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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Oct 26. 2024

정당방위 - 3





 2024년 1월 27일. D-7

 흉기는 이미 준비했다. 독일제 비셀 칼 세트. 육류의 뼈에 붙어있는 살을 떼어낼 때 주로 쓰는 칼인데, 그중에 4호가 가장 적당하다. 가벼운 데다 날이 가늘고 뾰족해 놈의 목숨을 끊기에 딱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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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2월 28일. 청년 청과 앞 사거리.

 

 다행히도 흉기가 박정호의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나왔다. 박정호가 운영하던 정육점 안에 있는 작은 창고 한구석에서 독일제 브랜드 비셀의 칼 세트가 발견되었는데, 범행 현장에서 흉기로 쓰인 4호 칼만 쏙 빠져있었다. 박정호가 피해자 신분인 탓에 경찰의 수색이 다소 늦었지만, 뒤늦게라도 범행에 쓰인 흉기가 박정호의 것이라는 증거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진영의 정당방위를 입증하기에 더욱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김 변호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현장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사건이 벌어진 막다른 골목에 이어 청과물 가게까지 들러 본 김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박정호가 운영하던 정육점 건물 앞에 섰다. 정육점은 청과물 가게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건물 1층은 정육점으로, 2층은 주택으로 쓰고 있었다.

 김 변호사가 불 꺼진 정육점 안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막 건물 옆에 난 계단으로 한 중년 여자와 남자아이 하나가 걸어 내려왔다. 정육점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둘은 집 앞의 분리수거 구역에 가지고 내려온 쓰레기를 버렸다. 둘은 박정호의 아내와 아이가 분명했다. 반복해 쓰레기를 내놓는 것으로 보아 김 변호사는 그들이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이 동네를 떠나려 하는 거라고 추측했다.

 거리를 두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김 변호사는 그들이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않자 다시 정육점 앞으로 가 우뚝 섰다. 다시 박정호의 이층 집을 올려보던 김 변호사는 문득 고개를 돌려 그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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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2월 2일. D-1

 드디어 바로 내일이다. 내일 나는 놈을 죽인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점검하자. 모든 준비가 완벽한가? 아, 살인 계획이 담긴 이 문서도 처리해야 한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모든 게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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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5월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사건 번호 2024 고합1091은 국민 참여 재판으로 진행됐다. 김 변호사가 먼저 권유했고 피고인인 이진영이 받아들였다.

 시민들은 약자가 자신을 보호하는 행위를 하면 설령 그것이 과잉 방어라 할지라도 일단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깊이 파고들어 가면 법적으로는 다소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이지만 일반인의 눈높이로 보면 보다 쉽게 무죄처럼 보인다. 물론 국민 참여 재판이라고 해서 배심원단의 평결로 유무죄를 정하는 건 아니지만, 판결을 내리는 판사는 배심원단의 평결을 존중해야 하는 강제성이 생기기 때문에 국민 정서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상이 김 변호사가 국민 참여 재판을 선택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재판은 김 변호사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피고인 이진영에게 다소 불리한 방향이었다. 정확히 알 수 없는 사건 당시의 상황이 결국 문제가 됐다. 이 사건의 공판검사인 이 검사는 처음부터 그 포인트만을 집요하게 짚었다. 내심 이진영의 무죄를 응원하며 재판을 지켜보던 대부분의 배심원들도 경험이 풍부한 이 검사의 노련한 변론에 절로 그 굳건한 마음이 흔들렸다.

 김 변호사는 재판 내내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탓했다. 지금껏 나온 증거들은 분명 피고인의 무죄를 가리킨다. 하지만 자신의 미숙함이 재판을 이런 분위기까지 흘러가게 했다. 초임인 자신이 아니라 경험이 풍부한 다른 변호사가 이 사건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김 변호사가 자신을 탓하고 있을 때 이 검사가 배심원단을 향해 서서 최종 변론을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법은 개인이 자신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하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러한 힘의 사용은 반드시 필요한 한도 내에서만 허용된다는 점입니다.”

 적당한 타이밍에 한 박자 쉰 이 검사는 판사석으로 눈길을 돌리며 변론을 이어갔다.

 “사건 직후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피고인은 뒤늦게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피해자의 행동이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위협을 가했다 볼 만한 증거가 없습니다. 피고인의 행동은 한계를 넘어선 과도한 폭력의 사용으로 봐야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피고인에게 해당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유죄 판결을 내려주실 것을 재판장님께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이 검사가 숙련된 솜씨로 최종 변론을 끝냈다. 김 변호사가 옆을 보자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피고인 이진영의 모습이 보였다. 더는 말 할 기력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결국 자신의 마지막 변론이 이 재판의 유무죄를 결정지을 것이다.

 마지막 변론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김 변호사가 아까부터 책상 위에 뒤집어 두었던 하얀 종이 하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배심원을 포함한 재판장 안의 모두가 김 변호사의 손끝에 있는 종이를 주목했다.

 “이것은 제가 직접 피해자 박정호의 집 앞에서 확보한 종이입니다.”

 이 검사가 즉각 항의했다.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증거입니다.”

 이 검사의 말이 맞았다. 판사 역시 찌푸린 표정으로 그 점을 지적하려 들자 김 변호사가 재빨리 선수를 쳤다.

 “죄송합니다. 재판장님. 시기를 놓쳐 증거 신청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증거가 아니라 하나의 참고 자료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짓말이다.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다만 박정호의 집 앞에 버려졌던 이 증거는 김 변호사가 무단으로 취득한 것이라 사전에 증거 신청을 한다면 그 증거능력, 그러니까 재판에서 사용될 수 있는지의 그 여부를 다투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질 확률이 높았다. 아니, 불법적으로 취득한 이상 사실상 이 증거가 채택될 확률은 제로였다. 그럴 바에야 김 변호사는 차라리 이 증거를 최후 변론 때 참고 자료로 쓰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만에 하나라도 재판이 불리하게 돌아간다면 배심원들의 마음을 돌릴 히든카드로 말이다.

 “보시다시피 이 종이에는 살인이 벌어진 막다른 골목과 그 근처의 약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으로 볼 때, 당일 피해자 박정호가 피고인 이진영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박정호는 철저한 계획 하에 피고인을 살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배심원들은 일제히 눈을 돌려 김 변호사가 대형 스크린에 띄운 참고 자료를 자세히 보았다. 종이에는 사건이 벌어진 막다른 골목과 정육점, 청과물 가게의 위치 등이 거칠게 그려져 있었다. 피해자가 죽은 골목에는 엑스자가 그려져 있었고, 근처의 CCTV 위치도 전부 표시되어 있었다.

 술렁거리는 재판장의 분위기를 가만히 지켜보던 김 변호사는 적당한 타이밍에 말을 이어갔다.

 “이번 사건에는 여러 증거가 나왔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블랙박스 영상이 나왔고, 피해자 집에서는 범행에 사용된 흉기도 나왔습니다. 게다가 여기 이렇게 사전에 살인을 계획한 것으로 보이는 증거까지 있습니다. 이런 무수한 증거가 있음에도 먼저 자신을 공격한 자의 목숨을 잃게 했다는 이유로 되레 피고인의 죄를 묻는다면, 그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를 부정한다는 뜻과 다름없습니다.”

 예상치 못 한 증거가 나오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 검사의 표정을 보며 김 변호사가 힘차게 말했다.

 “배심원단 여러분, 그리고 재판장님, 제 의뢰인에 대한 무죄 판결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피고인은 오직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명백히 법이 정의하는 정당방위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일 뿐, 그 어떤 범죄 행위도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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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 사건 번호 2024 고합1901. 피고인 이진영. 죄명 상해치사. 본 법원은 위 사건에 대한 심리를 종결하고,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본 사건의 심리 과정에서 확인된 바에 의하면 피고인 이진영은 2024년 2월 3일,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불법적인 공격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한 행동을 취하였다. 피고인이 당시 직면한 상황을 고려할 때, 피고인의 이 행위는 생명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써 이는 형법 제21조 1항에 해당되어 범죄로 되지 아니한다. 이에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하여 본 법원은 피고인 이진영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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