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선운사에서>, 최영미
우리 인생처럼 알 수 없는 게 또 있을까.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 결국 이리저리 맴돌다 시작점으로 돌아온다.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단어로 삶을 말하곤 한다. "삶은 계란"이라는 우스갯소리부터 "인생은 B와 D 사이의 C이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인생은 연극과 같다", "사는 것은 고통받는 것이고, 살아남는 것은 고통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다."까지, 삶에 대한 격언은 세상에 존재했던 사람 수만큼 존재한다.
오늘의 나는 삶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삶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만남은 특별하다. 오늘 나를 지나쳐간 사람만 해도 수백 명은 될 것이다. 흘러가는 인연을 잡아낸 것을 만남이라고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새로이 만날 때 마음이 두근거린다. 그 대상이 이성이나 직장 동료같이 내가 계속 함께해야 할 사람이라면, 심장은 두근대다 못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 그리고 설렘. 그 감정은 오묘하고 복합적인 어려운 감정이다. 그리고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진귀한 감정이다.
만남이 관계가 되는 과정은 사람마다, 경우마다 다르다. 첫눈에 서로 마음이 맞아 그날로 도원결의를 맺을 수도 있고, 차츰차츰 알아가면서 조용히 사랑이 완성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처음의 복잡한 감정이 쨍그랑하고 깨져서 똥 씹은 얼굴로 자리를 박차며 나갈지도 모른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한 사람의 마음에는 순식간에 꽃이 피었는데, 상대방 마음속에서는 흙이 말라비틀어져 쩍쩍 갈라지고 있는 순간이다. 시에서는 둘의 마음이 이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화자는 "그대"를 본 순간, 마음 한편에 꽃밭이 촤라락 펼쳐졌나 보다.
꽃이 피었다고 끝이 아니다. 시작에 불과하다.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긴 탐색기를 거치며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일상의 한 부분을 같이 하면서 다시 서로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경험한다. 그러고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둘 사이의 거리는 훨씬 가까워질 것이다. 충분히 가까워진 후에야 나의 꽃을 상대방에게 보여줄 수 있다. 그제야 상대방의 꽃을 확인할 수 있다. 둘이 서로의 꽃을 확인하는 순간, 드디어 둘은 조금 더 특별한 관계가 되어 함께 꽃을 돌보기 시작한다. "나"의 마음속 꽃을 "우리" 마음 정원에 옮겨 심는 과정은 굉장히 힘들고 어렵다. 그리고 값지다.
하지만 가뭄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어렵게 피워낸 꽃은 죽어가는 과정조차 보여주지 않고 픽, 하고 말라비틀어진다. 좋은 이별이든, 나쁜 이별이든, 인간관계에 있어 이별이란 필연이다. 헤어짐이 없는 관계는 없다. 회자정리에서 끝나느냐, 아니면 거자필반이 있느냐의 차이다.
헤어짐이란 얼마나 슬프고, 애달프고, 가엾고, 가혹하고, 잔인하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어렵고 또 익숙해지지 않는 일인가.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이별이라는 단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까닭 만으로도 신은 우리를 스파르타인처럼 키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절벽에서 떨어진 아이가 다시 기어올라올지, 또는 그대로 죽어나갈지 신은 관심이 없다. 이별은 그만큼 비극적이다. 이별만큼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단어는 없다.
이별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둔감해지지도 않는다. 박힌 못을 빼내더라도 그 구멍은 남아 있다. 다만 경험이 많아질수록, 나이가 들 수록, 체면 따위의 이유 때문에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다. 이별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슬프고 힘든 일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이별은 잊히지 않는 이별이다. 님은 이미 나를 떠났는데, 여전히 님을 그리워하는 나는 얼마나 가여운가. 시계를 보다가 님의 생일이 떠오른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다가 님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선운사에서 꽃을 구경하다가도 문득 꽃을 좋아하는 님이 생각난다. 차라리 필 때처럼, 잊을 때도 한순간에 잊으면 좋으련만, 내 머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저 멀리, 그대가 보인다. 난 이렇게 힘든데 그대는 웃음을 짓고 있다. "산 넘어 가는 그대"의 웃음이 행복한 웃음이 아니라 억지로 짓는 미소이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대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마음을 님은 아실 길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인생이라 할 만큼 오래 살지는 않았다. 거절받을까 두려워서 아예 관계를 시작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의미 있는 인간관계도 없다. 그래서 겪은 이별은 그리 많지 않지만, 아픔은 남들 못지않게 크다. 난 아직도 첫 여자 친구의 번호와 생일을 잊지 못한다. 정작 사귈 때는 기억도 못해서 자주 혼났는데 말이다.
나를 떠나간 이들은 모두 내게 먼저 다가온 이들이었다. 늘 스스로를 책망하는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넌 좋아할 만한 구석이 넘치는 사람이라며 따뜻하게 감싸 안아줬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모두 나를 떠났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바뀌지 않는 나 때문에 떠났다.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이제는 정말, 이별이 무서워 새로이 사람을 만나기가 두렵다. 그들을 잊을 수 없다.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라
영영 한참이더라
잘 쓴 글은 문장이 매끄럽고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늘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