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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메다 Dec 19. 2020

괜찮은 사람의 안 괜찮은 이야기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115 나는 불에 타 재가 되지 않았다. 나는 어린 불사조처럼 불꽃을 뚫고 나왔다. 흉터가 남은 곳을 손가락으로 쓸고 그 울퉁불퉁한 윤곽선을 어루만져보았다. 나는 불타지 않았어요, 엄마. 내가 생각했다. 나는 불을 통과해 나왔고, 나는 살았어요.

내 심장에는 얼굴의 흉터만큼이나 두껍고 보기 흉한 흉터가 있다. 나는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안다. 손상되지 않은 조직도 조금은 남아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사랑이 들어오고 흘러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작게라도 남아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금요일 퇴근할 때까지 1주일 동안 그 누구랑도 말을 섞지 않는 30살 여자의 이야기. 누군가가 집을 방문하는 일이라고는 1년에 2번 있는 사회복지사의 방문이 다인 사람의 이야기. 어릴 적 화재로 인해 얼굴에 커다란 흉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그 흉이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 한구석에도 남아있는 가여운 아이의 이야기.


엘리너는 엉뚱한 사람이다. 아니, 조금은 많이 이상한 사람이다. 사회적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해 의사소통에서 실수를 자주 하는 사람이다. 눈치 없어 보이기도 하고, 자기만의 세계의 빠져서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이상한 말을 해놓고는 거기에 대꾸하지 않는 상대방을 보며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기 말과 행동의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 채, 진심이 아니라 연습한 기술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다. 직장에서는 말 섞을 동료도 하나 없이 혼자서 지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자기 일은 열심히, 충실히 그리고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다.


엘리너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와 조금만 이야기해보면, 의사소통은 서툴지만 그 안에는 때 묻지 않은 진심이 담겨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이다. 외롭고, 사람이 그립고 필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이 다가갔다가 멀어지는 게 두려워서, 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라서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니, 자신에게는 친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괜찮지 않으면서도 늘 괜찮다고 주문을 외며 다니는 사람이다.


74 나는 콜센터를 정말로 좋아한다. 온갖 억양을 듣고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늘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최고의 부분은 마지막에 그들이 오늘 도와드릴 일이 더 있나요, 엘리너?하고 물어올 때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요, 감사해요, 제 문제를 종합적으로 완전히 해결해주셨어요. 사람의 목소리로 내 이름이 크게 불리는 것을 듣는 것 또한 늘 기분좋은 일이다.


엘리너는 가여운 사람이다. 학대받은 사람이다. 여전히 학대의 기억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여전히 어머니에게 학대받는 사람이다. 잘못을 하지 않고도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누군가 자기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다. 자기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스스로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다.


엘리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사람이다. 신뢰를 주는 사람이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다. 강인한 사람이다. 너무나 불쌍하고 슬픈 사람이지만, 너무나 안쓰럽고 가여운 사람이지만, 때로는 너무나 이해 안 되는 행동만 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정이 떨어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엘리너는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다. 정말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다.


엘리너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상처 입고 상처 입고 상처 입고 또 상처 입어도 사람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타인의 아픔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잘못에 미안해할 줄 아는 사람이다. 중요한 순간에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다. 믿음에 배반당하고도 다시 사람을 믿을 수 있는 멋진 사람이다.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참 닮고 싶은 사람이다.


이 덩치는 30살이지만 마음은 10살짜리 소녀가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보고 싶은 사람은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를 읽기를 권한다.


449 내가 느낀 건 이것이었다.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의 따뜻한 무게. 그의 미소에 녹아 있는 진심. 아침에 해를 보자마자 꽃잎을 펼치는 꽃처럼, 뭔가가 활짝 열리는 부드러운 열기.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것은 내 가슴속에 남은 상처 입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저 약간의 애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크기, 작은 공간임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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