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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Oct 31. 2020

10월, 나의 첫 가을방학

2020년 10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10월에 읽은 책과 잡지

• 책 <셋이서 집 짓고 삽니다만> - 우엉·부추·돌김

-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 30대 초반에 독립해서 나는 어떤 라이프스타일이 맞는지를 알아보고, 30대 후반~40대가 되어서는 뜻이 맞는 이들을 만나 '느슨한 가족'의 형태로 함께 살고 싶다. 전에 읽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꼭 그놈의 '정상가족'이 아니어도 이렇게나 잘 살고 행복하다고 보여주는 게 큰 용기가 된다.

"'결혼 전의 삶은 미완성'이라는 통념을 벗어던진 후에야 내가 지금 살 공간과 삶의 질에 관심을 갖게 됐다."


•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백세희

- 정말 솔직하다.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정말 솔직한 내면을 엿본 적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깊다. 힘들다는 얘기를 보며 그래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만 이렇게 고민 많고 괴로운 게 아니구나 생각하며 위안을 받았다. 제목은 다시 봐도 기가 막힌다. 팔릴 수밖에 없는 제목. 책 내용에 떡볶이 얘기도 있었다면 완벽했을 텐데..

"지금은 관계가 좁고 삼각형 같아서 마음을 많이 찌르겠지만, 다양하고 깊은 관계가 많아질수록 원처럼 동그랗고 무뎌져서 마음을 덜 찌를 거예요. 괜찮아질 거예요."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이입할 수 없는 감정을 배우고 상상하는 것. 그게 타인을 향한 애정이며 내 씨앗과 상대의 씨앗을 말려 죽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 책 <지적자본론> - 마스다 무네야키

- 역시 기획자들의 필독서일만 하다. 기획자로서 내가 하는 일의 의의를 늘 찾고 싶었는데 이 책에 어느 정도 답이 있었다. '기획'이란 나 스스로에게는 나의 정신 활동의 정수 같은 것.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고객 가치를 높이는 일, 세상에 더 나은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일.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이 자유다."
"기획을 세우려면 자유로워져야 한다. 관리받는 편안함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
"서드 스테이지는 제안의 시대다. 고객에게 얼마나 정확한 제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른다."


• 책 <모든 요일의 여행> - 김민철

- 이 책을 2017년 제주도의 어느 바에서 칵테일 한 잔을 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여행 중이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고 넘겼던 구절들이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지금 와서 다시 보니 가슴에 팍팍 꽂힌다.

"집 나가면 몸이 고생이다. 하지만 집을 나가지 않으면 마음이 고생이다."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남들과 상관없이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것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어쩌면 그것을 찾는 것만으로도 남들과는 다른 여행의 출발선에 서게 될 것이다."


10월에 즐겨들은 음악

• 환불원정대 'Don't touch me'

- 20대, 30대, 40대, 50대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여성 가수들의 협업. 사실 넷이 가만히 서서 애국가를 불러도 가슴이 웅장해질 것 같은데 심지어 곡이 너무 좋아버렸다. 탑100귀와는 거리가 먼 내 귀에도 듣자마자 착 달라붙는다. 방송빨 없었어도 히트곡이 될 수밖에 없는 재질.


• 트와이스 정규 2집 <Eyes Wide Open>

- 우선 타이틀 'I CAN'T STOP ME'가 기대 이상이었다. 역시 JYP 걸그룹+레트로는 무조건 되는 주식! 어느덧 데뷔 5주년을 맞아 오랜만에 낸 정규 앨범인 만큼 멤버들의 곡 참여도 많아졌고, 이런 음악을 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 게 결과물에 보인다. 트와이스가 이런 음악을 해? 싶을 정도로 장르가 다양하고 곡 퀄리티도 준수하다. 개인적으로 3번 트랙 'UP NO MORE'에 제대로 감겨버렸는데 미나 음색에 한 번 놀라고, 지효 작사에 두 번 놀랐다. 다들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 지금까지 대중들이 트와이스를 멤버들 개인의 매력을 보고 사랑했다면, 앞으로는 팀으로서의 음악에도 열광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10월에 즐긴 랜선 문화생활

• 영화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 스토리 자체는 어디선가 많이 봐온 듯한 기시감이 들지만, 여자들이 뭉쳐 승리했다는 내용은 늘 옳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고아성, 이솜, 박혜수 세 배우의 매력이 막 터져버리는데 이 케미가 영화 하나로 끝난다는 게 너무 아쉽다. '왜 그래'를 봐버린 이상 덕질 안 할 수가 없지. 삼토반즈 컴백 존버단 가입하고요, 최애는 화음 장인 메인보컬 심보람입니다..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위험 요소, 불쾌 요소, 불편 요소 1도 없이 무해하고 따뜻했던 영화. '내 마음속에도 장국영이 필요하다'라는 한 줄 리뷰에 마음이 찡해진다. "찬실 씨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 이런 말을 누군가가 나에게 해주기를 늘 바라 왔는데, 이렇게 영화로나마 듣게 되어 조금은 위로가 된다.


•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

- 대런 스타의 전작 <Younger>가 뉴욕의 밀레니얼 마케터 이야기였다면, <에밀리~>는 파리에 간 Z세대 SNS 마케터가 주인공인 버전으로, 상당 부분 비슷한 점이 보인다. 그런데 이런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재미있는 법이다. 화려한 패션과 환상적인 파리의 풍경으로 눈이 즐겁고, 예상 못한 위기가 닥쳐도 주인공이 알아서 잘 해결할 테니 마음은 편하고. 가끔 이런 작품이 주는 가벼운 재미가 필요하다.  


• 캐나다 CBC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

- 처음에는 교포사회 현실 고증 쩔고, 한국인이라면 소소하게 공감할 만한 포인트들이 있어 재미있었다. 그러다 시즌3쯤부터 영 불편해져서 더 봐야 하나 망설여진다. 다른 사람 얘기 개무시하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꼰대 아빠, 아들만 예뻐하고 딸 자존감 깎아내리고 이기적인 엄마. 좀 너무하다 싶다. 재넷 불쌍해 ㅠㅠ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랙핑크:세상을 밝혀라>

- 팬도 아닌데 내내 엄마미소 지으면서 보다가 코첼라 장면에서는 울컥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YG에 대한 반감이 커서 블랙핑크도 소속사의 전폭적인 지지로 비교적 쉽고 평탄하게 쭉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다큐에서 조명한 연습생 시절과 팀 결성 과정을 보니 왜 이 넷이어야 했는지, 어떻게 넷만으로도 무대가 비어 보이지 않는지, 어쩌면 이 넷은 운명이 아녔을는지.. 이런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다큐 잘 만들었네.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

- 이거 보고 나서 스크린 타임 들어가 봤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용 시간이 길어서 너무 놀랐다. 특히 SNS, 평균 3시간, 많게는 6~7시간까지 하더라. 각성하고 인스타그램 이용 시간을 하루 1시간으로 제한해놨다. 나는 누군가의 상품이 되고 싶지 않다.


10월에 즐겨 본 콘텐츠

•카카오TV 톡이나 할까?

- 김이나 작사가와 게스트가 서로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걸 엿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 좋아질 수 있다니. 덕분에 매주 화요일 아침, 한껏 몽글몽글해진 마음으로 시작하고 있다. 영상 비공개된 남자 한 명 빼고 지금까지 섭외도 완벽. 나와 결이 잘 맞는 프로그램, 쭉 이대로만 가주세요!


•유튜브 haruday하루데이

- 코로나 이후 지금 뉴욕의 삶을 아주 잘 보여준다. 가게들이 닫혀있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 풍경은 생경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 위안이 됐다.


•유튜브 조승연의 탐구생활

- 유식한 사람이 말까지 잘하면 이렇게 파워풀해지는구나. 조승연 작가 유튜브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다.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엄청난 양의 지식을 설명해주는데 그게 결코 지루하거나 재수 없어 보이지 않는다. 자기가 아는 것들을 정말 순수하게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인달까. 특히 유료 광고 영상은 늘 감탄하면서 본다. 해당 제품군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나니 그 제품에 확실히 흥미가 간다. 광고는 이렇게 하는 거지!


10월에 잘한 소비

• 넷플릭스

- 강제 집콕한 지 8개월이 넘었고 심지어 콘텐츠 나름 열심히 본다는 편인데, 이제야 넷플릭스를 결제한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예요.. 이제 진짜 왓챠-티빙-웨이브에서 더 볼 게 없어서 넷플에 발을 들였고, 끝없는 콘텐츠의 바다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다. 뜻밖의 좋은 점은 넷플에는 영어 자막이 지원된다는 것! 웬만한 캐주얼한 드라마나 쇼는 영어 자막으로 보면서 나름 회화 공부를 하는 것처럼 정신 승리를 할 수도 있고. 실제로 내가 몰랐던 참신한 표현들은 그때그때 메모해두기도 한다. 일석이조 나이스-

• Oth 한강 패브릭 포스터

- 존버해서 구매한 예진문님의 대존예 패브릭 포스터. 새파란 물결과 반짝이는 윤슬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셨다. 방에 걸 만한 데가 없어서 우선 밋밋한 옷장에 붙여놨는데, 햇빛이 싹 바람이 샥 부는 곳에 걸어두면 훨씬 더 예쁠 것 같다. 이 포스터를 살릴 수 있는 방 구조를 고민해봐야겠다.


• 벽걸이 선반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

- 목공은 처음 해봤는데 조금씩 손을 댈수록 내가 상상한 모양에 가까워지는 과정이 신기하고 뿌듯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종종 해보면 좋겠다. 잘할 필요 없어! 내가 재미있었으면 됐어!  


10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부산여행 가서 먹은 모든 것들  

-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깡통시장 이가네 떡볶이, 비비비당 단호박 빙수, 그리고 광안대교 야경을 바라보며 먹은 광어/밀치회.


10월에 마신 카페


10월에 잘한 일

- 여름방학과 겨울방학만 있는 게 늘 아쉬웠다.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추운데, 나는 가을이 좋은데.. 왜 가을에는 놀 시간이 없을까? 그 아이가 다 커서 직장인 6년 차에 첫 '가을방학'을 갖게 됐다. 올해 아직 연차를 하나도 못 써서 고민하다가 미리 10월 중간에 통 크게 한 주 휴가를 냈던 게 자체적인 가을방학 선언이 된 셈이다. 해외여행을 갈 수도 없는 시국에 뭐할지 계획도 딱히 없었지만. 내가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이 계절을 스트레스 없이 찐하게 누리고 싶어서 질렀다.


- 그중 2박 3일은 엄마와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해서 혼자 떠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는 K-장녀라 나보다 더 힘들었을 엄마도 좀 쉬었으면 해서 모시고 갔다. 생각해보니 엄마와 단둘이 하는 모녀 여행은 처음이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마가 아직 체력이 좋고, 새로운 시도에 열려있으며, 좋은 걸 보고 좋다고 마음껏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덕분에 엄마가 더 좋아졌다. 물론 부산도 좋았고. 오랜만에 여행을 준비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다니며 살아있음을 느낀 시간도 소중했고.


- 용기 내어 다시 헬스장에 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사람이 없을 시간을 공략해서 1시간 짧고 굵게 운동하다 온다. 웨이트를 하니까 비로소 운동하는 기분이 난다. 지금 근력량 인생 최고치인데 체지방량도 최고치인 게 함정. 그동안 부지런히 벌크업 했구나. 열심히 빼보자.


10월에 아쉬웠던 일

- 그 어떤 슬픔, 외로움, 짜증도 다 용서되고 쉽게 잊혀진다. 나에게 10월은 그런 계절이라고.


10월에 행복했던 순간

1. 혼자 올림픽공원 가서 코스모스 구경하고, 산책하고, 책 읽고 온 날. 내 가을은 그날부터 시작이었지.

2. 엄마와의 부산여행,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숙소 들어가자마자 본 환상의 오션뷰

3. 가족들과 배 터지도록 맛있는 거 먹고 마시고 웃으며 보낸 내 생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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