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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Nov 29. 2020

11월,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알다가도 모르겠어

2020년 11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11월에 읽은 책

•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 최혜진

-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 책이라고, 선입견을 갖지 말고 한 번만 읽어보라고 추천한 게 기억나 읽어봤다. 진짜.. 제목이랑 표지 왜 이렇게 노잼으로 뽑았어요 ㅠㅠ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정말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고, 거의 매 페이지마다 밑줄 쳐놓고 싶을 정도로 명언이 쏟아진다. 그들이 말하는 창의력의 공통점은 특별한 재능 같은 게 아니라는 것. 생각이 열려있고, 하고자 결심하고, 실행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 "창의력에 대한 조언요? 호기심을 잃지 말 것, 열려 있을 것. 자신에 대한 확신을 너무 갖기보단 두려워할 것. 단, 즐거움을 놓치지 말 것."
- "창의성을 방해하는 건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
- "어른들은 이 세상을 이미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믿는 대로 세상을 정리 정돈해서 봅니다. 어른이 된 이후의 감탄은 결심에서 나옵니다."


• <연애하지 않을 자유> - 이진송

- 이 책은 연애를 하지 않는 개인의 경험담을 담은 에세이가 아닌, 연애를 하지 않는 상태를 결핍과 미완의 상태로 보는 이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확신의 사회과학 도서다. 주장하는 바가 명확하고, 근거 꽉꽉 채워서 논리적이고, 게다가 위트까지 있는 배우신 글..! 왜 솔로는 반드시 '탈출'해야만 하는 상태고, 불쌍한 거고 네가 노오오력을 안 한 결과라고 비아냥 받아야 할까. 정말 편협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다. 당신들에게는 이성애 연애와 결혼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일 수 있으나,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존중해야 마땅하다.

- "공감은 애인과 연애 관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런데도 외롭거나 쓸쓸한 사람들에게는 너나 할 것 없이 연애를 처방한다. 이쯤 되면 '연애 오남용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연애든 우정이든 결국은 관계의 문제다. 어느 하나를 불변의,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바람직한 이상으로 규정한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협소하고 빈곤할 것이다. (중략) 누가 무엇을 선택하고, 그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는 그 사람의 자유다."


•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 조한

- 가로수길, 정동길, 세운상가, 선유도공원, 광화문광장 등 서울에 있는 다양한 장소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설명해준 책이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엔 쉽지 않았지만 몰랐던 서울의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가 었다. 


• <센서티브> - 일자 샌드

- 나는 아무래도 다른 이들에 비해 유독 민감한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있는 유형에 속하는 사람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불편하고 슬프고 화가 날 때가 많지만, 이제는 그렇게 감정의 폭이 큰 만큼 작은 것에도 기쁘고 행복해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민감함은 신이 주신 최고의 감각이다"라는 말은 단언컨대 올해의 나를 구한 한 문장이다. 

- "누구보다 풍부한 내면의 삶.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 타인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으므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충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 "대부분의 사람처럼 강하고 활기찬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때 예민한 자기 자신을 수용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양분을 공급하며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벌새> - 김보라

- 작년에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 평론가들의 글, 김보라 감독과 앨리슨 벡델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읽는 내내 영화 장면과 그때 느꼈던 감동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 있으세요?" "응 많이, 아주 많이.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 "삶은 그저 계속된다. 모든 예술 작품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 어려운 이유인 것 같다." -앨리슨 벡델


•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 최재원 

- 퇴근 후 산책, 다른 동네 놀러 가기, 취미 배우기,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기 같은 것도 하나의 작은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신선하긴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나에게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로서 '여행'의 가치가 중요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11월에 즐겨들은 음악

• NCT U 'Make a Wish', '90's Love'

- NCT 2020 활동으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샤오쥔이라는 보석이 내 눈에 들어왔다는 거다.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잘생긴 메인보컬' 포지션인데 심지어 춤 실력도 댄스 라인급에다 어쩜 끼도 넘친다. 'Make a Wish'에 샤오쥔 파트가 총 네 번 나오는데 넷 다 킬링 파트로 만들어 버리면 어쩌냐는 거냐 이 천재 아이돌아. SM이 NCT를 그렇게 띄우더니 기어이 나를 입덕 시키는구나 싶다. 이어서 나온 '90's Love'는 솔직히 좋아하는 멤버는 없었지만, 힙합 하키 컨셉이 미쳤고 펑키한 비트도 너무 신나서 더 자주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고정팀보다는 딱 이 정도 규모의 NCT U 체제가 다양한 조합 보는 재미가 있어서 좋은데, 굳이 또 해외팀을 데뷔시킨다니 NCT의 미래 어떻게 될지 내 미래만큼이나 궁금하다. 


• 여자친구 'MAGO'

-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파워청순 시절 이후로 여자친구의 신곡을 이렇게 오래 계속 듣게 되는 건 거의 처음이다. 레트로풍의 디스코라는 지금 케이팝의 대세를 충실히 따랐는데 가장 잘 살린 케이스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런 '사연 있는 신남'의 정서 너무 좋고요.. 역시 멤버들 실력도 좋아서 무대 보는 맛도 있다. 


• aespa 'Black Mamba'

- 처음 들었을 땐 가사의 장벽이 너무 커서 두 번 들을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계속 따라 부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특히 '에스파는 나야 둘이 될 순 없어' 이 파트는 올해의 킬링 파트 구절로 정해 마땅하다. 데뷔곡으로 팀 정체성과 세계관 소개를 거하게 했으니 앞으로는 어떤 음악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11월에 즐긴 랜선 문화생활

•영화 <우리들>, <우리집>

- 언젠가 내 마음이 준비되면 봐야지 하고 아끼고 아껴뒀던 윤가은 감독의 영화들. "이 영화에 공감 못 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라는 리뷰에 깊이 공감했다.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서 그리고 가족들에게서 받는 흔한 상처들, 나도 다 겪어본 상황과 감정이라서 뭔지 아니까 더 마음 아팠다. 그 시절의 여자 아이들은 어디 털어놓지도 못하고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왜 그렇게 혼자 다 견뎌내야만 했을까. 선이, 지아, 하나, 유미, 유진이 이제는 부디 행복하고, 어른 되어서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정직한 후보>  

- 눈물 찔끔 날 정도로 박장대소하고 싶어서 봤는데 단 한 번도 소리 내서 웃지는 못했다. 당연히 전반적으로 재미있긴 했는데 딱 잘 만든 한국 코미디 영화가 주는 재미 그 정도였다. 어쩌면 진짜 그럴 것만 같아서 영화라고 마냥 웃을 수 없는 일부 정치인들의 현실 때문이었을지도. 보는 내내 든 생각은 라미란 배우 너무 대단하다, 라미란 배우 아니었음 이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뿐.


넷플릭스 오리지널 <연애실험: 블라인드러브 (Love is Blind)>

- 외모를 안 보고 블라인드 데이트만으로 맺어진 커플들이 과연 결혼까지 갈 수 있을까 지켜보는 리얼리티다. 만난 지 한 달도 안돼서 대뜸 결혼식부터 준비하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인데,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라 그중에는 또라이도 몇 있고, 돈 문제나 집안의 반대 같은 현실적인 문제도 드러난다. 미국에서도 결혼이 헬인 건 똑같구나..

 어쩌면 누군가와 대화가 잘 통한다, 취향이 맞는다는 건 나의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뭐 하나가 겹치고 내가 거기에 꽂혀버리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서 믿는 거 아닐까. 내가 그린 허상을 상대가 조금만 빗나가면 괜히 실망하고,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고. 대화의 질과 취향이라는 걸 조금 건조하게 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우리의 공통점을 하나 찾았구나 정도로.


•영국 BBC <인테리어 디자인 마스터>

- 영국의 아마추어 인테리어 디자이너 서바이벌. 매회마다 호텔, 기숙사, 옷 가게, 레스토랑, 별장 등 다른 공간들을 변화시키라는 미션을 주는 제작진의 통 큰 스케일엔 놀라고, 그걸 1박 2일 만에 심지어 너무 예쁘게 해내고 마는 참가자들의 실력에 또 한 번 놀란다.

 전반적으로 참가자들이 존중받는 착한 서바이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심사위원이 일방적으로 심사평을 하는 게 아니라, 결과물의 의도나 팀워크 과정 등 궁금한 점을 따로 불러 면접처럼 물어봤다. 때로는 자기가 맞다 주장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배워나가고 있음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탈락자들 모두 아쉽지만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떠날 수 있었다. 덕분에 보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11월에 즐겨 본 콘텐츠

올리브 <마스터 셰프 코리아2> 최강록 플레이어

- 이게 왜 유튜브 알고리즘에 갑자기 뜨는 건데? 7년 전 예능 '마셰코2'가 낳은 스타(?) 최강록이 최강록한 장면들만 모아놓은 유튜브 재생목록. 이거 올린 사람 제목 센스가 미쳤고 편집도 절묘하게 잘 끊어서 어째 본방보다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볼 때마다 터지는 요즘 내 웃음 버튼 ㅋㅋㅋ 나중에 시간 많을 때 '마셰코2' 전체를 다시 볼까도 싶다. 당시 CJ 간접광고 너무 심하긴 했지만 이렇게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일반인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참 좋았는데.. 


•tvN <온앤오프>

- 따로 기록은 안 했지만 매주 챙겨보는 예능이었는데 시즌1 마무리한다는 소식에 이제라도 남겨본다. 우선 다른 관찰 예능에 비해 덜 작위적이고 덜 부담스러운 연출이 마음에 들었고. 몇몇 출연진들의 오프 생활은 나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했다. 못하는 게 두렵지 않다는 취미 부자 한보름, 남들은 비웃을지라도 항상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남규리, 50대가 되어도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하는 엄정화과 구준엽, 그리고 이들로부터 자극을 받아 제과기능사 자격증을 딴 성시경이 나에게 그러했다. 


•JTBC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

- 역시 세상에서 남의 집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 단순히 으리으리하고 좋은 자재 썼다고 좋은 집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고, 우리에게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실제로 활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집이 좋은 집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러면서 언젠가 나도 나 맞춤형 집을 짓고 살 수 있다면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어려운 요즘, 별 의미 없는 피상적인 대화 말고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끼리의 깊은 대화에 목말라 있다.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보는 일과 일상 전반을 이야기하는 팟캐스트 '큰일여'는 듣기만 해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 대화에 참여하는 기분이 들고, 공감할 수 있어 위로가 된다. 또 호스트 두 분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너무 매력적이라 따라 웃게 되는 것도 깨알 포인트. 


팟캐스트 <오지은의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다>

- 대부분의 여행 콘텐츠는 사진이나 영상이 많은 정보를 전해주는데, 팟캐스트다 보니 그런 시각 자료 없이 오직 말로만 모든 걸 설명한다. 도시의 분위기, 건축물의 외형, 생소한 음식의 맛 같은 걸 최대한 생생한 언어로 묘사하는데 듣고 있으면 신기하게 그게 머릿속에 다 그려진다. 그래서 듣고 있으면 아직 가보지 않은 여행지로 상상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이 든다. 해외여행을 떠날 수 없는 이 시국에 듣기 딱이다. 


11월에 잘한 소비

• 아이폰 12 프로 그래파이트 

-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폰 12 프로를 받았다. 카메라 퀄리티 하나만으로 그 자비 없는 금액과 하염없이 기다린 세월들이 다 용서되는 기적. 근데 밖에 나갈 수가 없어서 사진을 찍을 일이 없네..  


• 선캐처 만들기 클래스 키트 

- 워낙 손재주가 없어서 이런 걸 절대 못 만들 줄 알았는데 재료와 준비물이 포장되어 와서 편하고, 영상 보면서 따라 하다 보니 뚝딱 완성돼서 성취감도 들었다. 결과물이 예뻐서 더욱 만족스럽다. 창가에 걸어놓았더니 오후 1~3시 사이 햇빛 들어올 때마다 반사되는 무지갯빛이 너무 아름다워 감탄한다. 


11월에 맛있게 먹은 음식

- 뭐 많이 먹긴 했는데 소름 끼치게 맛있는 건 없었던 것 같다. 


11월에 마신 카페


11월에 잘한 일

- 조금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도전(?)해버렸다. 당장 한 치 앞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일단 그렇게 됐다. 마침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시기이기도 했으니, 그냥 다 받아들이고 잘 해내고 싶다. 


- 뭐 할 게 없으니 혼자 생각하는 시간만 늘었다. 다행히 요즘에는 속을 파고들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비교적 건강한 고민을 하면서 사는 것 같다. 예컨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추구하며 살지, 그러기 위해서 지금의 나는 뭐를 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 아직 답을 찾진 못했지만 연말까지 좀 더 고민해보고 내년부터 하나하나 실행에 옮겨보자. 


11월에 아쉬웠던 일

-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출근이 없는 것이고, 가장 큰 단점은 퇴근이 없는 것이라더니. 요즘 퇴근 없는 삶에 지쳐있다. 근무 시간 아닌데 vpn 연결해서 일 처리하는 사람 나야 나, 쉬는 날인데 화상회의 들어간 사람 나야 나, 하루 12시간까지 일해본 사람 나야 나.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 오랜만에 잡힌 약속들이 코로나로 다 취소가 되면서 또 한 번 무기력해진다. 가끔은 사람들 만나서 교감을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너무 오랫동안 그럴 기회가 없었다 보니 이제 이러다 사회성이 아예 도태돼버리는 게 아닐까, 사람들 만나면 어색해서 뚝딱 거리면 어쩌지 별의별 걱정이 다 된다. 


11월에 행복했던 순간

1. 아이폰 12 프로 배송받고 데이터 옮겨놓고 딱 처음 켜는 순간 

2. 성북천 카페 아틀리에하모니, 유즈리스어덜트에서 커피 시켜놓고 책 읽은 시간 

3. 가족들과 함께한 은행나무 숲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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