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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귀한 아들 02화

당신을 만나고

나에게 따듯한 빛이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by 이사라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남녀 공학인 그 학교에는 동아리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원하는 고교에 입학하였음에도 중3시절을 줄곧 후회했는데 친한 친구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소심한 성격을 고치고, 친구도 사귀자 하는 마음으로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그게 하필 문학동아리였다. 남편은 그 동아리의 1년 선배였다. 시(詩)를 쓸 줄도 이해할 줄도 모르는 내가 문학동아리라니. 게다가 나는 이과로 진학할텐데 그게 입시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은 일단 접어 두었다. 나는 어딘가에 소속되길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었다.


남편에 대해 말하자면,

동아리룸에서 그와 처음 마주친 순간 나는 그가 내 운명의 사람이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는 키가 컸고, 피부는 하얗고, 미소를 지을 때 조차도 고독해 보이는 아우라를 풍겼다. 한번 눈을 마주치면 절대 잊혀지지않는 깊은 눈동자를 지녔다. 사람이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 내려앉을 수가 있는 거구나, 하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그를 생각하면 내 머릿 속에어 맑은 종소리가 짤랑 짤랑 울리는 것 같았다. 그는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라고 멋지게 말하고 싶지만, 진실한 사랑은 그렇게 한순간에 오지 않는 법. 현실은 그것과 정반대였다.


지금도 여전히 기억나는 남학생들은 많지만, 유독 남편의 첫인상만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남편이 내 눈에 들어왔을 때 그은 키가 작았고, 피부는 가무잡잡했으며,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편의 말 많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가 열띤 토론 속에서 쉼없이 말을 이어갈 때는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 다른 사람 말도 들어보시죠. 선배님, 아는 것이 많다고 혼자 떠드시면 안됩니다, 하고 끼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마디로, 잘난체하기 좋아하는 비호감의 남학생이었다. 길거리에서조차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하필 그가 같은 동네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오며가며 가끔 마주쳤고, 그럴 때면 나는 20년 동안 살던 동네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으면 .. 하는 생각을 했다.


일년이 지나고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그에 대한 비호감은 어느새 호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1년이 지났을 무렵 알게 되었다. 그는 나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했다. 말도 많았지만 유머도 많아서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고 재미있게 만들었다.

어느날, 3학년으로 올라간 그가 다행히 1번은 면했다고 뿌듯해 하면서 말했다. 당시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했으니 그는 항상 1번 아니면 2번이었던 거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 후배님, 키가 몇이죠?

-저는 반올림 하면 160이에요 (당시 내 키는 159.6이었다)

- 흠. 나는 반올림하면 2미터인데..

어쨋든 그 시기에 나는 그의 따뜻함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찬 사람이었고, 그 에너지를 주변에 뿌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늘 우등상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원하던 S대 국문과에 합격을 해서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이제 막 고 3으로 돌입한 후배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는 격려의 엽서를 보내왔다.


그가 떠나자 갑자기 학교가 텅 빈듯이 여겨졌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너무 쓸쓸하게 변했다.

고3때, 나도 그가 있는 S대에 가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지만, 끝내 그 정도의 높은 점수를 맞지는 못했다.

나는 지방의 약대에 입학을 했다. 지방대에 들어간 것 보다도 그와의 인연이 끊어진 것 같아 암울했다.


대학 1학년이 다 지나도록 그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신입생 때 다른 여학생들이 흔하게 하던 미팅도, 소개팅도 한번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그가 들어있었다. 누구를 보아도 그와 닮은 점을 찾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거의 3년 동안을 내가 혼자서 남편을 짝사랑한 거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가을날,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대학 1학년 10월쯤부터 그와 사귀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귄지 8년이 지난 후 결혼을 했다. 8년의 연애 생활은 한마디로 행복했다.

"힘들었지만 외롭지는 않았어요"라고 드라마에서 애순이가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도 같은 말을 해 줄 수 있다. 당신과 함께 하는 삶이 힘들었지만 최소한 외롭지는 않았다고.

그를 본격적으로 사귀게 되자 나에게는 더이상 외로움은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뭐든지 그와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편지를 주고 받았고, 마치 일기를 쓰듯,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기도를 하듯 서로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나의 든든한 울타리였고, 내 삶을 따뜻하게 비춰주는 햇살 같았다.


결혼 후에는 이런 나의 환상도 깨지지만, 연애 시절만큼은 그랬다. 그와 결혼하고 아기를 갖기를 바랐지만 아기는 좀처럼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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