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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Nov 25. 2020

카페 창가 자리의 장단점

좋기도 하지만 아쉽기도 하다

우리 동네 이디야 앞에는 아파트 출입구가 있다. 양 옆에 아파트 건물이 서 있고 그 사이에 보도가 있다. 보도 정중앙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제 덩치를 뽐내고 있다. 가에는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벤치를 설치해놓았다. 하루는 벤치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은 남들 다 하는 휴대폰도 보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사람 구경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흘러가는 시간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가만히 있는 그 사람이 신기하게 보였다.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생각이라는 구름을 타고 낚싯대를 하나 늘어트린 강태공 같았다. 그를 따라 나도 한참을 낚시를 하느라 보냈다.



창밖 구경도 힘들어질 무렵 주변을 잠시 둘러보면 그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는 학생,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라 모든 이야기를 다 해야 하는 것처럼 입을 놀리느라 정신없는 주부, 서로 말 한마디 없이 각자 휴대폰을 쳐다보다가 가끔 웃음을 터트리는 커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를 제지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엄마. 카페는 언뜻 보면 늘 같은 풍경 같지만 자세히 보면 늘 새로운 풍경이다. 문득 고개를 돌려 카페를 관찰하면 비로소 쉬는 느낌이 난다.     


어느 날은 카페 내부가 한눈에 들어오는 구석자리에서 과제를 하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카페 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왔다. 딸랑딸랑하는 종소리는 엄마를 재촉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아이는 유치원에 다닐 법한 덩치였다. 꼬마는 엄마를 기다리지 못하고 베이커리가 전시된 진열장에 달려가 입맛을 다셨다. 엄마가 올 때까지 그 작은 진열장 앞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누가 바닥에 금을 그어 놓고 ‘너 이 밖으로 나오면 안 돼!’라고 한 것만 같았다.


아이 엄마는 조금 있다가 들어왔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걷는 모습이 뭔가 요상했다. 보통 사람들이 다리를 움직여 걷는다고 하면, 그 사람은 몸 전체를 써서 걸었다.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반대쪽 팔다리가 전부 휘청휘청했다. 팔과 다리 각각이 다 자아가 있어서, 뇌의 지시에 반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 몸이 불편하신 분이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엄마는 아이에게 무슨 음료를 먹을지, 빵은 먹을 건지 물어보며 메뉴를 골랐다. 음료 두 잔과 빵 하나를 주문했다. 그 사이에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뛰어가 자리를 잡았다. 자리는 카운터에서 조금 멀었었다. 적당한 높이의 턱도 있었다. 엄마는 주문을 마치고 역동적으로 자리를 찾아갔다.     


별생각 없이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고민에 빠졌다. 많이 불편하신 분 같은데 내가 도와드려야 하나? 걸음걸이가 너무 불안해. 바람이 장난으로 입김을 내쉬면 픽 하고 쓰러질 것 같아. 지팡이를 짚고 한 손으로 트레이를 옮길 수 있을까? 다 쏟을 것 같은데. 그럼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을까? 바로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아. 그래, 도와드려야겠다. 그런데 어떻게 도와드리지?


음료 나왔다고 할 때 바로 가서 들고 오는 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또, 알바가 내 주문이 아니라며 제지하면 부끄러울 것 같아. 남들이 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건 무서운데. 그럼 냅킨을 가지러 가는 척하며 조심스레 여쭤볼까? ‘아, 혹시 들어다 드릴까요?’하고 말야. 그래 이게 괜찮은 것 같아. 아니야. 그런데 아주머니가 내가 도와준다는 걸 기분 나쁘게 여기면 어떡하지? 거절당하면 사람들이 모두 나를 비웃을 것 같아.


아니, 애초에 내가 저 사람을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 혼자서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카페에 왔겠지. 내가 느끼는 이 연민이 정말 옳은 감정인지 모르겠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맞나? 그냥 내 우월감 아닌가? 또는 내 알량한 도덕심과 자존감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은 아닐까? 그래, 난 저 사람을 도와줄 자격이 없어. 그게 맞아. 괜히 나섰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말고 그냥 앉아 있자.     


내가 필즈상을 타기 위해 리만 가설보다 어려운 문제의 해법을 고민하던 동안 음료가 나왔다. 음료가 나온 건 알았지만 나는 못 들은 체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알바의 목소리를 들은 즉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타이밍이 지났다며 내 복잡한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타이밍이 지나지는 않았다. 아주머니의 걸음은 정말 느렸으니까.


여자는 지팡이를 짚지 않고 카운터로 걸어갔다. 지팡이 없이 걷는 그녀는 더욱 힘들어 보였다. 그녀의 팔다리는 각자 축제라도 벌이고 있는지 마구 춤을 췄다. 이리저리 휘청이는 모습이 매장 입구에서 춤을 추며 손님을 끌어 모으는 풍선 인형 같았다. 휘청휘청, 아슬아슬, 조마조마. 그 광경을 제대로 표현하기에는 내 어휘와 문장이 부족하다. 그녀는 가볍지만 필사적인 걸음을 내딛으며 카운터로 걸어갔다. 그때까지도 내게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난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한 손에 트레이를 들고 반대 팔로는 열심히 균형을 잡으며 걸었다. 몸이 흔들리는 것만 보고 있으면 트레이에 이미 음료를 한 트럭은 쏟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쟁반의 순결을 잃지 않고 아이에게 음료 배달을 완료했다. 그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너무나 신기하고 숭고하게 보였다.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과 함께 내게 고통이 찾아왔다. 너무나 괴로웠다. 그녀가 날 이상하게 볼까 봐 두려웠고, 주변 사람들이 그럴까 봐 두려웠다. 거절당할까 두려웠지만 내 알량한 도덕심이 짓밟히는 것도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비겁하게 도망쳐서는 그녀를 돕지 못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내게는 용기가 없었다. 그런 내가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머리를 손으로 싸매고 테이블에 고개를 박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헝클어댔다. 집이었으면 바로 자해라도 했을 텐데, 카페에서 이목을 끌기는 싫었다. 그럼 또 날 이상하게 볼 테니까. 그런 생각들과 함께 나는 나를 무참하게 난도질했다. 칼질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자의 테이블에서 작은 다툼이 벌어졌다.

“니가 묵고 싶다 캤다이가! 아이가?”

“...”

“와 이거를 안 묵는다카노 갑자기! 말이라도 해봐라.”

“...”

아이는 음료 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람쥐처럼 볼을 불린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니가 묵고싶댔다이가. 딸기쥬스 맛있는데 이거를 와 안묵노.”

“...”

짧은 실랑이 끝에 어머니가 백기를 들었다.

“그래, 알긌다. 그라믄 니 뭐 물낀데?”

“나 쪼꼬!”

아이는 언제 침묵시위를 했냐는 듯이 바로 돌변했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카운터로 가서 초코맛 음료를 주문했다. 다시 나는 번뇌에 빠졌다. 이번에는 일어나서 도와드리자 하는 생각, 아까는 안 도와줬는데 이번에 도와주면 이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전투를 벌였다. 음료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억겁 같았다.


아르바이트생이 나를 구했다. 음료를 가지고 가던 아주머니의 모습을 유심히 봤는지 이번에는 ‘주문하신 아이스 초콜릿 음료 나왔습니다!’하는 말 대신에 직접 음료수를 모자의 테이블에 가져다줬다. 어머니는 ‘감사합니다’하며 음료를 받았다. 나는 아직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오늘은 창가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손으로 글을 쓰는 탓에 별로 쓰지도 않았는데 손이 너무 아파 더 적을 수가 없었다. 이 문단만 다 쓰고 잠시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잠시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바라봤다. 차 몇 대가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햇살이 따사롭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붉은 나뭇잎은 햇빛을 받아 타오를 듯이 강렬하게 빛났다. 이어폰을 귀에서 뽑자 잔잔한 피아노 선율 대신 아이의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뭐지?’ 하는 생각에 몸을 돌려 카페를 둘러보니 그 모자가 있었다. 내 눈앞에만 집중하느라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도 몰랐다. 음량은 최소로 했기 때문에, 문이 열리는 딸랑딸랑 소리 정도는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계속해서 카페에서 틀어 놓은 노랫소리도 이어폰을 뚫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온 건 몰랐다. 테이블에는 빵은 없고 빈 그릇만 놓여 있었다. 들어온 지 꽤 된 모양이었다.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오늘이라고 내가 그녀를 도와줬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저번처럼 생각만 하다가 말고 자책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머릿속에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들어오는 것도 몰랐다니.


창가 자리가 좋기는 하다. 탁 트인 창밖도 보이고, 테이블도 넓은 데다가 콘센트도 있다. 바로 내 앞에 있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자주 이용했다. 그런데 오늘. 주변을 돌아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워졌다. 다음에 카페에 가면 창가 자리보다는 안쪽에 앉아볼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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