와 조우하게 된다."


• 책 <이대로 괜찮습니다> - 호소카와 텐텐, 미즈시마 히로코

- 자타공인 '네거티브 퀸' 텐텐의 상담치료 과정을 기술한 책. 따뜻한 격려가 필요한 건강한 우울과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을 명확하게 구분해준 점이 좋았다.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나름 내 삶을 지키면서 사회생활도 하는 나는 아직 괜찮은 거라 위안 삼으며, 마음이 놓인 건 사실이다. 나의 상태를 스스로 이미 단정 짓고 다짜고짜 동의나 위로를 구하는 식의 커뮤니케이션도 지양해야겠다는 교훈도 얻고.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건 친하게 지낼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잘 구분한다는 거예요."

"부정적인 성격 자체보다 자신의 평가를 유일한 진실인 것처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 문제. (중략)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기분을 전한다면 많은 사람이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여줄 것입니다."

"저 사람도 결국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지간한 일들은 용서가 된다."


• 책 <프릳츠에서 일합니다> - 김병기·이세라

- 이 책은 좋은 커피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교본도, 한국 태생 커피 브랜드가 어떻게 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았는지 보여주는 성공 신화도 아니다. 커피와 빵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본질은 일을 대하는 태도와 조직 관리에 있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 뭘 해도 성공했을 것.

"오늘 만든 빵의 기록이 내일 만들 빵의 선생님이 되는 것"

"'자기 삶을 책임지는 예술가의 높은 성취'라고 표현합니다. 하루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삶보다 성실한 하루하루를 반복해 살아내는 것이 더 힘들고 숭고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두 각자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면, 이 세상에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해요."


• 책 <도쿄의 디테일> - 생각노트

- 오래전부터 생각노트 뉴스레터, 블로그, SNS를 구독하며 좋은 인사이트를 많이 얻고 있는데, 책은 뒤늦게 읽어본다. 벌써 나온 지 2년도 더 된 책이기에 지금 봐서는 딱히 엄청 새롭거나 놀라운 내용은 없지만. 역시 중요한 건 이렇게 사소한 디테일을 캐치하는 시선, 하나하나 의미 부여하며 감탄하는 마음이라는 걸 깨닫는다.


• 책 <아무튼 피트니스> - 류은숙

- 거울 속 모습에 만족을 못해서, 이성을 만나기 위해서, 연예인 몸매를 질투해서.. 왜 아직도 몇몇 사람들은 열심히 운동하는 여성에게는 딱 이 정도 이유가 전부일 거라고 함부로 생각하고 비아냥거리는지. 저자는 살기 위해 일할 수 있는 몸을 만드려고 운동하고, 비슷한 예시로 '운동뚱'의 민경장군은 좋아하는 걸 더 잘하기 위해서 운동한다. 나는 노력하면 달라진다는 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본 경험이 인생에 가장 보람찬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어서, 그걸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운동하고 싶어 졌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다시.

"삶이 지루하다 해서 매일 여행을 떠나고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 순 없다.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 책 <습관성형> - 이지수

- 처음에는 '습관성형'이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렇게 책으로까지 읽어보니 다노언니가 나름 인체와 영양은 물론 심리학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하는 말이라는 게 와 닿아서 나에게도 습관 변화가 필요하다고 믿게 된다. "살이 빠지는 원리는 과학의 영역이지만 다이어트를 끝내 성공시키는 것은 심리학의 영역이다."


• 책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 정지혜

- 누군가가 오래 꿈꿔오던 일을 진짜 실현해낸 이야기는 늘 짜릿하다. 비범한 '난사람'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나와 크게 다를 바 없이 걱정 많고, 소심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는 사람이 시행착오 끝에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이야기라 더욱 힘이 된다.

"단점을 뒤집으니 나만의 장점이 되었다. 결핍은 매력의 다른 이름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일을 할 때 견딜 수 있다. 아무 일이나 견디기만 한다고 다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견딜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 다시 말해 견딜 수 있는 꿈을 꾸는 것, 그 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켜 나가는 것, 그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 한수희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 책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 김다영

- 그저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뿐.. 그동안 여행하며 주로 호스텔에 머무는 등 숙소에는 너무 투자를 안 했던 것 같다. 30대에는 호텔 잡고 여행하는 삶을 꿈꿔본다.


8월에 즐겨들은 음악

• 박진영 'When We DISCO' (duet with 선미)

- 대단하다 정말. 90년대가 전성기라고 생각했던 가수가 2020년에도 히트곡을 내다니. 나에게도 10년 전 디스코텍 다니던 과거 있었던 것만 같은 착각을 부르는 기억조작송. 너무 무겁거나 복잡하지 않고 누구나 듣고 무난히 좋아할 만한 신나는 멜로디라 좋다. 


ITZY <NOT SHY>

- 내 기준 현존 아이돌 중 가장 춤 잘 추고 라이브 잘하는 팀 있지가 심지어 더 성장해서 컴백했다. 다른 그룹들 dance practice 영상 찍을 때 stage practice로 라이브까지 완벽하게 입증해버리는 클라스. ("앞으로 케이팝의 질을 올려주는 계기가 되고 기준이 될 영상"이라는 댓글에 좋아요 100개 누르고 싶다.) 타이틀곡 'Not Shy'에선 유나의 발성이 귀에 딱딱 때려 박는 게 쾌감 쩔고, 중간중간 'itzy~' 하는 채령의 추임새도 쫀득쫀득해서 좋다. 수록곡 중에는 겁나 당차버리는 'Don't Give a What'과 시원 청량한 'SURF' 추천. 


방탄소년단 'Dynamite

- 넘나 월클 그 자체. 영어 가사라 그런지 지금 제일 잘 나가는 팝 듣는 느낌이고, 그런 곡에 멤버들이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게 신기하다. 정국이 도입부 듣자마자 너무 잘한다! 박수 쳤음. 나는 아미가 아니지만 방탄소년단이 왜 이토록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지 납득할 수밖에 없는 곡. 이렇게 무해하고 신나는 노래 많이 내줬으면. 


8월에 즐겨 본 콘텐츠

• 미국 ABC 드라마 <모던 패밀리> 시즌1

- 새로운 드라마 시리즈를 보기 시작하다는 건 생각보다 마음의 부담이 큰 일이라. 아직 선뜻 새 작품을 시작하진 못했고 대신 밤에 심심할 때 한두 편씩 본 게 '모던 패밀리'였다. 엄청 큰 감동도, 엄청 큰 재미도 아니지만 소소하게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어 좋다. 아마 이렇게 쭉 미지근하게 시즌 11까지 보지 않을까. 


• MBC 파일럿 예능 <아무튼 출근>

- 유튜브에 이미 차고 넘치는 직장인 브이로그를 TV로 옮겨온 게 전부지만, 솔직히 지상파라는 필터를 한번 거치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훨씬 보기 편하다. 정제된 촬영/편집 기술은 뭐 당연하고. 개인의 사생활이나 TMI가 아닌, 일과 직업이라는 관점으로 다양한 이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1회에서는 요즘 세대가 일하는 방식이나 조직에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2회에서는 세상에 이렇게나 다양한 직업이 있고 특히 밀레니얼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진심이라는 점을 조명해준 기획도 좋았다. 앞으로 섭외가 쉽지 않겠지만, 모처럼 정규 편성을 응원하는 파일럿 예능이다. 


• KBS2 교양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 역시 연륜은 무시 못한다고, 의외로 인생에 대한 인사이트가 넘쳐나는 (예능 같은) 교양 프로그램. 혼자 사는 6~70대 여성들이 모여 살며 외롭지 않게 서로 정서적으로 연대하고,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에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거 너무 좋다. 네 명이 다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른데 의외로 케미가 좋고, 박원숙이 리더십이 있어서 갈등이 생길 법한 문제도 시원시원하게 해결해주니 보는 내내 그저 마음이 편-안. 

 넷 중에서도 특히 문숙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거의 문화충격처럼 다가왔다. 60대 후반이 되어서도 저렇게 차분하고 우아한 말투와 행동으로, 꾸준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꾸며, 젊었을 때 갖게 된 신념을 계속 지키며 살 수 있는 거구나. 롤모델 삼을 수 있는 새로운 장년층 한국 여성상을 발견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을 보기 정말 잘했다 싶다. 나도 그렇게 멋진 할머니로 늙어갈 테야. 

"앞으로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던 희한하고 멋진 일들이 많이 생길 거야. 이제 정말 나만을 위해서 살자." - 문숙이 혜은이에게 


• ITZY 'NOT SHY' 프로모션 유튜브 콘텐츠 'Letters to MIDZY

- "불행했어요"라는 말로 시작하더니 실력, 부담감, 자기 관리, 악플, 타인의 시선으로 힘들어했던 각자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털어놓는다. 지금 제일 잘 나가는 이들에게서, 그것도 컴백 뮤비/음원 공개 시각 직전에, 이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늘 밝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아이돌들이 이렇게 상상 이상으로 솔직한 얘기를 할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다. 기쁨 주는 우리 케이팝 아이도루 모두들 행복했으면.. 

"버틴다는 건 곧 이겨내는 것." - 리아 
"사람이 느끼는 감정인데 그런 감정들한테 내가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유나


8월에 마신 카페


8월에 잘한 일

- 다시 재택근무를 하게 되어 거의 초등학생 생활계획표 수준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리 늦어도 9시에는 일어나기, 점심시간에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서 햇볕 쬐기, 저녁 먹고 30분 이상 산책하고 집에서 땀날 때까지 홈트 하기, 밤에는 취미생활 하기. 스스로 정한 약속과 루틴을 지키며 사는 요즘이 좋다. 아직 퇴근 후 일에서 완전히 로그아웃 하기는 잘 안 지켜지지만, 점차 나아지겠지 뭐. 


- 이제 막 사회로 나온 친구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예전에 취준 때문에 힘들어했던 시절 생각도 많이 나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그리던 미래를 살고 있는가 돌이켜 보게 되고. 솔직히 이 업무로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힘든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보람차고, 나 스스로도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여행을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어 글과 사진으로 지난 여행을 추억하는 코로나 시대의 여행법. 장장 8개월 동안 써온 지난 뉴욕 여행기를 드디어 완성해 브런치북으로 발간했다. 단순 여행 기록이 아니라 사실상 나의 2019년 역사가 담겨있는 글들이라 개인적으로 매우 뜻깊다. 그리울 때마다 꺼내봐야지. 


8월에 아쉬웠던 일

- 매달 쓰는 월말 정산 포맷에서 '이달에 즐긴 문화생활, 잘한 소비, 맛있게 먹은 음식' 항목을 지웠다. 이번 달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썩 인상적인 게 없었다. 그만큼 역대급 노잼 달이었다는 뜻. 여름방학의 하이라이트인 매년 8월에는 가족들과 국내 여행을 가거나, 콘서트나 페스티벌을 가거나, 하다 못해 제주도 출장이라도 갔었는데. 올해는 바다를 못 본, 서울과 경기도를 벗어나 본 적도 없는 본 최초의 여름으로 기록될 테다. 억울해! 


- 최근에 속으로 가장 많이 한 말은 아마도 '인류애 상실'. 매일 터져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역대급 뉴스에 현타가 오지게 온다. 이런 몰지각하고 이기적이고 악한 사람들과 같은 세상에서 숨 쉬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역겹고 괴롭다. 또 나만 예민하고 조심하고,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둔감하구나. 이 온도차, 요즘 좀 버티기 힘들다. 


8월에 행복했던 순간

1. 백만 년 만에 등산하고 전망대에서 서울 시내 전경을 내려다보며 

2. <내향인입니다>와 <이대로 괜찮습니다>를 읽으며 위로받았던 밤들 

3. <뉴욕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까>를 브런치 메인에서 발견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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