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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Nov 30. 2020

갇혀 있느라 심심했나보다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며

   어제 점심에 본 일이다.


   오전 공부를 마치고 밖에 마실을 나갔다. 찬바람이 쌩쌩 불었으나 햇빛 덕에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해가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곳을 찾아 동네를 이리저리 헤맸다. 햇살이 참 보드라웠다. 오랜만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20분쯤 걸었다. 발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커피나 한 잔 사들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테이크아웃을 위해 매장 밖을 향해 나 있는 창에는 캐리어에 담긴 커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어렴풋이 봐도 10잔은 넘어 보였다. 저 커피들이 왜 저리 놓여 있는지 나는 퍽이나 궁금했다.


   수많은 커피의 정체는 이내 드러났다. 패딩과 헬맷, 장갑으로 중무장한 청년이 다가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탄성을 내질렀다.


   “아이 씨, 짜증나네!”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덧붙였다.

   “이거를 다 갖고 가라꼬?”

아르바이트 하는 여자는 미소를 띈 채 조금은 미안한 듯한 목소리로 말끝을 내리며 대답했다.

   “네, 좀 많죠? 다 가져가셔야해요.”

   “아니 씨바, 커피를 몇 잔을 시키는 기고! 커피 묵다가 뒤질라꼬 그라나.”

하며 배달기사는 커피를 오토바이로 옮겼다. 옮기는 내내 짜증에 가득 찬 목소리로 중얼중얼 커피를 시킨 이들에게 가벼운 저주를 퍼부었다. 그는 곧 오토바이를 타고 자신이 저주를 퍼붓던 사람들에게 커피를 퍼붓기 위해 떠나갔다.


   그가 떠나고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물었다.

   “저거 어디서 주문했어요? 보건소였나?”

   “보건소였나? 아파트였나? 잘 모르겠네요. 뭐 사람 많이 있는 곳이겠지.”

   “거리두기 한다고 갇혀 있느라 많이 심심하셨나보다.”

   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말이 마치 부처님 말씀 같았다. 그녀는 다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드는 데 열중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나는 비슷한 나잇대인 두 남녀의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갇혀 있느라 심심했나보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자기도 많은 음료를 만드느라 힘들었을 테다. 주문자에게 화를 낼 수도 있고, 투덜대던 배달기사의 말에 맞장구를 칠 수도 있었다. 허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정했다. 공감이었다.


   물론 배달기사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배달은 횟수에 가격을 매기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음식을 배달한다고 해서 자기에게 이득이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배달하는 물건이 음료라면 흘리기도 쉽다. 조심히 운전하면 배달 속도도 느려질 것이고 수입이 줄 것이다, 혹여나 음료를 흘린다면 주문자에게 한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충분히 화날만하다. 게다가 이렇게 추운 날씨에!


   나는 배달기사의 자연스러운 불만 토로가 좋다. 인간적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의 따스한 한마디를 더 사랑한다. 더욱 인간적이다. 그 짧은 한마디는 (비록 배달기사는 듣지 못했지만) 주문자를 변호하는 강력한 한마디였다. 그리고 나만큼이나 남을 헤아리는 공감의 표현이었다. 사람이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남의 사정을 헤아리거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것이 바로 공감이다. 나는 이처럼 따뜻한 말을 요 근래에 들은 일이 없다.


   요즘 날씨가 참 춥다. 따스한 말 한마디가 붕어빵, 어묵, 커피보다 더 든든하게 내 속을 데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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