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명료한 '공백'이 필요하다
지난겨울 제주도에 볼일이 있었다. 출발하기 하루 전에 소지품을 꾸렸다. 짧은 여행이든, 긴 여행이든 짐을 챙길 때 중요한 건 ‘챙기기’가 아니라 ‘버리기’가 아닐까 싶다. 어떤 물건을 가방에 담느냐가 중요하긴 하지만, 때론 무엇을 두고 가느냐도 중요하다. 쓸데없는 걸 가방에 구겨 넣다 보면 나중에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짐이 여행의 질을 떨어트리기 마련이다.
제주로 향하던 날, 나는 가방을 최대한 가볍게 했다. 활용도 높은 물건만 챙긴 다음 김포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1시간 10분 뒤쯤, 제주공항 활주로에 진입한 비행기가 덜커덩 소리를 내며 지상에 내렸다. 평소보다 착륙의 진동이 크게 느껴졌다. '어, 이거 뭐지?' 순간,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일정을 모두 마친 다음 날 오후, 공항으로 이동하던 길이었다. 흩날리는 수준이었던 눈발이 점차 굵어지면서 도로에 수북하게 쌓여가고 있었다. 부리나케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제주 전역에 폭설이 쏟아졌습니다. 하늘길과 바닷길이 모두 막혔습니다. 7년 만에 한파주의보가…’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난 거기서 시선을 멈추었다.
공항에 도착해 청사로 들어서는 순간 멈칫했다. 고민했다. 기상 여건이 호전되기를 무작정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저렴한 숙소를 구하는 게 나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결국, 난 본능적으로 ‘셀프 유폐’를 택하기로 하고 곧장 그곳을 빠져나왔다. 공항을 나서는 길, “결항?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야?”라며 비분강개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나마 재빠르게 움직인 덕분인지 전망 좋은 호텔에 묵게 됐다. 기대 반 우려 반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틀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항은 폐쇄 상태.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우리 몸은 솔직하다. 특히 내장 기관은 솔직하다 못해 뻔뻔하다. 평소보다 음식물을 덜 공급받으면 지체 없이 개구리울음 비슷한 소리를 내며 “빵이든 밥이든 어서 드세요!” 하고 시위라도 하는 것 같다.
안 되겠다 싶어 난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근처에 있는 커피전문점을 찾아갔다. 30분 넘게 걸어 도착한 그곳에서도 결항의 흔적을 절감하고 말았다. 이런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폭설로 인해 빵과 케이크 등 일부 품목은 판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결국 난 커피와 물로 주린 배를 채운 채 호텔로 돌아왔다.
잠이 오지 않았다.(밥 대신 커피를 들이부었으니). 해가 뜨기를 기다리다가 새벽에 창밖을 바라봤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눈발이 내려앉은 자리에 또 다른 눈발이 쏟아지고 있었다. 중학교 한문 수업 시간에 설상가상(雪上加霜)이란 사자성어를 아이들에게 알려줄 때, 이 광경을 보여주면 효과 만점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이 눈과 머리에 그득하게 맴돌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다음 날 아침,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내음이 코를 간질이는 바람에 잠이 깼다. 눈발이 점차 가늘어지고 있었다. 난 어제 마시다 남긴 차가운 커피를 들이켜며 제주의 겨울 풍광을 감상했다.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거리로 나가서 걷지 않으면 못 배길 것 같았다.
코트를 걸치고 거리로 나섰다. 무작정 걸었다. 바닷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다만,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공기는 비릿하기보다 청량했다. 사이다 한 잔 들이부은 듯 가슴이 뻥 뚫렸다.
잠시 뒤 묘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겨울은 본디 스산한 계절인데 제주의 겨울은 그렇지 않았다.
자칫 쓸쓸할 수도 있는 너른 여백을, 돌과 물과 나무와 바람이 적절히 메워주고 있었다.
제주도의 겨울은 황량하지도, 쓸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포근했다.
제주의 산(山) 역시 그렇다. 제주도 곳곳에 솟아 있는 산은 산세가 가파르지 않고 유순하다. 거만하지가 않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인자한 어머니가 두 팔을 벌려 자식을 안아주는 모습이라고 할까. 모르긴 몰라도 저 산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더 완만해질 것이 분명하다. 비바람과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더 부드러운 곡선이 될 것이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허리가, 자연스레 하늘보다 땅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사흘 뒤 나는 제주도를 벗어나게 됐다. 폭설로 발이 묶이면서 사나흘 가량 시간을 잃었으나, 한편으론 뭔가를 얻어 가는 느낌도 들었다. 며칠 새 제주도는 내게 소박한 권고(勸告)를 했던 것 같다.
“이 작가, 엎어지면 좀 쉬어가요. 가끔은 명료한 공백을 가져봐요.”
그래, 종종 공백(空白)이란 게 필요하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우린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어야 한다.('쉼표'라는 단어가 오히려 우리의 숨통을 옥죄기도 하지만).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러니 가끔은 멈춰야 한다.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힘겨울수록,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삶이 버거울수록 우린 더욱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