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메다 Dec 13. 2020

내 일상이 사라졌다.

매일 똑같은 하루, 글감이 사라졌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열심히 연필로 노트에 글을 끄적여댔다. 두 시간이 지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는 꾸깃꾸깃 뭉쳐진 종이 뭉치 두어 개와 시꺼멓게 칠해진 노트가 남았다.


도저히 글을 쓸 거리가 없다. 내 일상이 송두리째 사라진 기분이다. 매일매일 같은 하루,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그날 듣는 인강의 내용만 다를 뿐이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약을 먹고 같은 시간에 공부를 한다. 같은 시간에 공부를 끝내고 같은 시간에 자책을 하며 같은 시간에 자살을 생각한다. 허무할 정도로 똑같은 일상에는 아무런 변주도 없다. 바뀌는 것이라고는 인강 강사가 설명하는 내용뿐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 때문에 오늘과 같은 내일이 두려워진다. 어떻게든 밖에 나가서 생활에 변주를 줘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이 시국에' 감히 어디로 나간다는 말인가. 나는 죽고 싶은 생각이 들면 일단 짐을 챙겨서 카페로 나가곤 했다. 카페에 앉아 글을 끄적이며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우울하거나 불안한 생각이 많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더 이상 카페는 나를 품어주지 않는다. 툭 건드리면 울음이 터질듯한 표정으로 다가가는 나를 밀어낸다. 그러면 나도 울상을 짓는다. 밖에서 돌아다닐 곳이 없다.


강화된 거리두기 때문에 집에 콕 박혀만 있다. 몸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지만 내 마음은 썩 편치 않다. 오늘은 일일 확진자 수가 950명을 넘었다. 14일이면 거리두기가 풀리리라 기대했는데 어림도 없어 보인다. 이대로라면 크리스마스, 신정까지 계속해서 거리두기가 이어질 추세다. 앞길이 깜깜하다. 나라 경제 말고, 내 정신건강이 깜깜하다. 이렇게 매일 심리적으로 갇혀서 사육당하는 생활을 몇 주만 더 하다 보면 낙동강에서 헤엄치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만 같다.


또 다른 문제는 글 쓸 주제가 없다. 매일 같은 일상에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 무슨 글을 쓸까. 일기장을 죽 훑어봐도 글로 쓸만한 이야기는 없다. 내 깊고 깊은 불안과 상담, 정신과 진료 기록만 담겨 있을 뿐이다. 하루하루의 에피소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렇다고 내 우울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앞길이 막막하다. 이 수없이 쌓여 온 나의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까?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누가 읽어줄까? 브런치를 내 일기장으로 변질시켜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책상에 앉아 펜을 들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뭐라도 써야 뭐라도 나올 텐데 하는 생각에 나를 자책한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좋은 글감은 계속 떠오르지 않는다. 연필을 잡고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찢어 버린다.


내 글감이 사라졌다. 내 글감은 나의 일상이요 생각이다. 그 글감이 사라졌다. 내 일상이 사라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 일상은 늘 똑같았다. 가끔 죽고 싶을 때 카페에 나가는 걸 빼면 달라진 건 없다. 카페 대신 집 앞 공원으로 마실을 나가면 해결될 문제다. 돌이켜보면 모두 내 생각이다. 우리 집 식물들은 내가 관심도 두지 않는 동안 무럭무럭 자라나고 아름다운 향을 내뿜고 있다. 그간 관심 두지 않았던 내 책상, 독서대, 옷걸이 모두가 글감이다. 하루는 결코 똑같을 수 없지만 나는 그 낯섦을 아직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내 일상은 건재하다.


내가 잃어버린 건 내 일상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 리두기 때문에 박에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꽂혀서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주변을 잃어버렸다. 내 일상에 주의를 기울일 여유를 잃어버렸다. 매일매일 색다른 내 하루의 빛깔을 음미할 힘을 잃어버렸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글감을 잃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갇혀 있느라 심심했나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