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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Nov 17. 2020

누가 잘못했나?

이성 만능 사회

전에 조선일보에서 "술의 세계, 커피의 세계"라는 칼럼을 본 적이 있다. 참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하며 지나갔었다. 한 두어달 지나니 그런 글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그 글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인터넷에서 본 글 때문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유저가 부모님과 말싸움을 하다가 과한 말에 충격을 먹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다. 작성자 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런 말을 했을까. 모두가 가엾다. 하지만 더 슬픈 사실은, 저렇게 가슴을 후벼파는 가족의 말이 생각보다 주변에 흔하다는 것이다. 정신과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온갖 사연을 다 듣게 된다. 그러다 보면 톨스토이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개 다른 것 같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비슷한 이유때문에 불행하다. 저런 식의 홧김에 하는 부모님의 말, 지나가며 하는 부모님의 말에 상처를 입어 마음에 병이 생긴 이가 결코 적지 않다. 비록 큰 트라우마로 남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남아 쿡쿡 나를 찌르는 못이 된다. 나도 그렇다.


우리집은 편모 가정이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도 전부터 싸움이 잦았다. 아빠는 매일 술에 취해 욕지거리를 하며 가구를 때려부수는 게 일상이었다. 일 하지 않는 아빠 대신 엄마가 밥벌이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비로소 이혼을 했다. 이혼한 엄마는 내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때 종종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 "니만 아니며는 훨 빨리 이혼해가꼬 쪼깨라도 더 편했을낀데.", "내가 뼈빠지게 고생해가꼬 돈 버는 이유가 뭔데? 니 때매다, 니 때매. 니만 없으며는 느그 엄마 훨씬 더 편하게, 고생 안하고 살 수 있다꼬,"


지나가는 말, 또는 홧김에 내뱉은 말이었다. 엄마의 진심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사실 그렇게 믿고 있다.) 그래서 저런 말이 내게 상처를 줬다고 생각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담을 받고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알게 됐다. 저 말들은 모두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치료를 시작한지 8개월이지만 여전히 가슴에 박힌 못은 빼내지 못했다. 빼낸 후에도 그 구멍을 매꾸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잡설이 길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이렇게 불쌍해요"하는 건 아니다. 우리 어머니나 저 게시글의 어머니를 욕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저런 안타까운 상황이 꽤나 흔하다는 거다. 팟캐스트에서 들은 사연도 많지만, 내 글에서는 내 이야기를 해야 하니 내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이는 "에펨코리아(이하 펨코)"라는 커뮤니티의 사진이다. 이 사이트는 댓글에 추천과 비추천을 할 수 있다.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 4개가 '베스트 댓글'로서 댓글 최상단에 노출된다. 저 댓글들은 펨코 유저에게 많은 추천을 받은 베스트 댓글이다. 추천수만큼의 사람이 저 생각에 동의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댓글 반응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아들이 잘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런 말이 나오지."하는 의견이다. 다른 하나는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아니지. 정말 큰 충격이겠다."하는 말이다. 추천수와 비추천 수를 비교해보면, 적어도 에펨코리아 내에서는 전자의 의견이 다수인 듯하다. 가슴 속에서 씁쓸함이 느껴진다. 머릿속에는 '정말 그런가?'하는 물음표가 떠다닌다. 정말, 자식이 잘못한 걸까? 어머니가 보살인 걸까? 잘잘못을 따지기 힘드므로 중립기어를 박아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있는가?


잘 모르겠다. 누가 잘못했든 간에 저런 말이 상처가 될 거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말을 들은 자식에게 큰 상처다. 그리고 말을 한 부모에게는 더 큰 상처와 자책이다. 그럼 그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누구 하나만의 잘못이 아니기에 잘잘못을 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잘잘못을 따지는 것만큼 잔인한 일이 없다. 재판관이 "이만큼은 네 잘못이고, 이만큼은 네 잘못이니 모자 모두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라."라고 하면 둘은 화해할 수 있을까? 저 말다툼이 모자의 머릿속에서 사라질까? 오히려 내가 잘못했다는 자책에 휩싸여 괴로워하거나, 상대방 잘못 비율을 가지고 계속해서 남탓을 하지는 않을까.



잘잘못을 따져서 해결될 일이 있고 해결되지 못하는 일이 있다. 인간관계는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판단해서 뭐 하겠는가? 인간관계는 이해와 공감의 대상이다. '아, 정말 충격이었겠다.' 그 한 마디가 저 사람에게는 필요한 거다. "잘못한 놈한테 괜찮다고 우쭈쭈해주는게 말이나 되냐?"라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이는 다시 한번만 생각해보기 바란다. '많이 마음이 상했구나'라는 말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지, '네 잘못이 부모님 잘못보다 더 크니까 인정하고 사과해라'는 말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지 말이다.


너무 이성적인 사회다. 그리고 단편적으로 이성적인 사회다. 정말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공감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테다. 공감은 단순히 '오구오구' 해주는 것과는 다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할 이야기가 있으리라. 너무 이성적인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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