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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귀한 아들 01화

엄마가 되길 바랐다.

내 꿈은 엄마가 되는 거였다.

by 이사라

나의 10대를 되돌아보면, 그때 나의 바람은 얼른 자라서 집을 나가는 거였다. 그리고 나만의 새로운 가정을 갖고 아기를 낳는 거였다. 나는 아주 외로웠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정이 그리웠다. 그래서 10대의 내 꿈은 엄마가 되는 거였다.


중 3 때, 나는 밤 10까지 교실에 남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집안의 분위기가 싫어서 일찍 집에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중 3학년이 되니 야간 학습을 할 수 있게 교실이 개방되었다.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고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저녁을 굶은 채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식구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혼자 부엌에서 밥을 찾아 먹고 잠이 들었다. 어느 날은 위장이 뒤틀려 혼자 부엌 바닥에 한동안 엎어져 있기도 했다. 내가 저녁을 먹었는지, 무사히 학교에 다녀왔는지 그들은 무심했다. 애정어린 관심을 받아본 기억이 없는 나는 친구들과 말을 나눌 줄 몰랐고, 소심했다. 나는 인간관계에 자신감이 없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말을 걸려고 하면 얼굴부터 빨개졌다. (중학교 졸업식 때 친구와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중 2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중 3 때부터는 성적이 쑥쑥 오르기 시작했다.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 책만 들여다본 탓이다. 전교 80등 하던 성적이 반 1등 전교 2등까지 올랐다. 그때서야 선생님이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중 3 때 모의고사를 치른 후 담임선생님은 나를 불러놓고, 혹시 그 시험지를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의 성적을 믿을 수 없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학교에서 엄마에게 장한 어머니상을 주겠다고 했다. 장한 어머니라니. 필시 내 성적이 급 상승한 것 때문에 엄마에게 상을 주려는 게 분명했다. 선생님은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엄마가 얼마나 딸들에 대해 무심하고 냉랭한지. 내가 얼마나 엄마를 싫어하는지. 엄마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불쑥 우리집에 들어온 새엄마였다. 전처 자식이 다섯이나 딸렸으니 엄마도 우리가 이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생모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을 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정확한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다. 생모에게는 그당시 자식이 여섯이나 있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사춘기 딸부터 기저귀를 떼지 못한 막내 아들까지. 그 자식들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가? 가끔, 생모를 생각하면 나는 미운 마음이 든다. 자식을 보면서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어미는 어미자격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엄마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바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뇌종양을 앓다가 결국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언니 때문에 절망스러웠을까. 추정할 뿐이다. 목숨을 버리기로 작심했을 때 어떤 생각들을 했을지 짐작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 마지막 순간에 떠올린 것이 자식들은 아니었을 거다. 그렇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테니까.


담임 선생님이 신신당부했건만 새엄마는 끝내 장한 어머니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스스로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하찮은 의붓딸에 대해 어떤 신경도 쓰기 싫거나. 나를 미워했을 것이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전처소생은 눈에 가시거리였을 것이다. 전날 밤에, 제발 학교에 와 달라고 무릎 꿇고 부탁해도 소용없었다. 엄마는, 차가운 나의 계모는, 나의 소심한 마음 따위 조금도 헤아려 주지 않았다. 내가 학교에서 얼마나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될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 동생들과 나는 건넌방에 틀여 박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적의가 소리 없이 집안에 떠돌았다. 엄마의 그 무심한 말투과 냉랭한 시선, 우리에게 들어가는 돈 한 푼이 아까워 절절거리는 그 때도가 나는 끔찍하게 싫었다.


나는 그렇게 차가운 공기가 떠도는 가정을 버리고 새 가정을 갖고 싶었다.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집.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어라도 해 줄 수 있는 집. 끝까지 자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을 줄 수 있는 내 자식이 있는 그런 가정을 꿈꿨다.


내 모든 것을 바쳐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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