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앤정 Mar 15. 2021

산책길

저녁 먹기 전에 부랴부랴 산책을 다녀왔다.  하루가 어찌 빨리 지나가는지 시계를 보니 산책할 타이밍 놓치기 일보 직전이다.  이러다 깜깜한 저녁 시간이 되겠다.

저녁 산책도 괜찮지만,  일정이 있으니 운동 빠뜨리지 않기 위해 서둘렀다.

이제는 포근한 봄 날씨라 두꺼운 외투를 벗고 모자도 쓰지 않고 나갈 수 있다.  겨울엔 한번 나가려면 준비할 게 많았다.  날이 따뜻해지니 준비할 거리가 줄어들고 옷도 얇아지니 간편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현관문을 나선다.  큰길가로 나오니 예상과는 다르게 바람이 쌀쌀하다

'아! 옷이 얇으려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첫발을 떼었다.

얼마 걷다보니 살짝 땀이 난다.

원래 가만히 있으면 추운 기운이 느껴지는데 움직이다 보면 몸에 열이 발생하여 추위를 느끼는 것이 감소한다. 살짝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땀이 나는 몸으로 다시 씩씩하게 걸을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걷는 것을 좋아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청소년기에도 늘 학교와 집이 멀어서 버스를 타고 다니거나 걸어 다닌 탓이었을까? 이른 아침부터 만원 버스에 시달리고 또 걸어서 교문까지 가야 했다.

10대부터 열심히 달리고 걸어왔던 타의의 환경에서 시작된 훈련 덕분일까?

그때는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학교 가는 길은 학생의 본분이라 당연히 가야 하는 길이고 남들도 이렇게 다니리라 생각을 했다. 공부를 좋아해서가 아니고 친구들 만나러 가는 길이 좋아서 힘들다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다른 운동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그래도 걷기만큼은 질리지 않고 편하게, 꾸준히 할 수 있었다. 결혼 후에는 남편과 등산도 매주 가던 시절도 있었다. 천만다행이지 산에 가기 싫어하고 움직이는 거 싫어하는 남편을 만났더라면 주말마다 등산하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 있어서 코드가 맞아 다행이다.

늘 그렇듯 운동도 열심인 분들은 날씨와 상관없이 꾸준히 하시는 분이 많다.  

나 홀로 운동은 시작하기는 쉬우나 오래도록 꾸준히 하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히 하시는 분들은 존경스러울 뿐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반려견과 같이 산책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종류가 다양한 반려견을 보게 된다.  한 손에 한마리, 혹은 양손에 한마리씩 두마리와 같이 산책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니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산책하는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걷고 있는 길 오른편에는 꽃씨를 심어놓았고, 왼편에는 물이 흐르고 있는데  수심이 매우 얕아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장마철에는 수위보다 물이 넘쳐 통제를 하는 시기도 있다.  작년에는 코스모스를 심어 한들거리는 코스모스길을 걸었었다. 올해는 어떤 꽃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함을 안고 꾸준히 걷고 있다.

겨울을지나 봄의 길목에 있는  요즘 나무에는 잎이 매달려있지 않고  휑하니 나뭇가지들만 보이지만 햇빛이 내리비치면서 나무도 푸르른 잎을 입을 것이고, 다양한 종류의 꽃과 향기가 우리를 행복의 장으로 초대할 것이다.

꽃과 나무가 초대장을 보낼 때 기쁜 마음으로 방문해야 하니 그때까지 두 다리 튼튼하게 운동 꾸준히 해야겠다는 나 자신의 숙제를 만들었다.

산책길을 걸을 때 좋았던 것은 흙길 때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흙길의 절반을 시멘트 길로  만들었다. 만든 이유가 분명 있을 터이지만 못내 아쉽다.  흙길은 부드럽고 좋은 기운을 받을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있었다.

그 느낌을 절반만 느끼며 걸어간다. 


이 산책길을 걷다 보면 물 위에 떠 있는 청둥오리, 왜가리를 볼 수 있다.  왜가리의 몸통 색도 하얀색과 회색과 흰색이 섞인 두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각기 부르는 이름이 다른지 어떤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새 박사가 아닌 일반인의 눈에는 다 똑같이 보여 그 이름을 왜가리라 적는다.

물속에는 작은 피라미, 잉어도 보인다.  산책길 중간중간 여러 개의 다리가 보이는데 다리 밑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의 시선은 다리 밑을  향하고 있다.  물고기가 바글바글하다.  한 곳에 많이 모여 움직이는 물고기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 다리 밑에는 물고기가 많다.  맨 처음 많은 물고기를 본 순간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현재는 그 기쁨의 강도가 낮아졌으나 여전히 물고기를 쳐다보는 일은 즐겁다.

가까운 곳에서 누릴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 감사하다.

그래서 산책길이 늘 즐겁다. 거기에 꾸준히 산책길을 걷다 보면 건강관리도 되니 내가 부지런히 움직여 작은 행복을 선택하는 것은 나의 의무이자 선택이 아닐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만이다, 라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