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리터 Sep 30. 2020

9월, 그리워한 건 여행이 아니라
여행하는 나였다

2020년 9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9월에 읽은 책과 잡지

• 책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정지우

- 딱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을 (내 기준) 가장 정확한 언어로 해석한 글 모음. 작가 본인도 밀레니얼 세대라서 그런지 <90년생이 온다>처럼 요즘 애들을 이해할 수 없는 이기적인 이방인 취급하지 않고, 지금 청년들이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적 흐름과 환경을 사회학적으로 풀어가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그 안에서 일말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꼭 읽어봤으면 한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계속 보고 있으면 현실감각을 묘하게 잃어버린다. 인스타그램의 이미지들은 대체로 연출된 단 한순간의 이미지일 뿐이지 현실도, 삶도 아니다. (중략) 어떤 이미지로 전시된 자신에 대한 흡족함은 결코 지속 가능한 행복이나 기쁨을 주지 않는다."

"이 시대는 노력의 가치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하지만 가장 노력하는 시대인 것이다. 노력이 결코 무언가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노력밖에는 할 게 없는 시대인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라 보기 어렵다. 무엇이든 이해하게 되면 분노는 줄어든다. (중략) 무언가에 대한 이해 자체를 거부하는 형식의 담론은 결코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런 점에서는 이해가 가능하되 이런 점에서 용납해서는 안 된다'라는 식의 언술 행위가 자리 잡을 필요가 없다."

 

책 <딱 여섯시까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 이선재

- 우리가 지나치게 회사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회사 일에 최선을 다하며 안정감, 성장, 협업의 가치를 얻으면 되는 거고. 지금껏 회사가 충분히 만족시켜 주지 못한 나의 생산 욕구, 인정 욕구, 자아실현은 '딴짓'을 통해 이뤄내면 되는 거다. 몇 년째 고민만 하기에는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도, 희미해져 가는 아이디어도 다 너무 아까워. 당장 뭐라도 '나의 일'을 벌려보자!

"내가 주인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새롭게 만들어보라."

"마법은 늘 컴포트 존 밖에서 일어난다. 내가 편안하고 익숙한 곳에서 딱 한 발자국만 밖으로 나가보면, 내가 얼마나 좁은 세계에 갇혀 있었는지 알게 된다."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주어진 몫만큼을 잘 해내되, 나에게 있는 또 다른 에너지, 바람, 기대, 가능성을 어디에 쏟아부을지, 무엇에 투자할지 만큼은 나의 의지로 결정하자. 이 아까운 것들이 다 흘러가버리기 전에 말이다."


• 책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 담백해서 좋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나 견디기 힘든 상황 설정 같은 것 없이,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혹은 나의 것일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회사 생활을 진하게 해 본 사람이 쓴 글인 게 느껴져서 읽는 내내 소외감 같은 게 들지 않았고, 특히 IT 업계에 종사하는 판교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깨알 포인트가 많아서 재미있었다. 소설 못 읽는 병이 있는 사람인데, 이거 읽고 현대 단편 소설은 조금씩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 책 <출근길의 주문> - 이다혜

- '일을 잘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스스로 자주 하는 질문에 꽤 많이 답을 준 책. 아니 그러니까 이제 알겠는데, 다 아는 얘기인데, 다 아는 얘기라서 더 어렵다고요..

"누구 한 사람만 앞에 있어도, 한 명만 눈에 보여도, 그 길을 선택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중략) 여자의 자리는 정해져 있지 않다. 과거의 기준으로 상상하지 말자."

"프로가 된다는 것은, 꾸준히 단련하고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일정한 아웃풋을 만들 수 있으며 자기 자신과 타인의 실력과 능력치를 가늠해 협업에 용이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얻는 좋은 기회는 (미래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과거의 퍼포먼스의 결과다. 과거의 내가 열심히 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내가 두려워하지 않아야 미래의 내가 더 좋은 기회를 얻으리라."


•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김혼비

-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딱 한 번 축구를 제대로 해봤던 것 같다. 여자들끼리 하니까 진짜 재미있었다. 천식 있는 걸 잊어버리고 뛸 정도로 경기에 진심이었고, 심지어 좀 잘했던 기억. 내 인생에 다시 구기 종목, 팀 스포츠 같은 단어가 들어올 거라곤 전혀 예상을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뭐, 해볼 수도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네.


• 책 <신경 끄기의 기술> - 마크 맨슨

- "왜 너만 특별하다고 생각해?"라는 챕터 제목에 뼈 맞고 계속 곱씹어보게 된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외부의 소란스러운 일들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어 이 책을 읽은 건데, 결국 그런 것들에 신경을 끄려면,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에게도 조금 덜 집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삶을 살려면, 더 많이 신경 쓸 게 아니라, 더 적게 신경 써야 한다. 요컨대, 오로지 코앞에 있는 진짜 중요한 문제에만 신경을 쓰라는 말이다."

"자기의 정체성을 좁고 희귀한 것으로 규정할수록, 더 많은 삶의 요소들이 위협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되도록 단순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규정하라. 이렇게 살아가려면 거창한 자아상을 버려야 한다."

"공포와 불안과 슬픔이라는 고통은 정신 건강에 해롭기만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성장에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부정하는 건 곧 자신의 잠재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 책 <아무튼 여름> - 김신회

- 가을이 다 되어서야 뒷북으로 읽은 여름 이야기. 올여름은 영 여름답지 못하게 보냈어서 그런지 '맞아, 원래 여름은 이런 거였지..' 하며 씁쓸 아련한 표정을 띄며 읽어 내려갔다. 어쩌면 먼 훗날, 이렇게 계절을 글로 배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고.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중략) 여름을 완성하는 건 계절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독립출판물 <TO GO CUP IN NY> - 오은택

- 직접 수집한 테이크아웃 컵 디자인으로 소개하는 뉴욕 로컬 카페들. 이렇게 한 분야를 깊게 판 사람들의 창작물은 흥미로울 수밖에. 무엇보다 판형이 신기하고 실려있는 사진도 예뻐서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괜히 들춰보고 싶어 지는 책이다. 독립출판의 매력을 아주 잘 살렸고, 소장가치가 있다.


9월에 즐겨들은 음악

• 유아 '숲의 아이 (Bon voyage)', 'Diver'

- 확실히 뭔가 달랐다. 곧바로 <모아나>와 디즈니 OST가 연상되긴 했지만, K팝씬에서 비슷한 게 있었냐고 묻는다면 쉽게 레퍼런스가 떠오르지 않는다. 유아라서 할 수 있는 고유한 컨셉, 차별화된 장르라고 생각한다. 영화 뺨치는 뮤비를 보고 살짝 눈물 날 뻔했는데, 어쩌면 지금 내 안에도 여전히 숲에서 뛰어노는 순수한 어린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마이걸은 자꾸 내가 잊고 살던 무언가를 꺼내 들춰내는 음악을 한다. 


• DAY6 (Even of Day) <The Book of Us : Gluon - Nothing can tear us apart>

- 타이틀곡은 굉장히 서정적이지만 앨범은 전반적으로 귀염뽀짝하고 재미있는 곡들로 채워져 있고, intro부터 outro까지 쭉 스토리가 연결되어 듣는 재미가 있다. 기타의 빈자리를 신스로 채우려 노력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기존의 데이식스 감성은 갖고 가면서 좀 더 미래적인(?) 사운드가 들리는 것 같다. 뚱땅뚱땅 거리는 소리 취저. 최애곡은 '그렇게 너에게 도착하였다', 최애 트랙은 'Ocean -Interlude 1'.


그리고 데이식스 멤버들이 각자 참여한 콜라보/데모곡들 

X Lovers - LOVE ft. Young K  

Young K - ENEMY

eaJ x Seori - It just is (Feat. Keshi's Strat)  

The BLANK Shop - 사랑노래 (Feat. 원필) 


- 이렇게 쓰면 영락없는 찐덕후 같겠지만.. 사실 좀 슬픈 얘기다. 점점 신곡을 듣는 게 어려워지고 익숙한 노래만 듣고 싶어 진다. 좋아하는 가수 곡은 응당 들어줘야지 하는 의무감 없이는 신곡을 전혀 듣지 않게 된다는 거다. (다행히 위 네 곡 모두 정말 좋다.)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30세가 되면 새로운 음악 듣기를 그만둔다고 하는데, 아니 이렇게 정확할 일이야?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아직 더 많은 좋은 노래들을 찾지 못한 게 너무 슬프다. 


9월에 즐긴 랜선 문화생활

• 대만 CTV 드라마 <상견니> (想見你)

- 대만 청춘 로맨스의 탈을 쓴 미스터리 스릴러. 이제는 진부하다고 생각했던 타임슬립을 소재로 이렇게 아련하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도록 풀다니, 정말 대단한 스토리다. 후반부에 좀 크리피해서 견디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 인생 드라마 중 하나로 꼽고 싶을 정도의 역작이다. 하도 과몰입해서 이제 우바이 라스트댄스 들으면 저절로 눈이 감기고.. 세 번째 생일 소원은 왠지 진짜 이뤄질 것만 같은 희망 생기고..

 그리고 주인공 리쯔웨이 허광한, 당신 뭐야? 볼 때마다 놀랄 정도로 잘생겼는데 그 얼굴로 멋있고, 귀엽고, 청순하고, 섹시하고 다해. 극 중 무려 1인 4역(?)을 소화해낼 정도로 연기도 잘하고, 실제 성격도 장난꾸러기 댕댕이 같고, 인터뷰 보면 배우로서 마인드도 좋은 것 같고. 좋아할 이유가 오조오억 개다. 이렇게 덕통사고를 당한 게 몇 년 만인지. 요즘 당신 영상 찾아보는 게 삶의 낙이다. 그러니까 #허광한_절대_내한해


• 영화 <뷰티 인사이드>

- 매일 주인공 모습이 바뀐다는 설정이랑 한효주 예뻤던 밖에 기억이 안 나서 5년 만에 다시 본 영화. 물론 참 예쁘게 잘 만든 영화지만, 주인공 우진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느껴져서 보는 내내 화가 났고, 이수도 참 답답했다. 내 삶이 다 망가져가도 너와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찐사랑이란 그런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9월에 즐겨 본 콘텐츠

• tvN 예능 <식스센스>

- 매주 기다리며 챙겨보게 되는 예능 대체 얼마만인지. 오나라, 전소민, 제시, 미주 4인방 조합 너무 좋다. 텐션 높은 여자들끼리 뭉치면 이렇게 재미있구나. 보다가 가끔 진짜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웃게 된다. ㅋㅋㅋ 

 셋 중에 하나 가짜를 찾는 육감 현혹 버라이어티라는 프로그램 컨셉도 신선하다. 나도 출연자들에 빙의해서 추리하게 되는데 맞히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거 대충 베껴놓고 시류에 편승하는 예능이 아니라 칭찬하고 싶다. 촘촘한 기획과 설계가 들어간 게 보이고, 제작진의 정성이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서 보면서도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안 든다. 이런 고유한 예능 프로그램이 더 많아졌으면. 


• 카카오TV 예능 <페이스아이디>

- 이효리가 핸드폰 하는 거 엿보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일인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사람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사람. 오프더레코드 때도 놀라웠지만 여전히 이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데, 감추지 않을수록 더욱 호감이라니.. 대중들에게 사랑 받기에 타고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 경향신문 ‘숨듣명’ ‘유교걸’…웹예능 ‘문명특급’은 어떻게 밀레니얼 대세가 되었나

- 이번 달에 본 기사 중 유일하게 읽고 박수친 기사, 두 번 세 번 읽고 싶어지는 기사. 문명특급 이은재·홍민지 PD 본업 잘하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마인드도 너무 멋지다. 내 또래의 젊은 프로페셔널이 다른 분야에서 이렇게 기존의 레거시를 버리고 새로운 판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용기가 된다. 추석특집 숨듣명 콘서트 본방사수로 시청률 혼쭐 내드려야지!

"제 인생철학이 ‘조언하지 말자’거든요. (중략) 너무나 감사한 조언이지만 그 말을 듣고 그때 그만뒀더라면 후회했을 것 같아요. 고민을 들었을 때 공감해주는 것까지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홍 PD는 자신의 블로그에 ‘90년생은 프로불편러라는 수식어를 창조한 영광의 첫 세대다. 우리처럼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후배를 외면하지 말자. 마지막으로 우리가 분노했던 어른들의 모습을 절대로 잊지 말자’라고 썼다."


9월에 잘한 소비

벤큐 GW2480T 아이케어 모니터

- 아무래도 재택근무가 금방 끝날 것 같진 않고, 더 이상 불편함을 참고 살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보다 나은 환경을 갖추는 게 맞다는 판단이 들어 모니터를 질렀다. 왜 진작 안 샀을까? 방에 모니터를 들이고부터 삶의 질이 달라졌다. 낮에는 큰 화면으로 여러 창 띄워놓고 하니 업무 효율이 올라가고, 밤에는 침대에 누워 왓챠 보는데 나만의 영화관이 따로 없다. 오랜만에 아주 만족스러운 소비를 했구나 껄껄.


• 찍스 사진 인화 

- 여행이 그리워서 2년 전 유럽 여행 사진과 1년 전 뉴욕 여행 사진 총 230장을 인화했다. 화면으로 닳도록 보던 이미지를 손에 쥐고 보니 또 다르게 보인다. 그때그때 꽂히는 사진들을 골라 벽에 붙여놓으려고 한다. 신난다! 

디스 이즈 해프닝 여행을 대표하는 에펠탑 사진은 포토샵 작업을 해서 포스터 크기로 뽑아 침대 맡에, 그리고 책상에 앉았을 때 가장 잘 보이는 벽면에 붙여놨다. 매일매일 여행하던 그때 그 느낌을 떠올려본다. 


9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연어회·전어회, 초밥 

- 집에서 요리해먹는 것도 재미있지만 집에서 절대 못해먹는 음식이 격하게 땡길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회와 초밥이라든가 회와 초밥.. 내가 너무 먹고 싶어 했던 연어회와 아빠가 매년 가을마다 찾는 전어회를 엄마가 사 오신 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대충 라면 끓여먹을까 하다가 나를 아껴주자는 생각이 들어서 초밥을 플렉스한 날의 짜릿함도 잊을 수 없다.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행복하자! 


9월에 마신 카페


9월에 잘한 일

지난 두 달간 해온 빌라선샤인 뉴먼소셜클럽 '더 잘하고 싶은 사람들의 인정 모임'을 마무리했다. 매일 볼품없는 것 같던 나날 속에서도 내가 잘한 일을 쥐어짜 내 기록해뒀고, 주말 밤에 화상으로 만나 서로 토닥토닥하고 칭찬해줬다. 이 답답한 고립 시대에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어서 소중했다. 멤버분들이 예쁜 말씀 많이 해주시고, 용기 주시고, 위로해주시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느슨하게 함께한다는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다. 실제로는 한 번도 못 만나보고 끝난 게 아쉽지만, 마음속으로 모두 응원한다!


9월에 내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 

 '여행 그리워병'이 도졌다. 2년 전 9월 30일의 유럽 여행을 떠났고, 3년 전 9월에는 포틀랜드와 시애틀, 4년 전 9월에는 도쿄를 여행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맘때 날씨와 공기가 새로운 여행을 떠날 때라고 꼭 나를 부추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현실은 여행은커녕 집 밖을 나가는 것조차 주저해야 하니 힘이 빠졌다. 

 나는 왜 여행을 그리워하나 곰곰이 생각해봤다.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 안 해본 경험? 물론 좋지만 늘 떠올리는 모든 여행의 장면,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낯선 곳으로 떠나야만 나오는 나의 여행용 자아가 그리웠던 거다. 주체적이고, 용감하고, 상황 판단이 빠르고, 호기심 많고, 새로운 시도에 열려있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의 행복을 최우선시하는, 단단하면서도 자유로운 나. 김신회 작가의 <아무튼 여름>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각색하여 표현해보자면 "내가 그리워한 건 여행이 아니라 여행하는 나였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여행을 완성하는 건 물리적인 이동이 아닌 여행하는 자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 오랫동안 햇빛을 못 보고 깊숙이 숨어있던 나의 여행용 자아를 꺼내 숨통을 트이게 해 주면 되겠다. 그러면 좀 살 것 같다. 


9월에 행복했던 순간

1. 모니터 화면 꽉차게 허광한 영상 보면서 실실 웃던 밤들 

2. 남산타워가 보이는 카페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른하게 눈을 감고 있던 시간

3. 방에 여행 포스터를 붙여놓고 틈틈이 쳐다보며 흐뭇해하던 순간들

매거진의 이전글 8월, 잃어버린 인류애를 찾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