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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Nov 25. 2020

11월에 마신 8개의 카페

망원 - 보문 - 안암 - 창신  - 성남 - 안국

가끔 마시러 떠납니다. 취향과 분위기 소비를 즐깁니다.

매달 다녀간 카페들을 개인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진과 함께 짧은 평을 남겨놓습니다. 카페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방문 목적과 시간대, 주문 메뉴, 날씨, 운 등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기 전 11월 초중순에 다녀왔습니다.




1. 망원 604


중화동에 있을 시절 브런치 먹으러 종종 갔던 카페. 망원동으로 이전하고는 이제야 처음 가봤다. 전보다 매장도 훨씬 커지고,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 많은 걸 보고 왜 내가 다 감격했는지..? 여전히 힙하고 친절하고 망원동 특유의 분위기와도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604 대표 메뉴인 아보카도 토스트 맛이 그리웠다. 그냥 보기엔 아보카도랑 샐러드랑 빵인데 희한하게 그 이상의 맛이 난다. 도대체 아보카도에 뭘 끼얹으면 이렇게까지 맛있어지는 건지 참 미스터리다. 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 집 커피도 잘한다. 아메리카노가 쓰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고, 입에 닿았을 때 살짝 크리미한 부드러운 질감도 느껴진다. 여기 그릴드치즈랑 쉬림프번도 진짜 맛있는데 이번에 못 먹고 와서 아쉽다. 나에게 604는 핫한 카페를 넘어 약간 인생 밥집 같은 존재에 가까운 듯. 부디 오래오래 장사해주세요!


2. 망원 이름없는카페


정말 특이한 가게다. 밖에서 보면 전혀 카페인지 알아차릴 수 없어서 아는 사람들만 찾아올 수 있는 곳. 절대 내부 사진을 찍으면 안 돼서 가보지 않고는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없는 곳. (물론 찾아보니 몰래 사진을 찍은 용자들은 있더라..) 떠들면 안 되는 걸 넘어서 거의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되는 수준으로 조용히 해야 하는 곳.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입장하는 것 같았달까. 여러모로 까다로운 그곳에 머무는 내내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은 편했다. 사진 찍으면 안 되니 핸드폰 볼 일도 없어서 읽고 있던 책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었다. 적막 속에 가끔 한 번씩 들리는 물 따르는 소리, 잔 내려놓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같은 생활 소음도 새삼 정겹게 들렸다. 가끔은 멍 때리고만 있어도 전혀 죄책감 같은 게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안에선 그런 시간을 장려하는 것 같았다.


사장님도 그리고 나와 함께 그 안에 있던 다른 두 명의 손님도 다 서로 조심하고 배려했기에 그게 좋았다. 모두가 조금씩 서로 눈치를 볼 때 비로소 찾아오는 평화가 참 좋다. 이 가게의 문 밖을 나서도 그런 평화가 쭉 유지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3. 보문 아틀리에하모니


지난달 막 오픈한 따끈따끈한 신상 카페. 한옥이 살짝 길 안쪽에 위치해있는데, 큰 길가와 연결하기 위해 그 앞에 있던 작은 건물을 입구이자 커피바로 만든 게 신의 한 수라고 생각했다. 모던한 느낌의 커피바로 입장해서 주문하고 뒷문으로 나가보면 옛 한옥 마당이 나오는 동선이다. 꼭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황홀한 착각이 들 정도다.


리모델링을 잘해서 실내 공간도 엄청 깔끔하고, 군데군데 있는 식물이 생기를 불어넣어줘서 더 예뻐 보인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실내가 좀 울리는 편이라 옆 테이블 대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고, 생각보다 한옥 안에 테이블이 많지 않아 자리싸움이 치열하다는 점. 커피바 건물에도 자리는 있고, 볕 좋은 날에는 마당에 앉아도 좋을 것 같다. 근데 사실 한옥 이즈 뭔들, 한옥 카페는 다 좋다. 아직 이런 보물 같은 한옥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성북구 일대, 이 동네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4. 안암 유즈리스어덜트


컨셉츄얼 끝판왕이다. 왠지 할머니 댁에서 본 것 같은 병풍과 동양화를 쭉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마당 한가운데 태국 같은 데서 볼 법한 불상이 뜬금없이 놓여있다. 한국의 레트로와 동남아의 불교문화의 묘한 만남이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 갈릴 공간이지만, 나는 집이나 일터가 아닌 제3의 공간으로는 이렇게 색다르고 낯선 분위기를 찾아다니는 편이라 매우 만족스러웠다.  


왠지 취하고 싶어 지는 분위기라 베일리스가 들어간 시그니쳐 커피를 마셨다. 카페인에 알코올까지 더하니 역시 극락의 맛이다. 아직 압생트는 엄두가 안 나지만, 다음에는 저녁 즈음 가서 맥주나 와인에 안주 메뉴 시켜놓고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


5. 창신 테르트르카페


우선 뷰는 정말 역대급이다. N서울타워가 바로 내 눈높이에 보이고, 도심을 감싸안는 서울성곽도 보이고, DDP나 롯데월드타워 같은 대표 건축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망하기 좋은 최적의 위치를 자랑하는 만큼 사진 찍기도 좋고, 특히 저녁에 야경 보러 오면 대박이겠다 싶었다.


하지만 뷰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좌석이 엉덩이 걸칠 정도의 낮은 벤치라 쪼그려 앉는 게 너무 불편했고 음료를 놓을 만한 테이블 같은 것도 마땅치 않았다. 1층에서 음료를 유리잔에 받아 위태롭게 들고 좁은 계단을 두세층 올라가야 하는 것도 불안했다. 오후 3~4시경에는 통유리창에 햇빛이 직방으로 들어와 너무 뜨거워서 도저히 실내에 앉아있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블라인드나 냉방 장치도 없었다. 아무리 전망이 좋아도 아메리카노 한 잔에 7000원 하는 가격도 납득하기 어려웠고.


그래도 탁 트인 서울 전망을 보고 싶다면, 그리고 차가 있다면 (중요) 한 번쯤 가볼 만은 하다. 창신역에서 걸어 올라갔는데 이게 카페 투어인지 암벽등반인지.. 땀 뻘뻘 흘리며 겨우 도착했더니 목에서 피맛이 나더라. 절대로 나처럼 미련하게 걸어 올라갈 생각은 하지 마시길.


6. 성남 온적공간


이런 곳에 카페가 있다고? 싶을 정도로 조금 생뚱맞은 동네에 있는데, 간판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전체적으로 우드&화이트 계열로 가게 이름처럼 따뜻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사장님이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으시는 분인 것 같은데, 가게 곳곳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이 카페의 하이라이트. 주문한 음료와 함께 직접 찍으신 흑백 필름 사진 한 장을 선물로 건네주시는데, 아 이런 작은 센스가 역시 내 마음을 건드린다.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린 채 마시는 라떼는 더 부드러웠고, 자리에 눌러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서 할 일을 마치고 일어났다. 사실 엄청난 와우 포인트는 없었지만, 따뜻하고 친절하고 편안한 카페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공간이어서 좋았다. 


7. 안국 땡스오트


그릭요거트 맛집으로 소문난 땡스오트, 연남점이 더 유명하지만 내 동선에 맞게 안국점을 방문했다. 엄청 큰 가정집을 개조한 것 같은데 인테리어, 가구, 식기 등 모든 요소가 나무나무해서 차분하고 힐링되는 느낌을 준다. 


시즌별로 다양한 과일 및 토핑을 곁들인 요거트 메뉴가 준비되어있다. 뭘 먹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쓸데없는 도전정신을 발휘해서 다른 데서 못 본 특이한 걸 시켰고 결과는.. 아주 건강한 맛이었다! 제발 아보카도 블렌디드 말고 절대 다른 거 드세요. 달달한 과일 많이 든 거.. 요거트보다 샌드위치가 더 맛있다는 소문도 있으니 참고. 


8. 안국 원서 회화나무


창덕궁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뷰 하나로 끝난다. 마침 단풍이 질 무렵에 가서 울긋불긋한 색을 입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했다. 전 세계 그 어디에서도 이렇게 궁궐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는 흔치 않을 거다. 만약 외국인 친구가 서울에 놀려온다면 데려가기 좋은 카페인 듯. 


서양에서 건너온 음료인 커피를 팔지만 어딘가 한국스러운 이 분위기.  핸드드립 커피와 홍차를 전문으로 하는 찻집으로, 2000년대 초반 느낌 나는 인테리어 소품이 보이고, 부모님 또래의 손님들이 많은 편이다. 오히려 살짝 연륜이 느껴지는 그런 요소들이 오히려 바깥 풍경 그리고 이 동네와 잘 어울려 더욱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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