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메다 Nov 14. 2020

Don't we all?

영어 모의고사를 풀다가

김씨는 아내와 함께 마트에 왔다. 아내는 매장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세일 품목을 사느라 열심이었다. 김씨는 장 보는 시간이 지루하기도 하고, 시간이 난 김에 세차를 해야겠다 싶어서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열심히 차를 닦던 도중, 길 건너를 보니 누더기를 걸친 노인 하나가 보였다. 김씨는 그를 거지라고 생각했다. 거지는 주차장을 건너 그에게로 다가왔다. 거지가 가까워지자 그의 모습이 자세하게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땡전 한 푼 없는 모습이었다. 단 한푼도 없어보였다. 사람들은 때때로 이유 없이 관대하다. 온 세상이 찬란한 장밋빛으로 보이고, 마주하는 모든 이에게 따뜻한 웃음과 인사를 건네는 날이 있다. 하지만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싶은 날도 있는 법이다. 김씨에게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저 거지가 돈 달라고 하진 않겠지? 그러지 마라, 제발."

김씨가 생각했다. 노인은 그에게 구걸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김씨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았을 뿐이다. 하지만 노인에게 버스 요금을 낼만한 돈은 없어 보였다.


몇 분이나 침묵이 흘렀을까, 노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차가 엄청 좋구만."

비록 누더기를 입었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 기품이 느껴졌다. 김씨가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러고 김씨는 계속 세차에 몰두했다. 노인은 김씨가 세차하는 동안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김씨의 예상과는 달리 돈을 구걸하지 않았다. 분명 돈을 구걸하려던 것 같았는데... 노인이 가만히 앉아만 있자 김씨는 아리송해졌다.

"혹시 무슨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노인은 김씨가 평생 잊지 못할 세 마디, 간단하지만 깊이 있는 세 마디를 던졌다.

"Don't we all?(우리 모두 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

김씨는 지금까지 그가 자신에게 구걸하지 않고, 자기도 열심히 세차를 하고 있는 상황이 만족스러웠다. 완벽하다고 느꼈다. "Don’t we all?"이라는 세마디가 그를 강타하기 전까지는.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김씨의 머릿속에 띵 하는 신선한 충격이 몰려왔다. 자신도 노인의 말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자기도 만약 버스 요금이 모자라거나 잠잘 곳이 없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누구나 곤경에 빠질 수 있다. 김씨는 지갑을 열어 돈을 꺼냈다. 버스 요금에 더해 따뜻한 밥 한끼를 먹고도 남을 돈을 꺼내 주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가졌든지, 얼마나 사회적으로 성공했든지 간에 모두 도움이 필요한 인간이다. 우리가 얼마나 가진 것이 없든지, 얼마나 많은 문제를 등에 짊어지고 있든지 간에, 심지어 당장 잠잘 곳도 없고 밥 먹을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고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한 봉사활동이라서 돈은 받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시간당 2만원짜리 과외를 하던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간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모의고사를 준비하려고 예전 모의고사를 쭉 풀고 있었다. 오늘은 2019년 6월 시험을 풀었다. 학생에게 설명을 해야하므로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지문을 쭉 읽으면서 수업을 준비하는데, 마지막에 있던 이 지문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정말 김씨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한 대 세게 후드려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 모두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요?”   
  

정말, 우리 모두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본디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으며, 혼자만의 시간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타인과 교류하지 않고서는 결국 미쳐버릴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남이 필요하다. 단순히 내가 생산할 수 없는 것을 생산하는 분업자로서의 남이 아니라, 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동서고금의 성현들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경험적으로 모두 알고 있다. 인간을 사랑하는 자는 더 행복하고, 인간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덜 행복하다. 지금 이야기하는 사랑은 이성애나 모성애같은 사랑을 제외한, 보편적인 사랑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이란 인간 존재에 대한 사랑이라 말했고, 공자는 평생의 행동원칙을 '서恕'라고 이야기했다. 예수도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셨다.


사랑이란 연민이다. 타인의 결핍을 안타깝게 여기고 공감하는 것이 보편적인 사랑이다. TV에 나오는 알지도 못하는 동남아시아 어린이의 사연에 눈시울이 그렁그렁거린다면, 그것이 당신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우리는 모두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고, 사랑받을 이유 있는, 결핍 있는 인간이다.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부족한 존재이기에 타인의 결핍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세상을 헤쳐나간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모두 부족하다. 저마다의 힘듦이 있고, 힘듦의 정도는 남과 비교할 수 없다. 힘듦이란 주관적 '감정'이기에 본질적으로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재벌도 힘들고, 유명 연예인도 힘들다. 직장인도 힘들고, 학생도 힘들고, 어린아이도 힘들며, 가난한 자도 힘들다. 모두들 저마다의 색다른 이유때문에 힘들다. 그 사람이 힘들다면 힘든 거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힘들다.



"연예인이면 그 정도 악플은 감수해야지! 애초에 그러려고 돈 받는 거 아니냐?"
"지갑에 들어오는 돈이 얼만데, 금융치료 한번이면 싹 해결되는 거지. 대체 왜 자해를 하냐? 쟤 관종이냐?"


연예인의 자살이나 자해 이슈가 생기면 여지없이 볼 수 있는 댓글이다. 본 적 없다고? 장담한다. 분명히 있다.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연예인의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유명하고 돈도 많이 버는 연예인으로 말이다.

나의 힘듦만이 힘듦은 아니다. 타인의 힘듦도 힘듦이다. 그리고 나의 힘듦이 타인의 힘듦보다 더 무거울 수 없고, 남의 어려움이 나의 어려움보다 더 가벼울 수 없다.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란 그런 종류의 것들이다.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모두 불쌍한 존재다. 힘들어하고 아파할 수밖에 없다. 고통을 피할래야 피할 길이 없어서 온몸으로 화살을 받아내는 경우가 대다수다. 고통이라는 화살은 유도미사일같아서 내가 어디로 도망치든지 기어이 나를 따라와 나를 꿰뚫는다. 하지만 나를 산산조각 내버리는 미사일과는 달리, 화살은 내 몸을 관통해 구멍을 하나 남기고 지나간다. 그리고 대개, 혼자서는 구멍을 메우기 쉽지 않다.


몸 곳곳이 구멍 나 있는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와 자격이 있지 않을까. 상처는 아물지라도 구멍은 그대로 남는다. 그 구멍을 채울 수 있는 것은 타인의 사랑뿐이다. 우리에게 날 선 이성의 목소리보다는 따뜻한 위로가, 통장에 꽂히는 돈보다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더 간절하다. 정말, 우리 모두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 잡생각을 하며, 또 제대로 된 글을 쓰기에는 내 실력이 한참 멀었다는 사실도 절감하며, 노래 한 소절과 함께 이 이야기를 마친다.


잘 쓴 글은 문장이 매끄럽고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늘 하는 생각이다.

Everybody needs a little help sometimes
Everybody needs someone to call on
Everybody gets a little lost inside
But it's alright, yeah it's alright


https://www.youtube.com/watch?v=lsMfp0iiaHc

michael schulte - someone


19년 6월 고1 영어 43-45 장문지문
Kevin was in front of the mall wiping off his car. He had just come from the car wash and was waiting for his wife. An old man whom society would consider a beggar was coming toward him from across the parking lot. From the looks of him, he seemed to have no home and no money. There are times when you feel generous but there are ther times when you just don’t want to be bothered.

This was one of those “don’t want to be bothered” times. “I hope the old man doesn’t ask me for any money,” Kevin thought. He didn’t. He came and sat on the bench in front of the bus stop but he didn’t look like he could have enough money to even ride the bus. After a few minutes he spoke. “That’s a very pretty car,” he said. He was ragged but he had an air of dignity around him. Kevin said, “Thanks,” and continued wiping off his car.

He sat there quietly as Kevin worked. The expected request for money never came. As the silence between them widened, Kevin asked, “Do you need any help?” He answered in three simple but profound words that Kevin shall never forget: “Don’t we all?” Kevin was feeling successful and important until those three words hit him. Don’t we all?

Kevin also needed help. Maybe not for bus fare or a place to sleep, but he needed help. He opened his wallet. And Kevin gave him not only enough for bus fare, but enough to get a warm meal. No matter how much you have, no matter how much you have accomplished, you need help too. No matter how little you have, no matter how loaded you are with problems, even without money or a place to sleep, you can give help.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은 왜 싸워야 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