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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터 Dec 26. 2020

12월, 과도한 책임감

2020년 12월의 월말결산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까워 남겨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매달을 기록해둡니다.




12월에 읽은 책

• <기죽지 않고 흥분하지 않고 끝까지 할 말 다 하는 법> - 제니퍼 앨리슨

- 다시 봐도 대단한 제목. 세상에 나 말고도 기죽고 흥분하고 끝까지 할 말 다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겠지 싶어서 조금 위로가 된다. 사실 내용은 좀 뻔한데, 다른 사람과 말하는 게 스트레스라고 느껴진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인 듯.

- 누구나 원하는 삶을 살 자격이 있다. 과거가 미래를 지배하게 놔두지 마라.
- 모든 일에 대해 전문가가 되거나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약간의 흥미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는 질문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우리가 만약 실수만 곱씹으며 산다면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서 찾겠는가. 그런 경험들은 자신을 파괴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 않다.


• <아이돌 메이커> - 박희아

- 트레이너, 프로듀서, 작사가, 디자이너, 뮤직비디오 감독 등 K팝을 만드는 사람들의 인터뷰. 연습생들의 간절한 꿈, 아이돌들의 피땀 눈물만 부각되는 K팝 서사가 식상해질 때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여기 나오는 모든 사례들을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더 재미있었고.

- 어떤 분야에서 인정받으려면 한 번은 미쳐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 디자이너가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일반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걸 100이라고 표현할 때, 디자이너는 이걸 6400배 확대해서 보는 거거든요. 남들은 보지도 않는 부분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중략) 그런 과정을 매일 반복하다 보면, 계속 눈이 다듬어지면서 세밀해지고, 더 세밀해져요.


12월에 즐겨들은 음악

• 폴킴 '화이트'

- 역대 K팝 겨울 시즌송 중 최고는 단연 핑클의 '화이트'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폴킴이 불렀다? 미쳤다! 목소리는 포근해서 미소가 지어지는데, 겨울 여행 컨셉의 뮤직비디오는 그립고 부러워서 눈물이 다 난다.


• Young K 'alone in this world' (Duet with 송희진)

- 매달 25일에 자기가 쓴 미발표 데모곡 유튜브에 푸는 영현쓰. 11월에 나온 듀엣곡이 따뜻한데 쓸쓸한 겨울 분위기와 찰떡이라 계절 내내 계속 들을 듯. 정말 천재만재 작사/작곡가 아닐 리 없어. 이 노래들 공짜로 듣기 너무 미안한데, 싹 다 긁어모아서 앨범 내주시죠?


• 백예린 <tellusboutyourself>, 태연 <What Do I Call You>

- 그리고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두 여성 아티스트가 새 앨범을 발표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와 미쳤다' 싶을 정도로 취향 저격인 곡은 찾지 못했지만, 적당히 내 12월의 일상 곳곳을 채우는 bgm이 되어줬다.

  

12월에 즐겨 본 콘텐츠

넷플릭스 오리지널 <반쪽의 이야기>

- '반쪽'이라는 말은 흔히 결혼을 전제로 한 남녀 간의 운명적 사랑을 묘사할 때 쓰여온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만나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고루한 성경 신화 같은 이야기. 하지만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우리를 둘러싼 무수한 관계들 속에 훨씬 다양한 형태의 상호보완, 다른 말로 사랑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엘리와 애스터의 관계는 물론, 엘리와 폴, 엘리 아버지와 폴까지. 서로가 서로를 만나 더욱 온전해지고 성장하는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연인도, 친구도, 가족도, 내가 몰랐던 걸 알게 해주는 사람도, 나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사람도. 모두 오늘날의 나를 만든 나의 반쪽이고, 나도 이미 누군가의 반쪽이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 넷플릭스 오리지널 <배드 맘스>, <배드 맘스 크리스마스>

- 왜 엄마들은 항상 참고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지. 바람피운 아빠는 욕하지 않으면서 왜 자녀 픽업에 늦은 엄마는 '나쁜 엄마' 소리를 듣는지. 그냥 코미디 영화로 가볍게 봐야 할지,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며 심각하게 봐야 할지 마음이 복잡했지만. 엄마들끼리 뭉쳐서 망나니처럼 놀 때 카타르시스가 느껴진 점은 좋았다.


•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 응사, 응팔이 대히트를 쳤어도 내 마음속 최애 시리즈는 늘 응칠이었다. 90년대 후반 배경의 평범한 빠순이의 이야기는 내가 처음으로 깊게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한국 드라마였고, 8년 만에 다시 봐도 역시나 웃음 감동 재미 다 가져다준 명작이었다. 너무 거창하거나 무겁거나 특별하지 않아서 더 좋은, 우리 모두의 추억 속에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 남편 찾기 밀당 분량 좀 줄이고, 지금 보니 용납할 수 없는 일부 빻은 설정과 대사가 편집된 클린 버전이 나온다면 두고두고 내 평생의 인생 드라마가 될 텐데.

+) 다시 봐도 시원이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씬은 역대급 명장면이다. 원타임의 'Without you'가 전주에 심장이 쿵.


•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 작년에 한창 인기 많았을 때 안 보다가 뜬금없이 올해 MAMA 시상하는 이다희·임수정 투샷 보고 정주행 시작한 사람 나야 나.. IT 회사, 특히 포털을 경험해본 업계 종사자로서 봤을 때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아 어이없는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배타미가 이직하려는 알렉스를 붙잡는 장면이나, 차현이 본인의 젊은 시절을 갈아서 만들었던 서비스의 종료 공지를 직접 쓰는 장면에서는 다 너무 내가 아는 얘기들 같아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도, 배신도, 성공도, 사랑도 여자들이 다해먹는 드라마라 가치 있었고, 뒤늦게라도 보길 잘했다는 생각.


• Mnet 예능 <달리는 사이>

- 또래 선후배 여성들끼리 달리기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교감하는 예능이라니. 자극적이고 유해한 이 세상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은 청정 힐링 프로그램이었다. 선미 정말 다정한 사람, 하니 정말 멋진 사람, 유아 정말 솔직한 사람, 청하 정말 든든한 사람, 츄 정말 귀여운 사람. 한 명 씩 다 꼭 안아주고 싶다.

"스스로를 옭아매는 걱정과 과도한 책임감. 무엇이 잘 달리는 당신의 발을 붙잡는지. 나를 가로막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

- 너무 현실 그 자체라 답답하고 빡치는데 그럼에도 민사린을 비롯한 모든 며느리들, 엄마들, 여성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또 한 번 비혼을 결심한다.


그밖에 인상적이었던 콘텐츠

- Mnet <다시 한 번> 거북이 편

- Nobody Talks To BoA - 모두가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아

- Evergreen 5nly 님의 5인조 시절 동방신기 콘서트 영상 스트리밍

- 그리고 깨알같이 거의 다 챙겨 본 연말 무대들 (MMA, MAMA, TMA, KBS 가요대축제, SBS 가요대전)


12월에 마신 카페


12월에 잘한 일

- 맨날 생각만 하고 엄두를 못 냈던 카페투어 큐레이션 작업을 드디어 해냈고, 지도 콘텐츠로 만들어 공유했다. 혼자 기록하는 취미지만 다른 이들에게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지 생각하며 셀프 토닥.


12월에 아쉬웠던 일

- 이번 달 내내 같이 사는 가족 말고 누굴 만난 적도 없고, 우리 동네를 벗어난 적도 없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뭘 한 적 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혼자 딱히 한 것도 없다. 정신없이 일만 겁나 많이 했다.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밤에는 혼자 드라마나 넷플릭스 보는 게 그나마 유일한 낙이었다. 최악이었어.


- 12월만 되면 한 번씩 견디기 힘들 정도로 우울해지는 시기가 찾아오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3년 전부터 매년 연말에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안 좋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올해 12월에는 딱히 그렇다 할 만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는 점에서 좀 걱정이 된다. 혼자서 끙끙 힘들어하다가 데이식스 연말 콘서트 가서 미친 듯이 놀고, 감동받고, 울고 불고 하면서 치유하면 좀 나아지는 것도 연례행사였는데 그것도 못했네. 이런 무거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게 좀 슬프다. 내년에는 뭐라도 좀 나아질까?


12월에 행복했던 순간

1. 동네 뒷산 산책하며 본 멋진 자연 풍경

2. 가족들과 조촐한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 무뚝뚝한 아빠가 사 온 꽃 한 송이

3. 내 생각, 내 감정을 공감을 해주는 이로부터 위로의 말을 들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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