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리터 Mar 26. 2019

동네 식당에 추억을 바라는 욕심

100일 글쓰기 #동네맛집 

2주에 한번 꼴로, 주말 낮에 가족 네 명이 다 집에 있는 날이면 점심 뭐 먹을지 가지고 한참을 다툰다. 다툰다기보다는 뜻이 안 모아져 고생한다는 표현이 좀 더 맞겠지만. 웬일로 어제 점심엔 해물칼국수를 먹으러 가자는 동생의 제안에 다들 쿨하게 동의했다. 차를 타고 그 외진 곳까지 찾아갔건만, 어쩐지 싸한 느낌은 틀린 적이 없다. 불도 꺼져있고, 간판도 사라졌고, 텅 비어있는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었다. 맛있고, 양도 많고, 장사 잘되던 집이었는데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엄마·아빠가 적극 추천하는 두부집에 가기로 했다. 등산하고 내려오는 길에 있는데 청국장이랑 두부가 기가 막히단다. 나는 청국장 냄새를 극혐하고, 두부는 맛이 없는데 (맛없는 게 아닌, 無味) 왜 돈 주고 먹는지 이해 못한다는 주의라. 거기는 나 없을 때 가라고 몇 번이나 잘 피해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끌려가게 됐다.

 

두부집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서울에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이런 후미진 곳이 있나, 세월을 역행하는 동네 분위기에 1차 충격, 진짜 상호명이 정직하게 '두부집'이라 2차 충격, 그리고 솔직히 맛있어서 3차 충격으로 쓰리 펀치 K.O. 밑반찬을 한번 집어먹기 시작하니 나도 모르게 계속 손이 갔다. 나물 무침 같은 거 평소에 줘도 안 먹는데 왜 맛있지. 메인 디쉬 격이었던 모두부도 예상 밖이었다. 두부가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겠어했는데 입에서 그냥 녹아버렸다. 엄마 말로는 마침 오늘 두부를 새로 하신 것 같단다. 갓 지어진 따뜻한 두부의 몽글몽글한 식감이 이렇게나 좋았구나. 처음 알았다.


생각해보니 지난 한 주 동안 이렇게 밥과 반찬, 국물이 갖춰져 있는 식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해 먹을 땐 주로 샐러드로 때우고, 외식할 땐 메인 요리 한 두 개 정도 시켜먹는 식습관 탓이다. 어쩌면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두부 백반 한 상은 근래에 잊고 살던 정겨운 맛과 추억을 불러일으켜줬다. 역시 '클래식 이즈 더 베스트'.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문 닫은 해물칼국수 집을 안타까워하며, 한때 자주 갔던 우리의 단골 초밥집과 샌드위치 집도 메뉴가 바뀌고, 주인도 바뀌고, 이름도 바뀌어버렸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참 맛있었는데, 사장님이 친절했는데 뭐 이런 생각은 이제 다 과거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말하는 우리도 몇 달 뒤면 이 동네를 떠나 이사 간다. 한 곳에 오래 정 붙이기 어려운 세상이다. 아니 어쩌면, 두부집처럼 몇 번 가본 적도 없는 곳에서나 정을 느껴야 하는 세상이다.

 

나는 청국장 대신 순두부
매거진의 이전글 기획자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