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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귀한 아들 03화

6년 만에 쌍둥이를

드디어 엄마가 되다

by 이사라

결혼 후 시댁, 친정할 것 없이 동생들이 번갈아가며 우리 집에서 지낸 탓에 아기를 낳는다는 계획을 잠시 미루었다. 그렇게 6년 정도가 지나자 동생들도 모두 독립을 하고 드디어 남편과 둘이 단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제야 진짜 신혼생활이 시작된 것 같았지만 그때쯤 내가 불임이라는 것을 알았다. 몇 해전부터 피임을 하지 않았음에도 임신이 안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나는 종합병원약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해에 결혼한 동료약사는 벌써 자녀를 둘이나 낳았다. 옆에서 아이가 아프다고 걱정을 하면, 나는 그 걱정마저도 부러웠다. 나는 언제 아기가 아프다고 걱정해 볼까? 그런 날이 올까? 하는 막연한 절망감이 들었던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소아과의 아기들, 신생아, 임산부, 산모, 그들은 모두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그들 옆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마음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생리일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이번 달에는 혹시? 하고 기대했다. 그 기대가 무너지면 갑자기 우울해지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아기를 갖지 못했을 때는 시간이 덧없이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과 내 젊음이 아무런 소망도 기쁨도 없이 소멸되어 가는 것 같았다.

삶의 권태가 나를 짓눌렀다. 내 나이는 삽 십 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나는 아무런 바람도 없이 집에서 병원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

만약 아기가 있다면, 세상이 달리 보이겠지. 이제 이 세상은 내 자녀가 살아갈 세상이므로, 더 이상 무관심할 수 없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어떤 아기라도, 설사 그 아기가 장애를 갖고 태어난다고 해도, 그 아이는 세상과 나를 이어 줄 끈이 되어 줄텐데... 그런 끈이 없는 지금 저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다고 한 들 무슨 상관이랴. 하는 우울한 생각까지 들었다.


자연임신이 계속 실패하자 불임크리닉을 다니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불임 치료를 받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 날은 복강경 검사 후 배에 뚫린 구멍을 간단히 봉한 후 출근해서 일을 해야 했고, 나팔관 검사를 받을 때는 마치 이상한 고문기계에 거꾸로 매달려 생체 실험을 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몇 번의 시도 끝에 시험관 아기 시술이 성공하게 되었고, 기적과 같이 두 아이가 동시에 나에게 찾아왔다. 그때의 기분이란. 나는 표현할 수 없이 기쁘고, 행복했다. 그때가 아마도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식을 낳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한숨과 눈물과 노력이 바쳐져야 하는지도 모르고 나는 마냥 행복해했다. 인생의 진정한 결단은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식을 낳느냐 마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그 행복한 기분은 임신 기간 내내 이어졌다. 우울했던 내 표정이 밝고 행복한 표정으로 바뀌었다고들 했다. 쌍둥이였기 때문에 내 배는 남들보다 빠르게 부풀어 갔다. 임신 초반에는 느닷없는 하혈에 꼼짝하지 않고 방안에 누워 한 달을 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럭비공처럼 튀어나온 배를 내밀고 천천히 걸어 다닐 때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다. 내 뱃속에 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그 신비로운 감정이 나를 들뜨게 했다.

내 몸속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아기를 낳고, 산후 조리원에서 4주를 보냈다. 같이 아기를 보아줄 사람이 없었기에, 아기들을 데리고 집으로 온 날,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신생아를 돌본 경험이 없었기에 바짝 긴장을 했다. 처음에 한 아이가 낮과 밤이 바뀌어서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남편은 박사과정 중에 있었고, 논문을 준비하랴, 아르바이트를 하랴, 나름 정신없이 바빴기에 쌍둥이를 보는 것은 온전히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나는 육아 휴직 5개월을 받았고, 그 기간 동안에는 오로지 아기들을 돌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아기를 다루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해서 힘들었지만 행복한 일이었다. 아기들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 해도 나는 행복했다. 산후 우울증은 없었다. 잠든 아기들의 얼굴은 천사 같았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했지만, 어제의 모습이 그립곤 했다. 흐르는 시간들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아기들이 커나가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육아 휴직이 끝나자 이모님(베이비 시터)을 구했고, 그분에게 아기를 맡기고 다시 출근했다. 집에서 잠시도 아기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출근을 하니 근무시간이 휴식을 취하는 듯 편안했다.

8개월쯤 되었을 때, 우리 집에 오시던 이모님( 베이비 시터)이 작은 아이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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